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다양한 책을 읽다 

 

 

말 몰이식 독서법

 

우리의 두뇌는 쓰면 쓸수록 그 능력이 더 커진다고 한다. 어떻게 훈련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같은 경우는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예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여러 분야에서 활용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제 그러한 경험을 조금은 해 보았다. 무역업을 한다는 목표를 세워놓자, 외국어를 잘 구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몇 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세가지를 동시에 공부하면 헷갈리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첫째,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둘째, 열심히 외우고 떠벌이는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그래서인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하고자만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좋아하는 한가지 분야만 계속해서 읽어야 할까 아니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해야만 할까.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가능하면 많은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다양한 관점을 통해 균형된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분야의 책만 읽다보면 점점 더 그 분야의 책만 찾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보면 뇌의 신경망이 하나로 점점 더 굵게 형성되기 때문에 다른 요구가 생기더라도 그 한분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게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라도 조금씩 다른 분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국민학교 때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십몇 년을 만나지 못하다가 만나게 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국민학교 때 공부를 잘 했던 친구였는데, 재수를 해서 대학을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를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도저히 교과서를 읽지 못 하겠더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책을 읽으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놀라웠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권유로 무협지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협지가 재미있다고 소개를 해 주었지만 처음에는 어디서 빌리는지도 몰라 그냥 지냈다고 하는데, 나중에 만화방에서 빌리면 된다는 것을 알고 무협지를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3년 내내 학교에서 무협지를 읽었는데,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무협지만을 읽었단다. 그래서 졸업한 해에는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재수를 하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기는 했단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력이 떨어져서 도저히 공부를 하지 못하겠기에 군대를 갔단다. 그리고 복학을 하여서 공부를 해 보았지만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그만 학교를 때려쳤다고 한다. 참 무서운 얘기가 아닐 수가 없다.

 

사실 나도 어려서부터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만화책을 늦도록 보았다. 결혼을 해서도 일요일에는 만화방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으니깐 말이다. 아내가 하도 싫어해서 못 가게 되었지만 안 그랬으면 지금도 만화방엘 다녔을 지도 모른다. 만화방엘 다녔지만 다행이 무협지는 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는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무협지는 만화책보다 더 자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말들이 많이 나오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중학교 1학년 때 버스 안에서 무협지 책 한권을 주워서 읽은 경험이 있는데 무척 자극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읽기도 쉽고 자극적인 책을 계속 읽으면 우리의 뉴런다발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점점 그 분야의 책만 읽게 되는 것이다. 쉬운 책만 읽다 보니 어려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뇌과학의 원리가 숨어있으니 아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었다는 친구의 얘기는 참으로 놀라운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책도 가려서 읽어야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려서 비록 만화책을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만화책을 읽는 것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로만 된 책을 읽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친구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듯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양서를 읽을 필요가 있다. 점차 수준 높은 책을 읽어나가야만 생각하는 힘이 커지고 의식이 확장되어 사고의 지평선이 열릴 것이다. 그런데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분야로 독서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시간대별로 책을 달리 읽고 있다. .퇴근 시간에 읽는 책이 제일 많아 책읽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전공 분야(혹은 연구할 분야)와 교양 분야의 책을 교대로 읽고 있다. 어떤 한 주에 전공 관련 책을 읽었다면, 다음주에는 교양 책을 읽어서 한 분야의 재미에만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좀 따분한 전공 책만 계속 읽으며 너무 재미가 없으니 상식을 넓히기 위해 교양 책을 읽는 것이다.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다음에는 좀 쉬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참고 견디며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전공분야의 책은 영업이나 재무 관련 책을 주로 읽는다. 그러다가 특별한 관심사가 생길 때는 그 분야의 책을 읽기도 한다. 주식투자 관련 책을 계속해서 읽어왔고, 행복에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도 한다. 전에는 사랑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다. 이렇게 한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으니까 이해가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관심 분야의 폭을 넓혀가면서 읽으니까 점점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전에 한 때는 전공과 교양만을 읽으면 딱딱할 것 같아 월말에는 시집 한권을 읽어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이고 교양 분야와 교대로 읽어나갈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전철로 이동을 할 때도 늘 책을 읽는다!>



 

 

화장실에서」는 <건강> 분야의 책만을 읽고 있다. 처음에는 잠에서 빨리 깨려고 책을 읽은 것이라 소설책을 읽었었는데 꽤 오래 전부터 건강에 관한 책만을 읽고 있다. 5분에서 10분 정도밖에 읽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2달에 한 권 정도 읽게 된다. 얇은 책은 좀 일찍 끝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총 22권의 건강관련 책을 읽었다. 건강에 관한 책을 계속해서 읽다보니 건강 관련 지식을 많이 갖추게 된다. 또 기수련을 계속 하면서 건강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지난 2001년 이래 병원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감기 몸살에도 걸리고, 편도선이 아프기도 하였으나 참고 견디고 있다. 이제는 면역력이 세어져서인지 아파도 몸이 금방 낫게 된다. 건강한 삶을 위해 올바른 지식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촌음이라도 아끼고자 식사 시간에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벌로 흔히 고3학생들이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를 하듯 열심히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식사하면서 읽는 책으로는 <독서, >에 관한 책을 보자고 정했다. 책이나 독서에 관한 책은 헌책을 사기도 하면서 일부러 수집해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소설이나 실용서적이나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식사하는 시간에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옳다 싶어서 그만두고 식사 후에 5~10분 시간을 내어서 읽었다. 요즘엔 나태해져서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반성해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잠자기 전에 15분만이라도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5분만 책을 읽으면 1달에 1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점점 책 읽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몇 년 전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육이었는데, 교육에 관해서도 장기적으로 공부를 해 보자는 차원에서 잠자기 전에는 <교육>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시간대에 책 읽기가 어렵다.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거나, 대화를 하거나, TV에 빠지거나, 잠시 누워있다가 스르르 잠들거나 하면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마음을 다잡고 자세도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 휴일에는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푹 쉬곤 했다. 그 주에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는 책을 읽지는 않았다. 명상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용인에서 후배의 결혼식에 있어 참석하게 되었는데, 편하게 버스를 타고 다녀오자 싶어 책을 들고 나서게 되었다. 오가는 동안 책을 읽으니 심심하지 않고 좋았다. 그 때 이후에는 휴일에도 마냥 쉬지만 말고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하는 책을 읽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관심은 많으나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명상, 깨달음>에 관한 책이나 <에세이> <소설>을 읽기로 했다.

 

<휴일에 아이들과 놀러갈 때도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한편 너무 실용서적 위주로만 책을 읽다 보면 감성이 메마를까 싶어서 한 달에 시집 한권은 읽자는 여유를 부리게 되었다. 그래서 재작년에는 한동안 월말에 시집을 한권씩 읽었다. 앞으로도 시집을 꾸준히 읽고 싶다.

