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의 대화 - 넬슨 만델라 최후의 자서전
넬슨 만델라 지음, 윤길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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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의 민주화의 상징이라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은 애도의 물결을 표하며 거리로 향했으며 그 인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났다고 한다. 연일 신문이며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니 그 이전에도 책을 통해서 간략하게 그에 대한 내용들을 접하면서도 별 다른 생각들은 해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남아프리카의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문구를 보면서도 그 최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인지하는 대도 한참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그들이 나라인 아프리카에서 대체 흑인대통령이 왜 최초로 탄생되어야 했는지, 그 최초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인종차별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내야 했는지 등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나는 그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순간이었지만, 더 이상 그의 삶을 그저 관망하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고 싶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숫자들을 보면서 파본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는 이 기록들은 하단의 주석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는데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은 것들이었다.

연도 뺄셈 세 개에서 첫 번째 “28”은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여 했던 총 햇수이고 두 번째 “44”는 그가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의 나이며, 세 번째 “72”는 그가 마침내 감옥에서 풀여났을 때의 나이다. (출처: <자유롭게 향한 머나먼 길>의 속편으로 쓴 미완성 원고) –본문

 한 아이가 태어나 소년을 넘어 장성한 청년이 되고도 남을 시간을 고스란히 비좁은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던 그는 죄수 466/64번이 되어서도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와 뜻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를 이 감옥 안에 투옥시킨 이들을 원망 대신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 만델라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류 없는 인간이 거둔 필연적 승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사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변화가 어려워 보이는 시대에, 우리의 대립과 우리의 불완전함이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서로 책임지지 않는 쉬운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시대에 봉착해 있다. 만델라도 그런 시대에 봉착했었다. 그러나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로벤 섬 감방에서도 그는 더 나은 미래를, 희생할 가치가 있는 미래를 보았다. 복수를 하고 싶은 유혹에 부딪혔을 때에도 그는 화해의 필요성을, 원칙이 한낱 권력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았다. –본문

 28년이란 시간. 이렇게 글자로 쓰고 읽기에는 별 거 아닌 시간이지만 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시간 동안을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고자 했던 열망 하나 때문에 고스란히 갇혀 지내야 했다니. 역사를 고스란히 바꾼 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이 책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세상의 변화를 위해 온 몸으로 희생했던 넬슨 만델라는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친근하면서도 그의 모든 것들이 여과 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의 삶처럼 28년의 어둠 뒤에 5년의 찬란한 빛이 있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이며 이 길을 갈 텐가? 라고 묻는다면 과연 나는 YES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만 계속해서 되뇌게 된다. 아니, 만약 그 길을 어떻게든 가게 되었더라면 나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이 모든 고통의 빚을 고스란히 돌려주려 아등바등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괴물이 되어버렸을 28년이라는 시간을 그는 오롯이 빛의 시간으로 보내왔으며 그 험난한 시간을 진귀한 시간으로 장본인이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도 겸손하게 웃고만 있었다.

 세상에 폭력적인 사태로, 무구한 흑인들의 유혈과 그들을 향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는 이 모든 사태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비폭력을 전술로 생각했어요. 상황이 우리에게 비폭력을 써야 한다고 하면 그럴 것이고, 상황이 우리에게 비폭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 그럴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족장이……. 무력투쟁에 반대하리라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도 아주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설득했지요……. –본문

 비폭력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려 했던 초반의 생각들이 그들이 처해있던 상황 속에서 모든 것들 것 변모하게 만들었고 과격해지는 진압 속에서 정의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외압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세상을 바뀐 위대한 성인으로 기록되기 이전에 그도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며 아이들의 아빠인, 우리와 같은 평범한 가정 속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평범한이라는 단어 대신에 흑과 백의 공존을 위한 스스로의 길을 찾아 갔으며 그로 인해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끝내 모두 이룰 수가 없었다.

 

 가히 글로 읽으면서도 이 모든 것들의 고스란히 겪어 오신 분이라는 것이 믿어 지지가 않았다. 한 인간으로서 과연 그는 어찌하여 이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일까.

