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띄어쓰기에 조심하여 '법의 관'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스카페타 시리즈는 한국에 약 6,7권 정도가 출간된 바 있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묻혀 버린 아픔이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도 전에 출간된 작품으로 2권 정도를 읽은 바 있지만 첫 작품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용어부터 생소한 '법의관'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현장 단서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직업을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아니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CSI 과학 수사대>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CSI 처럼 이 작품에도 DNA감별기, 지문 판독용 레이저 등의 전문 장비가 나와 독자의 흥미를 돋우나 독자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출간 연도는 1990년, 분명히 CSI보다 먼저 나온 시리즈라는 것이다. CSI의 성공을 등에 업은 모방적으로 오해하는 일은 행여 없길 바란다.

 

 작품의 도입부는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시에서 벌어지는 연쇄 강간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끔찍한 방법으로 여자를 교살한 후 강간까지 하는 악랄한 악당이 4명째의 희생자를 찾아낸 것이다. 리치몬드시의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박사는 자신도 여성으로서 범인에게 분노를 느끼고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범인은 지능이 매우 뛰어난 놈이라 쉽사리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 다만 현장에 남아 있는 건 정체모를 반짝이는 가루 분말과 들척지근한 냄새뿐....

 

 보시다시피 시작부터 흥미롭다. 스카페타 박사의 투철한 직업 의식과 여성으로서의 피해자와의 동질감, 범인의 악랄함 등이 시작부터 빠르게 제시되어 작품의 불을 당긴다. 또 스카페타 박사의 주변 인물들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과학 수사를 담당하는 스카페타 박사와 한 팀을 이루는 두 명의 남자, 냉철한 프로파일러 벤슨 웨슬리, 현장 수사를 담당하는 경사 피트 마리노, 게다가 스카페타의 조카인 천재 꼬마 루시, 범죄 심리학자 스파이로 박사등 한 사람도 대충 묘사하지 않는다. 작가는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주인공과 등장 인물들의 성격, 행동, 심리 등을 묘사한다. 특히 거칠고 전형적인 형사 타입인 피트 마리노와 사사건건 반목하던 스카페타가 화해(?)하는 장면이나,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걷도는 루시와 스카페타의 새로운 유사-모녀 관계 형성 등 인물들간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에 작가는 힘을 집중한다.

 

 이는 1장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2장에서 추격이 벌어지고 3장에서 액션이 벌어지는...기계적인 게임같은 스릴러가 아닌 작품에 문학적인 향취를 가져다 주는 좋은 장치이다. 작가의 이력을 읽어보니 흥미롭다. 기자와 컴퓨터 분석관을 거쳐 실제로 검시에도 600회 이상 참여했다고 한다. 기자 생활을 한 덕분이지 글에는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감이 있고, 컴퓨터 분석관 생활을 한 덕분이지 작품에 컴퓨터 해킹에 관한 지식을 풀어 놓기도 한다...(개인적으로는 컴퓨터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라 이 부분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검시 장면에도 물론 사실감이 보인다.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500쪽 가까운 페이지지만 하루만에 모두 읽었다. 스릴러로써 최후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전개도 좋았고, 분명 작품 중간 중간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단서가 제시되어 추리물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여성인 스카페타를 압박하는 남성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입증하는 스카페타의 이야기는 여성들이 감정 이입하기도 좋을 듯 하다. 특히 요즘 강간같은 강력 성범죄가 만연한 세상에 스카페타 같은 법의관 우리 나라에는 없나 생각하게 만든다.

 

 책은 아주 가벼워 누워서 보기에 좋았다..-_-; 디자인도 이쁘고...개인적으로 여전히 제목은 <검시관>이 더 낫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자 후기에 보니 제목을 <법의관>으로 정한 이유가 충실히 설명되어 있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다음 작이 궁금한 멋진 시리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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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5-10-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블하우스와 관계없기 전에 쓴 글이라 올립니다.

panda78 2005-11-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다 두 권으로 나와서 아쉬워요.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는 다 한 권으로 나왔는데...
8권부터는 사 볼 예정인데,.. 쩝. 분권만 아니었더라도 더 기뻤을 텐데 말이에요. ^^;

jedai2000 2005-11-0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분권을 싫어하시는 분이 많죠.^^;;
유감스럽지만 스카페타나 링컨 라임은 계속 분권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 못 드려서 죄송하네요.

