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
김민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심각한 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외하고, 인간은 누구나 오감을 가지고 있다. 촉각, 후각, 시각, 청각, 성감(性感)이 그것이다..-_-;; 농담이다. 미각이 맞다. 이 다섯 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을 가장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랑은 과연 오감 중에 무엇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사랑은 대체 어떤 감각이기에 생각만 해도 그리 좋고 행복해지는지, 늘 궁금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인간의 능력이란 미약하기 짝이 없어 사랑은 좀처럼 오감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느낌을 불완전한 우리의 오감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왜냐?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까..-_-;; 중언부언 써댔는데 이런 것이다. 사랑을 떠올릴 때, 나는 항상 그녀의 향수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 느낌이 후각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고나 할까.

 

이런 분들도 많을 것같다. 옛날에 함께 먹었던 스파게티의 맛으로 지나간 사랑을 추억한다거나,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애인과 먹던 떡볶이만 떠올려도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감도는 분들...(부럽다..T.T) 역시 먹는 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즐거움일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사랑이라는 가장 큰 선물과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 식도락이 결합한다면 그게 바로 멋진 만남, 행복한 인생 아닐런지...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런 사랑과 음식의 행복한 밀월 관계에 주목해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달콤쌉사름한 초콜릿>도 생각나고, 조니 뎁 나오는 <쇼콜라>, <식신(이건 좀 아닌가 -_-;;;)>등도 있다.

여기 사랑과 음식을 멋지게 결합시킨 또 한편의 훌륭한 작품이 있다.

 

두둥~ 바로 <야옹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이하 '야옹양')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네이버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던 성은 야요, 이름은 옹양이라는 분께서 -_-;; 평소 요리에 심취하야 몸소 요리한 사진을 예쁘게 찍어,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조리법을 곁들여 올린 것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끌어 결국 이쁜 책으로 묶여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유일의 '로맨틱 큐트 쿠킹 에세이'를 표방한 이 작품은 요리책으로도, 에세이로도 재미있다. 이 책의 형식은 먼저 연애와 일상의 에피소드가 3페이지 정도 제시되고, 그 에피소드를 요리로 산뜻하게 마감한다.

 

