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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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핑크빛 유토피아를 희망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미래를 점쳐보면 안타까운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의와 수반되어지는 물질만능주의라는 모토가 깨어지지 않는 한 미래의 소득불평등에 의한 불행은 자명한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존재하였던 절대군주의 시대는 갔지만 ,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적 부를 가지고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경제권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하고 있다. 그럼 다시 독재국가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독재국가를 이 책 <헝거게임>에서는 '판엠'이라고 한다.

 

 

판엠의 중심부에는 '캐피톨'이라는 이름의 수도가 있고, 모든 부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변에 있는 구역의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야생짐승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주인공 캣니스는 12구역에 산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활능력을 상실한 어머니와 나이 어린 동생을 먹여살려야 하는 소녀가장이다. 12구역에 배급되는 음식을 받지 못할 때는 사냥으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기에 다른 소녀보다는 빼빼하지만, 오랜 수렵생활로 민첩함과 남다른 지구력을 자랑한다. 판엠에서는 해마다 12개 구역에서 각기 두명을 추첨하여 뽑아 '헝거 게임'을 진행하는데 단 한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경기는 계속된다. 어찌보면 <베틀로얄>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배틀로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배틀로얄>은 3일간 무인도에서 친구들끼리 실제로 서로를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 최후의 생존자만이 살아 돌아갈 수 있는 내용의 영화로 개봉 당시 극단적인 설정과 청소년들의 잔인한 살해 장면 때문에 학부모단체, 시민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헝거 게임>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면밀하게 파헤치며 십대 소년 소녀가 서로 죽이는 모토는 같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욕망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인 차이점을 보인다.

 

 

"헝거 게임'의 추첨에 동생 프림이 불리자, 놀란 캣니스. 어린 프림을 차마 헝거 게임에 보낼 수 없었던 캣니스는 프림대신 자원하게 된다. 헝거 게임은 판엠의 시민들이 광분하는 프로그램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생중계하여 보여준다. 따라서 헝거 게임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은 대중 스타 못지 않은 치장을 하고 , 스폰서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헝거게임은 게임의 의미만이 아니라 대중 오락게임 같은 인식으로 판엠의 국민들 모두가 즐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국민들은 헝거 게임의 승자를 예측하기도 하고 스토리를 부여하여 광분하기도 하고 출연자들의 외모에 관심을 갖기도 하는데, 출연진들은 거의 대중스타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다. 가난한 구역의 아이들이 난생 처음 호강아닌 호강을 해보는 것이다. 며칠 뒤에는 서로 죽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캣니스는 게임에서 죽을 자신들에게 열광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자못 못마땅하지만,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엄마와 동생 프림,둘만 생각하면 캣니스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난, 그들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괴물로 날 바꿔 놓는 그런 거 말이야."

 

 

이렇게 이 소설은 소득불균형이 가져온 미래사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판엠에서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과는 달리 12구역에서 캣니스의 삶은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그래도 먹을 것을 찾지 못해 토끼를 잡아먹어야 하는 삶이다. 부가 지배하는 세상과 가난에 익숙해져 있는 세상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지배와 복종만이 있는 세계이다. 지배계급의 잔인함은 복종하는 이들, 즉 가난한 이들 속에서 십대 소년 소녀를 차출하여 서로 죽이게 한다. 이와 같은 설정은 인류사에서 지배계급의 잔인성에 대한 모습이다. 인간의 사회적 욕망이 얼마나 잔인성을 띠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헝거 게임>은 이렇게 잔혹하고 독단적인 어른들에 의해 가없이 희생되는 약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유토피아로 만들 것인지, 디스토피아로 만들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가학적인 오락과 TV프로그램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경고를 보낸다. 총 3부작으로 되어있는 <헝거 게임>의 후속편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하니, 아니 볼 수 없을 것 같다.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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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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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전쟁이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큰 아이는 자신이 정해놓은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집이 떠나갈 듯이 울어 제끼고, 큰아이와 달리 항상 늦잠을 자는 작은 아이는 더 자고 싶어 울고불고 한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항상 둘을 믹스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딱 중간인 아이면 완벽할 텐데 하고....

