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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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하루만에 다 읽은 책입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지만 애인이 없다보니 놀데,갈데도 없고, 집에서 책이나 읽는 게 낙이지요. 그렇게 흘러가는 거 아니겠습니까...그러다 보면 낙엽지고, 눈내리고, 크리스마스 오고, 한 살 더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_-;;; 갑자기 슬퍼지네요...

<사라진 이틀>을 쓴 작가는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1958년생 작가입니다. 이 작품으로 200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일본 추리 문학에 정통한 주변분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작품은 주로 본격에 강세가 있다고 합니다. <사라진 이틀>같은 휴머니즘+사회파 작풍은 오히려 흔치 않다고 합니다. 그의 본격 작품이 번역됐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가지 소이치로라는 기품있고, 선한 눈을 가진 경찰 교관이 자기 아내를 목줄라 죽이면서 시작합니다. 가지의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었지요. 치매 때문에 두 사람 아들의 기일을 잊은 아내는 절규하며 아들을 기억하고 있을 때 죽여달라고 외칩니다. 가지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죽인 거지요.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지만 작품의 진짜 재미가 곧 시작됩니다. 가지는 아내를 죽인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꼭 1년 뒤에 자살을 하겠다는 거죠. 왜 1년 뒤에만 자살을 할수 있을까?  호기심이 팍팍 생기지 않습니까? ^^;;

원제인  '한오치'란 말은 수사 용어로 범인이 사건의 일부만 자백하는 걸 말한답니다.  아내를 죽인 사실은 숨김없이 말하지만, 사건의 일부에 대해서와 1년뒤에만 자살을 할 수 있다는 이유를 숨기는 가지의 증언이 바로 '한오치'인 것입니다.

작품은 6명의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끌어갑니다. 가지를 최초로 심문한 심문관 시키(당구장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_-;;), 가지를 기소한 검사, 가지를 취재한 기자, 가지를 판결한 판사, 가지를 변호한 변호사, 형무소에 수감된 가지를 감시하는 교도관이 그들입니다.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가지의 비밀을 파헤치려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 모두는 불가사의한 가지의 기품의 포로가 됩니다.

무엇보다 현직 경찰(가지)이 아내를 목잘라 죽인 사건을 맞아 벌어지는 초반부 검찰청과 경찰청의 암투가 박진감 넘치며 볼만합니다.

또한 화자  6명은 모두 50대를 넘기거나, 50대를 향해가는 중년을 넘긴 노년으로 접어드는 연령대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가 멀지 않은 그들이 느끼는 비감(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 일만 알고 살아왔지만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잃어버린 젊음 등)이 작품 전면에 애잔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가지의 비밀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이겠지요. 이 부분에서 독자들의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그 비밀이 간직하고 있는 스케일이 작거든요. 분명히 감동적이고, 슬프긴 한데 한편으로는 '뭐야! 이거였어..'하는 느낌도 듭니다. 신파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던 애잔한 정서를 클라이맥스에서 눈물로 확 터트려버릴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솔직히 조금 울었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꽤 감동적이면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발언도 하는 좋은 결말이라는 생각입니다만 분명히 시시하다고 느끼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죽여야만 했던 가지의 비극과 6명의 중년 화자들의 애잔한 인생 이야기에 젖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가지의 비밀이 밝혀지는 마지막 10페이지는 눈물을 참기 힘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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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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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에 절어 사는 무면허 탐정 매트 스커더 시리즈를 창조한 로렌스 블록은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영국추리작가협회와 미국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공로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입니다. 국내 출간된 <백정들의 미사>는 미국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이고요. 뭐 이런 상들이 꼭 작가의 수준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만큼 인정받는 작가라는 증거는 되겠지요.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의 매트 스커더는 한 창녀의 의뢰를 받습니다. 그녀는 창녀 생활을 이제 그만 때려치고 싶다며, 자신의 포주인 챈스라는 흑인에게 자신이 그만둔다는 사실을 통보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나 거기나 창녀가 포주에게 혹사당하고, 위협받는 건 비슷한가 봅니다. 자신 스스로 그만둔다고 말하면 혹시 해꼬지라도 당할까 염려한 나머지 매트에게 부탁한 겁니다.

의외로 선선히 창녀를 그만둬도 좋다고 말하는 챈스. 그러나 며칠 뒤 창녀는 호텔방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매트는 챈스를 의심하지만 오히려 챈스는 그에게 창녀를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고 의뢰합니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창녀를 죽인건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거죠.