 

여기까지가 시간대별로 책을 읽은 1차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의 주인공 류비세프처럼 더욱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하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 라는 책에서 고 주영 회장이 새벽 3 30에 기상하였다는 내용을 읽고 나도 따라서 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상 시간을 한 시간 더 앞당기게 되었다.

 

먼저 새벽에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기로 했다. 전에 여러 번 새벽에 조깅을 했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만 두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는 첫차를 타고 출근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4시 30 일어나서 조깅을 하지 않고 바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자고 마음을 먹게 되어 새벽 3 20에 일어나 책을 보게 되었다. 새벽에 1시간 가량 책을 읽으니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새벽에는 <영업> 관련 책을 읽었다. 정신 무장을 하자는 의미에서 치열하게 영업하는 사람들의 책을 주로 읽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출.퇴근 시간에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너무 두꺼운 책을 읽기도 했다. 

 

<잠자리 바로 옆에 책상이 있어 일나자 마자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사무실에 매일 1 챕터씩 마음에 새기면 좋을 책을 읽게 되었다. <정신을 고양시키는 책>이라면 아무 책이나 좋았다. 한두 페이지 정도만 읽으면 되니까 시간이야 거의 걸리지 않아서 얼마든지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 한 권을 몇 개월 동안 읽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시간에 두꺼운 책도 읽게 되면서 시간을 늘려서 읽기도 했다. 앞으로는 수분 ~ 10분간은 읽어야겠다.

 

<사무실에도 책이 수북하다!>



 

 

 

한번 탄력을 받으니 점점 욕심을 내게 된다. 이번에는 회사에 읽는 책으로 오늘의 독서라는 책을 정해서 15분 이상 읽었다. 이 시간대에는 <성공철학>이나 <마케팅>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역시 15분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한 달이면 너끈히 1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한 30분 일찍 출근해서 책을 읽는다면 한달이면 2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늦게 출근하면서 러시 아워에 시달리느니 한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면서 편하게 출근하고 또 30분을 활용하여 독서를 한다면 삶이 훨씬 여유롭고 또 풍요로워 질 것이다.

 

회사에서 읽는 책이 하나 더 있다. 화장실에 가는 등 정말 짬짬이 읽는 책이다. 1권 읽는데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른다. 심심할 때도 읽어야겠지. <보험, 저축, 투자> 등 업무 관련된 지식의 축적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다.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더 있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토론했던 문고판 책이 있었는데, 얇은 게 휴대하기도 좋았다. 그래서 늘 예비로 휴대하고 일하러 다니면서 잠깐 걸을 때, 조금 짬이 날 때, 혹은 읽고 있던 책을 다 읽는 경우에 읽기도 했다. 책은 다름아닌 살림출판사의 문고판 책인데, <살림총서> 시리즈를 다 읽고 싶다. 200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온 뒤로는 범우문고의 문고판 책도 한 두권 사서 읽었다. 앞으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여러 종류의 문고판 책도 꾸준하게 읽어나가고 싶다.

 

이 정도면 가히 책만 읽는 바보라고 할만 할까. 어쩌면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읽는 시간이 확장되었을 뿐이다. 지금은 게을러져서 모든 시간대별 책을 읽고 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언제고 다시금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욱 많은 시간을 짜내어 책을 벗하며 살고 싶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책을 너무 많이 읽다가 시력이 나빠져서 읽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평생 동안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읽어야 하니까 눈 건강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리라.

 

<사무실에서 식사하러 갈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처럼 한 종류의 책이나 장르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계획적인 독서를 하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한 분야에 대해서도 안목이 생기는 것 같다. 독서 편식이 심한 사람이라면 의도적인 노력을 하여 점점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조금씩만 더 독서하는데 시간을 투자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 읽는 시간을 늘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 동안 꾸준하게 책을 읽을 것이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니깐 말이다.

 

<어머님 댁에 다니러 가서도 책을 읽고 있다!> 그런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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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하면서 책을 읽다

 

 

모든 것엔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패션이 그렇고, 머리 스타일이 그렇다. 유행이라는 것이 모방심리에 그 근저를 두고 있다면, 좋게 말하면 본받기고 험한 말로 하면 따라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유행이 도서계에도 부는 것 같다. 웰빙이다, 행복이다 해서 한번씩 큰 바람이 불고 지나간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황량함만이 남아 춤춘다. 언제 어느 때고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하게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책이 그리워 지는 법이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유행인지 금세 눈에 띄게 마련이다. 몇 년 전에는 새벽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전철 안이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행을 따라서 책을 읽지 않았기에 그 책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헌책으로 사 두어서 집에도 책이 있다.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나는 이미 그 때 새벽 같이 일어나서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6 25분경 사무실에 도착하여 책도 읽으면서 새벽형 인간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지지 않았다고 했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것도, 책을 읽는 것도 서서히 변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살다 보니 조금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새벽형 인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그냥 남들처럼 정시에 출근하곤 했다. 그런데 사업을 정리하고 ING생명보험㈜에 입사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하면서 다짐한 게 딱 2가지가 있었다. 절대 자리에 앉아서 졸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고, .퇴근 시간에 꼭 책을 읽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오래 전에 서울 여의도에 있는 첫 직장에 출근하면서 007 가방을 하나 장만을 했다. 그 때는 무슨 이유에선지 밤색을 좋아해서 밤색 가방을 구입했다. 그 가방 속에 외국어 책과 우산 딱 2가지를 넣어가지고 다녔다. 첫 출근하는 날도 기억이 난다. 수원에서 전철을 타기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방에서 일본어 책을 꺼내서 공부를 하면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그 날 부로 안양 공장 경리과로 내려왔다. 해외영업부서를 지원했는데 경리과로 발령을 받아 참 서운했었다. 공장으로 출근을 했지만 저녁 6만 되면 땡하고 칼 퇴근을 하고 서울 강남구청 근처에 있는 중국어 학원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6개월 후에는 다시 본사로 발령을 받아 몇 년 동안 서울로 전철을 타고 출.퇴근 했다.

 

처음 1~ 2년 동안에는 전철을 타고 다니며 꼭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고 잠을 자거나 했다. 이해가 안 갔다. 그 소중한 시간에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내게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한동안 일이 바빠서였을까 막차를 타고 퇴근을 했는데, 퇴근을 늦게 해서 잠을 얼마 못 자 피곤해서였을까,출근할 때 자리에 앉아서 졸고 말았다. 곤하게 자다 보니 금방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새 자리에 앉기만 하면 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전철에서 졸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졸다보니 서울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각역까지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이 서대문근처에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사무실까지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철에서 졸다보면 스타일도 많이 구겨진다. 침을 질질 흘리며 자는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었겠는가. 날씨가 더울 때는 유난히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잠을 자다보면 땀이 많이 난다. 상의가 흥건하게 젖을 때도 있다. 땀에 차서 깨보면 기분이 아주 찝찝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졸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쳐 들었다가도 금방 골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면 버릇의 힘이 대단하다는 느끼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다가 안산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나의 전철 출.퇴근 시대가 끝나게 되었지만 이 때의 경험은 쓰라린 것이었다.