예를 들어, 고백의 날 두 사람은 스파게티를 먹는다. 어색한 고백이 끝나고 사랑을 시작하기로 한 두 사람.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에는 스파게티의 레시피와 사진이 나오는 식이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작가를 조금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분의 요리 솜씨는 대단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은 비밀스런 연애일기를 훔쳐보는 쾌감(?)과 요리 지식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떨리는 첫 만남에서부터, 가슴 터질듯한 고백의 순간, 점점 닮아가는 서로를 확인하는 기쁨 같은 연애의 첫걸음부터 사랑이 깊어지자 그만큼 외로움도 깊어지는 오래된 연인의 느낌 같은 미묘한 슬픔으로 작가는 우리를 안내한다. 그렇다. 연애에 어찌 행복만 있을 수 있겠는가. 작가는 직접 연애를 하면서 겪은 기쁨, 슬픔, 외로움, 환희, 절망 등의 감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너무도 솔직해 오랜 친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야옹양과 정군은 특별하지 않다. 평범한 직장인, 정군이 사실은 재벌2세의 후손이라든가, 야옹양의 요리 솜씨가 세인의 관심을 끌어 제과, 제빵 기능장으로 성장한다든가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 책에 없다. 요리를 좋아하고, 그만큼 정군을 좋아하는 야옹양의 소소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공감가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야옹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는 평범한 우리의 친구들이 평범하게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먹는 이야기를 비범하게 그리고 있다. 깊어가는 이 가을, 연애에 흠뻑 빠지신 분, 꿈같은 연애 한번 해보고 싶으신 분, 이별의 위기를 맞은 연인들, 맛난 요리를 해보고 싶으신 분, 본인 같이 라면도 잘 못 끓이시는 분...모두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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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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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선배분의 눈이 빨갛다. 이유를 물어보니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잤다는 것이다. 제목을 물어보니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였다. 평소 입싸고 귀엷기로 유명한 본인은 그렇게 재미있다니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에 이르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국내 작가의 소설이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의 유명한 작품들은 의무 방어전으로라도 전부 읽었었는데 알맹이없는 사색으로 독자의 얼굴을 사색으로 만드는 사소설과 진부한 운동권 후일담 문학, 얼치기 페미니즘 작품들로 완전히 실망하고 국내 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요즘 한국 문학이 위기라는데 제일 먼저 작가들이 반성을 해야 한다. 이름을 밝히기는 뭣하지만 주인공 발 묘사만 한 페이지 넘게 쓰는 작가도 보았다. 독자는 주인공 발톱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주인공이 발을 딛어 외부 세계와 대면하며 그 과정에서 감동과 재미, 성찰을 제공하는 것을 원할 뿐이다.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수업 시간에도 몰래 책상 밑에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그런 재미있는 책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국 소설이 외면받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소설을 별로 읽지도 않는 사람의 건방진 사설이었다. 어쨌든 다시 <카스테라>로 넘어가 보면,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총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 형태인데 각각의 단편에 작가 특유의 환상적(?)인 현실 인식, 유머스런 너스레가 잘 섞여져 있어 읽는내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 작품집은 새롭다. 박민규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지만, 이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이다. 표제작인 ‘카스테라’에서 1인칭 주인공은 전생에 훌리건이었지 모를 냉장고와 동거하다, 20세기는 사실 냉장의 역사임을 깨닫는다. 그는 냉장고에 소중하거나 해악을 끼치는 모든 것들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 <걸리버 여행기>가 들어간다. 소중하니까...두 번째는 아버지다. 간단히 말할 순 없지만 해악을 끼치니까...나중에는 미국도 들어가고 두 사람을 제외한 중국도 들어간다. 냉장고 안에 새로운 세계가 조성된 것이다. 다 집어넣고 한참 뒤에 냉장고를 열었더니 냉장고 안에는 카스테라 한 조각이 들어있을 뿐이다.

 

‘헤드락’이라는 작품에서 미국 유학생인 화자는 호두나무 아래에서 느닷없이 달려온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에게 헤드락을 당하고, 복수를 위해 몸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되갚는다. ‘대왕오징어의 기습’에서는 150m짜리 대왕오징어에게 전세계가 유린당하기도 한다. 마치 초딩(?)같은 분방한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로 작가는 우리를 초대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이 애써 현실을 넘어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실과 환상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세상의 온갖 쓴 맛을 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주인공이 사우나에서 괴로워할 때,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커다란 너구리 한 마리가 서 있다. 너구리는 주인공의 등을 밀어주며 그를 위로한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장면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역시 세상에 좌절한 중년남자가 그의 등을 밀어주고 그를 위로했더라면 지금같은 작품의 감흥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너구리니까 감동적인 것이다! 이런 현실과 환상의 평화공존은 답답한 세상의 현실에 찌들어 있는 독자들의 눈과 가슴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준다.

 

또한 이 작품집은 무지하게 웃긴다. 작가는 시침 뚝 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풀어놓는데 그 문장에 재치가 가득하다. 위에 언급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를 보자.

 

어떤가? 잘은...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네. 내가 중학교 때 하던 오락일세. 그때는 이 너구리 기계가 연달아 열 대까지 놓여 있던 오락실도 있었지. 애들은 줄을 섰고 말이야.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너구리에 빠져 있었어.
좋은 시절이었지.

그럴 수도, 라고 나는 생각했다. 너구리와 중학생이 그토록 친했다면 확실히 나쁜 시절은 아니었을 테지.