매트는 챈스에 대한 의심을 여전히 간직한 채 창녀 살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내려 합니다. 전직 경찰 출신의 매트가 손에 쥔건 사립탐정 면허증도 아니요, 누구든 한방에 골로 보낼 수 있는 총도 아닙니다. 단지 술병만을 쥐고 있을 뿐이지요.

전에 읽었던 <백정들의 미사>에서도 반복되지만 이 작품에서도 매트는 끊임없이 신문을 읽습니다. 뉴욕에는 800만명이 살고, 그들 각자는 죽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꼭 800만 가지가 되죠. 800만명의 사람들이 하찮은 이유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혼돈과 죄악으로 가득찬 사건들이 보도되는 신문을 매트는 쉬지않고 읽어댑니다. 벌거벗은 도시 뉴욕의 현실에 절망한 매트가 기댈 것은 술밖에 없는 거구요.

혹자는 말합니다. 신문을 뭐하러 읽냐고...안좋은 일만 가득한 신문은 읽지 않으면 그만아니냐고...매트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신문을 읽는 걸 멈추진 않습니다. 대도시 뉴욕의 현실에 절망하고는 있지만 결코 외면하지는 않는거죠. 그런 면에서 본질적으로 그는 정의로운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800만 가지의 모든 죽음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트는 모든 사람들이 인류라는 이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뇌까려 보기도 합니다.

<백정들의 미사>도 여운이 깊이 남는 대단한 수작이지만, 추리적인 측면이나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성, 복선의 배치 등은 <800만가지 죽는 방법>이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부분의 지적 쾌감도 꽤 큰 편이구요.

여러모로 대가 로렌스 블록의 필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1982년 작품인데 그해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수상을 하지 못했더군요. 찾아보니 윌리엄 베이어라는 작가의 <송골매>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더군요. <송골매>를 못 봤지만 고개가 약간 갸우뚱해집니다.
'이 정도의 걸작을 제쳤단 말야!'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지막으로 작품 맨 말미 매트 스커더의 금주 모임에서의 단 두 마디 스피치는 미스터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모든 소설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뻐근해지지요. 새로 읽으실 분들의 재미를 위해 밝히지는 않겠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결말을 낼 수 있었을까요...로렌스 블록은 정말 대단한 작가이며, 매트 스커더 역시 영원히 독자들의 기억에 남을 인물입니다.

P.S/ 1992년 <백정들의 미사>에서는 매트 스커더는 술을 완전히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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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인형의 집 - 하 밀리언셀러 클럽 16
타마라 손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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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포소설은 별로 읽어 보지 못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스티븐 킹이 엄청난 인기가 있다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힘을 못쓰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사계>는 읽어보고 아주 감탄했지만 그 외 작품들은 너무 길어 읽기 힘들며...무엇보다 무섭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본인이 겁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기가 허하기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나다.(웬지 자랑같다..-_-;;;) 일본의 공포소설 <링>과 <검은 집>,<메두사> 등을 읽고는 불켜고 잤다..무서워서..-_-;;

 

영미권의 공포소설은 그 나름의 전통이 있고, 그쪽 문화권에서는 상당히 무서워할 독자들이 많이 있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별로 공포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흡혈귀나 늑대인간, 귀신들린 집 등의 공포 코드보다는 머리푼 처녀 귀신, 원한을 잊지 못하는 원혼 등이 훨씬 무섭게 느껴지는 건 비단 본인만은 아닐 것 같다.

 

이 작품 <붉은 인형의 집>은 위에 언급한 서양의 공포 코드 중 귀신들린 집을 차용했다. 보디 하우스( Baudey house - Body house)라는 중의적인 이름을 가진 집에 베스트셀러 공포소설 작가가 딸과 함께 취재 겸 해서 이사를 온다. 이사 첫날부터 콜드 스팟이라 불리우는 차가운 영적 덩어리가 그들을 반긴다.

 

알고 보니 그 집은 100년전쯤에 창녀들의 매음굴 비슷한 집이었다. 리찌라는 여자가 주인장이었는데 창녀굴을 운영했지만 악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리찌의 딸인 크리스터벨은 부두교의 주술에 능한 주술사였다. 심지어 호르몬 분비가 과다해 밝히기까지 한다...-_-;;

 

사악한 크리스터벨은 그 집을 피로 물들인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참혹하게 살해되는데 어찌나 끔찍한지 여기다 적을 수가 없을 정도다.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빗은 그 집에서 살면서 인형을 발견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이라면 모두 짐작하셨겠지만 그 인형에는 크리스터벨의 영혼이 갇혀 있다. 크리스터벨은 부활을 꿈꿔 데이빗의 꿈으로 찾아가 밤마다 그를 유혹한다..

