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


다들 한 번쯤은 길을 잃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태 길치’라 할 수 있는 저는 지금껏 무수하게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지리도 배웠고 군대에서 나름 독도법 책장도 넘겨봤는데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길을 잃습니다. 심지어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비게이션을 떡하니 운전석 옆에 붙여놓고도 고속도로 IC를 잘못 타서 수십 킬로미터를 돌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시간 낭비, 돈 낭비, 체력 소모와 자괴감 정도지만 어렸을 적에는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섯 살 무렵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마침 저희 집 이삿날이었습니다. 다들 이삿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유난히 심심했을 저는 나 홀로 ‘수사반장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최고 인기였던 TV 프로그램 ‘수사반장’에서처럼 미행을 한 겁니다. 범인은 주인집 아주머니였습니다. 시장에 가려고 나서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살금살금 눈치 채지 못하게 뒤를 밟았습니다. 어느 정도 갔을까, 어느 순간에 그만 어느 길목에서 아주머니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 거리는 참 낯설었습니다. 아주머니 뒤꽁무니만 보고 쫓아왔으니 어느 사거리에서 가로질렀고 어느 골목에서 꺾어졌는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작정 뒤돌아 곧바로 가면 집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낯선 동네에 다리는 아프고 길은 도무지 찾을 수 없고, 어느 순간 골목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다행히 어느 집에서 제 울음 소리를 듣고 대문을 열어주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인 뒤 저를 파출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삼촌이 파출소 문을 열어젖히면서 제 ‘수사반장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2011년 올해 《사람》은 처음으로 연중기획이라는 것을 시도해보았습니다.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인권조례, 핵과 에너지, 풀뿌리 정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1년 동안 끈질기게 파고들어보자는 취지였지만 돌이켜보면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애초부터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시작했기에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린 듯 우왕좌왕하며 임시방편으로 땜질하기 급급했습니다. (부족한 기획임에도 좋은 글로 지면을 채워주신 필자들에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이 각성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합니다.


“나도 물어보고 싶다. 이 운동의 목표가 뭐냐? 이 운동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
“우리는 파워를 다른 식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권력을 재생산적이고 구성적인 것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와 위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연구집단 ‘수유너머R’의 고병권이 전하는 시위대와의 토론 중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며 “풀뿌리운동은 ‘비어있는 중심의 운동’을 지향한다. 사람들이 중심에 들어와서 계속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중심을 비워두고 와달라고 하는 태도다. 이곳으로 와서 함께 일하고, 내가 힘이 드니까 같이 더불어서 가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자세다.”[《사람》(2011년 1·2월, 48호)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은 인권운동을 어떻게 하면 더욱 레디컬(radical)하게 만들 것인가의 고민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레디컬은 근본적, 철저한, 급진적 등으로 번역하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 뿌리(radix)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저 월스트리트에서의 점거 시위와 풀뿌리운동의 묘한 공통점은 오히려 당연하다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머리에 적은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라는 멋진 글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 속담입니다. 어느 철학자의 블로그에서 보고 언젠가 한 번 써먹고 싶어서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얼마 전 진보신당에서 활동해온 선배가 페이스 북에 근래의 답답한 심경을 올린 것을 보고 때는 이때다 싶어 힘내라며 댓글로 달아 주었는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정말 길을 잃어 황망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욕을 들어먹기 십상이죠. 하지만 예사로 길을 잃다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는 기쁨도 알게 되고 낯선 길을 나설 때의 두려움도 차츰 덜해지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뜻이겠죠.


솔직히 저는 진보정당, 또는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10여 년 전쯤 아주 잠깐 당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사실 후원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지지의 표시 차원에서 입당을 한 것이었고, 영 내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탈당을 했습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매번 뜨거웠던 ‘비판적 지지’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도, 민주노동당이 쪼개지고 진보신당이 만들어지는 가운데서도, 그리고 최근 지지부진한 통합 논의를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와중에 진보신당 대표에 출마 의사를 밝힌 홍세화의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당원 가입을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해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하며, 상비군 폐지를 공론화시켜 병영국가의 성벽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서울대는 없애고, 대학은 평준화하며, 각종 국가고시는 지역별로 할당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학벌사회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지배 담론에 길들여져 허락된 것만 말하는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홍세화,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 중에서)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해 한동안 유행하다 요새는 거의 자취를 감춘 ‘로드맵’이란 말이 있습니다. 밑그림, 일의 처리 순서나 세부 계획이라고 할 수 있지요. 총선과 대선이 있는 바야흐로 ‘정치의 해’인 2012년, 누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을 위해 레디컬한 로드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한국에 녹색당도 생긴다고 하니 저 같은 ‘길치’는 조금 안심을 해도 좋을까요?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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