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읽는 돈키호테
한가로운 독자분들께~
책의 날, 10개의 질문과 대답

 

 

넘어지는 것은 물론 똑같다. 하지만 한눈을 팔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과, 별만 바라보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 돈키호테가 열심히 보았던 것은 바로 별이다. 이 공상과 망상의 정신이 추구한 웃음의 깊이는 얼마나 심오한가.
- 앙리 베르그송, 『웃음』중에서

 

 * * *

 

읽는 즉시 마법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고, 그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새 등장 인물의 말과 행동 속으로 빠져 들면서 모든 게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재미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웃음을 끊임없이 터트리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 있다. 게다가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 온갖 인생의 희로애락과 거대한 도전과 실패, 교훈과 더불어 슬픔까지도 간직한 소설이 있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고, 작가가 어느새 소설 속으로 슬며시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가 싶으면, 독자가 다시 작가를 찾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놀라운 이야기의 마법'이 숨어 있으면서도,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거의 다 담고 있는 소설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나왔으면서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소설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 소설이 바로 『돈키호테』다.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전체를 다 읽기에는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단점일까? 소설을 왜 읽을까? 멋진 주인공들과 함께 '멋진 여행'을 떠나보기 위해서?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고 싶어서? 어쨌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모험 속으로 빠져들기 위해서? 인생의 심오한 의미를 맛보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실컷 한번 웃어나 보려고? 이런 독자들의 온갖 까다로운 희망사항을 두루 다 만족시켜 주는 데도 그 소설이 누구나 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얇은 책'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정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독자들의 온갖 까다로운 취향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제공하는 온갖 재미와 보람을 두루 만족시켜 주는 책이 있다면 그런 책은 도리어 분량이 두툼하고 이야기가 길수록 독자들에게 이득이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훌륭한 소설이 아직도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묘한 아이러니다. 소설을 읽는 데도 '마감 시한'이라는 게 있다면 이 소설만큼 '마감' 전에 서로 읽으려고 앞을 다투어 쇄도할 독자가 많은 경우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바깥은 여름'이니 무슨 단장 죽이기에 훨씬 더 몰두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최근에 스페인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사람들에게 『돈키호테』는 읽어 봤냐는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이 한결같다는 이유 때문에 도리어 놀란다. 그 유명하지만 몹시도 두꺼운 소설을 어떻게 감히 읽었겠느냐고 도리어 질문하는 사람을 우스개로 만든다. 그게 그저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년 1월에 보름이 넘는 일정으로 스페인을 다녀 오겠다는 두 모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긴 일정을 단 둘이서 자유 일정으로 다녀올 꺼라면 '스페인'을 좀 더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럴려면 최소한 소설『돈키호테』라도 꼭 읽어 보고 떠나라, 그 속엔 스페인의 온갖 지리(톨레도, 안달루시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등)와 역사(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가 갑자기 벗어났던 역사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스페인의 퇴락한 이달고(향사士) 신분의 돈키호테와 그의 종자(從子)로 함께 따라 나선 산초의 모험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다, 소설 읽는 재미와 보람을 보장한다, 그렇게나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더군다나 대학 3학년에 다니는 딸아이는 전공이 '국문학'이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소설은 열심히 읽고 과제도 제출하더니, 정작 학교 수업보다 훨씬 더 생생할 '여행 수업'에 필요한 책은 읽지 않는다. 이 또한 묘한 아이러니다. 그런데 나는? 정작 『돈키호테』를 몹시 좋아하고,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줄곧 스페인을 가고 싶은 열망을 버리지 못한 나는 이번 여행에서 싹둑 짤렸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도 없다.

 

다른 책에서 가끔씩 마주쳤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유명한 책인『돈키호테 성찰』이라는 작품이 마침 오늘 <을유세계문학전집> 아흔 번째 책으로 출간된 걸 발견했다. 신간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런 '신간'은 너무 반갑다. 스페인은 강렬한 태양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10년 전쯤이었을까. 여름 휴가때 스페인을 다녀온 어느 20대 여직원 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여름엔 절대 스페인을 가면 안 된다는 거였다. 얼마나 더위와 뜨거운 태양에 시달렸으면 그런 넉두리부터 나올까 싶었다.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기사 복장과 투구까지 뒤집어 쓰고 모험을 떠났다.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도 그런 모험에 동참할 수 있다. 비록 바깥은 한여름이고, 돼지 같이 생긴 녀석은 지난 밤에도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지만, 어디 한 모퉁이, 시원한 바람이 조금은 불어 오는,『돈키호테』정도는 넉넉히 펼쳐 읽을 수 있는 그런 공간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땅에서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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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돈키호테』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인물 가운데 헤럴드 블룸을 빼놓긴 어렵다. 그가 쓴 『교양인의 책읽기』를 읽은 후에 베껴 놓은 대목을 다시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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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

