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작년 교과실 식구들끼리 모여 송년회를 했다.
같은 곳에서 자리도 안 옮기고 다섯시간을 앉아서 떠들었는데도 일어서려니 아쉽다.
술 안먹고 5시간 수다떨기는 아마 남자들은 잘 못하는 일일 것이다.(아닌가?)
상담을 전공한 선배도 있어 이야기의 흐름은 주로 그런 내용이었다.
얘기 중간에 '10명이 모이면 그 중 한 명은 정신과 진료를 요하는 사람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열명 중에 한명이면 10%이다.
그럴 리가,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내가 지금까지 세 학교를 돌았는데
한 학교에 한 명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아니 누가 봐도 지금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교사가 있었다.
그렇게 눈에 딱 띄는 사람이야 증상이 겉으로 확실히 드러나는 사람들이니 금방 알 수 있지만
(그 증상은......참, 그딴 교사를 애들 가르치게 내버려두다니 다들 제정신들이냐, 라는 질책을 여기서 받을 것 같아 차마 말하기가 두렵다ㅠ.ㅠ)
그렇지 않고 우울증 같은 걸 속으로 앓고 있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 경우를 생각해 봐도,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 정신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그게 보인다.
학교 뿐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꼭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어도 상담 정도는 받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방법을 바꾸어야 할 사람이 어찌 10% 뿐일까? 어쩌면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어제도 그 모임의 한 후배가 자신의 가정사를 얘기하고 조언을 구하는데
엄마 - 아빠 돌아가시고 얼마 안 남은 유산을 대책도 없이 자식들에게 퍼주고 아들 손자를 봐주고 계시다. 본인은 몸에 마비가 올 지경으로 아프신데 며느리 일 나가고 놀고 있는 아들이 손자를 제대로 보지 않으니 꾀죄죄한 손자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
오빠 - 3년째 놀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에 빠져 지낸다.
여동생 - 이혼하고 유학갔는데 거기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 하고 있다. 집에 돈도 없는데 남자집 형편에 맞춰 혼수를 해가려고 엄마 등골을 빼먹고 있다. 공부는 이미 포기했다.
후배 왈,
엄마에게는, 엄마 언제 반신불수 될 지 모른다. 엄마가 건강한 게 우리한테 잘해주는 거다. 애 봐주지 마라, 고 얘기했으나 엄마는 내 앞에서만 응,응 할 뿐 도로 오빠네로 가신다.
오빠에게는, 내가 오빠라면 벽돌을 져날라서라도 가족을 부양할 텐데 무책임하게 그렇게 사냐, 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는 얼굴 못보고 의절할 것 같아 못하고 있다.
여동생이랑은, 지금도 말도 안하고 있다. 초혼 때도 몇천만원 혼수를 해줬는데 한달만에 보따리 싸면서 몸만 빠져나왔고, 지금 엄마가 집도 못 살 형편인데도 예단 몇천만원에, 결혼식 비용에 차 살 돈까지 얻어내고 있다. 최소비용으로 하라고 간곡하게 얘기해도 아무 소용없다. 이제 내가 얘랑 인연을 끊을 것 같아 두렵다.
후배가 내리는 해결책이 다 맞다. 엄마는 애 봐주지 말고 쉬셔야 하고, 오빠는 단순노동이라도 해서 가족부양을 하든지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든지 해야 하며 여동생은 결혼식은 무슨,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게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는 것이 내가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사람은, 제3자가 보면 눈에 훤히 보이는 바른 길이
자기 눈에는 전혀 안 보일 수도 있고
엉뚱한 길을 정도로 착각하는 수가 많으며
알면서도 자기를 일으켜 세울 힘이 없어 그 길을 못 나서기도 한다.
그럴때 그나마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주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제 그것에 대해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