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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오 마이코란 비교적 낯선 작가의 <행복한 식탁>의 띠지 홍보문구는 이렇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읽기 전부터 이 문구에 굉장히 긴장했었다. 이거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야겠구나. 과연, 엄청나게 슬픈 소설이었다.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자살한 아빠로 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오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빚쟁이들에 의해 탄광에 갇혀 일을 하다 진폐증에 걸리고, 엄마는 호스티스가 된다. 주인공인 중학생 사와코는 학교까지 쫓아온 빚쟁이들에게 망신을 당하며 감수성 여린 나이에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고 한다면 전부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살을 기도하다 간신히 살아난 아빠로 인해 분위기가 무거워진 가정, 엄마는 아빠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집을 나가 혼자 산다. 천재인 오빠는 진지하기만 한 아빠가 삶의 커다란 무게로 인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일체의 진지함을 포기하고 설렁설렁 가볍게 모든 걸 대한다. 나 사와코는 중학생 소녀로 아빠의 자살 기도 당시 흘리던 피를 잊지못해 약간의 불안강박증을 얻게 되었다.
거의 붕괴 위기에 몰린 이 가족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힘들 때면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음을 깨닫는 따뜻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시기는 어렵겠고,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의 소설이다. 작가 세오 마이코는 현직 중학교 교사라고 하는데, 직업상 중학생 소녀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중학생 사와코가 겪는 일들, 내면 묘사를 그럭저럭 잘 포착하고 있는 것 같다.
4편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으로 편안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구미에 제법 맞을 것이다. 간혹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유머도 빈번히 등장하고. 다만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걸맞지 않게, 작가의 문장력은 다소 평범하고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의 글을 보는 듯 했다. 가만히 보면 일본에는 문학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상업적으로는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미시마 유키오상...역량이 살짝 떨어지는 작가라도 수상작이라는 레테르를 둘러 자국과 해외에서 성공적인 세일즈를 하는 일종의 판매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독자들은 많고많은 유수의 수상작들 중에서 옥석을 잘 골라야 하는 피곤한 의무도 지게 된 셈이다.
<행복한 식탁>의 네 가지 이야기들에서는 가족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매번 등장한다. 이를테면 꼭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형식일 뿐이다. 뭐 이런 식인데, 그 깨달음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사와코가 퍼뜩 깨닫는 식이다. 사와코는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돈오'의 경지를 깨우쳤는가. 한 마디로 대단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와코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진급하며 끝나는데, 내가 알기로 일본에서 후속편이 나왔을 것이다. 솔직히 후속편이 나온다면 볼 것 같다. 비록 <행복한 식탁>의 내용 곡절이 잔잔한 나머지 심심한 지경이고 작가의 문장이 매우 평범하다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 4인 가족이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지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