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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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작가의 초기작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직 덜 영근 미숙함에 웃음 짓기도 하고, 초기부터 싹수가 남달랐음을 확인하고 흐뭇해지기도 하죠. <마술은 속삭인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거장급의 명성을 갖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입니다. 과연 미야베 미유키의 작가 생활 초창기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녀의 팬이라면 흥미롭게 관찰해볼 만하겠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처음부터 이야기 만드는 재능 하나는 타고난 작가였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의 착상이 좋습니다. <마술은 속삭인다>는 3명의 젊은 여자가 옥상에서 떨어져죽거나,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평범한(?) 사건, 사고로 출발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있었던 '영아냉동고 유기살해사건' 같은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강력 범죄에는 온통 관심을 쏟고 흥분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며, 단신으로 사회면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범죄, 사건, 사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비범한 착상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흔해빠진 사건, 사고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혹시 매일같이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사건, 사고가 누군가의 계략에 의한 연쇄살인은 아닐까, 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발상의 전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건, 사고는 미야베 미유키 문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충분히 다뤄지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대표적인 사회파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해변가에서 동반자살한 남녀의 죽음에 심각한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하지만 종래 유행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익숙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출발해 최면술이나 서브리미널 광고 등의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의 대전환을 꾀합니다. 기존의 사회파 미스터리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독자들도 여기서부터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틀로 재단할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테크닉도 돋보입니다. 3명의 독신녀 살해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 마모루는 우연히 서브리미널 광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서브리미널 광고는 다 아시다시피 영상물 등에 있어 몇 초에 한 프레임씩 광고를 삽입해 무의식적으로 판매를 유발하는 일종의 최면기법입니다. 마모루가 일하는 서점에서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에 죄를 저지르고 잡히는 사람들의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절도범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작품 진행에 있어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서브리미널 광고는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에게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뒤에 나올 더 황당무계한(독자 입장에서) 최면술에 대해 미리 정보를 줌으로써 웬지 그럴 듯해 보이는 설득력을 더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마모루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그 광고를 보고 기절함으로써, 혹시 이 조력자에게 범죄와 관련된 은폐된 사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복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이야기 테크닉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결말 짓는 요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든지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녀는 사건, 사고, 최면술, 서브리미널 광고, 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알고 격노하는 마모루라는 수많은 곁가지들을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하고 수렴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원래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모든 인물들은, 심지어 죄를 저지른 인물들까지도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남을 돕고 싶어하는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지나치게 순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작가의 성향이니 어쩔 수 없겠죠. 읽는 이의 취향에 따른 문제입니다. 이렇듯 선의를 가진 인물들이 번민하고 방황하다 결국 최선의 선택을 하며 다시 한 번 인간이 품고 있는 옳은 성향을 증명하는 대단원은 그야말로 감동의 회오리입니다.

 

여기까지 확인해보니 과연 미야베 미유키는 초기부터 남다른 작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작에 따른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종종 작품에 사용된 비유는 유치하고, 문장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최근작보다는 떨어집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다소 억지스런 설정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마모루에게 얼굴 없는 살인자와 대결을 벌일 때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로 열쇠따기 기술을 줍니다. 이 기술을 여러번 사용해 마모루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진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마모루가 어떻게 열쇠따기 기술을 배웠냐구요? 어렸을 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답니다. 필연성이 전혀 없는 설정으로 주인공에게 그럴 듯한 무기를 제공하기 위한 작가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최근작에서 볼 수 있는 흡입력도 약간 떨어져 어느 정도 지루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조이고 풀고, 줄달음쳐가다가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최신작이 그런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면 아직 완숙기에 이르지 못한 이 작품은 이야기의 호흡에 있어서 비교적 잔잔함 일변도라 독자를 빨아 들이는 힘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상으로 <마술은 속삭이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장점과 단점을 비교적 공정하게 짚어본 것 같은데 최종 판단은 새로 읽어볼 분들이 하시기 바랍니다. 제 기준으로 별점을 주라면 세개 반, 작가의 최고작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가 어떻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구었나를 확인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커다란 해결책이 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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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걸작은 아니지만 미미여사니까요^^

jedai2000 2006-11-1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뒤 페이지 백면에 미미여사파이팅이라고 조그맣게 써 있더군요. ^^

2006-11-2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1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방금 보냈습니다. 어제 책이 나와서 여기저기 보내다보면 시간도 걸리고, 그쪽에서 자료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