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에 담는 자식 사랑 이야기

 

 

가난한 내가 요즈음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책뿐이다. 나중에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책만 물려주고 싶다. 내가 읽었던 책. 내가 밑줄 치며 읽었던 모든 책을 전부 물려주고 싶다. 나의 삶, 나의 족적, 나의 배움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유산으로 책을 물려주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책 때문에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절대 어느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도록 유언을 남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기를 때, 아이들의 아이들도 내가 남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걸어갈 인생길의 안내서로 삼길 바라고 싶다. 내가 죽은 뒤의 일이 내 생각대로 되겠는가 만은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도 자를 대고 깨끗하게 밑줄을 치는 것은 시간도 걸릴 뿐만 아니라 책 읽는 것도 훨씬 더딘데도 모든 책을 읽을 때 그렇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좀 괴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하여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왜 밑줄 긋는데 혈안이 되었을까?

 

벌써 오래 전에 여동생에게 책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돌려주면서 동생이 하는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오빠가 밑줄 친 부분을 읽으면서 다음에 밑줄 친 부분이 궁금해서 책을 빨리 읽게 되었으며, 재미나게 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바로 이것이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사랑을 했다는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 속에 밑줄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왕에 밑줄을 칠 것이라면 바른 마음을 갖도록 깨끗하게 밑줄을 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자를 사서 자를 대고 밑줄을 치면 읽었던 것이다.

 

벌써 몇 년 동안 이렇게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주로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읽는데 흔들리는 전철에서 똑바르게 밑줄을 치면 글을 읽는 것은 가득 채운 물잔을 나르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어렵지 않다. 전철의 리듬까지 맞춰서 밑줄을 칠 수 있는 경지에 달하게 되었다. 거의 흔들림 없이 똑 바르게 밑줄을 치게 되었다.

 



 

처음에 의도가 이런 것이었으나 이제 그 뜻은 전설처럼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그 이유를 글로 남겨 명백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라 여겨질 것이다. 사실 이제는 그런 정신은 체득이 되어서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일처럼. 요즈음은 다른 의미 하나를 덧붙이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유별나게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다면 도대체 저렇게까지 독서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독서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정성을 들여서 밑줄을 치고 있다.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가 물려준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한다면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일 게다. 비록 내가 죽어 이승에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책이 몇천 권이나 된다면 아이들은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먹으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또 그 내리 사랑은 아이들에게, 또 그 후손들에게 면면히 흐르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다른 아무런 유산을 남겨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아빠의 최고의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뒤늦게 발견한 한 장의 편지에서 쌓였던 원망과 분노가 용광로 앞에서 얼음이 녹아 내리듯 완전히 녹아내리게 할 수 있다면 그 편지는 보석이나 엄청난 재산보다도 가치가 있을 것이리라. 며칠 전 우연히 사진첩을 갖고 놀던 큰 아이에게 옛날에 써 놓았던 편지를 읽어주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썼던 글인데 사진첩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편지 글을 읽어주니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잘은 몰라서 감격하지는 못했겠지만 더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읽어본다면 감동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언제 이런 용광로 같은 사랑의 편지를 준비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이 편지처럼 밑줄도 아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빠가 예지에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 예지 너는 아빠의 공부방에 와 놀아달라고 아빠를 조르고 있었단다.

 

예지야!

 

아빠는 예지를 무척이나 사랑한단다.

먼 훗날 네가 아빠를 미워할 때가 있거든 이 글을 읽어보아라.

 

아빠는 지금 고민 중에 있단다.

우리 예지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예지가 성인이 되어 멋있고 그리고 떳떳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우선은 아빠의 소망을 담은 이름처럼 예쁘고 (외모만을 일컫는 것은 아님) 지혜롭게 커줬음 하는 바램이다. 외양의 아름다움(예쁨)은 순간적이고 이내 사그라지는 것이라면 내면의 아름다움은 주위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도는 더욱 깊어만 가는 것이니 후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것이겠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사람이라는 동물은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이건만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마음은 쉽게 다스려지지만은 않는 것이라, 그 마음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고 욕을 자초하는 것이니 무릇 모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능히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한다. 인생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경륜해 나간다면 남 보기에도 아름답다 할 것이다. 순간순간의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그리고 그 결과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생을 영위한다 할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 지혜롭게 사는 길은 어떻게 해서 갈 수 있는 것인가?

예쁘게만 보이고 속이 비어 있는 우매한 사람처럼 불쌍한 노릇은 없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으려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보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할 것인데, 이러한 능력은 마음이 아닌 이성으로 냉철한 사유를 한다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사람이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주위의 사람들을 능히 이끌 수 있어 저절로 뛰어나리라.

 

조금은 어려운 얘기를 했던 것 같으나, 아빠는 예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예지로 키우기 위해 지혜롭게 살아가련다.

 

아빠는 예지가 태어나면서 우리 예지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까 하고도 고민하였는데, 너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남겨줄 수 있는 (아빠의 마음을 실어) 사진첩을 남겨주고자 결정하였단다. 아울러 네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었던 역사를 남겨주기 위하여 취미우표도 모아보기로 하였단다. 이 속에서는 한국, 나아가 세계의 역사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빠 선욱이 예지에게                        1995. 1. 21. 23시 10

 

우리는 조급한 사랑을 한다. 아니 말뿐인 사랑을 할 뿐이다. 아이를 정성으로 키우면서 마음으로 가르치면서 나는 사랑은 무척이나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자기 희생과 인내와 무한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외치기보다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안내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랑이야말로 아이들을 활짝 꽃피어나게 할 테니깐 말이다. 아이들아,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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