 

이 대목을 읽을 때 지하철이었는데 웃음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여기서 가장 유쾌한 작품은 ‘야쿠르트 아줌마’이다. 상습적 변비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힘을 주며 읽는 작품은 <농담 경제학사전>인데, 이 책의 첫머리에는 300년 전 멸종한 도도새의 이야기가 나온다. 배설물로 위치가 들통나 멸종의 위기에 빠진 도도새들이 론도, 르네, 드봉, 캄푸 등으로 배설물을 숨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풀어놓는 작가의 입담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론도, 르네, 드봉, 캄푸가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참고로 유명한 도도새 사냥꾼들의 이름은 피구, 콘세이상 등 전부 포르투갈 국가 대표 선수들이다.)

 

농담이 앞에 붙기는 하지만 <경제학사전>이라는 진지한 권위를 작가는 정말 사전을 보는 것처럼 진지하게(그러나 말도 안 되는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며) 묘사하고 있다. 왜 우스운 이야기도 자기가 먼저 웃는 사람보다도, 자신은 진지하게 정색을 하며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던지는 사람이 훨씬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진지함과 참을 수 없는 유머의 절묘한 조화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웃음의 오르가즘을 안겨준다.

 

물론 이 작품집은 정신병자의 환각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가벼운 유머에만 집중하는 작품은 아니다. 묘사는 환상적이지만,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10편의 단편의 모든 주인공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현실에서 좌절을 경험하며, 지독한 가난에 빠져 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같은 작품의 고시원 묘사같은 부분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지독한 현실감을 보여준다.

 

내가 박민규 작가가 마음에 든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그가 보는 현실은 대책없이 낙관적이지도, 하염없이 비관적이지도 않다. ‘코리언 스탠더즈’에 등장하는 전직 운동권 인사는 국회의원 자리도 고사하며, 농촌으로 낙향해 농촌 운동을 한다. 종래의 우리소설에서는 이런 사람은 처음에 힘들어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집단 농장은 외계인의 공격을 받아 전부 파괴되고 만다. 곧은 마음을 가진 인격자가 항상 성공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현실 인식이 칼같이 냉정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보일 때가 많다. ‘아, 하세요 펠리컨’이라는 작품에서 전세계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오리배(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오리배)를 타고 전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야쿠르트 아줌마’에서 변비로 상징되는 세상 앞에 좌절한 주인공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나타나 돈도 안 받고(!) 야쿠르트를 주기도 한다.


작가가 아웃사이더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느낀 점을 대강 정리해 보았는데,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는 보다시피 아주 새롭고, 기이하며, 우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이다. 기존의 어떤 작가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묘한 아픔을 담아 그만의 문장으로 작품을 완성해낸다. 물론 현재의 그 독창적인 문체는 재기발랄한 면은 강하지만, 그만큼 기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고 기백이 보이는 작가이니만큼 장점은 잘 살리고, 단점은 더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참으로 길게 썼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작품이니 꼭 읽어보시라고 진심으로 권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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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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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교고쿠 나츠히코. 원래 광고 회사에 다니다 틈틈이 집필한 원고를 손수 장정까지 해서 출판사로 들고간 책이 바로 그의 전설적인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이었다. 국내에도 출간된 작품으로 '우부메'라는 일본 전통 요괴를 모티브로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남편과 그의 18개월째 임신 중인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음양사 추젠지 아키히코와 그의 친구들을 그리고 있다.



<우부메의 여름>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2년 후, <망량의 상자>가 발간되었다. 전작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독자들의 반응으로 인해 교고쿠 나츠히코는 일약 작품 두 편으로 일본의 국민 작가가 되었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미스터리로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통 미스터리라고 할 수는 없는 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주로 담는 작가이기에, 아야쓰지 유키토, 노리츠키 린타로 등의 대표적 미스터리 작가들이 교고쿠 나츠히코를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못을 박으며 그들의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의 대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그렇다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이 무엇이길래 일본에서 '교고쿠 현상'이라는 말까지 낳으며 사랑받았을까? 무엇보다 일본색이 강해서였을거다. 요괴에 관심이 많아, 계간 <요괴> 잡지까지 내고 있는 그답게 작품마다 일본의 요괴가 주요 모티브로 쓰인다. (실제로 요괴가 등장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아직도 요괴가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여전히 친근한 존재로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대 종교가 없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통적인 요괴의 생명력이 그렇게 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동,서양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만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1000페이지를 예사로 뛰어넘는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 그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최신 과학의 가설, 요괴와 민속학에 대한 작가의 지식 자랑, 단순한 궤변, 말도 안 되는 요설들까지 넘쳐나 현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추젠지의 엄청난 (사이비) 지식이 바탕이 된 강론은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100페이지 가까워 듣는 세키구치와 독자들의 눈과 귀를 엄청 피곤하게 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이런 장면들을 제하면 작품의 맛이 살지 않을 것이다. 여러 지식들이 섞이고 비벼지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재미를 낳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란한 지식의 향연도 볼 만하지만,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다루고 있는 사건들 또한 현실에서는 접하기 힘든 기이함이 있어 독자들을 홀리는 것이다.



