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5.28 정의가 충돌할때…‘공동선’을 고민하라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샌델의 수업은 하버드대에서 가장 있기 있는 강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그가 2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정의’(justice)라는 강의는 교수의 유창한 진행과 학생들의 열띤 참여로 하버드대 최고의 강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무장한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샌델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분명하게 논증한 정치철학 이론서가 됐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내는 것도 도덕적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도덕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데, 정치철학도 다르지 않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샌델이 여기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딜레마적 상황을 살필 때 샌델이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전체의 행복이 최대치가 되게 하는 것을 정의로 간주한다. 벤담은 이런 생각을 1780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서 피력했는데, 5년 뒤 이마누엘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에서 벤담의 사상을 맹비판했다.

벤담의 논리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 소수 개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정의다. 칸트는 인간이란 이성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입각해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200년 뒤 롤스는 칸트의 이 주장에 입각해 ‘평등적 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 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오늘날 정의의 이론이 공동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샌델이 보기에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이런 공동선을 외쳤으나, 그가 암살당한 뒤 진보파가 이 문제를 놓아버렸다. 그랬던 것이 2008년 대선에서야 버락 오바마와 함께 공동선의 문제가 진보적 의제로 부활했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 찬 기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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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5.28 근현대사 거목이 몸으로 쓴 ‘당대사’

‘군국소년 세대’와 다른 길…한평생 평화통일문제 고민
현실 외면 역사학에 ‘쓴소리’…‘체제평가’ 다양한 기준 강조 

 

 

강만길(77)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읽고 한홍구 교수가 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역사학자들이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군국소년’ 세대인 강 교수가 이 땅의 대다수 군국소년들과는 판이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가의 시간>은 역사학자로서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와 군국소년 세대이면서 그것을 거부한 삶의 궤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 

강 교수 얘기에 따르더라도 “국내 역사학자가 남긴 것(자서전)은 어느 특정 시기만을 다룬 것 외에는 없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왜 한국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 걸까?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는 군국소년 세대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서전 목차에 올라온 강 교수 삶의 궤적을 약간만 훑어보면 짐작이 간다. 1933년에 태어난 그는 1940년에 마산의 ‘심상소학교’에 입학해 창씨개명과 우리말 금지 수난 속에 소년기를 보내다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 그러곤 바로 사생결단의 신탁통치 찬반 탁류에 휩쓸렸다. 중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고 학도의용군이 됐다. 대학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겪었고 고려대 전임교원이 된 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시작됐다. 더불어 중앙정보부 남산분실 지하 취조실에서 그 자신의 수난도 시작됐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 두 차례나 해직당했다. 서대문 교도소까지 갔다. 자서전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고 위험한 세대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그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다. 광기에 가까운 그 기이한 행태는 최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 교수는 군국소년 대다수가 간 그 길을 왜 거부했나? 그리고 어떻게 철저한 평화주의자, 남북 대등통일론자, 민주주의자가 됐을까? 바로 그런 얘기를 매우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게 <역사가의 시간>이다.

