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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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오 마이코란 비교적 낯선 작가의 <행복한 식탁>의 띠지 홍보문구는 이렇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읽기 전부터 이 문구에 굉장히 긴장했었다. 이거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야겠구나. 과연, 엄청나게 슬픈 소설이었다.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자살한 아빠로 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오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빚쟁이들에 의해 탄광에 갇혀 일을 하다 진폐증에 걸리고, 엄마는 호스티스가 된다. 주인공인 중학생 사와코는 학교까지 쫓아온 빚쟁이들에게 망신을 당하며 감수성 여린 나이에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고 한다면 전부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살을 기도하다 간신히 살아난 아빠로 인해 분위기가 무거워진 가정, 엄마는 아빠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집을 나가 혼자 산다. 천재인 오빠는 진지하기만 한 아빠가 삶의 커다란 무게로 인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일체의 진지함을 포기하고 설렁설렁 가볍게 모든 걸 대한다. 나 사와코는 중학생 소녀로 아빠의 자살 기도 당시 흘리던 피를 잊지못해 약간의 불안강박증을 얻게 되었다.

 

거의 붕괴 위기에 몰린 이 가족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힘들 때면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음을 깨닫는 따뜻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시기는 어렵겠고,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의 소설이다. 작가 세오 마이코는 현직 중학교 교사라고 하는데, 직업상 중학생 소녀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중학생 사와코가 겪는 일들, 내면 묘사를 그럭저럭 잘 포착하고 있는 것 같다.

 

4편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으로 편안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구미에 제법 맞을 것이다. 간혹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유머도 빈번히 등장하고. 다만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걸맞지 않게, 작가의 문장력은 다소 평범하고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의 글을 보는 듯 했다. 가만히 보면 일본에는 문학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상업적으로는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미시마 유키오상...역량이 살짝 떨어지는 작가라도 수상작이라는 레테르를 둘러 자국과 해외에서 성공적인 세일즈를 하는 일종의 판매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독자들은 많고많은 유수의 수상작들 중에서 옥석을 잘 골라야 하는 피곤한 의무도 지게 된 셈이다.

 

<행복한 식탁>의 네 가지 이야기들에서는 가족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매번 등장한다. 이를테면 꼭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형식일 뿐이다. 뭐 이런 식인데, 그 깨달음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사와코가 퍼뜩 깨닫는 식이다. 사와코는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돈오'의 경지를 깨우쳤는가. 한 마디로 대단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와코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진급하며 끝나는데, 내가 알기로 일본에서 후속편이 나왔을 것이다. 솔직히 후속편이 나온다면 볼 것 같다. 비록 <행복한 식탁>의 내용 곡절이 잔잔한 나머지 심심한 지경이고 작가의 문장이 매우 평범하다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 4인 가족이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지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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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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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태롭고 불행한 일들의 시작이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아홉살 소녀 트리샤에게 일어난 일도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부모가 이혼을 한 덕에 엄마 밑에서 오빠와 자라는 트리샤. 그러나 오빠는 매사 불만투성이에 철이 들려면 아직도 멀어서 자신을 아빠에게 보내 달라고 매양 엄마와 싸운다. 주말을 맡아 광활한 미국 북부의 애팔래치아 숲을 하이킹하러 온 트리샤 가족. 그러나 트리샤는  쉴 틈없이 투덜대며 엄마와 싸우는 오빠에게 넌더리가 나 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잠시 멈춰선 트리샤는 길을 벗어나 소변을 본다. 그리고 길을 잃는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그 팀의 구원투수 톰 고든을 숭배하며, 인기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도시소녀 트리샤가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숲속을 헤메게 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공포소설을 잘 쓴다는 스티븐 킹이 이번에도 또 한 번 퍼펙트 게임을 펼쳐내었다. 이번 작품에서의 공포의 대상은 괴물이나 유령은 아니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다. 다름 아닌 숲 자체가 트리샤와 독자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다. 깊은 숲을 가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으면 무섭다. 더구나 뼈를 닮은 회백색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밤이라면, 아무리 담력이 있는 사람도 혼자서 밤을 지새우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트리샤는 단 아홉 살에 불과하다. 육체적 완력이나 강인함을 기대할 수 없는 연약한 소녀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게다가 숲이 주는 위험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감을 자극하는 적막과 고요, 틈만 나면 피를 빨려 덤벼내는 모기떼, 폭풍우와 천둥번개를 비롯한 악천후, 참을 길 없는 갈증과 굶주림까지 숲이 보여주는 공포의 얼굴은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꾸며 트리샤를 압박한다.