 

2000 8월부터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한가지 결심을 한 것이 있는데 출.퇴근시간에 꼭 책을 읽고, 자리에 앉더라도 절대 졸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3~4시간 밖에 자지 않고 1년 이상을 다녔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졸지는 않았다. 겨울에 따듯한 히터가 나올 때 자리에 앉게 되면 저절로 졸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잠이 부족하여 안 그래도 졸린 상황에 따뜻한 열기가 온 몸을 감싸면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졸리다. 그래도 나는 뺨을 꼬집어 가면서 졸지 않고 책을 읽으려 기를 썼다. 그러다가 정 참지 못할 것 같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주로 전철 구석진 자리에 기대어 서서 책을 읽는다~!> 

 



 

내가 이렇게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 졸지 않기로 크게 결심한 것은 버릇이라는 것이 한번 들이기는 쉽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과 같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전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굳게 결심을 해서였을까 오늘날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너무나 쉬운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법이다. 지금껏은 잘 해 왔겠지만 어느 순간 한번 비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도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조심조심하고 있다. 하긴 이제는 책 읽는 습관이 강하게 들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책 좀 덜 사고, 덜 읽자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그게 안되니 답답할 때도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헌책방을 그냥 지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모든 것이 서서히 이뤄지게 되었다고 했나. 그랬다.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게 된 것도 서서히 변해온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출.퇴근 시간에만 빼먹지 말고 책을 읽자고 결심을 했던 것인데, 오늘날은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게 된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더 심할 때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는다. 책만 읽는 바보가 틀림없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게 서서히 너무나 서서히 변해서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열심히 읽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일주일에 최소한 1권씩을 읽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두꺼운 책을 읽을 경우에는 1주일에 한권을 못 읽는 경우도 생겼는데, 1주일에 1권을 읽자고 결심을 하게 되면서는 다른 시간에도 짬을 내서 읽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1년에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 정도 책이라면 왕복 2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출근할 땐 선릉역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8 30분까지 출근을 했다. 성균관대역에서 7 15분 정도에 타면 충분하게 8 30분까지 출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출근을 하면 전철 안은 완전히 콩나물 시루와 같아서 책을 보기는커녕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몇 번을 그 시간대에 출근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출근 시간을 당겼다. 6 11분 전철을 타기로 결심을 했다. 1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일찍 출근을 하니 자리에 앉을 수도 있거니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 늘 6 11분경 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5시경에는 일어나야 했을 것 같다.

 

참 재미난 것이 다음에는 화장실에 변화가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일찍 일어나려니 머리가 많이 무겁기도 했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일을 보게 되었다. 그게 못 마땅했다. 고개를 흔들면서 잠을 쫓아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을 한번 들고 들어가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 하니깐 잠에서 빨리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부담 없는 책으로 읽자고 해서 소설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소설책을 읽지 못하니깐 소설책을 읽기로 했다. 화장실에서는 소설 책을 읽기도 했고, 들고 다니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책을 보면 변비가 되느니 뭐니 해도 나는 괘념치 않고 변함없이 화장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10분 정도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 지금껏 20여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충분히 아낄만하지 않는가.

 

요즘엔 화장실에서 읽는 책을 건강에 관한 책으로 정해서 읽고 있다. 벌써 20여권의 책을 읽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읽는다면 건강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격이 아닌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정신이 말똥말똥해 진다. 게다가 책도 읽고, 건강에 관한 지식도 챙기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화장실에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그냥 들어갈 수가 없다.

 

그 뒤로 독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하루 15분씩만 책을 읽으면 1달에 한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 나왔다. 사실 하루에 15분씩 읽는다면 한 달에 책 1, 1년에는 12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51p/독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버크헤지스/나라) 10년 후엔 120권이 더해지게 되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에 15분의 시간을 냄으로써 10년 동안 120권을 읽을 수 있고, 이는 여러분 인생의 모든 부분을 더 풍요롭게 만들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루에 15분에서 30분으로 독서시간을 두 배로 늘리면 1 25권 그리고 10년 후엔 250권을 읽게 됩니다. 접시 닦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 이런 종류의 수익을 어디서 또 얻을 수 있겠습니까? (52p)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직접 확인을 해 보았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읽었던 책들의 시간을 기록해서 평균을 내 보았다. 그러자 저자의 계산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나도 15분씩 책 읽는 시간을 늘려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서서히 책 읽을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잠자기 전에 읽는 책, 식사하면서 읽는 책, 휴일에 읽는 책, 사무실에서 읽는 책, 사무실에서 한 챕터씩 읽는 책, 그리고 휴일에 읽는 책, 새벽에 읽는 책까지 시간대를 많이 만들어 나갔다. 그러자 월 평균 10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한달에 10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은 다독가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들은 1년에 15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특이한 분은 1년에 1,000권을 목표로 책을 읽기도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 것은 일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서 읽었다는데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잠을 줄이면서 책을 읽었고, 화장실에서나 혹은 식사를 하면서 잠깐의 시간을 아껴서 읽었기 때문에 참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나태해져서 그만큼 책을 많이 읽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한 달에 7~8권의 책은 무난히 읽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요즘 고민을 하고 있다. 책을 어떻게 하면 좀 줄여서 읽을까 하고 말이다. 하는 일이 고객을 만나는 일이라 자주 이동을 하게 된다. 주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동시간에도 책을 읽는다. 그렇다 보면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무료하지가 않다. 책 읽는 사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금방 도착하게 된다. 혹 약속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면 시간이 아깝지도 않고, 또 무료하지도 않으니까 좋다. 그래서 낮에 전철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게 된다. 그런데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것도 좀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일에 온통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 일인데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여 책을 그만 읽자고 다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책을 놓는 일이 쉽지가 않다. 습관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책방에 들리는 일도 그렇다. 손님을 만나 상담을 마치게 되면 근처에 있는 헌책방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다. 심지어 헌책방에서 동생을 만나기도 한다. 동생도 책 사냥꾼이다. 같은 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동생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자주 헌책방을 간다. 그래서 어쩌다 헌책방에서 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어찌나 반가운지 모를 일이다. 헌책방은 주로 전철역에 있는 헌책방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전철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있는 헌책방 코너를 이용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성장하면서 점포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헌책방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우리 형제에겐 참 좋은 일이었다. 처음이라 이용하는 손님들도 많지 않았는데다가 비교적 깨끗한 신간을 무척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2~3천원이면 새책과 다름없는 책들을 살 수 있었으니 신났었다. 좋은 책들을 사 들고 들어오면 무슨 책을 샀는지 서로 자랑 삼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책이 잘 나갔는지 점차 높은 가격을 메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가격으로 팔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 광화문점의 모습>