시리즈 8편이 인쇄, 제작 중입니다. 9편은 내년 초쯤 나올 거예요. 저도 9편까지 봤는데, 9편은 스카페타 최고작 중 하나있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panda78 2005-11-0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계속 두 권으로 나오다가 한 권으로 나오긴 어렵겠죠. ^^; 투정 좀 해 봤사와요.
으흐흐- 9편 얼른 읽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는데요? ^^ 기대기대-

jedai2000 2005-11-0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저도 사는 사람 입장에서 분권은 싫죠. 여기 알라딘 님들은 특히 책을 엄청 많이 사시니까 부담도 많이 되실테고...저도 <밀약>사고 피눈물 흘렸어요.
그런데 또 사람마다 의견이 다 틀려서, 장사하신다고 밝히는 어떤 독자분께서는 본인이 연세도 있으시고 또 무거운 책 읽으며 장사하면서 보기 버거웠는데, 분권해 줘 고맙다고 쓰신 분도 있구요. 참, 책이라는 게 사람마다 욕구가 다 다르니 만들기 어려운 것 같아요.

8권 <죽음의 닥터>는 오늘 가제본한 걸 받았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어 곧 제작 공정을 끝마치고 출간될 예정입니다. 재미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9편이 더 잼있지만요..^^;)

panda78 2005-11-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기대할게요! ^^
 
마크스의 산 I
다카무라 카오루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랫동안 힘들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3시 탄력받아서 읽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라구요. 아버님 말씀이 아직까지 안자고 뭐하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성공한다 하시며 훈계를 하시더군요. 새벽 3시에..-_-;;;  냉큼 불끄고 20분쯤 자는 척 하다가 다시 불키고 읽어야지 했는데 깜빡 잠들었습니다. -_-;;;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100여쪽을 남겨두고요.  아침 8시 일어나자마자 책을 찾고 다시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저는 아침 한나절 멍해 있어야 했죠...



생각해 보면 참 읽는데 오래 걸린 책이었습니다. 얼추 20일쯤 걸린 것 같아요. 저는 탄력받으면 가스에 스파크가 일듯이 800쪽짜리 책도 하루에 다 읽는데 읽다가 막혀서 점화가 안되는 책은 정말 오래 걸리거든요. 지금까지 가장 힘들게 읽은 책은 크리스타아나 브랜드의 <제제벨의 죽음>..-_-;



이 책의 초반에는 일본의 미나미 알프스(알프스는 스위스에 있는 거 아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저도 그랬습니다. 모든 흉내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스위스의 알프스를 본떠서 이름 붙인 듯 합니다.) 의 산들에 대한 지리한 묘사가 계속됩니다. 그 부분이 한 50쪽쯤 계속되는데 저는 거기를 넘어가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그 '산'이더군요. 주인공인 산의 모습을 끈질기게 묘사해낸 작가의 끈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작품에는 제 1장 <발아> 부분에서 3가지의 사건이 제시됩니다. 1976년도의 일가족 승용차 배기 가스 자살 사건 (하지만 사내 아이 한명은 살아나죠...)과 산 속의 노동자가 술에 취해 등산객을 때려 죽이는 사건...1988년 백골의 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바로 3가지 사건들입니다.



이 세 사건들은 향후 20년에 걸쳐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커다란 운명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세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절묘한 구성이 돋보이고,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로 얽히게 되고, 거기서 파생되는 인생의 우연성, 아이러니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건은 1991년 현재로 돌아와 정신병에 고통받는 청년이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무려 20살 이상이나 나이 많은 사회의 엘리트들을 연쇄적으로 죽이면서 시작합니다. 왜 청년은 누가 봐도 무관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을까요? 이게 바로 이 책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우리의 수사 1과 7계 소속 고다 주임과 다른 뛰어난 형사들의 최대 고민거리도 바로 이것이죠.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과의 연결고리, 과거의 피해자와 가해자, 현재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고다 주임은 분투합니다. 최종장에 이르러 드러나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독자는 그저 아연해질 뿐이죠...



