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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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 교수는 이 세상에 어리석은 학생이나 바보 같은 질문 따위는 없다고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의 겉모습 뒤에는 항상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책 <나의 기억을 보라>는 이렇게 저자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 교수의 대화와 강의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인생 책이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대통령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인물.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만들어졌다. 기억, 다름, 믿음과 불신, 광기와 반항, 행동주의, 말과 글을 넘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자.

밑줄 긋고 싶고 다시 생각해보는 문장들이 많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물어보고 관심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지만 정신은 빈곤하다. 왜 그런 빈곤함으로 우리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는 걸까. 외로움을 느끼고 더없이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위젤 교수의 조교로 지내며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저자의 기록이 고맙다. 글 쓰는 이의 고된 시간이 독자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엘리 위젤은 신비주의자들의 오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는 법도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보지 말고, 마이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비슷하거나 친숙한 느낌 자체를 낯선 것으로 여기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내게 우정의 최고 단계는 서로를 끝까지 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대신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놀라워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99쪽

오래전 모임에서 만난 분이 생각이 난다. 한 교육과정에서 만났지만 그 후 어느 술자리에서 나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나에 대해서 물었다. 어디를 다녔지 않았냐, 어디를 가지 않았냐면서 물었다. 가볍게 물은 것일 수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꼭 그렇게 물을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속 그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 후 그 사람을 더 보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과 이야기는 그렇게 사그라지고 소멸됐다.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몇 개는 남겨두는 것, 그것이 긴장하게 하고, 서로의 신뢰를 더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 알려고 할 이유도 없다. 기억은 편한 대로 쏠리게 마련이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책이지만 인생 교훈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역사의 한 줄기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저자가 조교로 자신이 도운 교수와의 대화를 기록할 만한 정도였다면 얼마나 큰 배움이 있었겠는가.

대학에서 배운 내용들이 기억나는 게 뭐가 있나, 존경할 만한 분은 또 없었나. 어떤 교수와의 대화가 유익한 것이 있었나 돌아봤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위젤 교수는 또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종족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이유가 있지만, 전쟁과 광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서로 선을 긋고 사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원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작가로서 화가로서, 교사로서 다양한 재능을 갖춘 저자가 위젤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누린 시간들을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책 가격 그 이상의 선물이라고 느낀다.

욕심내지 말고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라고 했다는 위젤 교수의 삶을 마지막까지 따라간 저자의 놀라운 기록이 고맙다.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배움이라고 답했다. 오늘 나는 어떤 배움을 하고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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