 

전철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자주 가는 이유가 있다. 책들이 많지 않아 짧은 시간 내에 있는 책 모두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좋은 책을 고를 수가 있었다. 전통적인 헌책방이 천천히 책구경을 하면서 보물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들 헌책방에서는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듯 신속하게 책구경을 완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루의 일과를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헌책방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도 보고 헌책방에도 들려 좋은 책 한권을 구하면 뿌듯하기 그지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헌책방을 다니다 보니 우리가 볼만한 책들은 많이 구입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구입한 책들이 또 헌책방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새책들은 선물용으로 또 구입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형제는 고객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했는데 새책으로 선물을 하려면 부담도 만만치 않았는데 헌책을 싸게 사서 말끔하게 닦아서 선물하면 새책처럼 깨끗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지인이나 고객분들께 선물하려고 헌책을 구입하다 보니 이제 헌책방에 들리는 것은 하나의 일과처럼 되었다. 나의 경우는 점차 어떤 순례의식을 갖게 되었고, 지나는 헌책방마다 꼭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헌책 한 권은 사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스타일이 좀 다르다. 깨끗한 것을 중요시 하는 동생이 가격표를 꼭 떼고 책을 깨긋하게 닦아 두는 쪽이라면, 역사성을 중시하는 나는 가격표를 그냥 둔다. 선물을 할 때만 가격표를 떼거나 한다. 이렇게 헌책을 자주 사다 보니 처치가 곤란하다. 책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아내는 책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집이 작아 책을 둘만한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책 사는 분량도 적지 않은데 적은 돈으로 많은 헌책을 사다 보니 점점 집으로 책을 가져가기가 눈치가 보였다. 슬금슬금 알지 못하게 한권 두권 집에다 가져다 두었다. 그러다 보니 책상 위에도 수북하게 책이 쌓이기 시작했고, 책상 밑에도 점점 더 많은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집에 대한 욕심도, 잘 살고 싶은 욕심도 없지만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집으로 가져 가지 못하는 책은 사무실에 보관해 둔다. 어느 사이 사무실에도 책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눈치가 보인다. 그러면 집으로 한권 두권 가져다 놓을 수 밖에 없다. 동생의 경우는 제수씨가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 조금더 개방적인 편이다. 얼마 전부터 책을 읽고는 감명을 많이 받아서 책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책 사오는 것은 환영하는 것 같았다. 몇 달에 한번씩 자리를 이동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동생네는 차를 끌고 와서 한번에 가져가기도 한다. 집안에 협조자가 있다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난다. 요즘 들어 나도 조금더 아내의 인정을 받아서인지 눈치를 많이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은데 자꾸 끌고 들어가게 되니 내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책을 그만 사자고도 다짐을 하게 되고, 헌책방에 그만 가자고도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새책을 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책을 사게 되는 것을 지름신이 왕림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후회를 하게 되지만 또 어느새 지름신은 강림하게 된다. 아무튼 습관이 한번 들면 끊기가 힘들다.

 

<공부방 서가에도, TV방 서가에도 책이 꽉 차서...>



 

<탁자 위에 수북히 쌓여가는 책들>



 

 

그래서 헌책방에도 좀 덜 가야겠다고 결심은 하게 된다. 비록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언제나 이 순례의식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삶은 책을 사고, 읽고 또 독후감을 쓰고 하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일하는 시간 빼고는 모두 책과 관련된 삶이었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전철을 타고 일을 하러 다니면서 책을 읽고, 전철역 근처의 헌책방에서 책 사는 삶이 순환하는 전철마냥 연속되고 있었다. 마치 괘도를 돌아가는 일처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책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심지어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불쑥 말을 걸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고 대화에 응해주셨다. 책을 본다는 동질감 때문이었겠지만 참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변함없이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일을 하고 또 책을 읽을 것이다. 또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걸기도 하고 눈인사라도 나누게 될 것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말이다.

 

회사 독서광 인터뷰 때, 누가 회사가 있는 청담역 근처에 아파트를 준다고 해도 거절하겠다고 말했었지만 그건 내 진심이다. 사람이 편해지면 게을러지고 게으르다 보면 책도 읽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기에 나는 직장 출.퇴근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집을 수원에서 서울로 옮길 생각이 전혀 없다. 정말 누가 집을 거저 준다고 해도 사양할 것이다. 지금껏 7년 정도의 세월을 꾸준하게 책을 읽으며 살았다. 내가 읽은 책이 약 500권은 될 것이다. 앞으로 14년 정도 꾸준하게 책을 더 읽는다면 무려 1,000권의 책은 읽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 그것을 한 채의 아파트와 바꿀 수가 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가 무한한데,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듯 나는 전철에서 책 읽으며 사는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만족스럽다.

 

누가 나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벗하면 사는 삶의 즐겁고 행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 책 나의 벗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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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순례하다

 

 

헌책방으로 여행은 내면세계로의 여행  

 

나는 어려서 역마살이 끼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국민학교 때는 동네에서도 다른 집에 자주 놀러 다녔고, 다른 동네에 있는 친구들 집에도 자주 놀러 다녔다. 놀러갔다가는 자고 오기도 여러 번 하였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 어머님께서는 친구따라 강남을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친구를 참 좋아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아마 이런 경험 때문에 역마살이 끼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다른 곳을 동경했다. 미지의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해외 여행을 꿈꾸게 했는지도 모른다. 대학교 4학년 때 무역업을 한다는 꿈을 세우게 되었는데,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외국어 공부를 한다고 서울 남영역 근처에 있는 현대 통역학원엘 다녔는데 근처에 해외팬팔을 주선하는 곳이 있어 자주 그곳에 들려 펜팰을 구하게 되었다. 몇몇 나라에 사는 아가씨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것도 다 나중에 해외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첫 직장에 취직을 하자마자 여름휴가 때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펜팔을 하고 있던 아가씨를 만나러 갔다. 야마구찌껭이라는 혼슈의 남쪽에 있는 곳으로 참 조용하고 깨끗한 지방이었다. 첫 외국 나들이어서일까 참 인상적이었던 여행이었다. 일본어 회회 실력을 테스트 할 겸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세상은 다르면서도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에 개인적으로 또는 회사에서 업무로 해외 몇 곳을 더 돌아다녔다. 미지의 곳이 궁금하여 여행을 다녔지만 발견한 것은 인간은 어디서나 똑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가장 최근에 해외 여행을 한 것이 99년에 중국 천진을 다녀온 것이다.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만도 하지만 나는 이제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내 역마살이 가라 앉은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이제는 밖으로의 여행이 아닌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 자신의 내면 세계로의 말이다.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내면으로의 여행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명상을 하면서 자신 속으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정신 세계를 여행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방법으로 나는 헌책방을 찾는다. 그 곳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면서 즐거움을 맛보고, 책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정신 활동 속으로 여행을 한다. 책을 통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더 가까이 만나게 된다. 주마간산 격으로 한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라도 더 깊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해외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세계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시간적인 면에서 실제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은 쉽지가 않다. 반면 헌책방을 돌아보는 것이나 책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양쪽 측면에서 볼 때 훨씬 더 유리하다. 사실 해외여행에서 발견하는 것이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모습이라면 굳이 시간을 쓰고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헌책방을 찾는 이유는 몇 가지로 단순하다. 경제적인 측면이 첫째다. 좋은 책을 무척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새 책 한권 값에 몇 권, 운 좋으면 너댓권의 책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헌책이라고 해서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이거나 너덜너덜해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헤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헌책이라는 푸대접을 받는 것은 바로 주인에게서 버려졌다는 이유 하나뿐이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라도 말이다. 중고책도 아니다. 한번도 읽히지 않은 책도 많으니깐 말이다. 어찌되었든 여러 권의 책을 저렴한 가격에 사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새 책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한 달에 10만원 이상의 책은 꼬박꼬박 사고 있다. 그러니 책값으로 나가는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새 책으로 보고 싶은 책을 계속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못 다 채운 책 욕심을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은 돈을 들여 헌책을 사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만족을 준다. 헌책방에도 종류가 여럿이 있다. 책 값이 부담되는 사람을 위해서 조언을 해 본다.