이 작품은 제가 여지껏 읽어본 경찰 수사물 중에 최고였습니다. 초반에 범인이 노출되는 약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수사 과정의 정밀한 묘사와 현실감 넘치는 전개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고다는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 위에서 치이고 밑에서 올라오는 여러 동료 경찰들과의 알력을 경험하는데 아주 실감납니다. 기존의 경찰물이 무조건적인 동지 의식과 절대적인 우정이었다면 이 작품의 형사들은 동료를 기만하고 정보를 먼저 얻으려고 설치기도 하고, 공을 다투기도 하고, 장기화된 수사에 신경질도 내면서 드잡이질도 하는 등 아주 현실적입니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에는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남편이 경찰이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정교할 수가 없을텐데 말예요. 현대 일본의 정확한 경찰 직급명부터 수사반 편성,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하는 일 구분 등 도처에서 엄청난 취재를 했음을 증명하는 장면들이 튀어나옵니다. 이 정교하고 세밀한 현대 일본의 경찰 수사 과정 묘사만 봐도 이 책은 걸작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에서 시작되고 산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니만큼 이 작품은 산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산의 장중함과 모든 걸 앗아가는 산의 비정함, 산의 적막함, 외로움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산의 넉넉함,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산의 잔인함과 용서할 줄 아는 산의 관용...작품의 모든 부분에 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분명 현대 일본 추리 소설의 걸작입니다. 경찰 소설 계통에서는 따라올 작품이 없을 듯 보입니다. 고다 주임과 다른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동료 형사들을 한번 만나보시길...머리 속에는 산의 이미지를 가득 담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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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하기 힘든 거 같던데... 아, 무지하게 읽고 싶어졌습니다. 남아 있는 곳 없는지 찾아봐야겠네요. ^^;

jedai2000 2005-10-2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작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하시길...혹시 헌책방에서라도 발견하면 구해드리겠습니다..^^;;

panda78 2005-11-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도 잘 안 나오더라구요....흙흙.. 석양에 빛나는 감도 읽고 싶은데..

jedai2000 2005-11-0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읽어보셔야 하는 책인데 답답하네요. <레이디 조커> 포함해서 다시 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독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 이성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의 제 2작입니다. 전작 <소돔의 성자>는 경찰만 골라 총기로 살인을 하는 범인과 대결했던 사메지마, 전작에서 엄청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 비하면 전작의 위기는 위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사메지마는 최대의 위기를 만납니다. 그 위기의 정체는 바로 '독원숭이'...그는 대만의 프로페셔널 킬러로 한번 노린 사람은 반드시 죽이는 철저한 프로중의 프로입니다. 군부대 출신으로 사격, 폭파에 능하고 무술에도 달인이라 발치기 한번에 사람의 두개골을 박살내어 죽입니다. 참고로 그가 배운 무술은 바로 '태권도!!!'...한국의 무술이 살인 무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뭐 그만큼 위력이 있다는걸 반증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독원숭이는 대만에서 자신을 배신하고 자기 애인을 죽이고, 일본으로 도피한 대만 암흑가 보스를 처치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합니다. 대만 암흑가 보스 예웨이는 사업 파트너 관계인 일본의 야쿠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한편 독원숭이를 쫓아 일본으로 건너 온 대만의 민완 형사 '곽영민'...이제 독원숭이는 이중의 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분명 작가가 많은 취재를 했으리라 보여집니다. 대만과 일본 암흑가의 새로운 밀월관계나 총기, 마약 밀수 루트같은 부분은 작가의 100% 상상력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대 일본 범죄의 신경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듯 합니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독원숭이와 그를 추격하는 사메지마 형사의 대결 구도로 이루어져 있지만 작가가 방점을 찍는 인물은 역시 독원숭이입니다. 그의 철저한 프로 근성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놀라운 능력,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희생 등 독원숭이의 마력적 매력은 설명하기 힘듭니다. 저도 끝까지 독원숭이를 응원했답니다.



