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 추리소설의 전설 <옥문도>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1986년 문예춘추가 선정한 일본 미스터리 100선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걸작입니다. 아마 2006년에 다시 선정해도 1위는 변함이 없을 것 같네요. 우리에게는 만화 <김전일>에 등장하는 소년 탐정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명탐정이신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의 바로 그 할아버지로 익숙한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작품이구요.

 

저주받은 조손 긴다이치 코스케와 김전일...두 사람이 살면서 만난 시체만 합쳐도 옥문도의 주민 수 이상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ㅋㅋ

야심차게 출발한 만화 김전일이 1940년대에 첫 등장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라는 설정을 사용한 것만 봐도 일본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탐정 쯤 되겠네요..^^;;

 

데뷔작인 <혼징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낸 긴다이치 코스케...그런 그도 2차 대전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 참전을 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는 귀국선에서 죽어가는 전우에게 부탁을 받습니다. 전우의 고향인 옥문도로 돌아가 그의 세 여동생을 구해달라는 거죠. 옥문도에 도착한 코스케는 20세기에도 전통적인 봉건 세력의 지배를 받을 정도로 시간을 잊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우는 옥문도의 지배 세력인 선주의 손자였습니다. 어촌 마을이다 보니 배를 가진 선주가 거의 왕인거죠...그러나 지배자인 선주는 죽었고, 그의 아들인 요사마츠는 미치광이가 되어 갇혀 지냅니다. 손자가 유일한 희망이나 어떡합니까...그는 긴다이치 품에서 죽었는데. 이제 남은 사람은 전우의 여동생인 세 명의 손녀딸뿐...그런데 이 손녀딸들이 걸작입니다. 묘하게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세 명 다 대단한 미인들이지만 나사가 풀렸다고나 할까요..-_-;; 뭔가 이상합니다. 자신들의 아버지인 미치광이를 나무로 쿡쿡 찌르며 키득거리며 즐기기 일쑵니다. 바보들이라기 보다는 감정을 느끼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난 듯한 여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가문의 후계자인 세 명의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긴다이치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막내 동생을 필두로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갑니다. 옥문도를 지배하는 선주 본가에 도전하는 선주 분가의 짓일까요? 옥문도의 참극은 결국 세 명의 여동생들이 모두 죽으면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개개의 살인들이 또한 기묘합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막내, 거대한 범종 속에 들어가 죽어 있는 둘째, 기도소에서 무녀 복장을 한 채 교살당한 첫째 딸들이 그것입니다.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놀랍게도 탐미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의 특징은 <혼징살인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서양에서 시작된 퍼즐 미스터리에 일본의 전통 문화를 잘 녹여내고, 일본적인 탐미주의를 결합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탐미주의에 저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전술한 대로 작품에 일본의 문화를 잘 섞어 넣습니다. <혼징 살인사건>이 일본의 전통 가옥을 이용한 트릭과 해결을 취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일본의 전통 단가 '하이쿠'를 비벼 넣었습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로서는 흥미롭게 기능합니다.

 

세 번의 살인에는 각각 다른 트릭들이 사용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두 번째에서 무릎을 쳤지요. 다만 세 번째 살인에는 특별한 트릭보다는 범인의 정체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순수하게 퍼즐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범죄의 동기에 관해서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군요. 작가도 그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작품의 배경을 너무도 봉건적인 곳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점은 긴다이치 역시 김전일처럼 뛰어난 추리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우가 부탁한 세 여동생 중 단 한 명을 못 구하고 퍼펙트하게 실패한 긴다이치. 범인만 맞추면 뭐합니까...사람을 구해야지..ㅋㅋ

신은 긴다이치와 김전일에게 뛰어난 추리력을 주셨지만 아쉽게도 빨리 푸는 능력은 주지 않으신 듯 합니다..^^;;;

 

대단히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올해 많은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오기는 하지만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황금기 작품들의 출간이 적어 아쉬웠는데 시원하게 해갈을 해주네요. 모쪼록 <옥문도>가 잘되서 다른 긴다이치 시리즈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판형 및 표지 디자인이 대단히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어디를 가던지 들고 다녔답니다..ㅋㅋ 꼼꼼한 역주도 만족스러웠구요. 기획, 편집하신 분의 해설도 멋졌답니다. 이래저래 잘 만든 추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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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j002 2005-10-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제 마음에 꼭..저도 얼마전에 재밌게 읽었어요..정통 추리소설이 역시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책도 예쁘게 디자인되어 역주에 나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책장에 진열되었으면 좋겠어요..

jedai2000 2005-10-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두 작품이 더 나올 예정입니다. 담당 편집자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니 확실합니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이 나온답니다. <옥문도> 못지 않은 걸작들이랍니다.

panda78 2005-11-0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두 개 더 나온다구요?! 기대기대됩니다! ^^ 특히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은 이야기만 많이 들었던지라 더욱 기대가... 두 권 다 얼른 나오면 좋겠네요. 내년 여름에 맞춰서 나오려나요? ^^a

jedai2000 2005-11-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여름에 맞추시려고 노력하시겠죠..^^;; 작업하시는 편집자 분께서 국내에 내노라하는 추리소설 마니아시라 많이 준비하고 계세요.

윌리엄 아이리쉬 단편집, 유명한 논픽션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이 올 겨울에,
내년에는 일본의 크리스티, 니키 에츠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를 하신다네요. 내년에도 추리소설 풍년이죠? ^^;;

panda78 2005-11-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 아이리쉬의 단편집! 이 올 겨울에! @ㅁ@)/ 만쉐이!
정말 올해도 내년도 추리소설 풍년이네요. 기쁩니다.^ㅡㅡㅡ^

jedai2000 2005-11-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외에도 아직 밝히기 뭐하지만 여러 곳에서 많이들 준비하고 계시니 안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