“지금 행복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를 모신 강연회 자리에서였어요. 이 난데없는 질문에 번쩍 손을 들 뻔 했죠. 다행이 제 손이 올라가기 전에 늙은 작가는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복한 건 도둑놈들이거나 아니면 바보들입니다.”

도둑과 바보, 저는 둘 중에 무엇이었을까요? 그 무렵 15개월 된 큰 딸내미가 한창 예쁜 짓을 할 때라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는 술을 한 잔 걸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엄마 옆에서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이 고통이 넘쳐나고 갈수록 험악해지는 세상에서 한 생명이 온전히 자라도록 키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아이 탓에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우리 부부였지만 장모님은 멀리 사시고 어머니는 지병이 있으셨기에 마땅히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지요. 게다가 아이 백일도 되기 전에 아이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집근처 어린이집도 없었기에 일주일에 이틀은 제가 아이와 대여섯 시간을 꼬박이 보내야 했던 것이죠. 꼭 포대기에 업혀야 잠이 들던 딸내미였기에 베개를 아이삼아 등에 올리고 포대기를 두르는 연습도 몇 차례 했지요. 그래서 아이 업는 것은 곧 능숙해졌지만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었건만 계속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진땀을 흘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옹알이를 하고 돌이 가까워서 아장아장 걷더니 도리도리에 잼잼에, 동화책까지 짚어들고 읽어달라며 안기니 그제야 아이 키우는 맛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조세희 작가의 강연이 있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다섯 목숨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가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 자리에 나와 또 비슷한 말을 했죠. 또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져야 할 불행의 짐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 당시 저는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 하지만 꿋꿋하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수족구며 신종플루까지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 벌써 다섯 살이 되었네요.

그리고 재작년 이맘때 덜컥 둘째가 생겼어요. 큰애를 낳고 하나 정도는 더 있어도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좀 당황스러웠죠. 한편으로는 그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겪어야 한다니 많이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아이엄마는 둘째가 태어나면 더 힘들 테니 그전에 연수를 받아야 한다며 저한테 큰애를 맡기고 2주간 연수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일주일에 이틀 애를 봤다지만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죠. 휴가를 내고 아이와 처가로 갔습니다. 엄마가 없어서인지 떼가 늘은 네 살짜리 아이의 신경질을 받아주느라 2년 같은 2주를 보냈죠. 하루는 박물관, 하루는 도서관, 다음날은 놀이공원, 그리고 찜질방. 하도 성질이 나서 차안에서 우는 아이를 30분이 넘도록 달래주지 않은 적도 있지만 자다 깨어나 엄마를 찾다가 제 품에서 다시 잠든 아이를 볼 때면 ‘너야말로 무슨 고생이냐’ 싶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되더라고요.

작은애가 태어난 뒤 지난 일 년은 감기도 우리식구가 되었죠. 큰애가 어린이집을 다니니 줄곧 감기에 걸려 있는데 작은애가 피해갈 수 있나요. 한 번은 큰애 감기가 폐렴으로까지 가서 입원을 했는데 네 식구가 모두 병실에서 먹고 자고를 했어요. 늦은 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앉아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세 명의 여인네를 보니 무슨 피난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작은애는 큰 병치레 없이 첫돌을 맞이했습니다. 둘째라 노하우가 생긴 덕분인지 키우기가 훨씬 수월했지만 노심초사, 조심조심했던 첫째와는 달리 무뎌진 부모 때문에 혼자 베란다로 기어나가 세탁세제를 퍼먹는가 하면 큰애와 방바닥에서 뒹굴다 가구 모서리에 찍혀 얼굴을 꿰매기도 하는 등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죠.

그 사이 이사를 해서 작은애도 동네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귀신같이 엄마의 등과 아빠의 등을 구별해내는 젖먹이와 씨름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아이엄마의 일이 늦게 끝나서 제가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지하철을 타고 아이엄마 직장까지 갑니다. 몇 십분이라도 아이들에게 엄마를 빨리 만나게 해주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그렇게라도 해서 좀 더 일찍 아이들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게지요. 그 지하철에서 어떤 할머니에게는 “요새 아빠들은 애를 참 잘 본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고 어떤 할아버지에게서는 “시대를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엄마들이 이 글을 본다면 고작 일주일에 며칠, 하루에 몇 시간인데 무슨 유세냐고 할 겁니다. 그래도 아이를 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바싹 침이 마르고 아이엄마에게 아이들을 넘기고 나면 무슨 큰일을 치룬 것처럼 홀가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늘 비실비실 하다고 구박받는 몸으로 작은애는 안고 큰애는 업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끊임없이 물어보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큰애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은애까지 함께 있다 보면 숨 한 번 돌릴 여유도 없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나마 작은애가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나아지리라 여겨도 좋을지, 아니면 또 다른 고비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딸을 둔 아빠들이 대게 그렇듯이 저도 자칭 타칭 ‘딸바보’입니다. 아이엄마는 큰애가 아빠에게 너무 버릇없이 군다며 요즘 걱정이 많지만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렇건만 아직도 자다가 깨면 사정없이 저를 밀어내고 엄마 품으로 기어들어갑니다. 작은애야 말할 것도 없지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아빠”라고 답하는 영악한 큰애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엄마’는 아닙니다. 한 번은 그럼 왜 엄마하고만 자고 아빠랑은 안 자느냐고 물었더니 내일은 아빠랑 잘 거랍니다. 물론 그 내일은 한 번도 온 적이 없고 당분간도 오지 않을 겁니다.

추석날 보름달 아래서 큰애랑 강강술래를 하는데 아이엄마가 소원을 빌자고 합니다. 아이들이 도둑이나 바보가 되지 않기를, 이웃들과 불행의 짐을 나눠질 수 있기를……. 딸내미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어서 빨리 어른이 되게 해주세요.”랍니다. 저는 냉큼 딸내미의 소원이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이뤄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바꾸었습니다. 큰애의 내일처럼 말이죠. 
 


 

 

 

 

 

 

 

 


 

 - 보리출판사에서 나오는 잡지 <개똥이네 집>에서 청탁을 받아 보낸 글입니다. 이런 잡지가있는 줄 몰랐는데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보기 좋은 잡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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