제가 최근 읽어본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하드 보일드의 거장답게 문체가 날렵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메자마와 곽영민, 쇼, 독원숭이, 예웨이 등의 비현실적일 것 같은 캐릭터도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습니다.



언제나 홀로 범죄와 상대하는 고독한 한 마리 상어, 사메지마의 경찰관, 이상적인 경찰상에 대해 토로하는 부분도 감동적이구요. 특히 마지막 신주쿠 교엔이라는 공원에서의 대결 장면은 엄청납니다. 클라이맥스답게 긴박감과 박력이 돋보입니다. 참고로 신주쿠 교엔의 지도는 맨 뒷 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도가 뒤에 있는 줄 모르고 봤는데, 머리 속에 그림이 잘 안 그려지더군요. 앞으로 보실 분들은 지도 염두에 두시고...



절대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정말 놀랍도록 재미있습니다. 제가 읽어본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중 한편이었습니다.

절판되었지만 구할 수 있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보시길...



마지막으로 독원숭이 대사 중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

[ 노바디 캔 킬 미...사람은 어느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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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하세 세이슈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요즘은 저희 출판사에서 작업중인 책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지만 집에 와서는 개인적으로 쌓아놓은 책들을 보려고 정신없습니다. 한 80여권 되는 거 같습니다. 어제 읽은 책이 바로 <불야성>입니다. 자정에 시작해 새벽 2시까지 미친듯이 읽어내려갔지요. 더 읽으면 출근에 지장있는데, 머리 속에서는 정지 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멈출 수가 없더군요. 결국 오늘 지하철,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다 읽었습니다.



제목인 <불야성>은 중국집틱하기도 하고, 룸살롱틱하기도 하네요..ㅋㅋ
사실은 환락의 불로 타오르는 도쿄 가부키쵸를 상징합니다. 주인공은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 류젠이(다카하시 겐이치)...



이 사람은 장물 취급을 하는 장물아비(세상에 좋은 아비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장물아비를...함진아비도 있고, 싸울아비도 있는데 말예여..-_-;)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음란한 어머니가 가출하자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되버린 그는 가부키쵸의 대만계 대부 양왜이안의 원조를  받으며 성장하지만, 대만 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상징인 대만어를 배울 기회는 갖지 못합니다.



이 양왜이안이라는 노인은 철저하게 상대를 이용해 먹는 인물로 협잡과 술책의 대가입니다. 그에게 정통 대만 핏줄이 아닌 류젠이는 이용의 대상이지 가족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류젠이는 어릴 때, 양왜이안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버림받고 맙니다. 고독한 하이에나가 되버린 그는 지옥같은 가부키쵸에서 단지 살아 남기 위해 남을 등쳐먹고, 속이는 위악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류젠이에게는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짐덩어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우휴춘...역시 혼혈아인 그는, 고등학교 때 자신을 혼혈아라고 깔보던 학생을 의자로 때려죽인 다혈질의 인간 쓰레기입니다. 류젠이의 보디 가드 노릇을 하던 그는 가부키쵸를 지배하고 있는 상하이 이민자 보스, 유엔천쿠이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자를 살해하고 도피합니다. 어느 날 우휴춘이 다시 돌아오고, 류젠이는 유엔천쿠이의 호출을 받습니다.
"3일안에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청천벽력같은 말에 오한이 솓는데, 그에게 위기는 계속 다가옵니다. 유엔천쿠이를 제거하고 싶어하는 북경쪽 보스 쯔이후도 류젠이를 협박합니다. 이 쯔이후는 잔인하기가 아이도 서슴없이 죽일 정도입니다. 가부키쵸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3개의 최대 계파의 보스들인 양왜이안과 유엔천쿠이와 쯔이후에게 모두 표적이 되어버린 그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럴 때 울려퍼지는 우휴춘의 애인이라는 여자의 다급한 전화...



