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과 모닥불

 

 

 

* 고 드 름 *
 
시린 밤 내내
네 집앞 기웃거린 죄로
하 많은 세월
물구나무서기 해서 살아도
 
그대 앞에선
결코 얼굴 붉히지는 않겠다.
 
이 겨울, 날카로움의 끝을
그대에게 들이대고 있지만
내 뜻은 그게 아님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대 안에
꽃 피우기 위해서라면
가장 양지 바른 날
열렬함의 이름으로
깨끗이 녹고 말겠다.
 
똑,또옥
그대 가슴만 몇 번
두드려 보고

 
 - 석청 신형식

 

 

 * * *

 

 

매서운 추위다. 이럴 땐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여러 추억들이 절로 스르르 떠오르기 마련이다. 추억은 무슨 실마리를 닮았다. 하나를 끄집어 내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저절로 풀려 나온다. 옛날 추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엄청나게 매서운 날씨도 마다 않고 꽁꽁 싸동여 매고 동네 한복판에 있던 종갓집 연못이나 강가로 달려나가 썰매를 타던 일, 썰매를 타러 나서기 전에 몰래 부엌으로 숨어 들어가 다 쓴 통성냥 껍데기와 성냥개비 몇 알을 잊지 않고 챙기던 일, 썰매를 타다가 너무나 추워 '모닥불'을 지피며 언 발을 녹이다가 그만 양말까지 눌도록 익혀 먹은 일 등은 겨울만 되면 수도 없이 떠올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다.

 

추억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그 추억을 무슨 칡넝쿨인양 단단히 붙잡고 늘어진다. 그걸 붙잡고 놓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더 먼 옛날로 쉽사리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썰매를 만들기 위해 툇마루 뒤쪽까지 뒤져 굵은 철사줄을 장만하던 일, 썰매를 새로 만들기 위해 널판지를 톱으로 설컹설컹 자르던 일도 생생히 떠오른다. 반들반들 은빛이 나는 새 못과 녹이 슬어 구부러진 못들 가운데 쓸만한 놈들을 연장통 속에서 골라 내던 일, 장도리를 들고 줄을 맞춰 널판지에 못들을 땅땅 박아넣던 일, 썰매에 딸린 창을 만드느라 못대가리를 두드려 없애고 창으로 쓸 매초롬한 나무에 거꾸로 박아 넣은 뒤에 끝을 뾰족하게 열심히 갈던 일도 떠오른다. 썰매 이야기만 하더라도 여러 쪽을 채울 듯 추억이 춤을 추며 넘실댄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땐 찬바람 쌩쌩 부는 날이면 집안 뒤켠 담벼락에 매달아놓은 수수타리에서 수수깡을 잘라 나르기 바빴다. 가늘게 벗겨낸 껍질은 안경테와 안경다리가 되었다. 껍질을 다 벗은 수수깡은 안경 코다리가 되었다. 수수깡을 벗겨내고 안경 다리를 만들다가 연한 살이 자주 베이기도 했지만 수수깡은 겨울날 방안에서 놀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시도 때도 없이 연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튼튼한 나일론 줄은 일부러 읍내까지 나가서 '낚시점' 같은 델 들러 일부러 돈을 주고 사야 했기 때문에 벽장을 뒤져 굵은 바느질 실을 훔쳐다가 연을 띄우곤 했었다. 주로 꼬리연을 만들었는데 싸리나무를 휘게 한 다음 종이에 단단하게 고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풀이 따로 있을 리 없어 부엌에서 꺼내 오는 밥알을 대신 썼는데, 휘어진 싸리나무가 좀처럼 굽은 상태로 붙어주질 않아서 아주 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부엌으로 달려가 커다란 철솥 뚜껑을 열고 '밥알'을 더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내가 살던 집이 '초가지붕'이었던 시절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새마을 운동이 1970년에 시작되었고 그 무렵 어느날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기와'가 우리집 지붕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잠시 동안 어색했던 느낌도 없지 않았다. 초가집은 추수때 타작을 하기 전까진 칙칙한 재색으로 빛이 바래서 마치 늙은 노인네 머리털마냥 보기가 흉했다. 가을만 되면 그런 모습을 벗어던지고 '황금빛깔' 새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나는 그 푸근하고도 넉넉하면서 은근히 화려한 그 느낌이 참 좋았었다. 그리고 한 여름에 비가 쏟아지면 초가지붕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마당으로 또르륵 떨어져 내리면서 만들어내는 흙빛깔 물방울이 좋았다. 비가 올때면 우리 형제들은 마루 앞에 쪼르르 모여 앉아 마당에서 연신 생겨나는 그 물방울들이 퐁퐁 터지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오랬동안 즐겼다. 물론 가끔씩은 빗속으로 뛰어들어가 놀다가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마당은 농가에서는 늘 중요한 생산설비 가운데 하나였다. 그게 아이들 발자국 때문에 제멋대로 들쑥날쑥 패여 있으면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를 땐 언제나 어른들이 나서서 고르게 펴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추운 겨울에 초가집은 특별한 선물을 내놓는다. 지붕 위에 쌓인 눈이 한낯의 짧은 햇살 덕분에 조금씩 녹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날씨가 얼어붙게 되면 다음날 아침엔 틀림없이 고드름이 장관을 이룬다. 고드름이 무슨 특별난 장식처럼 처마끝마다 빈틈없이 가득 채우는 날엔 그걸 꺾고 따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길고 단단한 놈들을 꺽어다가 총놀이를 즐길 때도 많았다. 장갑도 벗은 채 맨손으로 그 매끈매끈한 몸뚱이를 붙잡고 조막손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애를 쓰며 놀 때가 더 좋았다. 초가지붕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은 거세게 일어난 새마을 운동 때문에 한순간에 다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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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1-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가지붕의 고드름! 생각만으로도 정감있네요. 고드름을 주제로한 시 참 좋아요.
`똑, 또옥/ 그대 가슴만 몇번/ 두드려보고`라니....하~~~

oren 2016-01-23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랬어요. 어쩜 이리도 내 마음을 툭툭 기분좋게 두드려주는지 말이지요.
시인이 제 또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시인의 서재도 있더라구요... ☞ http://cafe.daum.net/kmashiin

오거서 2016-01-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드름은 추위의 상징인데 … 정겹기도 하다는 것은, 공감하면서도, 기묘한 이야기 같아요~ ^^;

oren 2016-01-23 11:35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저런 시를 써내는 시인이 부리는 마법이겠지요...

cyrus 2016-01-2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드름만 보면 괜히 부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행동을 어린 아이 특유의 폭력성으로 봐야 할까요? ㅎㅎㅎ

oren 2016-01-23 16:17   좋아요 0 | URL
손과 발을 마구 휘둘렀겠네요. 아니면 주변에 널린 막대기를 줍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돌멩이까지도?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우리집 초가지붕 처마 끝마다 길다랗게 달렸던 고드름만은 고이 고이 따던 기억이 많아요. ㅎㅎ

프레이야 2016-01-2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제 고드름도 추억의 물상이 된 듯해요. 도심에선 보기 드물게요. 똑 분질러서 깨물어 먹곤 했는데요.

oren 2016-01-23 16: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레이야 님. 저도 고드름 본 지가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에 없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