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게임 작가의 발견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아토다 다카시의 [시소게임]에는 '작가의 발견1'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현재는 나오키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단편의 명수로 이름이 높은 아토다 다카시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니만큼 발견이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네요. 이런 기획은 반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미스터리의 선구자격인 요코미조 세이시나,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작들이 역사적 가치와 작품의 질을 인정받아 출간 기회를 잡는 것이나, 현재 잘 나가는 최신 미스터리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것에 비해, 유독 70-80년대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요즘처럼 등단 기회가 많지 않았던 때이니만큼 당시 활동하던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문장력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오른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해서 이번에 소개된 아토다 다카시를 비롯한 70-80년대가 전성기였던 렌조 미키히코, 다카하시 가즈히코, 이자와 모토히코 등의 작품이 차후 더 소개되고 '발견'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위에서 언뜻 단편의 명수라고 아토다 다카시를 소개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아토다 다카시는 짧은 이야기에서 장기를 주로 발휘했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소게임]은 1980년에 출간된 소설집이라는데 총 15편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편을 보면 부분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거나, 재미있으면 사소한 결함은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편은 그야말로 짧은 분량이니만큼 자그만 결점도 작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런 점에서 단편 잘 쓰는 작가는 비장의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최후의 반전 한 방으로 독자를 넉아웃시키는 요령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시소 게임]은 잘 쓴 단편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15편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전부 흥미진진하고 블랙유머의 냉소, 결말의 의외성까지 훌륭한 단편의 테크닉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토다 다카시 단편 특유의 오싹한 분위기도 충분히 살아 있어 '살 떨리는' 재미를 줍니다. 작품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아토다 다카시를 오 헨리에 비교하는 문장이 있는데 독자가 생각치 못한 기발한 결말로 뒷통수를 치는 점에서는 과연 두 사람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끝맺음이 많은데 비해 아토다 다카시는 일상 생활에 잠복해 있는 독버섯같은 인간의 악의와 그 악의가 뭉치고 뭉쳐 결국 파국에 이르는 데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는 살의와 범죄라는 악 그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망진단서>라는 단편에서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로 인해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자 시어머니가 사라졌으면 하는 가족들이 나오고, <부재 증명>등의 단편에서는 정이 없고 귀찮은 아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남편들이 나옵니다. 저 사람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인생이 더 행복해질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군상들이 출현해 범죄에 발을 담그는 이야기입니다. 어마어마한 부나 커다란 정치적 이유에서 등이 아닌 일상에서 자라나는 미움과 혐오 등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악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소게임]은 호러소설의 오싹한 공포와 미스터리의 사건을 푸는 재미, 인간의 악을 고찰하는 심리소설과 당대 일본의 소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풍속소설로서의 재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천국에 가장 가까운 풀> 등은 본격 미스터리로 볼 수 있고, <기호의 참살>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살해 현장 그림도 나옵니다. 짤막한 만큼 하나하나 짬날 때 마다 보다보면 어느새 페이지의 끝에 다달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단편은 <사망진단서>지만 15편의 이야기 모두 재미있습니다. 그야말로 올해의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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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렇다면 보관함에~(__!!)

물만두 2006-11-1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영광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oldhand 2006-11-1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랑 <마술은..>을 어제 배달 받았습니다. 으흐흐.

jedai2000 2006-11-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범님...저는 아토다 다카시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만족스러웠는데 아마 누가 보셔도 만족스러울 겁니다. ^^

정군님...어서 넣으세요. ^^

물만두님...예. 간만에 본 단편집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올드핸드님...저와 비슷한 독서 행보를 걸으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