저는 이 애인이 우휴춘을 살려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도 걸작입니다. 우휴춘이 도박장에서 강탈한 돈을 들고 튄 그녀, 샤오리엔은 우휴춘을 팔테니, 그를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_-;; 도대체 착한 사람, 정상적인 사람은 안나오는 책인가요?



네...안나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 인물들은 가부키쵸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과 폭력, 돈과 술책으로 상대를 제거하는데만 눈알이 벌개진 인간 군상들입니다. 주인공이라는 류젠이는 19살때 두 사람을 죽이며, 한 남자를 강간했습니다. 등장하는 살인 청부 업자는 <레옹>처럼 인본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칼로 살점을 저미며 흥분하는 변태입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만계 갱의 총보스는 배신자의 자식을, 배신자의 손으로 죽이게 한 다음 인육을 먹였다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간 백정들같은 야수들 속에서, 혼혈아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혈혈단신이 되버린 류젠이가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이 책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혼혈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작가는 류젠이의 입을 통해 차별받는 일본내 혼혈아의 비참한 처지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대만계로부터, 중국계로부터, 일본계로부터 모두 배척받는 류젠이는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거죠...



고독한 하이에나 류젠이는 압도적인 적들의 폭력에 대항해 순전히 머리(라기보다는 잔머리)와 계략으로 상대해 나갑니다. 친구도 자신을 형처럼 따르는 동생도,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한 여인도 때에 따라서는 거침없이 배반합니다. 도저히 정이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차별받고, 천대받고 개처럼 헐떡이며 살아온 그의 지난 날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단 3일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는 에너지로 가득차 폭발할 듯 합니다. 3일이라는 데드라인이 주는 긴장감과 총격전의 넘치는 박력, 치밀한 암투가 주는 짜릿한 쾌감 등이 정신없이 섞여 돌아가는 불꽃같은 작품입니다. 앞에서는 불처럼 뜨거운 열기가, 뒤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드는 그런 정서적인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잔인하고, 섹스 장면으로 도배된 책이지만 싸구려 소설은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의 정글, 가부키쵸의 생태학에 관한 보고서로 보셔야 할 책입니다. 일단 재미면에서는 확실하지만,  지나치게 '쏀' 장면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호불호가 갈릴 책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인 하세 세이슈는 홍콩 배우 주성치를 좋아해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써서 일본식으로 읽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성치식의 쌈마이 정서가 아주 생활화된 사람인가 봅니다..ㅋㅋ 이 책의 속편 <진혼가>도 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보기는 힘들겠죠..-_-;; 일본 하드보일드 계의 거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일본은 사회파, 하드보일드가 여전히 추리 소설계를 이끌어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습니다...



책 상태는 조금 엉망입니다. 오, 탈자도 많고요. 번역은 큰 불편없이 볼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역주나 고유명사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불친절한 책입니다. 아마 번역자가 1차 번역을 끝낸 초교 상태에서 바로 출간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전문적인(?)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ㅋㅋ)



예를 들어 '리우만'이라는 말과 '후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설명은 커녕 괄호치고 한자로 넣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참고로 '리우만'은 유민- 떠돌아 다니는 사람(대충 이민자로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후젠'은 복건성 사람을 말한답니다.



현대 일본 하드 보일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책이었습니다. 비슷한 대만 출신 킬러가 나오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독원숭이>가 킬러 독원숭이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을 강조하는 액션 오락물이라면 이 작품은 그보다는 조금 더 리얼하고, 조금 더 숨막힙니다. (<독원숭이>도 대단한 작품입니다.) 독자의 예측을 완벽하게 빗나가는 전개와 충격적인 마무리로 인해 여운도 길게 남습니다.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p.s/ 금성무가 류젠이 역을 맡아 영화화되기도 했답니다.



p.s2/ 류젠이가 좋아하는 노래로 쯔이젠의 '이유스요우'라는 곡이 나오는데, 조선적 출신 록커 최건의 '일무소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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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2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봐야 하는데 에고 ㅠ.ㅠ

jedai2000 2005-10-2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세요. 그야말로 죽여주는 작품입니다.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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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003년 영화 <미스틱 리버>의 동명 원작 소설로 유명한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이다. 498페이지의 꽤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는 책으로, <식스 센스>에 필적한다는 그 놀랍다는 반전으로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그런데 본인은 운이 없어서일까? 우연한 기회에 반전을 듣고 말았다. T.T 그래서 자연히 책에 대한 관심이 시들어져갔고, 이 책이 작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굴 때에도 그저 방관만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올해 생일 선물로 이 책을 받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가 진지한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됐다.

