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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양영란 역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39쪽
지난 해 11월 13일, 파리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소중한 삶을, 미래를 잃었다. 책<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의 저자 앙투안 레이리스도 그날 아내를 잃었다. 너무 소중하고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이미 죽어 차가워진 아내를 만났을 때 조차 재회를 할 수 있었던 '행복'한 날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앙투안 뿐 아니라 17개월 된 아들 멜빌도 엄마를 잃었다. 보통 길어야 반나절이면 다시 얼굴을 보이고 자신을 씻겨주고 놀아주던 엄마가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것을 멜빌도 깨달은 날 앙투안과 멜빌은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울먹임이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고, 아내 엘렌을 평생 사랑할 뿐 아니라 늘 함께 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앙투안에게는 분노와 증오대신 살아갈 힘이 생겼다. 왜냐면 엘렌은 결코 그들을 떠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테러의 희생자로 만들었던 그들은 그저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도록 신이 보낸 도구에 불과할 뿐이니 그들에게 어떤 증오를 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 그것들을 결합시켰다가 때로는 갈라놓는 뚜쟁이 노릇을 몇 분쯤 한 끝에 하나의 편지가 탄생한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58쪽
상대에게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는'존재라는 가정일 경우 가능하다. 생명이없는 사물에게 정을 주고, 마음을 내어주어 나름의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순 있지만 '증오'를 가질수는 없으니 테러범은 이미 앙투안에게는 죽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반면 아들 멜빌과 자신,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있어 늘 곁에서 사랑을 주는 엘렌은 몸은 죽었지만 분명 살아 숨쉬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앙투안의 편지가 인터넷에 공개된 이후 안면도 없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로 부터 편지와 선물을 받게되고 멜빌이 다니는 어린이집 엄마들은 앙투안부자의 처지가 걱정되어 자발적으로 수프며 과일 젤리등을 만들어서 보내준다. 그들에게 앙투안은 늘 멜빌이 잘먹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실제 음식물은 개수대에 그대로 버려졌지만 엄마들이 보내준 그 사랑, 엘렌이 곁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정성어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멜빌과 앙투안은 충분히 섭취했기 때문에 앙투안의 그 대답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조금의 악의나 위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들에게 주변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용기를 내'라는 말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는 최종 판결처럼 들린다. 92쪽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어쩔 수 없다. 그말은 그들에게 더이상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당신의 그 괴로움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다는 변명처름 들렸을지 모른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에픽하이 노래중 '헤픈엔딩'가사가 떠올랐다. 그 노래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돈 내'란 말 보다 싫은 말이 '힘내'. 에픽하이 - 헤픈엔딩(신발장) 중에서
그렇다고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그저 지켜보는 것, 조금씩 조금씩 일상으로 되돌아오도록 기다려주고, 아주 조그마한 요청에도 머뭇거림없이 손내밀어주는 것 정도가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은다는 것은,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헤어짐의 방식이 무엇이었더라도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투안과 멜빌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정작 아무일 없이 살아가던 우리가 필리프처럼, 그리고 역자의 말처럼 앙투안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남탓을 하고, 심지어 견디기 힘든 분노로 스스로 상처입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앙투안씨,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주세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지금처럼, 한통의 편지로, 그리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행복에 가득찬 그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직은 무너질 때가 아닙니다. 앙투안 L.씨. 버텨주셔야 해요.
우리, 같이 버텨요. 역자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