이 작품 <망량의 상자>는 네 개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가나코라는 소녀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열차사고를 당하며 작품은 출발한다. 가나코는 간신히 살아나지만 망가진 인형처럼 부서지고 만다. 그즈음 일어난 소녀들의 토막난 팔다리가 발견되는 사건이 두 번째다. 최고의 압권은 세 번째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에 등장한 열차사고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던 가나코가 여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침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적인 사건을 해결할 사람은 일본에 단 한 명...



고서점을 운영하며 퇴마사도 겸하는 추젠지 아키히코, 그는 친구인 소설가 세키구치, 역시 친구인 다른 이의 기억이 보이는 '장미십자 탐정 사무소'의 에노키즈 등과 함께 <망량의 상자>에 얽힌 비밀을 풀어낸다.



사실 워낙 두껍고, '교고쿠 월드'에 슬슬 질려가던 참이라 읽기는 힘들었다. 나는 책은 많이 읽는 편이지만 집중력이 좀 부족한 편이라 한 호흡에 읽지 못하는 편인데 <우부메의 여름>은 거의 6시간 가까이 아무 것도 안 하고 한번에 읽어내려간 적이 있다.  하지만 <망량의 상자>는 거의 2주가 걸렸다. 분명히 재미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읽기 힘들었던 걸 보니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 세계에 조금 물린 모양이다. 사실 그의 작풍은 금새 싫증나기 쉬운 약점이 있다. 세 번째 작품인 <광골의 꿈>은 지금 나온다해도 별로 읽고 싶지 않을 듯 하다.



그만큼 고전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두 읽었는데 마지막 30페이지 정도를 남겨두고는 정말 구토가 몰려왔다. 지옥을 엿본듯한 느낌이다. 그 압도적인 그로테스크에 세키구치처럼 나도 질려 버리고 말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지하철 역에서 잠시 헛구역질을 했다...지옥을 엿본 자는 그 자신, 곧 악마가 된다고 했던가...<망량의 상자>를 엿본 자는 그 자신도, 귀신이 되어야 함을 감수할 자신감이 있는 자는 책을 들어도 좋다.



압도적인 작품이다. 분량도 압도적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도 압도적이다.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가 교묘하게 짠 사건의 진상은 네 개의 사건이 하나로 모여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낸다. 솔직히 네 개의 사건 중 한 두개는 트릭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지만, 네 개의 사건이 모두 모이는 결말에서의 느낌은 상상을 초월한다. 새로 읽으실 분의 재미를 위해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하는 게 유감일 뿐이다. 추리소설로서의 논리적 정합성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의외로 일본 추리소설의 전통에 기대어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작품의 세계관은 묘하게 요코미조 세이시나 에도가와 람포를 생각나게 한다. 일본적인 그로테스크...무엇이라 설명은 못하겠지만 일본하면 떠오르는 잔인한 어떤 것...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내적으로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우부메의 여름>보다 조금 더 드러난 듯 해 만족스럽다. 분위기도 조금 밝아졌다. 유쾌한 장면도 많고...하지만 그만큼 전편의 비장미(?), 염세미(?) 는 조금 떨어진 듯 해 아쉽다. 이 작품은 마지막 100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전편만큼 우울하지는 않다.



