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2 - 방화도에서 보낸 10년
김용 지음, 임홍빈 옮김 / 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별것 아닌데도 괜히 눈물이 날 때. 하필 그때가 그럴 때였을 거라 위안합니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인 장무기의 부모 장취산과 은소소가 죽습니다. 이연걸의 《의천도룡기》 영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인데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영화는 1993년작으로 이연걸,구숙정,장민이 주인공으로 나왔었습니다.  《의천도룡기》 중 일부를 영화화한 것인데, 아쉽게도 속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났는데, 15년이 되도록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더 이상의 기대는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그 영화가 좀 형편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숙함은 고사하고 거의 반(半)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반면 TV 드라마 시리즈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4 종류 되는 것 같습니다. 1986년 양조위 주연이 처음인 것 같고, 그 뒤로 몇 해마다 한 번씩 주인공을 바꿔가며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40부작 내외의 대작이라 아마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장삼봉의 100세 생일 잔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책으로 보자면 2권 마지막 장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그 앞의 모든 이야기를 싹둑 잘라버리고 단 몇 분의 나레이션으로 대체했으니 제대로 감동이 전해질 리 만무합니다. 책을 읽다 하마터면 울 뻔했던 장취산과 은소소의 자결 장면이, 영화를 볼 땐 참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소설을 리뷰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줄거리를 길게 소개하자니 다음에 읽을 독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고, 줄거리 언급 없이 소회만 말하자니 홀로 떠드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뒤이어 읽을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저의 감상을 정리하기 위해 다소 어정쩡한 리뷰가 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깨친 작은 깨달음, 나중에 책을 읽으실 때 도움될 만한 주변 지식들을 위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2권 <빙화도에서 보낸 10년>은 《의천도룡기》의 주인공인 장무기의 탄생과 부모의 죽음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명문정파 무당파의 애제자 장취산과 사교 집단 천응교 교주 백미응왕의 딸 은소소가 강호를 피바람으로 물들인 금모사왕 사손과 함께 무인도로 떠나게 된 사연, 그 과정에서의 애증이 전반부의 내용입니다. 그 무인도의 이름이 '빙화도'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입니다.

장무기는 정(正)과 사(邪), 이유 없이 죽어간 이들의 원(寃)을 안고 태어납니다. 장취산과 은소소의 죽음은 곧 사(邪)의 단절과 원(寃)의 일부를 갚는 행위였으나, 그러나 앞으로의 이야기가 그들의 바람처럼 순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 둘의 죽음으로 정과 사, 원한과 복수의 순환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얽히고 얽힌 불쌍한 군상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레미제라블》을 보는 듯합니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뜻이라죠.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 훔치려다 19년을 감옥에서 산 장발장, 어린 딸을 위해 몸을 팔다 죽어간 팡틴, 사악한 양부모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라는 팡틴의 딸 코제트는 모두 불쌍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회개하고 깨우쳐 한없이 착한 삶을 사는 장발장을 지독하리만치 쫓아다니는 냉혹한 자베르 경감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험한 난세에 독야청청 바른 길만 가려는 무당파(장취산), 사악한 짓만 골라하는 천응교(은소소), 개인의 복수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인 금모사왕, 천하 명검 도룡도를 손에 쥐기 위해 더럽고 추잡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무림의 수많은 정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원죄로 안고 태어난 장무기. 이들도 역시 모두 불쌍한 사람들, 레미제라블입니다.

장발장이 코제트를 데리고 수녀원에서 보낸 십여년의 세월은 《레미제라블》 전체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코제트가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속세로 나오는 순간 불행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장취산과 은소소, 금모사왕이 빙화도에서 보낸 10년의 세월 역시 《의천도룡기》 전체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살아야 할 아들을 생각하여 속세로 나오는 순간, 불행은 모두에게 가차 없이 들이닥칩니다.

빙화도에서 나오자마자 그들로 인해 무림은 발칵 뒤집힙니다. 도룡도를 가지고 있는 금모사왕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그 둘은 스스로 죽어 이 상황을 종료하려 했지만,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지켜야했던 아들 장무기는 이미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쓰러지고, 이로 인해 무림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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