 

밤마다 시큐버스(몽마)에게 강간을 당하다시피 해 공포에 질리는 데이빗...여기서 작가의 최초 실수가 있는 듯 하다. 미모의 여인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잘해주는데(무엇을?) 그게 뭐가 공포스럽다는 말인가?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_-;;;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다 최후에 크리스터벨과 대결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꽤 두꺼운 분량으로 2권이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나오고 비교적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져 읽는 맛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이라면 역시 공포소설치고 무섭지가 않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이라면 긴장감 넘치게 달음박질쳐가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공포의 오르가즘을 독자에게 안겨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결정적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전술한대로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공포소설이 무섭지 않다는 건 김빠진 맥주같이 느껴진다. 너무 잔인하고 색정적인 장면들이 연속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간단히 말해 싸구려같이 보인다.

 

지루하지 않고, 쭈욱 읽어나갈 수 있는 어느 정도 재미있는 책이지만 크게 무섭지도 않고, 칭찬받을 요소가 가득한 작품은 아니다. 다음 번 밀리언셀러 클럽에는 일본 공포소설을 추가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공포소설, 영화는 일본쪽이 요즘 세계를 휘어잡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p.s/ 주인공이 작가이다 보니 출판사 이름들이 자주 나오는데 조금 웃긴다. 랜달하우스(랜덤하우스), 도너북스(워너북스) 등이 패러디로 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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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1-0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모의 여인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잘해주는데(무엇을?) 그게 뭐가 공포스럽다는 말인가?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_-;;;
으하하! >ㅁ< 재밌어요!
저 이 책 아는 분이 빌려주셔서 읽었는데, 진짜 무지하게 실망스럽더군요. 저도 검은집 읽고 무서워서 덜덜 떨었는데, 역시 일본 호러가 와 닿는 것 같아요. ^^
재밌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제다이님. 흐흐흐흐

jedai2000 2005-11-0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시귀> 보셨나요? 일본 공포소설하면 <링> <검은 집> <시귀>의 삼총사를 꼽는 분이 많아 궁금하네요. 솔직히 미국 공포소설이 진심으로 무서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 예전 <토탈호러>라는 단편집에서 <샌드킹>이라는 작품을 읽었는데 그건 엄청 무서웠어요.

panda78 2005-11-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귀 봤지요! ^^ 근데 무섭다기보다 재밌던데요. ^^;;
오노 후유미의 [악몽이 깃든 집], 이게 좀 더 무섭던데, 다른 분들은 하나도 안 무섭더라고 하셔서... 그 때 주위 분위기가 호러 읽기에 적합했나 살짝 의심이 가기도.. ^^;

(토탈 호러는 그런대로 무섭고 징그럽고 기괴하고 끔찍한 느낌이었죠. ㅎㅎ 샌드킹은 그 중에서도 걸작! b)

jedai2000 2005-11-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몽이 깃든 집>이 무섭군요. 구해봐야겠네요. <샌드킹>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네요. 고교 때 읽고 정말 엄청 무서웠었는데..
 
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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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전설 <옥문도>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1986년 문예춘추가 선정한 일본 미스터리 100선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걸작입니다. 아마 2006년에 다시 선정해도 1위는 변함이 없을 것 같네요. 우리에게는 만화 <김전일>에 등장하는 소년 탐정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명탐정이신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의 바로 그 할아버지로 익숙한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작품이구요.

 

저주받은 조손 긴다이치 코스케와 김전일...두 사람이 살면서 만난 시체만 합쳐도 옥문도의 주민 수 이상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ㅋㅋ

야심차게 출발한 만화 김전일이 1940년대에 첫 등장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라는 설정을 사용한 것만 봐도 일본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탐정 쯤 되겠네요..^^;;

 