작가의 문장력은 어떨 때는 좋은 것 같고, 어떤 문장은 유치한 면도 보여 필력을 가늠하기 힘들다. 교고쿠만의 특성이라고나 할까...독백 등을 탁탁 끊어 별행 처리하며 문장을 늘이는 데도 명수다. 여러모로 자신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다..^^;; (문장이 늘어나면 고료가 올라가니까...)



개인적으로 일본 추리소설사에 남을 만한 역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로테스크한 사지 절단 등에 비위가 상할 독자도 많이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 100페이지가 주는 그 압도적인 처절함(?)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분명 교고쿠 나츠히코가 현대 일본 추리소설의 한 정점에 올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작이다.



지금도 나의 눈에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추젠지 아키히코가 인간과 귀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요괴 '망량'을 퇴치하기 위해 출진하는 장면이 보이는 듯 하다. 허름한 고서점 주인이자 매사 시무룩한 수다쟁이가 인간의 마음 속에 잠복해 있는 요괴를 퇴치하는,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음양사로 변신하는 장면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에 강한 흥분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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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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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덴마크 소설이다. 덴마크를 비롯한 북구 유럽은 분명 유럽이면서도 어쩐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고, 또 괜시리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많이 든다. 전에 북구 유럽 신화를 다룬 책에서, 북유럽 신화의 결말은 모든 신들이 죽고, 세상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암울한 내용이라는 걸 읽은 바 있다. 북구 특유의 추위와 쓸쓸함, 어두움이 신화에도 그런 어두운 색채를 가미시키게 한 요인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덴마크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작품도 결말은 어두운 면이 강하게 보인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역시 절대로 가볍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읽는내내 끝없는 우울한 정조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읽느라 무척 힘들었던 작품이다. 거의 3주 가까이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이 형편없어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은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하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다만 추리소설로 분류되고 있지만 추리물의 요소로만 보자면 평균 정도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그린란드 원주민과 덴마크인의 혼혈인, 스밀라 야스페르센이라는 여성이 자신과 나이를 떠나 깊이 교감하던 이사야라는 소년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쳐낸다는 내용이다. 금방 실체를 드러날 것 같던 비밀은 덴마크의 도시와 북극해를 항해하는 배를 거쳐, 그린란드의 거대한 빙산에서야 마침내 밝혀진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선명한 이미지로 가득찬 문장들이 작품 내내 계속된다. 종래의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순문학(애매한 용어이지만 그냥 사용합니다.)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문장에 익숙해지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얼음은 아름다움 속에서 창조되었다. 10월의 어느 날에는 네 시간 만에 30도가 떨어지고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하다. 바다는 천지 창조의 경이를 반영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구름과 바다는 묵직한 잿빛 비단 커튼 속으로 함께 미끄러져 간다. 물은 끈적끈적해지고 야생 딸기로 만든 술처럼 분홍빛으로 물든다. 서리 연기로 된 푸른 안개는 수면 위에서 떨어져나와 거울을 가로질러 간다. 어두운 바다에서부터 나와 위로 올라오는 냉기는 이제 장미 정원, 소금과 언 물방울로 형성된 얼음꽃의 하얀 담요를 끌어낸다."

 

이 문장은 북극해가 얼어버리는 장관을 스밀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마치 시같은 느낌을 주는 어휘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데, 이런 멋부린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홀려버리실테고, 직접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작품 내내 멋진 문장을 선보이다 보니 조금 물리기도 하고, 또 너무 과도하게 사용될 때가 많다. 또 한 번의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보면 추위 속에서 사람의 숨결-8도 미만의 공기 중에서 형성되는 차갑게 식어버린 물방울의 베일-은 단순히 입에서부터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따뜻한 피를 가진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전면적이고도 구조적인 변형이며, 최소한이지만 확정적인 온도의 이동이 이루어내는 아우라다."