 

몇 년 전 그러니까 2001년인지 그 전인지 모르겠다. 전철역 안이나 역사 안에 가판대를 두고 헌책을 파는 간이 헌책방들이 많이 생겼다. 무척이나 번성을 해서 손님의 왕래가 많은 곳마다 헌책방이 생겼던 것 같다. 1호선부터 먼저 돌아볼까. 노량진역(), 대방역(), 신길역(), 영등포역(), 신도림역()에 있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안에 있는 곳도 있고, 전철역사내에는 있지만 개찰구를 통과하기 전인 밖에 있는 곳도 있다. 자기가 다니는 전철역을 이용하는 손님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4호선에는 범계역(), 인덕원역(), 평촌역()에 있다. 평촌역에는 자주 바뀌곤 한다. 최근에는 종로3가역에도, 역삼역에도 아주 작은 헌책방이 생겼다. 오래 전에 지나친 곳이라 기억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외에도 여기 저기에 헌책 코너가 많이 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곳에도 많이 생겨났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헌책방으로 아름다운 가게 헌책 코너를 꼽을 수 있다. 아름다운 가게에는 각종 중고품을 팔고 있는데, 헌책을 파는 코너도 있다. 이 아름다운 가게 헌책 코너는 동생이 먼저 발굴을 했다. 초창기에 그곳에선 새책 같은 헌책을 무척이나 싸게 팔았다. 가격도 전철역에 있는 헌책방에서 보다 훨씬 저렴했다.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가게는 강남에만도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상담을 마치고 잠깐씩 들려 헌책을 사곤 했다. 그리고 고객이 있는 다른 곳에도 속속들이 가게가 생기면서 더욱 자주 다니게 되었다. 강남에는 양재역, 논현역, 교대역, 삼성역(봉은사 내), 7호선에는 신대방삼거리역, 1호선에는 명학역, 신설동역 등에 있다. 그리고 헌책만 파는 아름다운 가게가 세 곳이나 생겼다. 이대역 근처에 있는 신촌점, 종각역 근처에 있는 광화문점, 파주 출판단지 내에 있는 보물섬. 이 곳은 미니 서점이라도 해도 좋다. 신촌점은 1층 한옥에 위치해 있는데 멋진 실내 분위기로 휴식 같은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광화문점은 책이 제법 많다. 책들이 제일 많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같다. 파주 출판단지 내에 있는 보물섬은 흡사 예술품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래된 책부터 최근 출판된 책까지 다양한 책들을 구비해 놓고 있다.

 

이렇듯 전철역 근처에 헌책방이 많이 생겨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책을 자주 사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면 좋을 듯싶다. 한 달에 만원만 있으면 된다. 2,000원짜리를 산다면 5권은 살 수 있으니 한달 볼 만큼의 책을 구입할 수도 있다. 오래된 책은 1,000원이면 살 수 있다. 용돈을 조금만 아낀다면 비록 신간은 아니지만 마음의 양식을 삼을 책을 여러 권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적은 돈으로도 적지 않은 책을 사서 볼 수도 있으니, 가난해서 책 사볼 돈이 없기 때문에 독서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으리라. 이들 헌책방은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 부지런하다면 좋은 책들을 많이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전통적인 헌책방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주로 전철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이나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하다보니 자주 찾지는 못한다. 어쩌다가 전철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 몇 곳을 알게 되어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서 찾기도 했다. 전통적인 헌책방에서 원하는 책을 발견하는 것은 가히 보물을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켜켜이 쌓인 책더미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면 무슨 보물을 발견한 듯 기쁘다. 한번은 훌륭하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어떤 책을 2권이나 발견하게 되었다. 동생과 나눠 보려고 2권의 책을 모두 구입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오랫동안 구입하려고 인터넷 헌책방도 뒤지고, 가는 헌책방마다 물어보았나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모든 일에서 오랫동안 갈구하던 것을 구하게 되면 기쁜 법. 그런데 다른 헌책방에서는 동생이 그 책을 20권이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몽땅 구입해서 반반씩 나눠 가졌다. 그래서 필요한 지인들에게 나눠주게 되었으니 이 또한 즐겁기 그지 없다.

 



 

 

한번은 독서토론 모임에서 토론할 책이 정해져 헌책방에서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동안 다녔던 헌책방 어디에선가 본 듯했다. 그래서 토요일에 좀 자주 가던 헌책방을 한곳을 방문했다.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좀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헌책방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책은 없었다. 차마 포기할 수 없어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전철역에 있는 헌책방에도 들렸다. 하지만 그곳에도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그 다음주엔 안양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들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수원에 있는 헌책방에 그 책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반갑던지 당장 수원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참으로 오랫동안 책을 찾아 헤매고 나서 겨우 얻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교통비며 책을 사는데 들어간 비용은 새 책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어렵게 구한 책이기도 했지만 저자의 고난과 역경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가슴이 시리기도 했고 안타까웠으며 마음이 아팠다. 책과의 만남이 영혼과의 만남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책은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서간/돌베게)이다.