데뷔작인 <혼징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낸 긴다이치 코스케...그런 그도 2차 대전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 참전을 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는 귀국선에서 죽어가는 전우에게 부탁을 받습니다. 전우의 고향인 옥문도로 돌아가 그의 세 여동생을 구해달라는 거죠. 옥문도에 도착한 코스케는 20세기에도 전통적인 봉건 세력의 지배를 받을 정도로 시간을 잊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우는 옥문도의 지배 세력인 선주의 손자였습니다. 어촌 마을이다 보니 배를 가진 선주가 거의 왕인거죠...그러나 지배자인 선주는 죽었고, 그의 아들인 요사마츠는 미치광이가 되어 갇혀 지냅니다. 손자가 유일한 희망이나 어떡합니까...그는 긴다이치 품에서 죽었는데. 이제 남은 사람은 전우의 여동생인 세 명의 손녀딸뿐...그런데 이 손녀딸들이 걸작입니다. 묘하게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세 명 다 대단한 미인들이지만 나사가 풀렸다고나 할까요..-_-;; 뭔가 이상합니다. 자신들의 아버지인 미치광이를 나무로 쿡쿡 찌르며 키득거리며 즐기기 일쑵니다. 바보들이라기 보다는 감정을 느끼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난 듯한 여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가문의 후계자인 세 명의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긴다이치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막내 동생을 필두로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갑니다. 옥문도를 지배하는 선주 본가에 도전하는 선주 분가의 짓일까요? 옥문도의 참극은 결국 세 명의 여동생들이 모두 죽으면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개개의 살인들이 또한 기묘합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막내, 거대한 범종 속에 들어가 죽어 있는 둘째, 기도소에서 무녀 복장을 한 채 교살당한 첫째 딸들이 그것입니다.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놀랍게도 탐미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의 특징은 <혼징살인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서양에서 시작된 퍼즐 미스터리에 일본의 전통 문화를 잘 녹여내고, 일본적인 탐미주의를 결합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탐미주의에 저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전술한 대로 작품에 일본의 문화를 잘 섞어 넣습니다. <혼징 살인사건>이 일본의 전통 가옥을 이용한 트릭과 해결을 취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일본의 전통 단가 '하이쿠'를 비벼 넣었습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로서는 흥미롭게 기능합니다.

 

세 번의 살인에는 각각 다른 트릭들이 사용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두 번째에서 무릎을 쳤지요. 다만 세 번째 살인에는 특별한 트릭보다는 범인의 정체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순수하게 퍼즐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범죄의 동기에 관해서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군요. 작가도 그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작품의 배경을 너무도 봉건적인 곳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점은 긴다이치 역시 김전일처럼 뛰어난 추리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우가 부탁한 세 여동생 중 단 한 명을 못 구하고 퍼펙트하게 실패한 긴다이치. 범인만 맞추면 뭐합니까...사람을 구해야지..ㅋㅋ

신은 긴다이치와 김전일에게 뛰어난 추리력을 주셨지만 아쉽게도 빨리 푸는 능력은 주지 않으신 듯 합니다..^^;;;

 

대단히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올해 많은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오기는 하지만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황금기 작품들의 출간이 적어 아쉬웠는데 시원하게 해갈을 해주네요. 모쪼록 <옥문도>가 잘되서 다른 긴다이치 시리즈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판형 및 표지 디자인이 대단히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어디를 가던지 들고 다녔답니다..ㅋㅋ 꼼꼼한 역주도 만족스러웠구요. 기획, 편집하신 분의 해설도 멋졌답니다. 이래저래 잘 만든 추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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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j002 2005-10-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제 마음에 꼭..저도 얼마전에 재밌게 읽었어요..정통 추리소설이 역시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책도 예쁘게 디자인되어 역주에 나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책장에 진열되었으면 좋겠어요..

jedai2000 2005-10-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두 작품이 더 나올 예정입니다. 담당 편집자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니 확실합니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이 나온답니다. <옥문도> 못지 않은 걸작들이랍니다.

panda78 2005-11-0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두 개 더 나온다구요?! 기대기대됩니다! ^^ 특히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은 이야기만 많이 들었던지라 더욱 기대가... 두 권 다 얼른 나오면 좋겠네요. 내년 여름에 맞춰서 나오려나요? ^^a

jedai2000 2005-11-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여름에 맞추시려고 노력하시겠죠..^^;; 작업하시는 편집자 분께서 국내에 내노라하는 추리소설 마니아시라 많이 준비하고 계세요.