 

제목인 <살인자들의 섬>과는 무관하게 영어 원제는 이다. 셔터라고 여닫는 셔터는 아니고 그냥 섬 이름이 셔터 섬이다. 몇 년 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영화가 나왔었다. 최근엔 <마파도>라는 섬이 화제고...본인도 섬을 좋아해 안면도,대부도,월미도,송도(-_-;;)등 갖은 섬을 다녀봤지만 셔터 섬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 

 

1954년, 셔터 섬에는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정신 병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여자는 자신의 아들, 딸을 익사시킨 후 그들을 다시 꺼내 식탁에 앉혀 놓고 아침 식사를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환자들이 모여 있는 셔터 섬에 두 남자가 들어온다.

 

연방 보안관 테디 대니얼스와 척 아울이 그들인데, 셔터 섬에 수용되어 있던 여자 환자 한 명이 도망쳤다는 제보가 들어와 수사를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이 조사해 보니, 그녀는 20명도 넘는 사람에게서 도처에 감시를 받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투명약이라도 바르지 않고서야...

다만 불가사의하게 실종된 그녀는 <4의 법칙>이라는 기묘한 암호를 남겼을 뿐이다.

 

한편, 테디 대니얼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셔터 섬에 수감된 정신병자 앤드류 레이디스를 찾아내 죽이려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테디의 수색은 셔터 섬에 갑작스레 찾아온 폭풍으로 정신병자들이 몇 명 탈출해 혼란을 일으키면서 난항에 빠진다. 그 뿐이 아니다.  

 

병자와 간수,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셔터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뇌까린다. 테디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심지어 파트너마저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과연 셔터 섬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대강의 줄거리였다. 얼핏 봐도 대단히 흥미로운 얼개를 가지고 있다. 작가인 데니스 루헤인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폭풍우치는 셔터 섬이라는 흥미로운 배경, 주인공 테디의 심리 묘사나 대화 등에서 보여지는 뛰어난 문장력을 비벼 넣었다.

 

빛나는 보석같은 작품이다. 긴 페이지 내내 독자의 시선을 단연 제압하며, 책을 읽는 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데니스 루헤인에게서 제임스 엘로이(,<블랙 다알리아>)같은 거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애너그램(알파벳 철자를 바꿔치는 장난이랄까..)을 이용한 트릭(?)도 흥미로웠고, 이미 알고 봤지만 반전이 밝혀지는 장면의 긴장감은 폭발할 듯 했다. 다만 반전은 생각보다는 눈치채기 쉬운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이런 식의 반전을 이용하는 영화, 소설 등이 너무 많이 나와 독자들이 머리를 조금만 굴려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깜짝 놀래키는, 뒤통수치는 반전이 아니다. 주인공이 느껴야 했던 절절한 고독과 상처, 기억들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후벼 판다. 주인공의 고통에 깊게 감정 이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절망, 슬픔, 회한, 연민 등의 진실한 인간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견의 경험은 고통스럽겠지만, 한번쯤은 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미있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책을 찾는 독자라면 주저말고 집어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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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10-2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몇년간 읽은 추리소설중 최고로 치는 작품입니다. ^^
근데 리뷰가 '쏟아'지는 군요.

jedai2000 2005-10-2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작품이죠. 이 작가의 작품이 더 나온다네요. 그간 써놨던 걸 모아놓고 있지요. 2차 업뎃이 있을 예정인데, 근데 사진이 다 짤리는군요. 한가할 때 사진 전부 복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