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설계자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종족
클라이브 톰슨 지음, 김의석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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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업에 일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 좀 더 힘을 냈으면 아마 지금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크다. 먼저 시작했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결국 주저앉았다. 왜 그랬을까. 가장 큰 요인은 프로그래밍이다. 어떻게 설계를 해야 할지 몰랐다. 돈도 있고 시스템도 충분했지만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다. 디테일한 구조 설계가 되지 않으니 하드웨어 장비 구입으로 대신하려고 했다. 돈은 들어가지만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밤새 일해도 신나는 것은 생각한 대로 그 결과가 나와줄 때다. 힘이 드는 것은 아무리 해도 답이 보이지 않을 때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혹할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게 기획자가 하는 일이다. 어떤 아이템으로 가입을 유도하고 머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일단 온 다음에는 여러 요소들을 배치해서 머물게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이용자가 한 일을 모니터링하는 게 프로그래머의 일이다. 액션과 반응을 체크하고 구조를 좀 더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획을 하면서 옆에서 바로 수정, 적용시켜줬던 프로그래머가 생각이 난다. 집에 들어가는 일도 없이 거의 밤을 새우면서도 요구하는 것들을 바로 반영해 줬다. 말로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서비스에 반영이 되어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의 반응을 얻었다. 프로그래머가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다 알고 하는 걸까. 기계언어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아야 기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아닌다.

<은밀한 설계자들>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책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 놓고 있는지 깨우쳐 준다.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해서 알파고까지 다양한 플랫폼이 소설처럼 눈길을 빨아들인다. 책이 두꺼워 언제나 다 읽지 싶었다. 저자의 방대한 취재와 글쓰기 덕분에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한 줄의 언어로 세상을 바꾸는 기반을 만드는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프로그래머는 오늘날 지구상에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류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만큼, 프로그래머는 세상을 만든 건축가라 할 수 있다."-25쪽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이뤄졌으며 해커에 대한 이야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 등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프로그래머들의 특성에 대한 언급은 눈길을 끈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프로그래머들은 그들만의 사고방식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나와 이야기했던 몇몇 프로그래머들은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취하려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170쪽

초반부에 저자가 언급한 넷스케이프에 대한 것도 공감한다. 웹브라우저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 넷스케이프는 없다. 왜 그랬을까. 왜 거기까지 밖에 가지 못한 걸까.

이 책의 미덕은 깊이다. 세밀한 이야기들이 좋다. 한계는 실리콘 밸리 중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국가의 특이한 개발자들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번에는 그런 내용으로 다뤘으면 한다.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물론 개발자들이 읽으면 좋겠지만 개발자들의 세상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는 게 더 좋다.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살고 싶은 꿈을 키우는 청년들이 보면 어떨까. 개발하느라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독특한 종족이니까.

이제 우리나라도 소프트웨어 교육을 본격화하려고 한다. 학교 과목에도 넣고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도 이미 시키고 있는 부모들도 있다. 꼭 뭔가를 개발하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결국 생각의 흐름을 구조화하는 것이 아닌가. 프로그래밍은 다른 일에도 삶에도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는 종족에 대한 탐구 보고서다. 갇혀 있는 생각에서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고를 해야 할까. 그들만의 사고방식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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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티드 - 당신이 누른 ‘좋아요’는 어떻게 당신을 조종하는가
브리태니 카이저 지음, 고영태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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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나온 프로그램을 봤다. 2019년에 나온 거대한 해킹이라는 다큐멘터리다. 브래태니 카이저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일했던 곳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와 벌인 법정 진실 다툼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찍었을까 싶었다.

내부고발자로 자신의 한 일과 회사가 한 일을 세상에 공개한 저자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그 후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 책 타겟티드는 바로 그때 다룬 영화의 텍스트 버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페이스북을 계속하는 게 맞을지.

매일매일 쓰는 SNS는 우리의 행동과 성격을 그대로 파악한다. 거기까지는 뭐 괜찮다. 그런데 이게 특정 목적으로 다른 곳과 공유를 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그것도 이용자의 뚜렷하고 명확한 동의 없이 이뤄진 것이라면 어떨까.

"데이터베이스에서 끌어낸 진정한 가치가 바로 이런 광고와 메시지에 있었고, 이를 통해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미세한 타겟 광고가 가능해졌다. 즉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데이터 과학자들은 유권자를 비슷한 사람들끼리 세밀하고 분류했고, 그 개별 집단에 맞춰 수많은 다양한 광고를 만들었다. 기본 콘셉트가 동일한 수백 또는 수천 개 버전의 광고들이 개개인에게 전송되어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251쪽

이 책은 진정한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데이터 싸움을 위해 불법적인 행위도 감수하는 무서운 세력에 대한 고발이다. SNS에 글을 쓰면 쓸수록 개인의 성향은 더욱 정밀해진다. 무엇을 보고 무엇에 반응했는가에 따라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고 메시지를 뿌려준다.