 

이렇듯 헌책방과의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약속한다. 바로 훌륭한 책과의 만남이다. 그 동안 나는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몇 권이나 발견했다. 일반 대형서점에서라면 그런 책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너른 곳 어디에 그 책이 있는 줄 알고 발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통적인 헌책방이 아닌 전철역내에 있는 헌책방이나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책을 찾기 쉽게 서가에 주욱 꼽아 놓아 책 전부를 훑어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적은 책들이 있으니까 무슨 책이 있나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특이한 책이나 찾고 있던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베스트 셀러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좋은 책이 헌책방에서 운 좋게 눈에 띄게 되면 그야말로 횡재를 하는 셈이다. 그런 책을 몇권 발견했다. 그중에서 한권을 꼽아 보라면 셀프 터킹(Self Talking)이라는 책을 꼽고 싶다. 과학적인 원리를 적용한 자기계발서적인데 우리의 정신세계를 잘 다루고 있다. 모든 자기 계발서의 요약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수들만을 모아 놓은 책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일반 서점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밀려나게 된 것 같다. 아무튼 그 책을 발견한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나중에 정말 좋은 헌책을 두 권이나 얻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관한 책만큼 큰 즐거움을 주는 책도 없다. 한권은 아름다운 가게를 들렸다가 구입한 책인데, 그 책을 발견하게 된 날은 방문한 헌책방에 볼만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나오기가 뭣해서 한번 더 찬찬히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고 얇은, 그러나 색이 좀 독특한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체링크로스가 84번지라니 무슨 암호책 같기도 했다. 안을 열어보니 독서를 사랑했던 사람의 책 이야기가 아닌가. 마침 그 책을 사고 난 다음에 친구를 만나러 갈 일이 있어서 헌책도 몇권을 구입했다. 그날 사람들을 만나러 오가면서 그 책을 읽었는데 어찌나 많이 웃었던지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녀가 너무 그리웠다. 아니 만나고 싶었다. 가슴 졸이며 산 그녀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어찌나 그녀의 삶이 궁금하던지 인터넷을 뒤져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했으나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영국을 방문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찌나 안타깝던지 혼났다. 그래서 영화가 있다고 해서 바로 주문을 해서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참 얇은 책 한권이 사람을 이토록 가슴 아프게 만들다니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다.

 

내가 꿈꾸는 가정이 있다. 그것은 온 가족이 책을 사랑하며 누가 누가 책을 더 많이 읽나 내기를 하듯 열심히 독서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행복한 가정이다. 우리 집에서도 아이들은 책을 좀 읽는다.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이다. 다만 아직 아내가 수동적으로 책을 읽고 있으며, 마음 내킬 때만 좀 읽는 편이다. 머지 않아 온 가족이 더욱 책을 즐겨 읽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도 헌책방에서 구입하였지만 좀 비싸게 구입한 책이다. 그 책은 바로 Ex Libris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영목 옮김 / 지호)란 책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사랑하는 집에서 자라고, 역시 책과 함께 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과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나오는 책 마니아에 관한 책이다. 결혼해서도 따로 보관하던 책들을 중복되는 것을 골라내고 함께 섞어서 보관하기로 하여 이름하여 서재결혼시키기란 책은 책을 읽는 내내 옅은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모든 이야기가 다 재미있다. 남편이 생일날 준비한 깜짝 이벤트에 너무 행복했다는 저자의 소박한 행복론에 내가 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먼 길을 간 끝에 도착한 곳이 바로 헌책방이라서 너무 좋았다고 고백을 한다. 책을 한 10kg사가지고 돌아왔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주가 온통 책으로 쌓이길 바랄 것이다. 앤 패디먼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그런 기회가 올까 모르겠다.

 

이렇듯 헌책방 순례는 내게 세계여행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죽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나눌 수도 있고, 멀리 떨어져 평생 만나지도 못할 사람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바로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다. 아직도 내 방랑벽은 끝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치우기 전에는 끝낼 수 없는 밖으로의 여행이자 내면 세계로의 여행인 것이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헌책방과 헌책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다른 책 마니아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 주인도 만나게 되고 책방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만나게 된다. 이러니 헌책방 여행이 어디 단순한 여행이겠는가.

 

벌써 2년 전의 일인가 보다. 어느 겨울날 범계역에 들리게 되어 헌책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끔씩 들리던 곳이라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도 알고 지내는데 그땐 새로운 분이 일하고 계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수 있겠는가. 책 구경을 조금 하다가 얼른 책을 두어권 골랐다. 찬 바람이 쌩쌩 세차게 불어서 너무 추워 천천히 책 구경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계산을 치르면서 말을 걸었다. 두 눈망울이 크고 참으로 선하게 생기신 여성분인데 참으로 힘들어 보이셨다. 몇 마디 위로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시는 것이었다. 멀리서 그곳까지 일하러 다니시는데 너무나 힘들다고 하였다. 그래서 기운을 내라고 하면서 책을 권해드렸다. 그런데 이미 명상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아가고 계시던 중이었다. 그날은 너무나 힘이 들어 그만 눈물까지 흘리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끔씩 그쪽에 들리게 되면 책도 사면서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엘 갔더니 새로운 분이 계셨다. 그렇게 궁금하게 지내던 차에 용산역에 헌책방이 생겨서 그곳엘 들렸더니 그 가게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분께서는 수완 좋은 서점 직원으로 변모해 계셨다. 책을 구경하면서 지켜보니 손님들도 잘 상대를 하시면서 책을 소개하기도 하면서 책 판매를 잘 하셨다. 자신이 책을 읽어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시게 되면서 독서의 힘을 직접 느끼게 되어서 진심으로 고객분들께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무나 훌륭하신 말씀이었다.

 

어제도 용산 전자 상가에 들릴 일이 있어서 그 서점에 들렸다. 참으로 반겨 맞이해 주셨다. 몸이 아파서 20일 정도 쉬셨다고 했다. 건강이 안 좋다고 하셔서 건강에 관한 정보도 드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돈이 별로 없었지만 헌책을 두어 권 샀다. 책을 쓸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써도 좋으냐고 물어보니 선뜻 응해 주셨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사소한 인연이지만 이렇게 인연을 쌓아나갈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

 

앞으로도 나의 헌책방 순례는 계속될 것이고, 책 속으로의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이 다하기 전까지는. 내게 책과 함께 하는 삶은 인생 그 자체이자 여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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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에 담는 자식 사랑 이야기

 

 

가난한 내가 요즈음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책뿐이다. 나중에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책만 물려주고 싶다. 내가 읽었던 책. 내가 밑줄 치며 읽었던 모든 책을 전부 물려주고 싶다. 나의 삶, 나의 족적, 나의 배움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유산으로 책을 물려주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책 때문에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절대 어느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도록 유언을 남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기를 때, 아이들의 아이들도 내가 남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걸어갈 인생길의 안내서로 삼길 바라고 싶다. 내가 죽은 뒤의 일이 내 생각대로 되겠는가 만은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도 자를 대고 깨끗하게 밑줄을 치는 것은 시간도 걸릴 뿐만 아니라 책 읽는 것도 훨씬 더딘데도 모든 책을 읽을 때 그렇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좀 괴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하여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왜 밑줄 긋는데 혈안이 되었을까?