 

트리샤는 만루홈런을 맞은 패전투수처럼 이대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그러나 트리샤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보스턴 팀의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공포를 이겨낸다. 트리샤에게는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힘을 주는 톰 고든이 있었다. 톰 고든은 기아와 질병으로 거의 환각 상태에 이른 트리샤에게 찾아와 승리 공식을 가르쳐준다. 희망과 신념, 집중과 의지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이 작품에서 소녀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야구라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야구야말로 미국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길잃은 숲속에서 소녀가 야구 방송을 들으며 철저한 고립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하기 쉽게 다가온다. 야구장에는 핫도그가 있으며, 콜라와 맥주, 환성과 한숨, 승리와 패배, 경쟁과 화합이라는 미국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홀로 숲속에 동떨어진 트리샤가 절대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트리샤는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한다. 다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간절한 애원, 그것 뿐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답지 않게 분량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분량 이상으로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숲은 대단히 무시무시하지만 실제로 책을 덮고 나면 숲에 가보고 싶어진다. 작가가 숲의 여러 가지 풍경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고립과 공포의 순간이 겨우 지나가면 찾아오는 벅찬 풍경들, 별똥별 무리는 하늘 가득 오렌지색으로 수놓고, 새끼사슴과 비버는 눈을 즐겁게 한다. 굶주려 죽어가기 직전 발견한 백옥나무 열매는 어쩌면 그리 맛있을까. 스티븐 킹이 묘사한 숲은 이렇게나 무섭고, 아름답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가혹하게 트리샤를 괴롭히는 대목에서는 조금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결말이 모든 것을 보상한다. 숲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소녀가 취하는 행동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단지 숲이라는 대상만이 공포감의 전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트리샤를 노린다. 숲을 헤매고 다닌 지 며칠째, 트리샤가 자고 일어나보니 둘레는 온통 거대한 발톱자국이고 자신의 몸 주변은 흙으로 빙둘러 원이 쳐져 있다. 너는 내 먹이,라는 표식일지도 모른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숲이라는 절망의 공간을 벗어나 희망의 세계로 날갯짓을 펼치는 한 소녀의 믿음과 신념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트리샤의 몸을 빌어 우리에게 공포와 허무, 절망들을 상대로 정면승부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침범할 수 없다. 단지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트리샤에게는 그 용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p.s/ 요즘 PSP 게임으로 메이저리그 게임을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보스턴 레드삭스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며칠 전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와의 게임 때, 구원투수로 톰 고든이 나오는 걸 보고 무지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만 해도 보스턴의 붙박이 마무리였는데, 언제 뉴욕으로 갔는지 궁금했다. 참고로 나는 톰 고든을 난타해 강판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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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5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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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작가의 초기작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직 덜 영근 미숙함에 웃음 짓기도 하고, 초기부터 싹수가 남달랐음을 확인하고 흐뭇해지기도 하죠. <마술은 속삭인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거장급의 명성을 갖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입니다. 과연 미야베 미유키의 작가 생활 초창기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녀의 팬이라면 흥미롭게 관찰해볼 만하겠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처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재능 하나는 타고난 작가였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의 착상이 좋습니다. <마술은 속삭인다>는 3명의 젊은 여자가 옥상에서 떨어져죽거나,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평범한(?) 사건, 사고로 출발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있었던 '영아냉동고 유기살해사건' 같은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강력 범죄에는 온통 관심을 쏟고 흥분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며, 단신으로 사회면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범죄, 사건, 사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비범한 착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흔해빠진 사건, 사고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혹시 매일같이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사건, 사고가 누군가의 계략에 의한 연쇄살인은 아닐까, 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발상의 전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건, 사고는 미야베 미유키 문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충분히 다뤄지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적인 사회파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해변가에서 동반자살한 남녀의 죽음에 심각한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하지만 종래 유행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익숙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출발해 최면술이나 서브리미널 광고 등의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의 대전환을 꾀합니다. 기존의 사회파 미스터리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독자들도 여기서부터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틀로 재단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테크닉도 돋보입니다. 3명의 독신녀 살해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 마모루는 우연히 서브리미널 광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서브리미널 광고는 다 아시다시피 영상물 등에 있어 몇 초에 한 프레임씩 광고를 삽입해 무의식적으로 판매를 유발하는 일종의 최면기법입니다. 마모루가 일하는 서점에서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에 죄를 저지르고 잡히는 사람들의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절도범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작품 진행에 있어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는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에게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뒤에 나올 더 황당무계한(독자 입장에서) 최면술에 대해 미리 정보를 줌으로써 웬지 그럴 듯해 보이는 설득력을 더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마모루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그 광고를 보고 기절함으로써, 혹시 이 조력자에게 범죄와 관련된 은폐된 사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복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이야기 테크닉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결말 짓는 요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든지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녀는 사건, 사고, 최면술, 서브리미널 광고, 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고 격노하는 마모루라는 수많은 곁가지들을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하고 수렴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원래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모든 인물들은, 심지어 죄를 저지른 인물들까지도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남을 돕고 싶어하는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지나치게 순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작가의 성향이니 어쩔 수 없겠죠. 읽는 이의 취향에 따른 문제입니다. 이렇듯 선의를 가진 인물들이 번민하고 방황하다 결국 최선의 선택을 하며 다시 한 번 인간이 품고 있는 옳은 성향을 증명하는 대단원은 그야말로 감동의 회오리입니다.

