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읽는 휴일의 하루 

  

 




 

 

정말 열심히 책을 읽던 때가 있었다. 한시도 책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읽었다. 휴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열심히 읽었다.

 

점심 때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책을 들고 나섰다. 혹시라도 점심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곤란하다 싶어 그런 때 읽으려고 항상 휴대를 했다. 길을 걸어 가면서도 책을 읽었다. 평지는 말할 것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읽었다. 하도 연습을 해서 그런지 책과 계단을 보는 눈이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길이 잘만 보였다. 참으로 치열하다 싶었다.

 

언제가 책에 미친 바보(이덕무 산문선/미다스북스)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동생도 책을 좋아는 했지만 아직은 사랑하지는 않는 상태였다. 형이 드디어 미쳤는갑다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 때는 미친 듯이 책만 읽었다. 이덕무를 읽으면서 내가 곧 그가 된 듯 했다. 그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의 열악한 환경은 사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나의 스승으로 삼고 싶었다. 말없는 가르침을 주는 그런 훌륭한 스승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책을 읽은 시간과 장소를 기록해 둔다. 그래서 내 책을 살펴보면 책 읽은 데 들어간 시간을 계산해 낼 수 있다. 시작할 때와 마칠 때를 꼭 기록을 했으니깐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통계를 내고자 하면 얼마든지 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의 궤적을 그려낼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을 하는 동안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책을 읽던 시기에 내가 어떻게 활동했다는 것까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무슨 특별한 목적은 없다. 그냥 재미삼아 적는 것이다.   

 

언젠가 정말 1 1초라도 아끼고 싶어서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별도의 메모지에 하루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다행이 지금도 그 메모지를 보관하고 있는 게 있어서 옮겨적어 본다. 기록은 이렇게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좋다.

 

내게 손아래 처남이 둘이 있다. 아내는 2 3녀 중 장녀이고 나는 2 2녀 중 장남이니깐양쪽 집안 모두에서 내가 가장 손위 사람이다. ,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위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뭐 내가 무슨 일에서든 모범을 보이면 양가에 자동적으로 조금 영향을 줄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 큰 처남은 충주에 사는데 경찰 공무원이다. 처남댁도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하나 밖에 두지 못했다. 그런데 그 조카가 우리 아들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놀러 오는 편이었다. 혼자는 외롭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요즘도 한 두달에 한번은 놀러오고 있다.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전생에 혹시 연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를 듣는다.

 

자식은 최소한 두 명은 낳아야만 할 것 같다. 오냐오냐 받아주면서 키우다보면 아이의 성격도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외롭고 고독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교육비가 많이 든다고 하나만 딸랑 낳아 놓고 그만두는데 그것은 부모들의 짧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의지할 데가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온통 세상을 혼자 짐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힘든 길이다. 조카는 버릇이 없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무척 외로워 하고 있는듯 했다. 그래서 형인 우리 아들을 더 따르는 것 같다.

 

메모지를 보니 처남과 조카가 놀러온 일요일이다. 처남이 조카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63빌딩에 놀러갔고, 나는 아내와 단 둘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독서에 혈안이 된 것처럼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 기록을 한번 옮겨 적어 보겠다. 물론 매일 이렇게 기록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이 날 하루 이렇게 철저하게 기록한 것 뿐이다.

 

<2005. 4. 3. (일) 처남 내외 다니러 오다>

 

06:08 ~ 06:22 : 사람은 늙지 않는다

06:22 ~ 07:37 : 세일즈 왕의 365

07:38 ~ 07:59 :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07:59 ~ 08:03 : 위 책에 느낌 정리

08:03 ~ 08:11 : 도서 느낌 정리 (조화로운 삶에)

08:11 ~ 08:15 : 화장실 및 휴식

08:15 ~ 08:54 : 조화로운 삶

08:54 ~ 09:27 : 도전 지구 탐험대

09:27 ~ 09:59 : 아침 식사중 내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읽기

10:00 ~ 10:22 : 몰입의 기술

xx:xx ~ 11:01 : 몰입의 기술

11:01 ~ 13:08 : 낮잠

13;35 ~ 14:10 : 점심 식사하면서 내 딸아 완독

14:10 ~ 14:24 : 독서일지 기록

14:24 ~ 14:28 : 식사하면서 읽을 책 선정어느 할아버지의 평범한 이야기선정

14:28 ~ 16:09 : 몰입의 기술

16:10 ~ 16:57 : 불멸의 순신 재방송 시청

16:57 ~ 17:13 : 휴식 (서울 63빌딩 갔던 처남 돌아옴)