내 정보는 내가 지켜야 한다. 무료로 쓰면서 가져간다는 개인 정보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의 앱을 깔면 가져가는 정보들이 많다.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식별 정보를 가린다고 하지만 가리는지 안 가리는지 알 턱이 없다. 그렇다면 기업을 믿는 수밖에 없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

트럼프, 나이지리아, 브렉시트 등 전 세계 고객들을 두고 움직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어떻게 일을 했는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갖고 딜을 벌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출 수 있는 데는 저자의 용기 덕분이다.

저자는 데이터의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도록 '당신의 데이터를 소유하라'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데이터의 보호와 유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상에 알린 그녀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좀 더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이 책은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다. 공익이든 사적인 목적이든 정의로운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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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츠스케일링 - 단숨에 ,거침없이 시장을 제패한 거대 기업들의 비밀
리드 호프먼.크리스 예 지음, 이영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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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확 오지 않는 책. 그러나 그다음 장을 열면 바로 전격전에 돌입하게 되는 책이다.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한 기업들의 전격전을 통해 이룬 성과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잠재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블리츠스케일링은 여전히 기업가나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는 강력한 도구다. 남들과 달리 당신이 가까이 블리츠스케일링의 위험을 받아들인다면, 그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받게 되는 보상도 크다. 그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때 블리츠스케일링은 합리적이며 심지어 최적의 전략이 된다."-56쪽

오늘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점적 지위에 오른 기업, 구글, 아마존, 애플을 보라.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가를. 단계적인 절차를 통해 비슷한 형태로 카테고리별 1등의 자리에 올랐다. 승자독식의 원칙에 의해 위험을 감수할 때 기회가 있다.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공격적인 경영이 기회를 열어준다.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최대한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게 우선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이 처음부터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단계별로 그들은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누구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블리츠스케일링은 유망한 시장에서만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시장의 조건이 어떻든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기업의 성장 속도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척도로 측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시장에서는 연 100% 성장률을 보이는 회사도 시장을 읽을 수 있다."-195쪽

이 책은 그간 나온 경영 경제 서적의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는 범위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블리츠스케일링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정의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러운 일이지만 자본이 없이는 대열에 낄 수 없다. 속도만 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자본과 인력, 기술이다. 무엇을 갖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성공의 비결을 파헤쳤다. 오바마의 선거 전략에 숨어있는 것은 무엇인가. 네트워크의 효과였다. 선거를 치르려면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를 모으기 위한 전략에서 오바마는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를 갈구한다면, 블리츠스케일링을 만나 볼 일이다.

이 책의 저자 리드 호프먼과 크리스 예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이며 투자자로 활동하는 인물들이다. 하이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을 해 온 그들이 내놓은 책 속에는 성장 비법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규모에 두려워할 게 아니다. 먼저 깃발을 꼽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모두 6파트로 이뤄졌다. 공격적인 목차가 눈길을 잡는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첫 파트부터 강조한다. 서비스와 기술, 자본과 인력 등 집중적인 자원에 대한 분석과 비교를 통해 블리츠스케일링의 효과를 점검한다.

블리츠스케일링은 거대한 사업을 빠르게 구축하는 열쇠이다. 저자는 이 블리츠스케일링이 스타트업과 기존의 기업들 모두 기록적인 시간 안에 세게를 지배하는 일류기업을 키워주는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몇 십 년이 걸리던 사업 성과가 몇 년 안에 승부가 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다. 앞으로는 더 짧아질 것이다.

블리츠스케일링을 통해 성장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어떤 속도로 밀고 오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이 구글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료와 프리미엄 정책으로 이용자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토대로 검색 서비스 시장을 장악했다. 브라우저는 또 어떤가. 유튜브까지. 생활 전반을 넘나들며 인간 세상의 데이터를 집결시키고 있는 구글은 무섭도록 질주하고 있다.

"작은 기업들이 블리츠스케일링을 하려는 까닭도 그들이 대기업과 비교해 가지는 주된 이점이 속도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회를 빠르게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스타트업들이 꾸물거리면서 대기업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결국 그들은 대등한 경쟁의 장에서 싸우게 될 것이고, 이는 대기업이 가진 자원이 엄청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94쪽.

성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든 것을 걸고 빠르게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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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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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 교수는 이 세상에 어리석은 학생이나 바보 같은 질문 따위는 없다고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의 겉모습 뒤에는 항상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책 <나의 기억을 보라>는 이렇게 저자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 교수의 대화와 강의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인생 책이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대통령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인물.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만들어졌다. 기억, 다름, 믿음과 불신, 광기와 반항, 행동주의, 말과 글을 넘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자.