 모두가 말하는 그 정의라는 두 글자의 이름과 평등이라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향했던 지지와 열정은 물론이고 그에게 향했던 모든 반대 세력들마저도 아우르던 그는 표지 속 모습과 같이 더 없이 인자하고 자혜로운 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를 떠나 보내야 했던 그 순간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렸던 것을 책을 덮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라는 부고 관련 기사를 접할 때만 해도 그러했구나라는 생각만을 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 넬슨 만델라는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자연스레 머리가 숙여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큰 별이 졌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이제서야 그를 알았다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앞으로도 그의 가르침을 오랜 동안 기억하며 그의 정신을 따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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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어록 / 넬슨 만델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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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이언스 1 호모사이언스 1
EBS 과학혁명의 이정표 제작팀 지음, 이덕환 감수 / 지식채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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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고 어떻게 탄생된 존재인가, 에 대한 호기심은 이 지구상에 땅을 딛고 살고 있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 물음일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를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호모사이언스, 즉 과학하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당당히 부를 수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과학을 탐구하는 인간이라는 우리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서 이 지구 위에 서 있다. 수 많은 가설들을 세우고 그것이 진정한 진리인지 아닌지에 대한 계속된 물음이 현재의 오늘 날의 과학 수준까지 도달시켰지만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물음은 우주 너머에 가득하다.

 모든 것은 138억 년 전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 빅뱅 후 최초의 시간, 즉 찰나의 순간인 10-43, 우주에서 가장 먼저 자연의 힘 네 가지가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3,000억 년 후 우주에서 최초의 별이 탄생했다.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원소들도 별의 일생을 통해 만들어졌다. 모든 인류는 별의 후손인 셈이다. –본문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별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문학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별의 자손들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이야기일까. 밤 하늘에 떠있는 반짝거리는 별의 탄생과 소멸이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의 근간이 되었다니. 과학적인 근거로 규명된 사실이라고는 하나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꿈과 같이 묘연한 신비함을 안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내용은 빅뱅의 순간부터 태양과 지구의 탄생,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존재까지의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마주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정말로 알기 쉽게, 초보자를 위한 과학에 관한 입문서이기에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간 듯 하다.

 스위스의 물리 연구소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로 우주의 최초 입자를 찾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어느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기다란 터널과 같은 공간에 빛과 같은 속도로 입자를 이동시키면서 빅뱅의 시초를 찾아낸다는 이 실험은 단순한 실험이 아닌 인류를 넘어 이 광활한 우주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그야말로 호모사이언스의 집결체라 할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별을 통해서 변광성인 Var을 발견해 내고 이 변광성을 통해서 인간은 지구가 속한 우리 은하를 넘어 또 다른 은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반짝하고 빛나는 하늘 위의 별을 보면서 끈질긴 탐구와 지적인 호기심이 이룩해 낸 쾌거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은하의 이동 속도로 허블은 계속해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체 이 우주는 얼마만큼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 속의 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질수록 그 안의 인간의 비중 역시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한낱 우주 속 작은 생물체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모습에 자연히 숙연해지게 된다.

 또한 허블은 이 과정에서 은하의 이동 속도가 은하까지의 거리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더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이다. 그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는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 라는, 이른바 허블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우주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팽창설의 기초를 세웠다. –본문

 빅뱅 이후 별의 잔해가 모여서 만들어졌다는 태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존재이다. 만약 태양이 현재보다 조금 더 가까이 혹은 조금 더 멀리 있었더라면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태양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여 대기와 물을 순환시키는 이 일련의 과정은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의 생명을 불어 일으키는 마법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과학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의 현장이었다.

 가장 신비로운 내용은 바로 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물이라 함은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저 당연히 물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 속에서는 과연 이 물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물이 기화되어 수증기로 변모한 후 이것들이 구름으로 뭉쳐져 다시 비 또는 눈으로 내리는 과정이 순환되고 있다고는 이 모든 순환이 일어나기 이전, 그 기반이 될 물은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현재 바닷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는 모르비델리 교수의 설명이 더 지배적이다. 지구를 만든 소행성과 운석들에 물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미행성체가 지표면에 충돌하면 엄청난 고온과 고압상태가 되는데, 이때 암석이 녹으면서 미행성체에 들어 있던 물도 지각 아래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지각 변동과 함께 물은 수증기 상태로 대기에 방출되어 이산화탄소와 함께 구름의 형태로 지구를 둘러싼다. 구름은 비가 되어 내렸고, 그 결과 생명의 근원인 바다가 태어났다. –본문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왔는가에 대한 그 근원적인 물음에 신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과연 그것이 맞을까, 하는 증명을 해보겠다는 인간은 점차 과학이라는 것에 눈을 띄게 된다. 빵 속에 꿈틀대는 쥐를 보면서 빵이 쥐를 만들어 냈다고 믿었던 그 옛날의 어리석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기어코 빵과 쥐의 탄생에 대한 근원을 밝혀냈으며 그리하여 현재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DNA 배열의 코드까지 풀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더 과학적인 지식이 이 세상의 모든 물음을 풀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학적인 접근으로 책 속에 빠져들수록 현존하는 모든 것들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호모사이언스, 이들이 밝혀나갈 미래가 더욱 기대되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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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과학책』 / 이동환저

