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헤로도토스 역사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2
권오경 지음, 진선규 그림, 손영운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저부터 그러합니다. 일전에 허영만 선생님을 만나뵐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얘기 중에서 60,70년대 연례 행사 중 하나였던  '불량만화 화형식'이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동대문운동장, 남산 등에서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른들이 직접 만화책을 사서 읽게 합니다. 물론 이른바 '학습' 만화라 불리는 것에 한정되긴 하지만요.

따지고 보니 제가 최근에 접했거나 재미있게 읽은 것 역시 크게 보면 '학습' 또는 '역사' 만화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가 그러하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고우영의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백무현의 『만화 전두환』, 『만화 박정희』 등이 그러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만화로 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서울대 선정 인문 고전 50선'이라는 부제가 달린, 선뜻 손이 가기 힘든 책들이지만 만화라서 부담이 없었습니다. 『군주론』은 예전에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이번에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50선의 목록을 보니 제가 읽어본 책들보다 그렇지 않은 책들이 더 많았습니다. 약간의 자괴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 어른들 중에서 그러한 고전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에게도 입문서는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입문서'가 저자의 주관적 평가가 심해 처음부터 고전을 곡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입문서'야말로 꼭 필요한 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처음부터 매운 김치를 주지 않고 물에 씻어서 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에 씻은 김치가 무슨 김치냐고 하시는 분들 계시면 2~3살 애들에게 시뻘건 김치를 직접 한번 먹여보세요. 아마 십중팔구 그 애는 앞으로 영영 김치와 인연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논어』, 『맹자』, 『장자』, 『주역』, 『사기』 등을 읽을 때 처음부터 (물론 한글 번역본이지만) 두터운 원문부터 읽지 않았습니다. 해당 고전의 입문서로 적당한 책을 골라 그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저자는 어떠한 사람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씌어졌는지를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두터운 고전이라도 원문을 꼭 읽고 싶다는 충동과 읽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읽고 싶고,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게는 수천 년 전에 씌어진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만듭니다. 원본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 이것이 입문서의 가장 큰 역할이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입문서의 폐단을 우려하는 전문가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예전에 동양 고전을 읽기 위해 여러 입문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함량 미달의 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부피가 작다고 입문서가 아닙니다.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 가치를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흥미 있는 일부의 내용만 소개하여 마치 그것이 그 책의 전부인 양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레 미제라블』의 극히 일부를 들어내어 『장발장』으로 소개한 예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은촛대를 훔쳤다가 밀리에르 신부의 자비로운 마음에 감동하는 것이 『장발장』 이야기의 끝인 줄 알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부터인데 말입니다. 원칙주의자 자베르, 비련의 여인 팡틴, 그의 딸 코제트, 코제트가 사랑한 공화주의자 마리우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있게 한 당시 시대적 배경 등.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 읽었던 만화 『군주론』과 『역사』는 입문서로서 충분한 함량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함량을 측정하고 평가할 만한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군주론』을 직접 읽고, 그에 대한 여러 소개서를 함께 보았던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양의 텍스트가 포함된 촘촘한 그림을 보면서 마치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인문고전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풀어 쓴 내용 또한 지루하지 않게 그 핵심적 내용과 배경지식을 익힐 수 있게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군주론』을 나름대로 흥미 있게 읽고 감명을 받았지만, 저라면 이렇게 풀어 쓸 능력이 없습니다. 두 책의  글쓴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아들 딸에게 읽혔다거나, 읽힌다는 심정으로 썼다는 그 말이 머리말을 쓰기 위해 그저 뱉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군주론』보다 『역사』를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이유보다는 『군주론』은 이미 전에 읽었었고, 『역사』는 이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기 때문입니다. 전체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장에서는 '역사(history)'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헤로도토스에 대해, 그리고 그 역사라는 말에 담긴 뜻에 대해, 『역사』라는 책의 의의에 대해 참 쉽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0장까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300〉에서 보았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다스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지휘한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이 책 9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화 〈300〉의 장엄함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근육질의 배우들 대신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주인공들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교양 삼아 읽어봄 직합니다. 집에 만화책을 두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읽게 됩니다.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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