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과 신
■ 사도 : ★★★ 1/2
뒤주에 갇혀 죽은 아들은 태어났을 때 아버지로부터 선(愃 : 잊을 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나 그가 죽었을 때 아버지 영조는 사도(思悼 : 생각 사, 슬플 도)라는 이름을 내렸다. < 선 > 으로 태어나 < 사도 > 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참, 묘한 아이러니'다. 태어났을 때 얻은 한자 < 선(愃) > 과 죽었을 때 얻은 한자 < 도(悼) > 는 서로 닮았으나 정반대의 애티튜드'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둘 다 心을 부수로 하지만, 선(愃) 은 < 잊어야 한다는 마음 > 이고 사도(思悼)는 < 잊을 수 없는 마음 > 을 강조한 이름이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잊혀질 운명이었던 것일까 ? 영화 속에서 영조는 어린 아들을 애지중지 키운다. 4명의 옹주를 낳은 후 마흔이 넘어서야 원자를 보았으니 그 기쁨은 말로 다하지 못했을 것.
당시 조선시대 왕의 평균 수명이 40대 중후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영조가 40대'에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갓 태어난 원자가 늦어도 아주 늦게 본 늦둥이였던 셈이다. 그가 아들에 대해 성급한 마음(교육열)을 가졌던 데에는 자신의 나이가 저물어가는 황혼기'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물론 그는 팔순이 넘도록 오랫동안 나라를 통치했지만 그 누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 그는 자신이 떠나고 남을 어린 세자를 걱정했을 것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궁궐 생활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왕이 떠난 어린 왕자의 궁궐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라는 사실도 !. 만약에 영조가 20대에 원자를 낳았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그랬다면 그는 좀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
영조는 장성한 아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사도(思悼)'에서 도(悼)는 슬퍼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 어린이의 죽음 " 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조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했던 것은 < 장성한 아들의 죽음 > 이 아니라 < 어린 아들의 죽음 > 이라는 생각 말이다. 영화는 내내 영조의 말을 빌려 "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 " 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영화적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나랏일이 맑스적이라면 집안일은 프로이트적이다. 영조는 이렇게 외친다. " 외디푸스여, 아버지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마 ! "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이 영화는 외디푸스 막장 가족 드라마를 깊이 있게 다루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고품격 정치 드라마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갈팡질팡하다가 끝난 느낌이다.
송강호와 유아인이 펼치는 불꽃 연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역사 드라마를 지나치게 21세기 세대 갈등론'으로 해석하려는 영합주의'는 실패처럼 보인다. 영조가 아들에게 쏟아내는 교육열'을 볼 때마다 " 목동 돼지엄마 " 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착각일까 ?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좋지만 " 모더니티 " 를 얻기 위해 " 클래식 " 을 훼손하는 것은 단점으로 보인다.
■ 만들어진 신 : ★
모든 궁사(弓師)는 " 10점 만점에 10점~ " 짜리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10점짜리 과녁을 중심으로 탄착점이 작게 형성되면 훌륭한 궁사이고 탄착점이 중구난방으로 분산되어 커다란 탄착점을 형성하면 실력이 모자란 궁사'다. < 작가와 책 > 도 이와 비슷하다. 작가는 자신의 주장(입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한 우물을 판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면 한순간에 새 된다. 필력이 느껴지는 작가가 쓴 책은 탄착점이 잘 모인 과녁판 같고 반대로 말이 많아서 제주도로 간 책은 탄착점이 분산된 과녁판 같다.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의 << 만들어진 신 >> 은 10점짜리 과녁을 중심으로 탄착점이 형성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분산된 것도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엉뚱한 곳(과녁이 없는)에다 활시위를 당긴 것이다.
그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제트비행기로 출퇴근하는 사악한 쇼비즈니스 목사들의 설교를 과학적 논증이라는 명목으로 조목조목 비판하는데, 이 책은 마치 변희재의 < 말이야 막거리야 ㅡ 논조 > 에 대해 진중권이 미학적 관점에서 쓴 미학오디세이 같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궤변에 대응하는 현명한 태도는 " 40자 트윗질 " 이면 족하다. 개똥에 쌈 싸 드셔 ~ 이런 식으로 말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한 사항(종교에 대해 시종일관 조롱으로 내뱉는)은 모두 옳다. 그러나 과연 그 지적을 하기 위해 600페이지'나 되는 책으로 엮는 것은 합당한 일이었을까 ? 또한 그는 과학에는 박식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무식한 편이다. 종교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600쪽짜리 << 만들어진 신 >> 을 읽는 것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30쪽짜리 과학 에세이를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
덧대기 ㅣ 리차드 도킨스는 히틀러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유로 기독교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 침소봉대하는 논리'는 가장 허약한 논증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이 무신론자였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옹호하면(혹은 무신론자를 싸잡아서 비난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
- 조선시대 백성의 평균 수명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