밑줄 긋고 싶고 다시 생각해보는 문장들이 많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물어보고 관심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지만 정신은 빈곤하다. 왜 그런 빈곤함으로 우리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는 걸까. 외로움을 느끼고 더없이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위젤 교수의 조교로 지내며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저자의 기록이 고맙다. 글 쓰는 이의 고된 시간이 독자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엘리 위젤은 신비주의자들의 오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는 법도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보지 말고, 마이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비슷하거나 친숙한 느낌 자체를 낯선 것으로 여기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내게 우정의 최고 단계는 서로를 끝까지 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대신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놀라워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99쪽

오래전 모임에서 만난 분이 생각이 난다. 한 교육과정에서 만났지만 그 후 어느 술자리에서 나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나에 대해서 물었다. 어디를 다녔지 않았냐, 어디를 가지 않았냐면서 물었다. 가볍게 물은 것일 수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꼭 그렇게 물을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속 그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 후 그 사람을 더 보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과 이야기는 그렇게 사그라지고 소멸됐다.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몇 개는 남겨두는 것, 그것이 긴장하게 하고, 서로의 신뢰를 더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 알려고 할 이유도 없다. 기억은 편한 대로 쏠리게 마련이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이지만 인생 교훈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역사의 한 줄기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저자가 조교로 자신이 도운 교수와의 대화를 기록할 만한 정도였다면 얼마나 큰 배움이 있었겠는가.

대학에서 배운 내용들이 기억나는 게 뭐가 있나, 존경할 만한 분은 또 없었나. 어떤 교수와의 대화가 유익한 것이 있었나 돌아봤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위젤 교수는 또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종족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이유가 있지만, 전쟁과 광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서로 선을 긋고 사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원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작가로서 화가로서, 교사로서 다양한 재능을 갖춘 저자가 위젤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누린 시간들을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책 가격 그 이상의 선물이라고 느낀다.

욕심내지 말고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라고 했다는 위젤 교수의 삶을 마지막까지 따라간 저자의 놀라운 기록이 고맙다.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배움이라고 답했다. 오늘 나는 어떤 배움을 하고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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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알려주는 입시 맞춤형 공부법
진동섭 지음 / 포르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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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공부의 끝은 결국 어디일까? 인생 행복을 위한 공부인가, 아니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일까. 인생의 초반을 온통 입시를 위해 온 나라가 매달린다. 왜 그렇게 매달리는 걸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소양과 지식을 갖추면 되지 않을까.

고민은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들어가야 할 곳은 적고 들어가고자 하는 수요는 많다. 공급이 많지 않으니 수요자가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은 밥 먹여주는 시대는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살아 있는 말을 무너트리지는 못하고 벽은 높다.

현실 속 우리의 공부 방법을 살펴봐야 할 일이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는 일은 결국 준비하는 것만한 답이 없다. 준비도 없이 꿈만 크면 실망도 적지 않다. 남들 들어간다고 모두 다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좋은 지침, 살아 있는 경험은 실전에 임하는 학생들에게 더없이 필요하다. 조력자인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입학 사정관으로 활약한 바 있는 저자 진동섭은 공교육을 통한 입시 설계를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가이드를 준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지다. 목표가 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시간을 짜고 공부 계획을 세워 볼 일이다. 독서에서부터 입학에 필요한 서류 준비하는 일까지 조목조목 들여다본다. 실전 경험이라 집중도 잘 된다.

사실 지금 다시 대입을 준비하라고 하면, 자신 없다. 일단 너무 복잡하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양하는 공부 체계적으로 목적을 갖고 준비한다면 원하는 목표에 더 가깝게 가리라 본다.

공부습관 들이는 방법은 올바른지 따져보자. 새롭게 바뀐 학교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정보가 곧 힘이다. 자유학년제를 통해 진로를 제대로 탐색하고자 한다면 어떤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할까. 읽어야 할 책은 읽어야 한다. 다양한 독서가 필요하다. 시간이 있을 때 제대로 읽자. 눈에 띄는 대목은 21년 이후 28년까지의 입시 로드맵이다. 교육부 정책에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지만 나름 그 기간에 속한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눈여겨볼 대목이다. 어떤 유형으로 갈 것인지 계획이 서면 준비가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 가고자 하는 대학의 인재상이 어떤가에 따라서 준비해야 할 것이 다르다. 부모의 생각보다는 자녀가 좀 더 원하는 방향에서 찾아볼 일이다.

입학 사정관의 학생 평가 방식에 대한 소개가 상세해서 대입을 앞둔 학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도표나 예시가 있어 지금 처한 상황과 어떤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공부를 하려면 내가 왜 공부하는지를 계속 물어야 한다. 사람은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하기도 하지만, 공부 그 자체에 뿌듯함을 느껴서 공부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공부해야 할 것이 생긴다. 그러나 무엇이 되기 위한 공부는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는 멈추게 된다. 반면 스스로 뿌듯한 마음에 공부를 한다면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평생 학습 사회에서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이 발전 가능성이 큰 사람이다. 그러나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왜 공부를 하는지를 물으면서 자신이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고 그 방향을 잡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211쪽

갇힌 삶보다는 좀 더 넓은 삶을 살고 싶다. 대학은 잠시지만 인생은 길다. 긴장과 압박이 때로 도움이 되지만 그러한 삶으로 너무 인생을 몰고 가지는 말자. 부모와 자녀는 파트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다. 종속의 개념에서 벗어난다면 좀 더 선택의 폭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의 프레임으로 자녀를 몰아넣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입시 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는 면접을 보고 나서 왜 떨어졌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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