 

 

 

독서 기간 : 2013.12.2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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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 스페인에서 만난 순결한 고독과 위로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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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하면 정열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투우 경기나 화려한 플라멩코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며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짧은 단상이 내게 떠오르는 스페인의 전부이다.

 무언가 붉은 색의 정열적이면서도 힘차게 돌아갈 것만 같은 스페인에서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면서도 묵묵하게 자리를 하고 있는 에르미타에서 안식을 취하고 왔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에르미타는 대체 무엇이며 이곳이 어떠한 곳이기에 순례자들의 안식처라고 하는 것인지. 도통 스페인, 하면 떠오르지 않는 이 조합이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세바스티안이 여행 내내 기다리던 회색빛의 먹구름 떼는 소낙비가 막 쏟아지려는 찰나 혹은 먹구름이 밀려가는 찰나에 종종 마주칠 수 있다. 나는 이 풍경을 세바스티안과 함께 떠났던 에르미타 여행 이후 인식하게 되었다. 그전에 내가 보았던 이 세상 모든 회색 구름들은 그저 다 같은 먹구름일 뿐이었다. –본문

 이 책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저자의 여행길을 함께 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내게는 스페인이란 붉은 색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되면서 이 활발하고 역동적인 전체적인 그림 아래 숨겨져 있는 순백색의 숙연함을 본 듯 하다. 에르미타 여행 이후에야 먹구름 이외의 것을 보게 된 것처럼 나 역시도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하고 아침을 먹으며 도란도란 웃으며 출근을 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같은 집으로 향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데이트와 결혼의 차이점을 듣고 있노라면 과연 결혼은 늘 언제나 그토록 달콤한 것일까, 라는 물음이 들게 된다 

 책 속 가장 먼저 마주한 에르미타이다. 중세시대의 암자를 의미하는 이 에르미타는 왠지 모르게 보는 것만으로도 겸허히 바라보게 했다. 몽환적이면서도 주변에 그 무엇도 없는 상태에 오롯이 혼자 이 곳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며 이 야생 속에 홀로 숨쉬고 있는 에르미타를 보면서 이전의 활기찬 그 당시의 모습들을 그려보며 나도 모르게 숙연하게 된다.

 

파란 점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르미타를 찾아 가는 동안 에르미타만을 쫓는 것이 아닌 그 여정 동안 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으며 또 생경한 풍경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면서 그저 아름답다 혹은 이 곳으로 떠나고 싶다 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내 스스로를 돌아보며 올 한 해를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화려하고 발랄한 파란 하늘은 에르미타를 위한 빛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외롭고 쓸쓸한 작업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우울한 회색빛이 감도는 겨울날만을 골라 여행했고, 이 특별한 빛은 주변을 고요히 잠재우고 구름에 반사된 햇살을 받은 에르미타는 영롱하고 섬세하게 반짝거렸다. –본문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설원 위에서 그가 가는 길목마다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을 늑대와 같이 나는 그가 가는 여정마다 계속해서 눈길이 사로잡혀 다른 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설원 위에서 그가 가는 길목마다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을 늑대와 같이 나는 그가 가는 여정마다 계속해서 눈길이 사로잡혀 다른 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거대한 네크로폴리스 바위의 그늘진 한편에는 동물의 털을 연상시키는 소복한 이끼들이 돋아나 있었다. 이 이끼들은 기원전 혹은 중세시대에 생을 마감해 바위 안에 안착된 그 누군가의 인체 속에 머물던 어떤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본문