 

벌써 오래 전에 여동생에게 책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돌려주면서 동생이 하는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오빠가 밑줄 친 부분을 읽으면서 다음에 밑줄 친 부분이 궁금해서 책을 빨리 읽게 되었으며, 재미나게 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바로 이것이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사랑을 했다는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 속에 밑줄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왕에 밑줄을 칠 것이라면 바른 마음을 갖도록 깨끗하게 밑줄을 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자를 사서 자를 대고 밑줄을 치면 읽었던 것이다.

 

벌써 몇 년 동안 이렇게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주로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는데 흔들리는 전철에서 똑바르게 밑줄을 치면 글을 읽는 것은 가득 채운 물잔을 나르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어렵지 않다. 전철의 리듬까지 맞춰서 밑줄을 칠 수 있는 경지에 달하게 되었다. 거의 흔들림 없이 똑 바르게 밑줄을 치게 되었다.

 



 

처음에 의도가 이런 것이었으나 이제 그 뜻은 전설처럼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그 이유를 글로 남겨 명백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라 여겨질 것이다. 사실 이제는 그런 정신은 체득이 되어서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일처럼. 요즈음은 다른 의미 하나를 덧붙이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유별나게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다면 도대체 저렇게까지 독서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독서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정성을 들여서 밑줄을 치고 있다.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가 물려준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한다면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일 게다. 비록 내가 죽어 이승에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책이 몇천 권이나 된다면 아이들은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먹으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또 그 내리 사랑은 아이들에게, 또 그 후손들에게 면면히 흐르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다른 아무런 유산을 남겨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아빠의 최고의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뒤늦게 발견한 한 장의 편지에서 쌓였던 원망과 분노가 용광로 앞에서 얼음이 녹아 내리듯 완전히 녹아내리게 할 수 있다면 그 편지는 보석이나 엄청난 재산보다도 가치가 있을 것이리라. 며칠 전 우연히 사진첩을 갖고 놀던 큰 아이에게 옛날에 써 놓았던 편지를 읽어주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썼던 글인데 사진첩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편지 글을 읽어주니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잘은 몰라서 감격하지는 못했겠지만 더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읽어본다면 감동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언제 이런 용광로 같은 사랑의 편지를 준비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이 편지처럼 밑줄도 아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빠가 예지에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 예지 너는 아빠의 공부방에 와 놀아달라고 아빠를 조르고 있었단다.

 

예지야!

 

아빠는 예지를 무척이나 사랑한단다.

먼 훗날 네가 아빠를 미워할 때가 있거든 이 글을 읽어보아라.

 

아빠는 지금 고민 중에 있단다.

우리 예지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예지가 성인이 되어 멋있고 그리고 떳떳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우선은 아빠의 소망을 담은 이름처럼 예쁘고 (외모만을 일컫는 것은 아님) 지혜롭게 커줬음 하는 바램이다. 외양의 아름다움(예쁨)은 순간적이고 이내 사그라지는 것이라면 내면의 아름다움은 주위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는 더욱 깊어만 가는 것이니 후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것이겠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사람이라는 동물은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이건만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마음은 쉽게 다스려지지만은 않는 것이라, 그 마음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고 욕을 자초하는 것이니 무릇 모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능히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한다. 인생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경륜해 나간다면 남 보기에도 아름답다 할 것이다. 순간순간의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그리고 그 결과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생을 영위한다 할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 지혜롭게 사는 길은 어떻게 해서 갈 수 있는 것인가?

예쁘게만 보이고 속이 비어 있는 우매한 사람처럼 불쌍한 노릇은 없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으려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보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할 것인데, 이러한 능력은 마음이 아닌 이성으로 냉철한 사유를 한다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사람이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주위의 사람들을 능히 이끌 수 있어 저절로 뛰어나리라.

 

조금은 어려운 얘기를 했던 것 같으나, 아빠는 예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예지로 키우기 위해 지혜롭게 살아가련다.

 

아빠는 예지가 태어나면서 우리 예지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까 하고도 고민하였는데, 너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남겨줄 수 있는 (아빠의 마음을 실어) 사진첩을 남겨주고자 결정하였단다. 아울러 네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었던 역사를 남겨주기 위하여 취미우표도 모아보기로 하였단다. 이 속에서는 한국, 나아가 세계의 역사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빠 선욱이 예지에게                        1995. 1. 21. 23시 10

 

우리는 조급한 사랑을 한다. 아니 말뿐인 사랑을 할 뿐이다. 아이를 정성으로 키우면서 마음으로 가르치면서 나는 사랑은 무척이나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자기 희생과 인내와 무한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외치기보다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안내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랑이야말로 아이들을 활짝 꽃피어나게 할 테니깐 말이다. 아이들아,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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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읽는 휴일의 하루 

  

 




 

 

정말 열심히 책을 읽던 때가 있었다. 한시도 책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읽었다. 휴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열심히 읽었다.

 

점심 때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책을 들고 나섰다. 혹시라도 점심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곤란하다 싶어 그런 때 읽으려고 항상 휴대를 했다. 길을 걸어 가면서도 책을 읽었다. 평지는 말할 것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읽었다. 하도 연습을 해서 그런지 책과 계단을 보는 눈이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길이 잘만 보였다. 참으로 치열하다 싶었다.

 

언제가 책에 미친 바보(이덕무 산문선/미다스북스)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동생도 책을 좋아는 했지만 아직은 사랑하지는 않는 상태였다. 형이 드디어 미쳤는갑다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 때는 미친 듯이 책만 읽었다. 이덕무를 읽으면서 내가 곧 그가 된 듯 했다. 그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의 열악한 환경은 사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나의 스승으로 삼고 싶었다. 말없는 가르침을 주는 그런 훌륭한 스승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책을 읽은 시간과 장소를 기록해 둔다. 그래서 내 책을 살펴보면 책 읽은 데 들어간 시간을 계산해 낼 수 있다. 시작할 때와 마칠 때를 꼭 기록을 했으니깐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통계를 내고자 하면 얼마든지 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의 궤적을 그려낼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을 하는 동안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책을 읽던 시기에 내가 어떻게 활동했다는 것까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무슨 특별한 목적은 없다. 그냥 재미삼아 적는 것이다.   

 

언젠가 정말 1 1초라도 아끼고 싶어서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별도의 메모지에 하루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다행이 지금도 그 메모지를 보관하고 있는 게 있어서 옮겨적어 본다. 기록은 이렇게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좋다.