 

이 문장은 원자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의 입김에 대한 스밀라의 생각일 뿐이다. 뭐가 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매번 이런 식이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읽기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올 여름에 나온 추리소설 중에 비교적 성공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한 번 출간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 번 추측해 보았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작품이 순문학(?)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은 멋 들어진 문장을 빼고도, 이 작품은 덴마크의 비열한 거리와 원시적인 생명력을 간직한 그린란드의 빙산을 대비하며 현대 사회와 그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비판 등의 순문학적 요소가 추리소설 애호가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호감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적은 추리소설 애호가만 가지고는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약간 가슴아픈 진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스밀라라는 개성강한 여성이 여성 독자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책은 여성분들이 더 많이 사고 많이 보는 편이니까 여성분들이 좋아한다면 그만큼 더성공하기 쉬운 것 같다. 스밀라는 작은 키에 깡말랐지만 정말로 터프하다.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는 남자들을 맞아, 온몸이 깨져가면서도 진실을 캐나가는 스밀라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정말 처절하게 망가지며 싸워나간다..)

 

물론 스밀라의 모습에 터프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에 대한 유사모정에 가까운 애정, 사건을 같이 수사하는 수리공 페터에게 느끼는 사랑 같은 감정들도 섬세하게 묘사되는 편이다. 그러나 나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스밀라라는 여성의 매력에 100%공감하지는 못하겠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나에게 있어 신경질적이고 이해 안 되는 여성의 전형일 뿐이었다.

 

작품은 총3장(도시-바다-얼음)으로 이뤄져 있는데,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3장 '얼음'편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간 고생스레 주워담았던 모든 단서들이 하나로 합쳐져 진실이 밝혀지는 데, 어느 정도는 고통스럽게 읽었던 1,2장의 고생을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2장 '바다'가 특히 읽기 어려운 데, 거대한 배를 탄 스밀라가 배의 비밀을 조사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작가 특유의 집요하고 꼼꼼한 묘사 덕분인 지, 배의 세부 구조 설명이 너무 많다. 내가 무식해서겠지만 상갑판, 하갑판, 마스트, 이물, 고물, 승강대 등의 배 내부 구조물을 이리저리 오가며 활약을 벌이는 스밀라의 동선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배 내부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내용 상 동선이 정확이 그려졌으면 더 재미있을 부분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번역을 맡으신 분과 담당 편집자가 얼마나 고생하셨을 줄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야말로 만만찮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멋진 표지와 고급스런 외양의 책 외양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모쪼록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계기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좋은 작품들이 속속 발간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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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 프로농구 NBA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몇년 전 은퇴한 하킴 올라주원이라는 센터가 있습니다. 너무 잘해서 다른 팀 선수가 이런 말을 했죠. '하킴 올라주원은 하킴과 올라주원, 두 사람이라 그를 막으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도 그런 말이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히.가.시.노 게.이.고, 일곱 사람이라 그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다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20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55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써낸 것도 놀라운데, 작품의 수준이 비교적 고르게 뛰어나고, 소재가 작품마다 달라진다는 것은 정말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만 봐도 <백야행>이 60년대부터 현재까지 두 남녀의 비밀스런 삶의 궤적과 함께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통과해온 사람들에게 바치는 가을같이 쓸쓸한 만가라면, <비밀>은 딸과 부모의 영혼이 바뀌며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고, <짝사랑>은 남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쓴 경쾌한 유괴 이야기였구요. 곧 출간될 <호숫가 살인사건>은 입시 지옥, 불법 과외 등으로 얼룩진 현대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일본 아마존 서평에 어느 독자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다양한 소재라도 자유자재로 요리할 수 있는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초기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분히 본격 작가였습니다. 설명용 그림이나 도면, 지도 등도 꼭 들어갔었죠. 데뷔작인 <방과후>는 학원 본격 미스터리였다고 합니다. 이게 인기를 끌어 초기에는 학교를 무대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경쾌한 학원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웠답니다. 본격 작가로도 뛰어났지만 그는 작풍을 드라마틱하게 바꿉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본격 일변도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게 된 거죠. 그러나 본인은 자신은 미스터리 작가임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가 쓰는 모든 작품은 미스터리 터치가 절묘하게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신> 역시 뇌이식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분위기가 잘 살아 있습니다. 평범하고 소심한 나루세 준이치라는 청년이 강도를 만나 머리에 총상을 입습니다. 강도의 이름은 교고쿠 šœ스케인데 어머니를 죽게 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 강도짓을 하다가 준이치를 쏘고 만 거죠...경찰에게 쫓기던 교고쿠는 자살을 하고요. 머리에 총을 맞은 나루세는 뇌이식을 하고 간신히 살아나지만 자신이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그림은 제쳐두고 음악을 좋아하게 됩니다. 참고로 자살한 강도, 교고쿠는 음악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스포일러는 아닐 겁니다. 이 작품은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지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서요...)