17:13 ~ 17:31 : 조화로운 삶

17:32 ~ 17:50 : 아빠의 도전 시청

17:50 ~ 18:10 : 만두 먹기, 열린 음악회 시청

18:10 ~ 18:57 : 조화로운 삶

18:57 ~ 19:19 : 휴식 (평범한 독서계획 수립)

19:19 ~ 20:05 : 식사 후 독서

20:05 ~ 20:11 : 처남 배웅

20:11 ~ 20:15 : 독후감 쓸 준비

20:15 ~ 21:44 : 독후감 쓰기 내 딸아 인생을 너는 

21:44 ~ 21:51 : 조화로운 삶

21:51 ~ 22:38 : 불멸의 이순신 시청

22:38 ~ 22:46 : 화장실

22:46 ~ 22:52 : 이닦기

22:52 ~ 22:56 : 잠자리 정리 (가방 싸고)

22:56 ~ : 조화로운 삶

 

2005. 4. 4. () 03:55~

 

03:36 ~ 03:38 : 비몽 사몽

03:41 ~ 03:53 : 화장실에서 일보며, 사람은 늙지 않는다

03:55 ~ 03:56 : 시간 관리 기록

03:57 ~ 04:07 : 사람은 늙지 않는다 더 봄.

04:07 ~ 04:35 : 세일즈왕 365

04:35 ~ 04:49 : 세면

04:49 ~ 04:56 : 출근 준비

04:56 ~ 05:06 : 아침 식사

05:06 ~ 05:17 : 성대역 도착

05:19 ~ 05:30 : 무료신문

 

어떤가, 이 정도면 시간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간 기록을 이렇게나 철저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시간의 지배자 류비세프를 읽고 난 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자신이 돌아보아도 좀 억지스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기록을 해 두었다.

 

휴일의 하루였지만 책을 읽으려고 무척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특이할 만한 것은 그 와중에 낮잠도 좀 잤다는 것이고, 4번이나 TV도 시청했다는 것이다. 하긴 도전 지구탐험대와 불멸의 이순신은 내가 아주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다.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했다. 아직도 세계 곳곳의 오지에는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고 그들만의 조악한 문화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문명화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가 아니라 그들 오지의 미개인들의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고소한 일이다.

 

일요일 하루의 삶이 아주 적나라하게 잘 드러나 있었다. 어찌 세면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지 이상하다. 빼먹은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모르겠다. 매일 뺀지르르 하게 차리고 다니다보니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고 하루동안만이라도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8시 11에서 15분 사이 화장실 및 휴식이라고 한걸 보니 도저히 그 짧은 시간에 세수를 했을리 만무하다. 아무래도 건너뛰었던게 아닌가 싶다. ^^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요즘은 식사중에 읽는 책은 읽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느슨해졌다기 보다 식사중에 가족과 대화를 하는 게 낫겠다싶어서 그만 두었다. 식사중에 책을 읽었던 것은 학창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TV 드라마에 보면 고등학생들이 밥먹으면서 책을 열심히 읽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 못해서 뒤늦게라도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렇게 옛기록을 옮겨적다보니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역시 이래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자기 반성과 정화의 시간이 되나보다. 요사이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말 다시 한번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하면서 시간의 지배자 류비세프를 따라잡아 볼까 싶다.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려면 11초라도 아껴서 써야하지 하지 않을까.

 

나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그냥 처박아 두는 것 같다. 주는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는 것인데 성의를 보아서라도 읽으면 좋을 텐데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았으니 책을 선물 받더라도 읽지 못하는 것 같다. 하긴 남의 얘기해서 뭣하겠는가. 나도 아직 선물받은 책을 읽지 못한 게 있다. 우선 순위에 밀려서 못 읽고 있는데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선물인 만큼 읽고 리뷰도 올려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읽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와 똑 같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류비세프는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책을 몇권이나 썼고, 논문을 몇편이나 썼고, 편지를 몇통이나 썼다고 한다. 그게 다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가능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나는 정말 그를 본받고 싶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만 핑계를 대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책읽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책읽는 시간을 더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인생이 풍요로워질테니깐 말이다. 하루에 15분씩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책 읽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하루 15분의 독서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독서 지금 당장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