 

내게 손아래 처남이 둘이 있다. 아내는 2 3녀 중 장녀이고 나는 2 2녀 중 장남이니깐양쪽 집안 모두에서 내가 가장 손위 사람이다. ,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위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뭐 내가 무슨 일에서든 모범을 보이면 양가에 자동적으로 조금 영향을 줄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 큰 처남은 충주에 사는데 경찰 공무원이다. 처남댁도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하나 밖에 두지 못했다. 그런데 그 조카가 우리 아들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놀러 오는 편이었다. 혼자는 외롭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요즘도 한 두달에 한번은 놀러오고 있다.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전생에 혹시 연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를 듣는다.

 

자식은 최소한 두 명은 낳아야만 할 것 같다. 오냐오냐 받아주면서 키우다보면 아이의 성격도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외롭고 고독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교육비가 많이 든다고 하나만 딸랑 낳아 놓고 그만두는데 그것은 부모들의 짧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의지할 데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온통 세상을 혼자 짐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힘든 길이다. 조카는 버릇이 없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무척 외로워 하고 있는듯 했다. 그래서 형인 우리 아들을 더 따르는 것 같다.

 

메모지를 보니 처남과 조카가 놀러온 일요일이다. 처남이 조카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63빌딩에 놀러갔고, 나는 아내와 단 둘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독서에 혈안이 된 것처럼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 기록을 한번 옮겨 적어 보겠다. 물론 매일 이렇게 기록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이 날 하루 이렇게 철저하게 기록한 것 뿐이다.

 

<2005. 4. 3. (일) 처남 내외 다니러 오다>

 

06:08 ~ 06:22 : 사람은 늙지 않는다

06:22 ~ 07:37 : 세일즈 왕의 365

07:38 ~ 07:59 :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07:59 ~ 08:03 : 위 책에 느낌 정리

08:03 ~ 08:11 : 도서 느낌 정리 (조화로운 삶에)

08:11 ~ 08:15 : 화장실 및 휴식

08:15 ~ 08:54 : 조화로운 삶

08:54 ~ 09:27 : 도전 지구 탐험대

09:27 ~ 09:59 : 아침 식사중 내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읽기

10:00 ~ 10:22 : 몰입의 기술

xx:xx ~ 11:01 : 몰입의 기술

11:01 ~ 13:08 : 낮잠

13;35 ~ 14:10 : 점심 식사하면서 내 딸아 완독

14:10 ~ 14:24 : 독서일지 기록

14:24 ~ 14:28 : 식사하면서 읽을 책 선정어느 할아버지의 평범한 이야기선정

14:28 ~ 16:09 : 몰입의 기술

16:10 ~ 16:57 : 불멸의 순신 재방송 시청

16:57 ~ 17:13 : 휴식 (서울 63빌딩 갔던 처남 돌아옴)

17:13 ~ 17:31 : 조화로운 삶

17:32 ~ 17:50 : 아빠의 도전 시청

17:50 ~ 18:10 : 만두 먹기, 열린 음악회 시청

18:10 ~ 18:57 : 조화로운 삶

18:57 ~ 19:19 : 휴식 (평범한 독서계획 수립)

19:19 ~ 20:05 : 식사 후 독서

20:05 ~ 20:11 : 처남 배웅

20:11 ~ 20:15 : 독후감 쓸 준비

20:15 ~ 21:44 : 독후감 쓰기 내 딸아 인생을 너는 

21:44 ~ 21:51 : 조화로운 삶

21:51 ~ 22:38 : 불멸의 이순신 시청

22:38 ~ 22:46 : 화장실

22:46 ~ 22:52 : 이닦기

22:52 ~ 22:56 : 잠자리 정리 (가방 싸고)

22:56 ~ : 조화로운 삶

 

2005. 4. 4. () 03:55~

 

03:36 ~ 03:38 : 비몽 사몽

03:41 ~ 03:53 : 화장실에서 일보며, 사람은 늙지 않는다

03:55 ~ 03:56 : 시간 관리 기록

03:57 ~ 04:07 : 사람은 늙지 않는다 더 봄.

04:07 ~ 04:35 : 세일즈왕 365

04:35 ~ 04:49 : 세면

04:49 ~ 04:56 : 출근 준비

04:56 ~ 05:06 : 아침 식사

05:06 ~ 05:17 : 성대역 도착

05:19 ~ 05:30 : 무료신문

 

어떤가, 이 정도면 시간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간 기록을 이렇게나 철저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시간의 지배자 류비세프를 읽고 난 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자신이 돌아보아도 좀 억지스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기록을 해 두었다.

 

휴일의 하루였지만 책을 읽으려고 무척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특이할 만한 것은 그 와중에 낮잠도 좀 잤다는 것이고, 4번이나 TV도 시청했다는 것이다. 하긴 도전 지구탐험대와 불멸의 이순신은 내가 아주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다.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했다. 아직도 세계 곳곳의 오지에는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고 그들만의 조악한 문화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문명화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 오지의 미개인들의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고소한 일이다.

 

일요일 하루의 삶이 아주 적나라하게 잘 드러나 있었다. 어찌 세면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지 이상하다. 빼먹은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모르겠다. 매일 뺀지르르 하게 차리고 다니다보니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고 하루동안만이라도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8시 11에서 15분 사이 화장실 및 휴식이라고 한걸 보니 도저히 그 짧은 시간에 세수를 했을리 만무하다. 아무래도 건너뛰었던게 아닌가 싶다. ^^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요즘은 식사중에 읽는 책은 읽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느슨해졌다기 보다 식사중에 가족과 대화를 하는 게 낫겠다싶어서 그만 두었다. 식사중에 책을 읽었던 것은 학창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TV 드라마에 보면 고등학생들이 밥먹으면서 책을 열심히 읽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 못해서 뒤늦게라도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렇게 옛기록을 옮겨적다보니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역시 이래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자기 반성과 정화의 시간이 되나보다. 요사이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말 다시 한번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하면서 시간의 지배자 류비세프를 따라잡아 볼까 싶다.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려면 11초라도 아껴서 써야하지 하지 않을까.

 

나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그냥 처박아 두는 것 같다. 주는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는 것인데 성의를 보아서라도 읽으면 좋을 텐데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았으니 책을 선물 받더라도 읽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남의 얘기해서 뭣하겠는가. 나도 아직 선물받은 책을 읽지 못한 게 있다. 우선 순위에 밀려서 못 읽고 있는데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선물인 만큼 읽고 리뷰도 올려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읽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와 똑 같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류비세프는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책을 몇권이나 썼고, 논문을 몇편이나 썼고, 편지를 몇통이나 썼다고 한다. 그게 다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가능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나는 정말 그를 본받고 싶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만 핑계를 대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책읽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책읽는 시간을 더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인생이 풍요로워질테니깐 말이다. 하루에 15분씩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책 읽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하루 15분의 독서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독서 지금 당장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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