큰 아이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자라 , 엄마 입장에서는 피곤하다.

작은 아이는 지나치게 활달해서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다.

신학기 들어서 새로 사준 책<열세번째 아이>를 읽어주었더니 아이들이

"엄마는 어떤 아이를 원하세요?" 묻는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떠오른다. 먼 미래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점점 늘어가면서 감정이 있는 로봇이자 키울 수 있는 로봇, 말동무가 가능한 로봇을 사람들이 원하자 감정이 있는 최초의 로봇, 데이빗이 탄생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 시우는 로봇을 만드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물론 시우는 로봇은 아니지만,엄마의 주문에 의해 맞추어 태어난 아이다. 따라서 로봇초럼 엄마의 통제를 받으며 자란다. 시우가 사는 세상은 2070년 , 로봇이 친구이자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는 시대이다. 로봇을 연구하는 엄마 덕에 시우의 방에는 최신형 로봇이 넘쳐난다. 시우는 자신과 늘 함께하는 로봇에 싫증이 나고 ,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만든 로봇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해주세요. 뭘 할지몰라 갈팡질팡하는 성격은 딱 질색이예요.

 냉철하게 해주세요.마음이 약해 빠져서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맞춤형 아이 NO.13 열 세번째 아이가 바로 시우다. 그리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로봇 레오가 친구로 온다. 엄마의 신개발 최신 로봇이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로봇 레오를 보며 자신보다 더 사람같은 행동을 하는 레오를 보며 당황한 마음이 든다. 마치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말도 술술 잘하고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를 구해주는 등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 레오, 시우는 그런 레오를 보면서 자신의 존재 역시 로봇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데, 맞춤형 아이가 인기를 끈 이유는 '첫 번째 아이' 인 김선이 어린 나이에 최연소 노벨상을 받아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버리는 부모들이 생기게 되자, 맞춤형 아이 프로젝트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엄마의 로봇 연구는 로봇의 인권문제까지 거론이 될 정도로 난항을 겪게 된다.

 

로봇 레오는 시우를 기억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시우는 레오가 기억하는 것은 가슴이 아니라 감정칩에 입력된 것을 기억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연소 노벨 수상자이자 모든 사람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던 주인공 김선 박사의 자살로 인해 시우는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몰래 보게 된 자신의 프로젝트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시우를 걱정해주는 이는 엄마가 아닌, 바로 로봇 레오였다. 그러나, 감정 로봇들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초유의 반환사태를 맞고 레오는 경찰에 쫓기는 상황이 된다. 쫓기는 레오와 같이 손을 도망가는 시우. 처음으로 마주 잡은 손의 감촉은 둘의 사이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된다. 시우는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가슴으로 뛰는 기억을 가지게 되고 , 레오는 잠시나마 시우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기억과 감정이 없다면,

내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는 단순한 기계로 살고 싶지 않다.

 

 

천문학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과학문명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열 세번째 아이>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성적 위주의 사회, 무한 경쟁의 사회속에서 아이들에게 부모가 바라는 것은 점점 사랑과 애정이 아닌 좋은 성적과 스펙쌓기이다. 나노 기술로 개발 된 자기 복제 기계속에서 우리의 미래라는 그림은 인간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가운데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맞춤형 아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가설은 어쩌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이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은 빠짐없이 읽어보았는데 이번에 <열세번째 아이>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참, 어떤 아이를 원하냐구?