 특히나 쿠이야 카브라스를 방문했던 곳의 기록은 송연하면서도 처연함마저 들게 되는 것이 생과 사의 길목이란 이 길과 같이 흘러 가는 시간처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에는 그들이 걸었을 이 길은 이제는 그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위에 그가 걷고 있고 그가 걸어온 길을 지금의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이 한 곳의 장소를 통해서 몇 개의 시간이 겹쳐져서 우리는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신 없이 지나갔던 올해를 마무리하며 그저 눈으로 잠시 휴식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서 펼쳐봤던 책 속에서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으며 바쁘게만 쫓아왔던 한 해의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리 급한 것도 없음에도 재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일상 속에서 잠시 단잠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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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시간 / 김지환저

 

 

 

독서 기간 : 2013.12.2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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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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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기욤 뮈소'라는 이름이 낯설지 만은 않을 것이다. 가독성 하나 만큼은 뛰어난 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그의 작품들의 반 이상은 읽어 본 듯 하다. 펼치기만 하면 읽어 내려가는 것은 순식간이니 말이다.

 

이번 작품 역시 '기욤 뮈소' 라는 이름만으로 당장에 들어올린 책이었는데 이번 책은 뭐랄까. 로맨스 같으면서도 스릴러 같기도 하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7년 후의 느낌이 혼합되어 있는 느낌이다.

 

영화 <동감>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의 시작을 보면서 뭔가 달달한 로맨스가 시작될 거라 믿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매튜 앞에 나타난 와인감정사 엠마 사이의 소통의 장이 이어갈 수록 그들이 다시 만나 무언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날짜만 이상한 게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로뮈알드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두 경우 모두 출발점과 도착점이 동일해요. 2011년에 동시에 보낸 메일이 2010년에 같은 컴퓨 터에 도착하고 있다는 거죠." -본문

 

달콤한 그 무언가의 시작은 갑자기 기묘하게 꼬여간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현재가 각각 2011년과 2010년이라는 1년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진실이었으며 매튜와 엠마 사이의 현상은 과학을 넘어 그 어떠한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한 때는 엠마의 노트북이었던 것이 지금은 매튜의 손에 들어와 있고 그 노트북이 이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1년의 시간을 넘어서 말이다.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느낌이라든가 이 책을 펼친 순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감상평을 보면서 마케팅 상의 이야기도 있겠거니, 라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책을 읽어가는 순간 이들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의 전개를 가늠하고 있던 찰나 이야기는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전환됐으며 새로운 장면의 등장은 어색하거나 낯설기는 커녕 점점 심장을 조여오면서 그 다음 페이지를 향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했다.

 

3. 오늘, 2011 12월에 내가 엠마라는 여자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엠마는 죽었으니까.

4. 그렇지만 반대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매튜는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집중했다. 엠마가 원한다면 '2010년 엠마'는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날아와 '2010년의 매튜'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엠마가 그렇게 하고 싶을까? 그가 보낸 메세지에 대해 묵묵부답인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본문

 

누군가는 미래에 누군가는 과거에 존재하고 있다. 미래에 있는 누군가는 과거를 바꿔 현재를 바꾸고자 했으며 과거에 있는 엠마는 과연 자신이 이 이야기 속의 마치 브루마블의 '' 처럼 매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매튜가 가진 그 완벽한 가정을 엠마도 꿈꾸고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환하고 따스함 속에 자신이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지난했던 과거를 들추게 할 수록 그녀는 매튜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실 엠마가 이메일을 통해 만났던 2011년 매튜는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기에 그 바람이 가능할 지 몰랐다. 하지만 2010년의 매튜는 너무나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 속의 주인공이었다.

 

신문 봤죠? 우리 이제 어떻게 하죠? -엠마

엠마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메아리 쳤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죠?'

매튜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최소 두 명이라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생각 한 가지가 가슴을 쳤다. 엠마가 메일을 보낸 시점으로 계산해보면 케이트가 살아 있던 때였다. -본문

 

과연 엠마는 메튜의 가정에 파탄을 놓는 것일까? 아니, 그녀의 욕망이 아니었다. 이 모든 판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내 어떻게, 감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왔다. 초반의 조바심은 두근거림이었다면 후반의 두근거림은 분노를 넘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배신의 두근거림이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본문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는 것들을 알고는 있었다지만 과연 이렇게 끔찍한 전모를 꾸밀 만큼이나 인간의 욕망이 대단한 것일까.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과연 한 사람의 바람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리하여 타인의 것을 앗아서라도 내 것을 취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들을 남기고서 2011년도는 다시 도래했고 초반과 결말의 데칼코마니와 같은 반복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첫 장의 엠마와 매튜는 서로를 모르는 사이었지만 이제 엠마는 그를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매튜도 그를 알아보고 있다.