 

여기까지 확인해보니 과연 미야베 미유키는 초기부터 남다른 작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작에 따른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종종 작품에 사용된 비유는 유치하고, 문장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최근작보다는 떨어집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마모루에게 얼굴 없는 살인자와 대결을 벌일 때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로 열쇠따기 기술을 줍니다. 이 기술을 여러번 사용해 마모루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진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마모루가 어떻게 열쇠따기 기술을 배웠냐구요? 어렸을 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답니다. 필연성이 전혀 없는 설정으로 주인공에게 그럴 듯한 무기를 제공하기 위한 작가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최근작에서 볼 수 있는 흡입력도 약간 떨어져 어느 정도 지루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조이고 풀고, 줄달음쳐가다가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최신작이 그런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면 아직 완숙기에 이르지 못한 이 작품은 이야기의 호흡에 있어서 비교적 잔잔함 일변도라 독자를 빨아 들이는 힘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상으로 <마술은 속삭이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공정하게 짚어본 것 같은데 최종 판단은 새로 읽어볼 분들이 하시기 바랍니다. 제 기준으로 별점을 주라면 세개 반, 작가의 최고작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가 어떻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구었나를 확인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커다란 해결책이 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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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걸작은 아니지만 미미여사니까요^^

jedai2000 2006-11-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뒤 페이지 백면에 미미여사파이팅이라고 조그맣게 써 있더군요. ^^