윌리엄 아이리쉬 단편집, 유명한 논픽션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이 올 겨울에,
내년에는 일본의 크리스티, 니키 에츠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를 하신다네요. 내년에도 추리소설 풍년이죠? ^^;;

panda78 2005-11-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 아이리쉬의 단편집! 이 올 겨울에! @ㅁ@)/ 만쉐이!
정말 올해도 내년도 추리소설 풍년이네요. 기쁩니다.^ㅡㅡㅡ^

jedai2000 2005-11-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외에도 아직 밝히기 뭐하지만 여러 곳에서 많이들 준비하고 계시니 안심하세요. ^^;;
 
천사의 속삭임 1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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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야흐로 여름이 모두 끝나간다. 그런데 곱게는 못 물러가겠다는 듯이 막바지 무더위가 거세다. 이럴 때는 역시 등골이 서늘한 무서운 이야기가 딱이다. 개인적으로 국적 불문하고 책으로 읽은 것 중에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역시 스즈키 코지의 <링>과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다. 스즈키 코지가 <링>의 비참한 동어반복으로 스러져 갔다면 기시 유스케는 요즘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제4회 일본호러대상을 받았다는 <검은 집>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무섭기로 소문난 작품이다. 나도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할 정도로 공포에 질린 적이 있다. 원래 내가 기가 약하기로 둘 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지라...쿨럭..

 

<검은 집> 이외에도 그의 작품은 <푸른 불꽃>과 오늘 소개할 <천사의 속삭임>이라는 작품이 국내 출간되어 있다. <푸른 불꽃>은 보지 못했다. <천사의 속삭임>을 다 읽고는 이렇게 잘쓴 작품이 잘도 묻혀 있구나 하는 분노를 느껴 몇 자 적는다.

 

<검은 집>만큼 압도적인 공포는 없지만 상당히 무섭고 재미있는 작품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작품은 다카나시라는 작가가 아마존 오지에서, 말기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 애인 사나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시작한다. 원래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다카나시 작가는 아마존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상하게 죽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그는 자살을 해버린다.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 하던 사람이... 또한, 탐험대 중에 한 교수는 고양이과의 동물을 극도로 무서워했는데 일부러 호랑이 우리에 들어가 자살한다.

 

다섯 명의 탐험대원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속출한다. 애인 다카나시 작가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나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과연 아마존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확대되고, 클라이막스에서는 <검은 집>에서 선보인 예의 그 지옥도가 다시 한번 펼쳐 지는데 그야말로 압권이다.

 

대강의 줄거리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데, <검은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잔재미까지 상당 부분 늘어났다. 취재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기시 유스케답게 그리스/로마 신화, 기생충(선충)학, 의학, 증권, 환경 오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전문 지식들이 단순한 지식 자랑이 아닌 작품 속에 상당히 잘 녹아들어가 있어 만족스럽다.

 

기시 유스케를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미래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단 두편 <검은 집>과 <천사의 속삭임> 밖에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재능이 대단한 것 같다. <푸른 불꽃>이나 <크림존의 미궁>같은 작품들의 소개를 보면 장르도 다양하고 소재도 다채로워 <검은 집>의 성공에 부화뇌동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재기가 엿보인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기시는 작품 말미 클라이막스에 그야말로 공포의 오르가즘을 안겨주는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절정 부분에서는 정말 책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다...물론 내가 남들보다 겁이 더 많다는 사실은 감안하시라..^^;;

 

작품 해설을 보니까 시나 히데아키 (<패러사이트 이브>)가 추천사를 썼는데, 그도 질투가 났을 정도라고 고백을 했더라.. 그런데 <천사의 속삭임>이 나왔을 시점에는 메디컬 호러 내지는 바이오 호러 장르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었다고 한다. <천사의 속삭임>도 일종의 바이오 호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므로, 정말 오싹한 사람이 등장하는 <검은 집>만큼 강력한 공포는 없지만 시종일관 흥미로운 이야기에 적당한 공포를 제공해주는 <천사의 속삭임>은 추천할만한 읽을거리임을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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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2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시나 히데아키와 비슷한 감도 없지않아 있었어요^^

jedai2000 2005-10-2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런지 시나 히데아키가 추천사를 썼더군요. 개인적으로 기시 유스케 관심 많습니다.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장르를 잘 소화해내죠. 기회가 되면 내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panda78 2005-10-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불꽃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라구요. 검은 집과 비슷한 느낌일 거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의외였어요. ^^

jedai2000 2005-10-2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푸른 불꽃>을 읽었는데 아주 좋더군요. 작가에게 반했어요. 창해출판사에서 더 내줄 생각은 없는지 모르겠네요. 기대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