비록 허점투성이라도 남을 사랑할 줄 알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아이로만 커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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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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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가장 불쌍한 죽음하면 사도세자가 떠오른다. 작년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나서 사도세자를 더 불쌍히 여겼던 것 같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그렇게 절절하게 그린 역사소설을 처음 읽었기에 더욱 가슴 절절히 다가왔던 책이었다. 그러나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 더 근접하게 쓰여 진 책이라 그런지 전혀 다른 사도세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틀려지지만,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것에는 당혹감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사도세자의 고백> 에서의 사도세자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며 지극히 평범한 범인 凡人의 시각이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철저하게 당쟁의 희생양으로 보여졌지만, <권력과 인간>에서는 사도세자를 범인凡人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왕조국가에서 권력의 최고점에 있는 임금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죽음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권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수많은 백성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으며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만 백 여명이 있었다. 이것이 어쩌면 그의 직접적인 죽음의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사도세자 죽음의 배경과 전후 경과를 집중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첫 연구서와 같다. <승정원일기>, <한중록>, <영조실록>,<현고기>등 사도세자가 언급된 사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시대의 분위기를 읽기 쉽게 하며 궁중 생활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그 시대의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이야기에 빨려든다.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부터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조, 정조, 혜경궁 홍씨까지 근 일세기의 역사가 이 책 안에 다 있다.

 