2006-11-2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1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방금 보냈습니다. 어제 책이 나와서 여기저기 보내다보면 시간도 걸리고, 그쪽에서 자료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소게임 작가의 발견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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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다 다카시의 [시소게임]에는 '작가의 발견1'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현재는 나오키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단편의 명수로 이름이 높은 아토다 다카시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니만큼 발견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네요. 이런 기획은 반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미스터리의 선구자격인 요코미조 세이시나,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작들이 역사적 가치와 작품의 질을 인정받아 출간 기회를 잡는 것이나, 현재 잘 나가는 최신 미스터리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것에 비해, 유독 70-80년대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요즘처럼 등단 기회가 많지 않았던 때이니만큼 당시 활동하던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문장력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오른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해서 이번에 소개된 아토다 다카시를 비롯한 70-80년대가 전성기였던 렌조 미키히코, 다카하시 가즈히코, 이자와 모토히코 등의 작품이 차후 더 소개되고 '발견'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위에서 언뜻 단편의 명수라고 아토다 다카시를 소개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아토다 다카시는 짧은 이야기에서 장기를 주로 발휘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소게임]은 1980년에 출간된 소설집이라는데 총 15편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편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거나, 재미있으면 사소한 결함은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편은 그야말로 짧은 분량이니만큼 자그만 결점도 작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런 점에서 단편 잘 쓰는 작가는 비장의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최후의 반전 한 방으로 독자를 넉아웃시키는 요령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시소 게임]은 잘 쓴 단편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15편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전부 흥미진진하고 블랙유머의 냉소, 결말의 의외성까지 훌륭한 단편의 테크닉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토다 다카시 단편 특유의 오싹한 분위기도 충분히 살아 있어 '살 떨리는' 재미를 줍니다. 작품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아토다 다카시를 오 헨리에 비교하는 문장이 있는데 독자가 생각치 못한 기발한 결말로 뒷통수를 치는 점에서는 과연 두 사람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끝맺음이 많은데 비해 아토다 다카시는 일상 생활에 잠복해 있는 독버섯같은 인간의 악의와 그 악의가 뭉치고 뭉쳐 결국 파국에 이르는 데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살의와 범죄라는 악 그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망진단서>라는 단편에서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로 인해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자 시어머니가 사라졌으면 하는 가족들이 나오고, <부재 증명>등의 단편에서는 정이 없고 귀찮은 아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남편들이 나옵니다. 저 사람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인생이 더 행복해질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군상들이 출현해 범죄에 발을 담그는 이야기입니다. 어마어마한 부나 커다란 정치적 이유에서 등이 아닌 일상에서 자라나는 미움과 혐오 등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악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소게임]은 호러소설의 오싹한 공포와 미스터리의 사건을 푸는 재미, 인간의 악을 고찰하는 심리소설과 당대 일본의 소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풍속소설로서의 재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천국에 가장 가까운 풀> 등은 본격 미스터리로 볼 수 있고, <기호의 참살>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살해 현장 그림도 나옵니다. 짤막한 만큼 하나하나 짬날 때 마다 보다보면 어느새 페이지의 끝에 다달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단편은 <사망진단서>지만 15편의 이야기 모두 재미있습니다. 그야말로 올해의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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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렇다면 보관함에~(__!!)

물만두 2006-11-1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영광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oldhand 2006-11-1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랑 <마술은..>을 어제 배달 받았습니다. 으흐흐.

jedai2000 2006-11-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범님...저는 아토다 다카시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만족스러웠는데 아마 누가 보셔도 만족스러울 겁니다. ^^

정군님...어서 넣으세요. ^^

물만두님...예. 간만에 본 단편집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올드핸드님...저와 비슷한 독서 행보를 걸으시네요. ^^
 