모든 소설의 선두요 최고를 차지하는 이 책은 소설 그 이상

 

소설을 읽는 방법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모든 소설의 선두요 최고를 차지하는 이 책은 소설 그 이상이다. 바스크 혈통 작가이자 세르반테스 비평가 미구엘 드 우나무노에게 『돈 키호테』는 스페인어로 쓰여진 바이블이자, 하나님 그 자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나는 지난 4세기 동안 상상력으로 흘러넘친 문학계에서 세르반테스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돈 키호테는 햄릿의 대적자요 산초 판자는 폴스타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는 그 이상의 찬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날 세상을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돈 키호테』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얘기를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세르반테스도 남의 말을 듣는데 역시 뒤지지 않는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걸핏하면 다투지만 늘 화해한다. 사랑과 충성심, 돈 키호테의 무지, 경탄할 만한 산초의 지혜들 속에서 둘은 관계를 유지한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들은 서로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리어 왕도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기울인 법이 거의 없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때로는 아주 즐거운 듯 보이지만 아예 서로의 말을 들을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 본인의 경우는 벤 존슨과 함께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다. 세르반테스도 남의 말을 듣는데 역시 뒤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산초와 돈 키호테 간에 쉴새없이 이어지는 대화

 

돈 키호테』에서는 끊이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산초와 돈 키호테 간에 쉴새없이 이어지는 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냥 손길이 닿는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두 사람이 대화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밑바탕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변덕을 부리기는 해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남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그들은 변화한다


금방이라도 파탄 날 정도로 싸워 대다가 곧 예의바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상대가 하는 말에서 뭔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그들은 변화한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변화, 다시 말해 자아를 심화시키고 내재화하는 작업이 서로간에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르반테스에 대한 괴테의 경외심과 프로이트의 찬사


허클베리 핀은 짐에게서 자신의 산초를 발견했기 때문에 고독으로 시들어가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허무주의적인 스비드로가일로프의 이아고적 속성 안에서 반反 산초 판자와 마주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나오는 미시킨 왕자와 돈 키호테의 고상한 "광증"은 비슷하다. 세르반테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토마스 만은 세르반테스에 대한 괴테의 경외심과 프로이트의 찬사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내게 생명을 달라!"


우나무노는 『돈 키호테』가 삶의 비극적 의미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광증"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각각 다른 시대에 죽음을 예찬한 스페인적 기질에 대한 항거였다. 그는 터키와의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비록 이런 상처뿐인 전사라도 세르반테스 내부에서는 언제나 폴스타프와 함께 이렇게 외친다. "내게 생명을 달라!" 나는 우나무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의 즐거움은 전적으로 산초 판자의 위대성에 있으며, 산초는 폴스타프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누지와 함께 우리 속의 죽지 않는 무엇에 대한 또 다른 예라고 볼 수 있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이 소설의 2부에서 거꾸로 독자들의 지식에 파고 든다.

 

독자들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셰익스피어처럼 세르반테스도 독자들을 즐겁게 해 주며, 활동적인 독자들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 갇힌 사자와 마주친 돈 키호테는 사자들이 공격할지 어떨지 알고 있다.

 

그리고 돈 키호테, 산초와 함께 여행을 해 온 활기 넘치는 독자들은 등장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의 지식을 공유한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이 소설의 2부에서 거꾸로 독자들의 지식에 파고 든다. 이는 그들이 비평가가 되어서 자신의 모험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이 소설의 제2부에서 세르반테스의 이토록 비상한 이야기 솜씨가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가지 계획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 생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20여 편이 넘는 위대한 희곡 작품들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는 놀라운 기법을 사용했다. 독자와 관객은 셰익스피어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가지 계획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 생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2부에서 이와 정반대되는 기법을 창안해 냈다. 그리고 작품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을 창안했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환상으로 들어가는 틈새를 잘라 버렸는데, 이는 돈 키호테와 산초가 1부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2부를 통해 다시 언급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는 바로크적이고 지적이여서 마술사들에게 불만을 지니고 있다. 세르반테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표절자요 사기꾼들로 자신을 대신해 소설을 끝내려는 존재들이다.

 

 

세르반테스는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꾼

 

토마스 만은 돈 키호테에 관해 말하면서 "자기 칭송에 대한 영광으로 사는" 독특한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산초는 너무나 영민한 나머지 거기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세르반테스라는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세르반테스는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꾼으로서 권위를 가졌다. 그 권위의 궁극적인 상속자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더욱 진전시켰다.

또 다른 계승자로 『율리시즈』의 제임스 조이스를 들 수 있으며, 그와 프루스트의 사도며 『몰리』,『말론 죽다』, <무명> 3부작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있다.


