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하면서 책을 읽다
모든 것엔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패션이 그렇고, 머리 스타일이 그렇다. 유행이라는 것이 모방심리에 그 근저를 두고 있다면, 좋게 말하면 본받기고 험한 말로 하면 따라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유행이 도서계에도 부는 것 같다. 웰빙이다, 행복이다 해서 한번씩 큰 바람이 불고 지나간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황량함만이 남아 춤춘다. 언제 어느 때고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하게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책이 그리워 지는 법이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떤 것이 유행인지 금세 눈에 띄게 마련이다. 몇 년 전에는 새벽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전철 안이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행을 따라서 책을 읽지 않았기에 그 책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헌책으로 사 두어서 집에도 책이 있다.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나는 이미 그 때 새벽 같이 일어나서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6시 25분경 사무실에 도착하여 책도 읽으면서 새벽형 인간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지지 않았다고 했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것도, 책을 읽는 것도 서서히 변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살다 보니 조금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새벽형 인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그냥 남들처럼 정시에 출근하곤 했다. 그런데 사업을 정리하고 ING생명보험㈜에 입사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하면서 다짐한 게 딱 2가지가 있었다. 절대 자리에 앉아서 졸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고, 출.퇴근 시간에 꼭 책을 읽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오래 전에 서울 여의도에 있는 첫 직장에 출근하면서 007 가방을 하나 장만을 했다. 그 때는 무슨 이유에선지 밤색을 좋아해서 밤색 가방을 구입했다. 그 가방 속에 외국어 책과 우산 딱 2가지를 넣어가지고 다녔다. 첫 출근하는 날도 기억이 난다. 수원에서 전철을 타기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방에서 일본어 책을 꺼내서 공부를 하면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그 날 부로 안양 공장 경리과로 내려왔다. 해외영업부서를 지원했는데 경리과로 발령을 받아 참 서운했었다. 공장으로 출근을 했지만 저녁 6시만 되면 땡하고 칼 퇴근을 하고 서울 강남구청 근처에 있는 중국어 학원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6개월 후에는 다시 본사로 발령을 받아 몇 년 동안 서울로 전철을 타고 출.퇴근 했다.
처음 1~ 2년 동안에는 전철을 타고 다니며 꼭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고 잠을 자거나 했다. 이해가 안 갔다. 그 소중한 시간에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내게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한동안 일이 바빠서였을까 막차를 타고 퇴근을 했는데, 퇴근을 늦게 해서 잠을 얼마 못 자 피곤해서였을까,출근할 때 자리에 앉아서 졸고 말았다. 곤하게 자다 보니 금방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새 자리에 앉기만 하면 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전철에서 졸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졸다보니 서울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각역까지 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이 서대문근처에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사무실까지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철에서 졸다보면 스타일도 많이 구겨진다. 침을 질질 흘리며 자는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었겠는가. 날씨가 더울 때는 유난히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잠을 자다보면 땀이 많이 난다. 상의가 흥건하게 젖을 때도 있다. 땀에 차서 깨보면 기분이 아주 찝찝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졸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쳐 들었다가도 금방 골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면 버릇의 힘이 대단하다는 느끼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다가 안산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나의 전철 출.퇴근 시대가 끝나게 되었지만 이 때의 경험은 쓰라린 것이었다.
2000년 8월부터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한가지 결심을 한 것이 있는데 출.퇴근시간에 꼭 책을 읽고, 자리에 앉더라도 절대 졸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3~4시간 밖에 자지 않고 1년 이상을 다녔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졸지는 않았다. 겨울에 따듯한 히터가 나올 때 자리에 앉게 되면 저절로 졸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잠이 부족하여 안 그래도 졸린 상황에 따뜻한 열기가 온 몸을 감싸면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졸리다. 그래도 나는 뺨을 꼬집어 가면서 졸지 않고 책을 읽으려 기를 썼다. 그러다가 정 참지 못할 것 같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주로 전철 구석진 자리에 기대어 서서 책을 읽는다~!>
내가 이렇게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 졸지 않기로 크게 결심한 것은 버릇이라는 것이 한번 들이기는 쉽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과 같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전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굳게 결심을 해서였을까 오늘날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너무나 쉬운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법이다. 지금껏은 잘 해 왔겠지만 어느 순간 한번 비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도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조심조심하고 있다. 하긴 이제는 책 읽는 습관이 강하게 들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책 좀 덜 사고, 덜 읽자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그게 안되니 답답할 때도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헌책방을 그냥 지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모든 것이 서서히 이뤄지게 되었다고 했나. 그랬다.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게 된 것도 서서히 변해온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출.퇴근 시간에만 빼먹지 말고 책을 읽자고 결심을 했던 것인데, 오늘날은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게 된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더 심할 때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는다. 책만 읽는 바보가 틀림없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게 서서히 너무나 서서히 변해서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열심히 읽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일주일에 최소한 1권씩을 읽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두꺼운 책을 읽을 경우에는 1주일에 한권을 못 읽는 경우도 생겼는데, 1주일에 1권을 읽자고 결심을 하게 되면서는 다른 시간에도 짬을 내서 읽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1년에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 정도 책이라면 왕복 2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출근할 땐 선릉역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8시 30분까지 출근을 했다. 성균관대역에서 7시 15분 정도에 타면 충분하게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출근을 하면 전철 안은 완전히 콩나물 시루와 같아서 책을 보기는커녕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몇 번을 그 시간대에 출근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출근 시간을 당겼다. 6시 11분 전철을 타기로 결심을 했다. 약 1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일찍 출근을 하니 자리에 앉을 수도 있거니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 늘 6시 11분경 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5시경에는 일어나야 했을 것 같다.
