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는 여섯 살 난 딸이 있다. 이름은 동주다. 딸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딸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딸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로빈슨크루소』저자)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인가. 일을 하면 동주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더는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정도만 해도 저는 충분히 미친 사람이라고 욕을 얻어먹을 테니까요. 위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107쪽 본문 내용 중 장 교수 아들의 이름을 제 딸 이름으로 바꾸었을 뿐 본문 그대로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아들 실명까지 들먹이며 주장한 이 터무니없는 예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섯 살 난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마흔 살 먹은 어른에게까지 보조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통해, 아니 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혹자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은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한국 정부는 공산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시장을 말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 시장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사업들을 관세와 보조금으로 보호하고, 어떤 부문에는 외국인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특허 상품의 '위조품 제조'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민간 기업들이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면 국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고 있어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하였습니다.

이런 '이단적인' 정책으로 부유해진 것은 한국뿐만 아닙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해서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여겨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지금의 선진국들의 과거에 행했던 일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과거에 이렇게 해서 성공해 놓고는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 즉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선진국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동조하거나 퍼뜨리는 사람들을 일러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비틀어 표현한 것입니다.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장하준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많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은 『사다리 걷어차기』의 속편, 또는 의 대중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꽤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읽기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가장 대중적인 세계화 안내 책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세상의 절반은 세계화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를 현대화하고 능률화하고 민영화하면서 보다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나머지 절반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은 사이즈가 단 하나 뿐입니다. 무조건 이 옷에 맞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만약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따랐다면 렉서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일본이 일찌감치 황금 구속복을 입었더라면 여전히 1960년대 수준의 3류 산업 국가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렉서스를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누가 뽕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뽕나무는 당시 주력 수출품이었던 견직물 생산을 빗댄 것입니다.

도요타는 30년 넘게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한 뒤에야 비록 하급차지만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이 모직물 제조 부문에서 저지대국을 따라잡기까지는 헨리 7세 시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이 걸렸으며, 미국이 관세를 폐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경제를 발전시키기까지는 130년이 걸렸습니다. 이렇듯 시간을 길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견직물이,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미국에서는 면직물이 주력 수출 품목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희생 없이 미래는 개선되지 않습니다. 이런 충고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힘주어 말할 것입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

자유 시장은 각국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할 것을 지시합니다.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난한 나라에게 현재 하고 있는 생산성이 낮은 활동을 계속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생산성 낮은 활동을 하고 있기에 가난하기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만일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 나라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그 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노키아가 그랬고, 삼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p.319)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위선적인 경고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그리고 무엇이 대안인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하준의 주장에 대해 노암 촘스키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장하준의 경고는 오싹하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장하준의 '정체는 뭐냐?'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경계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의식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있나 봅니다.)
장하준의 글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칼을 들이댑니다. 그의 글은 박정희식 산업 정책과 재벌 옹호로 비쳐질 수도 있고, 전작 내용까지 고려하면 소액주주 운동 등에 대한 비판까지 좌파의 신경을 거스르는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처절하리만치 짓밟는 그의 논리에는 아무리 마음 좋은 우파라도 제편이라 생각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는 과거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반신자유주의와 반재벌 투쟁은 같이 갈 수 없다. 진보 진영이 ‘모든 것이 박정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박정희식 경제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따라서 대안은 재벌 시스템을 일정 부분 인정해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이끌어내는 대타협이다.’ (2007.4 한겨레21)

이에 대해 김창근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장하준의 이론은 재벌을 위한 '국가 옹호론'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이론은 국가의 '발전'에, 김창근 교수의 비판은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 경제학 : 1960년대에 처음 출현하여 1980년대 이후 경제학의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능률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경우 정부 개입은 수입 제한을 통해서든 독점의 형성을 통해서든 잠재적인 경쟁자의 진입을 제한하여 경쟁의 압력을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비록 신자유주의자들이 과거의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지 않던 일부 정책과 제도(특허,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 발행, 정치적 민주주의)를 옹호하기는 하지만 과거 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자유 시장에 대한 열광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규제 철폐와 민영화, 그리고 국제 무역과 투자에 대한 개발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아젠다는 1980년대 이후 동일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