세르반테스의 작품은 모든 소설 중 으뜸이며 최상

 

돈 키호테』를 읽는 일은 즐겁다. 나는 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측면을 언급했다. 세르반테스는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에게 돈 키호테적인 모습과 산초척인 측면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왜 『돈 키호테』를 읽는가? 모든 극작가들 가운데 셰익스피어가 최고라면, 세르반테스의 작품은 모든 소설 중 으뜸이며 최상이다. 따라서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알기 전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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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29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를 읽을 때 저만 그런지 몰라도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더군요 ^^: 다른 분들은 재밌다고 하던데 각 장면 중간중간 시를 읽다보면 흐름을 놓치기도 하고... 참 어렵습니다^^:

oren 2017-07-29 16:16   좋아요 1 | URL
어려운 책들을 굉장히 많이 읽으시는 겨울호랑이 님께서 《돈키호테》를 어렵게 읽으셨다니 너무나 뜻밖이네요.. 사실 텍스트에서 주석이 필요한 부분은 ‘언어유희‘ 부분과 스페인의 역사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 말고는 별로 없었던 듯해요. 다만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내포한 문장들도 적지는 않았던 기억도 납니다. 의외로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들에서 길어 올린 듯한 문장들이 꽤나 많았던 기억도 나고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단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임엔 틀림없지요.. 제가 한때 이 소설을 필사하고픈 욕망에 시달렸던 이유도 주로 ‘산초 어록‘ 때문이었죠. 아직도 그걸 따로 베껴놓지 못한 게 가끔씩 후회될 정도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7-29 16:20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제가 너무 무겁게 접근해서인지도 모르겠네요..oren님 말씀처럼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여러 번 읽다 보면 의미가 절로 밝아질 수 있을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로 2017-07-2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하지만 몹시도 두꺼운 소설을 어떻게 감히 읽었겠느냐 - 여기 한사람 더 추가해주세요~~.ㅠㅠ
저도 요약본으로 읽은 게 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돈키호테>와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꼭 스페인어로 읽는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입니다. 가능할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의 고독,,아무튼 그건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정말 재밌더군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데 왜 스페인 못가게 되셨어요???? 모녀만의 다정한 여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압박???? 표현을 재밌게 하셔서 궁금한 마음에 질문~~ㅋ

oren 2017-07-29 20:46   좋아요 0 | URL
《돈키호테》와 《백년의 고독》을 무려 스페인어로 읽으시겠다니 정말 대단한 도전이 될 듯싶어요. 특히 《돈키호테》는 옛날에나 쓰이던 스페인 고어는 물론이고 온갖 언어유희가 난무해서 번역자들도 무지 고생한다던데 말이지요. 《백년의 고독》은 읽은지 하도 오래 돼서 언젠가는 다시 읽어야 될 소설이 되고 말았어요. 그걸 1983년에 읽었으니 어느새 백년의 1/3이 훌쩍 지났더군요... 이번에 제가 스페인에 못 가게 된 건 일종의 벌당이랍니다.. 가족을 떼놓고 저 혼자 돌아다닌 지난 숱한 여행들에 대한... ㅠㅠ

라로 2017-07-31 12:4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럼 번역본을 먼저 읽어봐야 겠어요. 오렌님 덕분에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아도 되었네요~~~^^;;
백년의 고독은 한국어로 읽었는데 저는 재밌지만 어려웠어요. 그것도 번역본을 다시 읽어야 될 것 같아요.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번역된 것을 읽었는데 사실 원제목 대로라면 백년의 고독이 제목부터 원작에 충실한 것 같아요. 그것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어쨌든 스페인어로 도전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니~~~.
벌당,,,ㅎㅎㅎ이라고 하시니 웃음이~~~ㅎㅎㅎ
어떻게 잘 하셔서 같이 가시면 좋겠네요 ~~~^^

oren 2017-07-31 14:24   좋아요 0 | URL
저는 스페인에 갈 기회가 되면 그곳(톨레도? 마드리드?) 서점에 들러서 ‘스페인어판‘ 『돈키호테』를 꼭 구경하고 싶어요. 저는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니 사 올 생각은 차마 못하겠고요. 『돈키호테』를 구경하고 나면 아마도 그 다음으론 스페인어판『백년의 고독』도 찾아보지 않을까 싶어요. 보르헤스의 작품은 아직 읽어본 게 없으니 ‘그냥 재미삼아 구경이라도 해 볼까‘ 싶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문제는 스페인을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그걸 도통 모른다는 점이에요. 내년 1월에 가는 건 이미 너무 늦었어요. 산초 식으로 말하자면 「삐악삐악 우는 게 늦었소.」라고나 할까요.

산초가 말힌 이 유명한(?) 말에 대한 자세한 뜻은 ☞ http://blog.aladin.co.kr/oren/7688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