무엇보다 나루세에게 최악의 변화는 그렇게 사랑하던 애인 메구미의 매력 포인트였던 주근깨가 미워 보인다는 거였습니다. 또한 나루세에게는 웬지 모를 폭력성도 나타납니다. 소심하고 심약했던 그가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릅니다. 모든 게 뇌이식 때문일까요? 그는 목숨은 부지하게 되었지만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요? 아니, 뇌가 바뀐 나루세를 나루세라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그런 뇌이식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인 엄청난 가독성으로 인해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단숨에 읽힙니다. 점점 소름끼치게 변해가는 나루세의 변화를 쫓아가는 서스펜스도 숨이 막히고, 결말까지 주욱 이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작가의 작품 중 <백야행>이나 <비밀>같은 최일선의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2% 부족한 결말이 약간 아쉽고, 이야기 전개도 비교적 예측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뇌이식으로 인해 변해가는 사나이라는 주된 소재가 이미 낡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었거든요. 다만 그 당시에는 대단히 신선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과학을 좋아한다는 거죠. 이공계 작가답습니다..^^;;
빙의같은 추상적인 소재도, 성정체성 장애 같은 정신의학적 소재도, 뇌이식이나 인간 복제같은 소재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작가는 노력합니다. <변신>도 그같은 점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점이 많은 작가지만 제가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에 웬지 모를 애잔함이 감돌고 있다는 거죠. <백야행>, <비밀>의 전설적인 애절한 감동을 주는 마무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변신>의 마무리도 감동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여기서 광고를 약간 하자면 <호숫가 살인사건>의 마무리도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저는 울었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실력과 재능, 재미를 겸비한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은 정말 반길만한 일입니다.
저도 2권을 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들을 더 내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유감이라면 한국어판 서문과 사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진을 자기 책에다 절대로 박지 않는다네요. 또한 소설 이외의 글을 쓰는 걸 싫어해 서문도 안써준다고 합니다. 뭐 그 시간에 소설을 한 자 더 써주는 게 저같은 팬에게는 더 반갑지만요.^^;;
이 남자 조금 고집불통에 딱딱할 듯 하지만, 그래도 웬지 뚝심 있고 멋져 보이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

평점: ★★★1/2

P/S: 이 작품은 <HEAD>라는 만화로도 나왔습니다. 전4권인데 내용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저는 다행히 3권 볼 때,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기서 접었습니다...^^;; 그런데 만화로 이미 다 보신 분들도 상당히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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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9-0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호숫가 살인사건, 얼마 전에 이미 나왔지요. (곧 출간될.. 이라고 쓰셔서.. ^^;;)
그리고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가가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해도, 그걸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건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

jedai2000 2005-09-2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점에서는 출간이 안 된 상태여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나 카페 활동만 열심히 했는데, 이제 서재 신경도 좀 써야겠네요. 저는 제 글 읽어주시는 분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한 분이라도 있다면 열심히 해야겠네요..^^;;

상복의랑데뷰 2005-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혁진님 축하드립니다~^^

jedai2000 2005-10-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거친아이 2005-11-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을 영화로 봤는데...이 분이 원작자시군요...첨 알았답니다...흥미로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