참 재미난 것이 다음에는 화장실에 변화가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일찍 일어나려니 머리가 많이 무겁기도 했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일을 보게 되었다. 그게 못 마땅했다. 고개를 흔들면서 잠을 쫓아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을 한번 들고 들어가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려면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 하니깐 잠에서 빨리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부담 없는 책으로 읽자고 해서 소설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소설책을 읽지 못하니깐 소설책을 읽기로 했다. 화장실에서는 소설 책을 읽기도 했고, 들고 다니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책을 보면 변비가 되느니 뭐니 해도 나는 괘념치 않고 변함없이 화장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10분 정도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 지금껏 20여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충분히 아낄만하지 않는가.
요즘엔 화장실에서 읽는 책을 건강에 관한 책으로 정해서 읽고 있다. 벌써 20여권의 책을 읽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읽는다면 건강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격이 아닌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정신이 말똥말똥해 진다. 게다가 책도 읽고, 건강에 관한 지식도 챙기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화장실에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그냥 들어갈 수가 없다.
그 뒤로 독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하루 15분씩만 책을 읽으면 1달에 한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 나왔다. “사실 하루에 15분씩 읽는다면 한 달에 책 1권, 1년에는 12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51p/독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버크헤지스/나라) “10년 후엔 120권이 더해지게 되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에 15분의 시간을 냄으로써 10년 동안 120권을 읽을 수 있고, 이는 여러분 인생의 모든 부분을 더 풍요롭게 만들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루에 15분에서 30분으로 독서시간을 두 배로 늘리면 1년 25권 그리고 10년 후엔 250권을 읽게 됩니다. 접시 닦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 이런 종류의 수익을 어디서 또 얻을 수 있겠습니까?” (52p)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직접 확인을 해 보았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읽었던 책들의 시간을 기록해서 평균을 내 보았다. 그러자 저자의 계산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나도 15분씩 책 읽는 시간을 늘려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서서히 책 읽을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잠자기 전에 읽는 책, 식사하면서 읽는 책, 휴일에 읽는 책, 사무실에서 읽는 책, 사무실에서 한 챕터씩 읽는 책, 그리고 휴일에 읽는 책, 새벽에 읽는 책까지 시간대를 많이 만들어 나갔다. 그러자 월 평균 10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한달에 10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은 다독가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들은 1년에 15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특이한 분은 1년에 1,000권을 목표로 책을 읽기도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 것은 일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서 읽었다는데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잠을 줄이면서 책을 읽었고, 화장실에서나 혹은 식사를 하면서 잠깐의 시간을 아껴서 읽었기 때문에 참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나태해져서 그만큼 책을 많이 읽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한 달에 7~8권의 책은 무난히 읽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요즘 고민을 하고 있다. 책을 어떻게 하면 좀 줄여서 읽을까 하고 말이다. 하는 일이 고객을 만나는 일이라 자주 이동을 하게 된다. 주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동시간에도 책을 읽는다. 그렇다 보면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무료하지가 않다. 책 읽는 사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금방 도착하게 된다. 혹 약속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면 시간이 아깝지도 않고, 또 무료하지도 않으니까 좋다. 그래서 낮에 전철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게 된다. 그런데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것도 좀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일에 온통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 일인데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여 책을 그만 읽자고 다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책을 놓는 일이 쉽지가 않다. 습관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책방에 들리는 일도 그렇다. 손님을 만나 상담을 마치게 되면 근처에 있는 헌책방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다. 심지어 헌책방에서 동생을 만나기도 한다. 동생도 책 사냥꾼이다. 같은 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동생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자주 헌책방을 간다. 그래서 어쩌다 헌책방에서 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어찌나 반가운지 모를 일이다. 헌책방은 주로 전철역에 있는 헌책방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전철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있는 헌책방 코너를 이용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성장하면서 점포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헌책방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우리 형제에겐 참 좋은 일이었다. 처음이라 이용하는 손님들도 많지 않았는데다가 비교적 깨끗한 신간을 무척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2~3천원이면 새책과 다름없는 책들을 살 수 있었으니 신났었다. 좋은 책들을 사 들고 들어오면 무슨 책을 샀는지 서로 자랑 삼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책이 잘 나갔는지 점차 높은 가격을 메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가격으로 팔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 광화문점의 모습>