환야 - 전2권 세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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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1995년의 고베 대지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물질직 피해가 있었던 고베 대지진은 당시 거품 경제의 붕괴로 인해 주머니가 얄팍해진 일본 시민들의 마음을 더욱 신산스럽게 만들었던 비극적인 재해였다. 금속 기술자로 평범하게 살던 마사야의 인생이 180도 바뀐 것도 고베 대지진의 영향 때문.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업사의 직원으로 일하던 마사야는 회사의 도산과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공허한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외삼촌이 찾아와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종용하기까지 하는 데는 정말 두손 두발 다 든 상황. 그런데 그 순간 지진이 시작된 것이다. 마사야가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에 깔린 외삼촌의 차용증서를 꺼내 없애버리려던 순간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외삼촌이 눈을 뜬다. 당황한 마사야는 무심결에 벽돌로 외삼촌을 때려 죽인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 미후유라는 여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팜므 파탈 같은 존재다. 이제 미후유가 경찰에 신고하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겠구나, 걱정하던 마사야는 미후유가 사건을 은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에 묘한 심정이 된다. 왜 나를 도와주는지, 마사야는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훗날 많은 대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겠지만. 이제 두 사람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고베를 떠나 돈과 환락과 성공의 기운이 요사스럽게 소용돌이치는 일본의 심장 도쿄로 향한다. 작품은 두 사람의 인생 항로를 따라 흥미진진하게 욕망과 파멸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1999년의 히트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백야행白夜行>의 비공식 속편 격인 작품이다. 작품에도 그런 힌트가 나온다. <환야>에는 마사야 말고도 미후유의 정체를 추적하는 가토라는 형사가 나오는데, 그의 조사에 따르면 미후유가 전에 근무하던 회사는 'White Night'란다. 하얀 밤, 즉 백야다. 미후유가 하얀 밤을 거쳐 이제 '환야幻夜'의 세계로 들어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속편 격인 작품이라 그런지 두 작품은 굉장히 유사하다. 위험한 매력을 가진 한 여자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사랑과 범죄의 연대기적 구성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성공작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걸 즐기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백야행>과 <환야>가 그렇고, 인터뷰를 보니 가장 최신작인 <붉은 손가락>을 작년의 히트작인 '수학천재' <용의자 X의 헌신>의 '평범한 아저씨'버전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성공작을 다시 한 번 재현하려는 얄팍한 속셈일수도 있겠지만, 상업작가로서 평가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맞는 예인지 모르겠는데 예전 임권택 감독이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이런 인터뷰를 했다. <노는 계집 창>이라는 제목을 보고 극장을 찾는 사람의 그런 쪽의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몇 번의 베드신이 꼭 필요했다고. 이미 예술영화 감독이라는 레테르가 붙은 임감독에게 베드신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싸구려 에로영화로 보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수하게(?) 여배우의 노출이나 정사 장면을 보기 위해 표를 끊은 사람들의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하므로 부득이 그런 장면을 넣었다는 말이다.  

 

어차피 돈을 받고 영화나 소설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상업 예술가들에게 있어 독자나 관람객이 자신의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했는지 분석하고, 독자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안겨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로 보인다. 독자가 <백야행>을 좋아한다면, 그래 <환야>가 간다. 독자가 <환야>도 좋아한다면 또다른 세번째 밤이야기가 나가는 것이다. 상업작가라면 자신이 쓰고 싶은 것뿐 아니라,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거의 비슷한 얼개를 가진 긴 장편소설을 재현하는 셈이라 작가의 피로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백야행>에 비하면 <환야>는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떨어지고, 결말은 심지어 어이없게 보이기까지 한다. 팜므 파탈이라는 미후유의 캐릭터도 <백야행>의 유키호에 비하면 매력이 덜하고, 줄거리의 흥미진진한 곡절도 <백야행>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만 <백야행>이 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컴퓨터나 게임기 등의 일본 기술 산업을 소재로 다루었다면 <환야>에서 미후유가 성공을 꿈꾸었던 곳이 90년대 후반의 미용 산업이었다는 것은 매우 돋보인다. 90년대 초반까지 발전 일로를 걸었던 일본의 기술 산업이 현재의 풍요를 이끌어낸 결과 90년대 후반부터는 성형이나 미용, 액세서리 등 꾸미고 치장하는 산업이 발전 일로를 걸었기 떄문이다. <백야행>과 <환야>의 주인공들-두 명의 팜므 파탈과 두 명의 헌신적인 남자-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경제적 환경 속에서의 성공을 위해 필연적으로 살인과 음모, 배신과 협잡 등의 범죄를 꾸민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과 <환야>라는 두 자매를 통해, 6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일본 산업의 발전 및 변화 과정을 들여다보며, 일본 사회의 지금과 같은 풍요와 경제 발전의 뒤안길에는 혹시 범죄가 잠들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물질적 풍요 어딘가에 범죄의 기운이 잠복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작가의 질문에 답을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내가 세번째 밤이야기를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00년대에 주목하는 산업은 무엇이며, 그곳에서 어떤 범죄의 음험한 징후를 발견하고 우리 앞에 펼쳐놓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 세번째 밤이야기가 그 호기심을 상당 부분 충족시켜주리라 믿는다.

 

 

p.s/ 마사야가 가장 이해 안 되는 점 한 가지. 나 같으면 유코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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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1-13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겟군요 히가시노 게이코

jedai2000 2006-11-1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밤시리즈는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

2006-11-13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