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임홍빈 옮김 / 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의천도룡기》 제1권을 읽었습니다.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집어들까 말까 고민이 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집어들면 이내 빠져들어 잠도 오지 않고 내리 나머지 권들까지 모두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완역판  《의천도룡기》는 총 8권입니다.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그러했습니다. 어제 출근길 차 안에서 1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2권을 내리 읽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방에 늘 두 종류 이상의 책을 넣고 다니는데 어제는 《의천도룡기》 1권과 마케팅 서적 1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퇴근길 차 안에서도 2권을 미리 챙겨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의천도룡기》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신필(神筆) 김용의 소설이자 '무협' 소설입니다. 흔히 무협이라 하면 '싸구려' 취급을 하고 무협 영화 앞에는 늘 '3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무협 마니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으나 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습니다. 아직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김용을 직접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처럼 겨우 한 권을 읽고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하기야 올 여름 신문에서 김용의 소설이 중국 중·고등학교 국어(語文)교과서에 실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신(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이 빠지고 김용의 무협소설이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무협'의 개념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하도록 사마천 《사기(史記)》의 〈유협열전(遊俠列傳〉까지 필수학습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사기》의 백미는 열전이고 열전 중 가장 흥미있는 부분이 《유협열전》입니다. 무협은 무술이 뛰어난 협객을 말하고, 협객을 다른 말로 유협이라 하니 사마천의 《유협열전》이 명실공히 무협의 원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기》 전문가 김영수 교수는 《사기의 인간 경영법》에서 "《사기》 130권 중 《유협열전》은 통치자 및 상류사회에 대해 무정하고 격렬하게 비판한 가장 전투적인 부분에 꼽"힌다고 말했습니다. 유협들의 반체제적인 요소는 당시 정권을 늘 긴장시켰고, 이 때문에 권력층은 그들을 꺼려하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존재였고, 사마천은 이 점에 눈을 돌려 《유협열전》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저 역시 사기 열전들 중에서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천도룡기》를 무협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합니다. 신필이라는 그의 별명에서 느껴지듯 김용의 글은 신들린 듯 빨려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무협 소설 특유의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는 기본이고, 거기에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삶에 대한 통찰까지 느껴지는 깊이가 있었습니다.

1권 앞부분의 주인공은 장삼봉입니다. 중국 무학 사상 불세출의 기인이요 태극권의 창시자, 무당파의 시조인 장삼봉은 실존 인물입니다. 그리고 무당칠협이라 불리는 그의 일곱 제자 역시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 중 다섯번째 장취산의 이야기가 1권 후반부의 핵심입니다.

장삼봉(1247~1416)은 몽골 점령 시기에 태어나 명나라 건국 후까지 무려 169세까지 산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정확한 수명은 불확실하나 장수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합니다. 장삼봉은 독특한 무공을 창시한 무학의 대종사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그는 도를 깨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세운 무당파의 본거지인 무당산은 당시에도 저명한 도교 승지였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황제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역대 황제들이 경쟁적으로 그에게 영예로운 작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격화되어 훗날 민간에서는 신선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협객이 영웅인 까닭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얻으려고 애쓸 때 협객은 자신을 던져 의로움을 취합니다. 의리를 위해 초개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다소 허황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여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협객이 악(惡)을 제거할 때는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무협소설의 배경인 무림 또는 강호와 현실은 다릅니다. 협객 한 사람의 힘으로 사파(邪派)를 물리치고 정의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가 나서서 이 사악한 현실을 바로 잡아 줄까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소설 속에서 협객을 찾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협객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수천년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천하의 명검 '도룡도'를 손에 쥔 금모사왕 사손에게 장취산은 겁도 없이 설교를 합니다. 마치 바른생활맨처럼. 이에 금모사왕이 비웃으며 말합니다.

"인간세상에서 진정으로 시비흑백이 가려지고 있단 말인가? 오늘날 이 세상을 보게. 몽골인들이 중원 땅에 들어와 황제 노릇을 하면서 우리 한족을 죽이고 싶으면 얼마든지 죽이는 판국일세. 그들이 시비를 가려 살육하던가? (……)
몽골족은 그렇다고 치세. 그럼 우리 한족은 시비흑백을 분명히 가리던가? 악비 장군은 대충신이었는데 송나라 고종은 어째서 그를 죽였는가? 진회는 천하에 둘도 없는 간신인데 어째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제 명대로 장수를 누렸는가?"

금모사왕과 장취산이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바른생활맨 장취산이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天道難言, 人事難知. 하늘의 도리는 말로 다하기 어렵고, 사람의 일 역시 모두 다 알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의로움에 바탕을 두고 할 바를 다하는 수밖에 없습지요."  (p.503~506)

* 이크!!! 벌써 출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오늘 얘기는 두서가 없습니다. 맺음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마칩니다. 그러나 아직 일곱 권이나 더 남았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니 못다한 얘기는 차근차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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