전철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이나 아름다운 가게에 자주 가는 이유가 있다. 책들이 많지 않아 짧은 시간 내에 있는 책 모두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좋은 책을 고를 수가 있었다. 전통적인 헌책방이 천천히 책구경을 하면서 보물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들 헌책방에서는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듯 신속하게 책구경을 완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루의 일과를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헌책방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도 보고 헌책방에도 들려 좋은 책 한권을 구하면 뿌듯하기 그지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헌책방을 다니다 보니 우리가 볼만한 책들은 많이 구입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구입한 책들이 또 헌책방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새책들은 선물용으로 또 구입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형제는 고객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했는데 새책으로 선물을 하려면 부담도 만만치 않았는데 헌책을 싸게 사서 말끔하게 닦아서 선물하면 새책처럼 깨끗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지인이나 고객분들께 선물하려고 헌책을 구입하다 보니 이제 헌책방에 들리는 것은 하나의 일과처럼 되었다. 나의 경우는 점차 어떤 순례의식을 갖게 되었고, 지나는 헌책방마다 꼭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헌책 한 권은 사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스타일이 좀 다르다. 깨끗한 것을 중요시 하는 동생이 가격표를 꼭 떼고 책을 깨긋하게 닦아 두는 쪽이라면, 역사성을 중시하는 나는 가격표를 그냥 둔다. 선물을 할 때만 가격표를 떼거나 한다. 이렇게 헌책을 자주 사다 보니 처치가 곤란하다. 책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아내는 책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집이 작아 책을 둘만한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책 사는 분량도 적지 않은데 적은 돈으로 많은 헌책을 사다 보니 점점 집으로 책을 가져가기가 눈치가 보였다. 슬금슬금 알지 못하게 한권 두권 집에다 가져다 두었다. 그러다 보니 책상 위에도 수북하게 책이 쌓이기 시작했고, 책상 밑에도 점점 더 많은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집에 대한 욕심도, 잘 살고 싶은 욕심도 없지만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집으로 가져 가지 못하는 책은 사무실에 보관해 둔다. 어느 사이 사무실에도 책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눈치가 보인다. 그러면 집으로 한권 두권 가져다 놓을 수 밖에 없다. 동생의 경우는 제수씨가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 조금더 개방적인 편이다. 얼마 전부터 책을 읽고는 감명을 많이 받아서 책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책 사오는 것은 환영하는 것 같았다. 몇 달에 한번씩 자리를 이동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동생네는 차를 끌고 와서 한번에 가져가기도 한다. 집안에 협조자가 있다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난다. 요즘 들어 나도 조금더 아내의 인정을 받아서인지 눈치를 많이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은데 자꾸 끌고 들어가게 되니 내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책을 그만 사자고도 다짐을 하게 되고, 헌책방에 그만 가자고도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마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새책을 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책을 사게 되는 것을 지름신이 왕림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후회를 하게 되지만 또 어느새 지름신은 강림하게 된다. 아무튼 습관이 한번 들면 끊기가 힘들다.
<공부방 서가에도, TV방 서가에도 책이 꽉 차서...>
<탁자 위에 수북히 쌓여가는 책들>
그래서 헌책방에도 좀 덜 가야겠다고 결심은 하게 된다. 비록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언제나 이 순례의식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삶은 책을 사고, 읽고 또 독후감을 쓰고 하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일하는 시간 빼고는 모두 책과 관련된 삶이었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전철을 타고 일을 하러 다니면서 책을 읽고, 전철역 근처의 헌책방에서 책 사는 삶이 순환하는 전철마냥 연속되고 있었다. 마치 괘도를 돌아가는 일처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책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심지어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불쑥 말을 걸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고 대화에 응해주셨다. 책을 본다는 동질감 때문이었겠지만 참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변함없이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일을 하고 또 책을 읽을 것이다. 또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걸기도 하고 눈인사라도 나누게 될 것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말이다.
회사 독서광 인터뷰 때, 누가 회사가 있는 청담역 근처에 아파트를 준다고 해도 거절하겠다고 말했었지만 그건 내 진심이다. 사람이 편해지면 게을러지고 게으르다 보면 책도 읽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기에 나는 직장 출.퇴근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집을 수원에서 서울로 옮길 생각이 전혀 없다. 정말 누가 집을 거저 준다고 해도 사양할 것이다. 지금껏 7년 정도의 세월을 꾸준하게 책을 읽으며 살았다. 내가 읽은 책이 약 500권은 될 것이다. 앞으로 14년 정도 꾸준하게 책을 더 읽는다면 무려 1,000권의 책은 읽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 그것을 한 채의 아파트와 바꿀 수가 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가 무한한데,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듯 나는 전철에서 책 읽으며 사는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만족스럽다.
누가 나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벗하면 사는 삶의 즐겁고 행복함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오, 책 나의 벗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