 

이 모든 난황을 겪은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책을 읽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결말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결말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 과연 지금 당신의 곁은 안전하다고 믿는가.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소설이길 바랄 뿐이다. 아니, 소설이여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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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저

 

 

 

 

독서 기간 : 2013.12.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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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연애 - 서가에서 꺼낸
문아름 지음 / 네시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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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연애는 감정이었다가 경험이었다가 일상이었다가 책이었다가, 라는 부제로 쓰인 이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이 책의 느낌이 좋았다. 책과 연애하는 것처럼 어딜 가든 가방 안에 2권 씩의 책을 넣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그야말로 책이 남자친구인 냥 애지중지 하고 있으니 책과의 연애라는 이야기가 익숙하게 들렸다.

물론 책을 들고 다니며 보는 것을 좋아하기는 한지만 어쩐 일인지 단 한번도 책과 연애를 연계해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로맨스를! 이라며 꿈꾸기는 했으나 책을 보면서는 그런 생각을 꿈꾸거나 혹은 연애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책에서 그 답을 구하려 한 적은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에 휘청거리듯 어찌할 바를 모를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고 맞춰보려 하는 편인데, 내가 밖으로 나돌며 목적지도 없이 빙빙 돌고 있을 때 저자는 책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다.

연애와 책을 함께 접목시켜서 보진 않는다고 하지만 연애를 하는 내 모습과 책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그 안에 저자와 동일하게 오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린 라이트가 켜지는 순간이라 믿었던 나날들은 때로는 서로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작가는 A를 의도하고 쓴 문장들을 보며 나는 Z를 꿈꾸고 있으니 그야말로 오독의 난황인 것이다.

연애를 하는 동안 읽는 모든 텍스트는 두근거림으로 바뀌었고, 섣불리 읽기 어렵다는 책을 내 멋대로 바꿔 생각하며 책이라는 바다를 여행했다. 오독의 즐거움.

연애를 하며 내 안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그제야 책 속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바다를 만난다. 아마도 그 학자나 작가를 연구하거나 좀 안다 싶은 선생님들의 눈에는 큰일 날 독서였을지 모르겠다. 작가가 낸 물길과는 영 딴판인 어느 곳에 독자가 멈춰 서 있으니. 그러나 때때로 오독은 진실이다. –본문

연애든 책이든 그 안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오독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며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오독에 대한 편견이나 자책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저자의 연애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연애마저도 달콤할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은 연애든 인생이든 그 무엇에서도 그만의 즐거움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듯 하다.

사랑이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이야기와 사랑을 하려면 그 본원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에리히 프롬을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하나를 바라보면서도 이토록 다른 두 명의 저자를 보면서 왜 이 모든 것들이 또 하나하나가 주억거리게 되는 것인지. 무릇 사랑이라는 것은 달콤한 그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외로워지는 이유 :

절대로 나는 너 일수 없고, 너는 나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깨달아 버린다. ‘연인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헐겁다. –본문

이 책은 포르노예요라고 설명하는 <파멜라>라는 책을 보면서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런 설명을 한담, 하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이별 후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또 먹먹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저 문장은 내가 누군가를 설명할 때 "재는 같은 과 남자애야" 라는 간단한 설명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재는 좀 재수 없긴 하지만 저번에 맥주 마실 때 보니까 사람 이야기를 들을 줄 알더라고. 좀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남자애는 그때 그냥 졸렸던 것 일 수도 있다. 멋대로 해석하면서 독서는 시작한다. 그래서 책을 꺼내기 전에 나는 두근 거린다. 본문

누군가를 만나든 어떠한 책을 보든 모든 판단은 '나'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게 된다. 원래의 모습이 '나'라는 여과지를 건너면서 보여지는 그 다채로운 모습은 때론 그것이 오독이라 할 지라도 일단 마주하는 것이 지나치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시원스러운 문체와 거침 없는 글담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수록 지금의 그녀와 동일한 이 습관이 잘하고 있는 거라는 나름의 위안이 되고 있다. 마구잡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엉뚱하기도 한 이 독서가 그녀를 이토록 매혹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으로 보아 한 동안 나도 그녀처럼 오독을 계속 해보려 한다.

아르's 추천목록

 

『서가의 연인들』 / 박수현저

 

독서 기간 : 2013.12.19~12.2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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