사도세자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버지 영조이다. 영조의 성격과 사도세자의 성격만 봐도 둘은 정말 맞지 않는다. 영조는 좋은 일과 나쁜 일,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병적일 정도로 나누어 보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이분법적 논리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이라고 한다. 심리학 논문에서 편집증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인식하는 방법이 이런 이분법적 사고라고 한다. 영조는 평생을 출신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신혼 첫날밤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평생을 소박맞은 채 외롭고 쓸쓸하게 산 정성왕후의 일화만 봐도 영조가 얼마나 편집증이 강한지 잘 알 수 있다. 그런 영조의 성격에 사도세자는 골칫거리중의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먹는 것을 좋아해 굉장히 뚱뚱했던 사도세자는 예술가의 기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문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던 아비의 눈에 비친 아들은 놀기만 좋아하는 한심한 아이였던 것이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본격적으로 실망하기 시작한 것은 열 살 전후라고 하는데 기존역사서는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한중록>의 기록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분위기였으나, 저자는 <승정원일기>,나 <영조실록>과 같은 일차적인 사료를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도세자의 광증에 관한 자료는 정조에 의해 대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료를 살펴보면 사도세자의 광증을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기록에서 사도세자의 광증을 증거하고 있지만 병증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진행 경과를 상세히 기록한 것은 <한중록>밖에 없다. 이것에 대해 저자는 혜경궁의 저술 동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저술 동기는 사도 세자가 광증에 의해서 영조를 죽이려고 했으니 그것이 온전한 정신에서 행한 것이 아니었기에 문제 삼을 수 없다는 , 누가 억지로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을 만해서 죽었다는 것이 혜경궁 논리의 핵심이다.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의 광증의 증상을 비교적 세세하게 다루었는데 옷을 입다가 맞지 않다 싶으면 벗어 던지고,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가 혹시 귀신이 씌었나 해서 태우기도 하는 '의대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옷을 입다가 마음에 안 들면 사람을 죽이곤 하는 심한 가학증으로 표출되었다. <현고기>에서는 사도세자의 살인에 대한 잔혹감과 살상규모가 짐작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무섭기 만한 아버지, 계속되는 병에 자살시도도 여러차례 였다고 전한다. 일반불안장애, 강박장애,충동조절장애 등으로 신음하던 세자는 1760년부터는 헛것을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버지를 직접대고 욕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임금을 욕하는 것만으로도 대역 죄인이 되는 왕조국가에서 아버지 욕을 하는 것도 모자라 사도세자는 급기야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칼을 차고 다녔으니 , 스스로 명을 자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이 때 자신이 총해하던 애첩 빙애도 죽이고 아들 은전군도 칼로 친다. 이 시기에 삼정승이 죽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기록이 삭제되어 사인을 밝힐 순 없지만 , 세자로 인해 죽었음을 비유적으로 전한 이야기가 <대천록>에 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세자가 미쳐서 그리되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쟁에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아마도 당쟁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사도세자의 기록에 대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세자가 광증을 앓고 있어 죽였다고 하면 광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아들인 정조 역시 권력의 구도에서 보면 위태로운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영조가 죽기 전 정조는 상소를 올려 사도세자의 비행과 반역의 혐의에 관한 기사를 모두 삭제케 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사도세자가 반역죄를 범한 죄인이 되면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어 임금으로 신하들 앞에 권력을 가지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역사를 말할 때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는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권력은 마치 마약같아서 권력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 권력이라는 힘의 작용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간에게 권력이란 달콤한 독이다. 권력에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든 이유가 너무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달콤함은 아들도 죽이고 아내도 죽일 수 있는 독을 낳는다. 당쟁도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고,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다. 정조가 친구 홍국영을 죽여야 했던 것도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권력자에게는 친구도 집안도 부모도 자식도 없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과거는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바뀌어 갔다,'라고 썼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 또 자기 자신과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위해 , 사도세자의 이미지를 조금씩 바꾸어나간 것이다. 왕조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권력을 이해하지 않고는 역사를 바로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 여기에 있다. 역사를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 <권력과 인간>은 굉장한 가치를 지닌다. 역사 팩션 소설을 읽으면서 늘 느끼던 당혹감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사려 깊게 해석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다름아닌 인간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권력욕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칭했던 화려한 문화의 전성기 시대였던 영정조 시대를 이해하려면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기존의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읽었던 역사팩션소설<사도세자의 고백>과는 다르게 이성적이면서도 공정한 시각의 사도세자의 모습은 첫 페이지부터 몰입되어, 밤을 꼬박 새워 읽어야 했다. 마치 역사의 진실 속으로 타임머신 된 기분이었다. <권력과 인간>은 그만큼 생생하고도 살아있는 역사를 밝힌다. 역사의 진실fact에 가장 근접한 역사서라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기존 팩션faction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로 보는 안목을 길러줄 진정한 역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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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줄리 크로스 지음, 이은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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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가 여러편 있다. 시간여행계의 고전이라 불릴 <백 투더 퓨처>는 말할 것도 없고 최신작 중에도 <나비효과>나 <점퍼>등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어쩌면 시간여행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서의 환상을 주기 때문에 영화나 문학계에서 다루기에는 무척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과학계에서도 공개적으로 시간여행을 연구하고 있으니,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2012년에 돌아온 시간여행자는 다름 아닌 <펨페스트> 이 주인공은 기존에 알려져 있는 주인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나비효과>의 잘생긴 애쉬튼 커처가 시간이동을 할 때마다 코피를 흘리고 점퍼의 주인공처럼 스핑크스의 머리 꼭대기와 콜로세움, 도쿄 시내를 순간 이동하진 않지만, 점프를 함으로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비록 다른 시간여행자에 비해 평범한 것 같아 보이지만, 템페스트(점프 시간여행자를 지칭하는 말)는 시간여행 뿐아니라 달달한 로맨스와 훈훈한 가족애가 잘 어우러져 재미와 감동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잭슨은 2009년, 자신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프를 하면 과거로 약 여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잭슨은 시간여행을 하게 되자 기존에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시간여행이 거짓말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시간여행을 한다고 해서 미래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어 시간여행중에 코뼈가 부러져도 현재로 돌아오면 약간의 멍자국은 있을 수 있으나, 전혀 아프다거나 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괴짜 천재과학자 애덤은 잭슨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둘은 좋은 협력자로서 시간여행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여친 홀리는 애덤과 늘 붙어다니는 남친 잭슨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서운해 하는데, 삐진 홀리를 달래주기 위해 달콤한 밤을 보낸 날 , 난데없이 나타난 검정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홀리는 총에 맞는다. 홀리가 총에 맞는 순간, 잭슨은 2007년으로 점프업 한다. 2년전으로 돌아간 것은 최고의 기록이지만, 총에 맞아 쓰러진 홀리를 두고 떠나와 죄책감이 잭슨을 사로잡고, 잭슨은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미행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아버지였다니 !

 

 

잭슨의 계속된 시간여행속에서 CIA의 추격, 납치, 과거 죽은 동생과의 재회등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된게 2009년으로는 점프업이 되지 않는다. 이유는 홈베이스가 2007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잭슨은 2007년에 적응하려 하는데... 맙소사 ! 2007년의 홀리를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잭슨은 자신을 해치려 하는 사람들이 EOT라는 시간여행자의 적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로부터 미래의 홀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간여행자 잭슨은 자신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있었다. 이 소설이 단순해 보이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관계가 아님에도 더한 사랑을 보여주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가족애를 느끼게 해주며, 죽은 여동생의 임종을 함께 하는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주인공들의 로맨스는 더없이 풋풋하다. 중간중간 <본 아이덴티티>의 첩보물을 연상케하는 추격씬은 더욱 읽는 즐거움을 준다. 2012년에 새로 돌아온 시간여행자 <템페스트> 영화 또한 무척 기대된다. ^^ 나도 점프업 !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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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유토피아 - 좋은 사회를 향한 진지한 대화
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권화현 옮김 / 들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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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의 붕괴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몰락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최근 영국인의 여론 조사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마르크스가 꼽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마르크스 사상은 세계를 보는 눈이라 볼 수 있다. 황광우 박사는 <철학콘서트>에서 마르크시즘에 대하여 21세기는 자본주의의 강 언덕에서 사회주의의 강 언덕으로 건너는 뗏목을 띄울 시기라는 말을 했었다. 그만큼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은 21세기를 사는 현재의 새로운 해방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리얼 유토피아> 역시 자본주의의 한계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궁극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적절한 대안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인 것 같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이론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의 가능성의 조건을 파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불가능한 사회질서가 될 것이며, 따라서 '어떤' 대안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이런 탁월한 그의 안목의 요체는 민주평등주의적 경제. 사회조직이 바로 그 대안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에 현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더욱 주목 되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었다. 그가 말하는 이상세계는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6시간 일을 합니다. 오전에 3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고 2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3시간 일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그들은 8시간 잡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취미에 따라 자유롭게 보냅니다.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데 여가를 이용합니다.."

 

 

유토피아가 하고자 하는 모든 사업의 목적은 생존을 위해 투여해야 하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늘리는 데 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정치사상사에서 획기적 의의를 갖는 것은 대중을 사회의 주체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가 지향했던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아있어 이후 유토피아가 주는 의미는 '이상향'이라는 공상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 유토피아 앞에 이 책은 리얼이 들어갔다. <리얼 유토피아>의 저자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이상에 근접한 유토피아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이다. 리얼 유토피아 프로젝트에서는 현존하는 세계의 해방적 대안에 기초가 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제도적 원칙들을 명확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다.

 

 

"우리의 진짜 과제는 스스로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제도, 사람들의 욕구에 반응하고 그에 따라 진화할 수 있는 제도를 생각해 내는 것이지, 너무 완벽해서 더 이상 변할 필요가 없는 제도를 생각해 내는 것은 아닙니다." -p12

 

 

따라서 맨 첫장의 시작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열한가지 비판을 통하여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해악 그 자체와 이 해악들이 발생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진단한다. 이 열 한 개의 명제는 급진적인 평등주의적 민주적 규범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명백하게 규정하며,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안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에 이어지는 장들은 이런 자본주의의 해악에 관하여 두가지 관점에서 의문을 제가하게 된다.

 

 

첫째, 자본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둘째, 이 대안을 창조하기 위해 현존하는 사회의 권력관계와 제도들에 어떻게 도전해야 하는가? 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궤도의 핵심적 속성들에 관한 결정적인 이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파괴할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가 대안이다. 이때 근거가 되는 개념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국가와 경제에 대한 사회의 권력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권력이란 쉽게 말해 주권과 권력이 시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사회권력의 강화 과정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국가사회주의나 참여 민주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도 그럴것이 심각한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소득 불균형으로 인해 잘사는 사람만 잘살고 가난한 사람은 그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어 허우적대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은 증가하지만 딱히 대안은 없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 불확실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현재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속에서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리얼 유토피아>를 읽어본 것은 행운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진단, 그에 따른 대안은 시기적절 할 뿐만아니라 한번 쯤은 진지하게 모색해 보아야할 사안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시민이 사회권력의 주체로서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것이야말로 리얼 유토피아 세상이 아닐까? 머지 않은 미래에 리얼 유토피아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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