‘분단시대’라는 말을 재창조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통일고문에다 남북 역사학자 교류를 이끌었으며 잡지 <민족21> 발행인을 지낸 그에게 ‘역사학계의 이단아’ ‘좌파 민족주의자’라 손가락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중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순수 실증주의’에 파묻혀 당대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 한국 역사학계야말로 이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가 좌파인 것이 아니라 실은 그를 좌파라 한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라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강 교수가 “한 사람의 역사학도 및 역사선생이 평생을 통해 겪은 민족분단시대로서의 우리 현대사 경험담” 정도라고 한 자서전 형식의 이 책은 그런 중대한 사실들을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전혀 딱딱하지 않게 부드럽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격식을 갖춘 시대사류보다 오히려 더 심층적으로” 풀어가는 대단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끊임없이 강조해온, 우리 역사학계에는 결핍된 대중성과 현재성을 획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학부 졸업논문으로 조선시대 상업기관인 시전(市廛), 석사논문으로 조선시대 수공업자들인 장인(匠人), 박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에 대해 쓰는 등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가 주목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조선사의 정체후진성론과 타율성론을 논박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과 빈민생활사 등 사회경제사 연구에 몰두한 것도 마찬가지. 그는 실증주의를 신봉하면서 탈식민 민족해방이라는, 가장 절박했던 당대사적 현실과제를 외면했던 주류 조선역사학계를 비판한다. 식민사학에 대항했던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 중 민족주의사학의 일부는 광복 뒤 남쪽에선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일제시대 실증주의가 결과적으로 식민사학과 식민통치에 기여했듯이 군사독재정권 추수라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강 교수는 6·25전쟁과 4·19, 5·16을 거치면서 그런 모순을 감지했고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후 바로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면서 다수 대중이 겪어내야 했던 자기 시대의 고통스런 현실과 그 근원이라고 할 분단문제·통일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역사학에 회의를 품었다. 그가 연구분야를 점점 현대사와 민족통일문제 쪽으로 옮기고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논객’으로서의 활동을 강화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강 교수는 박정희 시대 평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평가도 골고루 포함된 “종합적·역사적” 평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그 시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고, 생산성만이 아니라 분배정의까지 고려한 경제적 민주주의도 바닥이었다. 경제성장도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도 진행됐던 일반적 전후복구 과정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또한 희생당한 노동자·농민의 역할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력을 특정 세력이 독점한 상태하의 사회적 민주주의,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은 문화적 민주주의 모두 낙제점이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평가기준인 평화통일 진척도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종합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박정희 시대 평가는 과도하고 또 잘못된 것이다. 그는 역사학 연구자는 모름지기 “현실적 상황에만 얽매이고 싶지 않은 미래지향주의자, 어떤 이념적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으려는 철저한 평화주의자, 분단된 민족의 다른 한쪽을 세상 사람 모두가 적으로 간주해도 홀로나마 기어이 동족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평화통일론자”가 돼야 한다며 그런 사람을 좌경 또는 좌파 민족주의자라 부른다면 자신은 주저없이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 책 내용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게 지은이와 개인적 인연을 맺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인데, 한때 유명한 민주투사였다가 뉴라이트의 핵심이 된 사람, 말년이 씁쓸했던 천관우씨, <사슬이 풀린 뒤>란 책을 남기고 월북한, 좌도 우도 아니었던 오기영, 교토제국대 교수였던 비날론을 만든 화학자 이승기와 이태규의 대조적인 삶, 일본인 학자들과 20여 차례 방북하면서 만난 북쪽 인사들과의 기연과 인물평이 흥미롭다. 

■ 지은이와 함께 강만길 명예교수

“역사는 결국 제 갈길을 간다”
전공자로서 해야 할 일 …정년퇴임 때부터 구상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요즘 강원도 동해 하조대 인근의 “거실에서 바다 해돋이가 보이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2005년까지 4년간 상지대 총장으로 있을 때 쉬면서 글을 쓰려고 사 둔 20평 정도의 아파트인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2년간 맡는 바람에 2007년 하반기에야 소원을 풀었다. 요즘 “사 둔 책들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며, “식구들이 오가지만 나는 주로 이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걸어서 하조대까지 갔다가 온다며 건강에도 전혀 문제가 없단다.

<역사가의 시간>은 199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직을 32년 만에 정년퇴임할 때부터 구상했고, 동해로 온 뒤 2년여에 걸쳐 썼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사업의 책임을 중도에 벗으면서까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역사학 전공자, 그것도 고대사나 중세사가 아닌 우리 근현대사 전공자로서 살아온 지난 한평생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일”이었단다. 그만큼 쓰고 싶은 사연도 많았던지 부록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지(약 160쪽)까지 포함해 총 700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번 책이 그가 쓴 책으로는 “스물네댓 권째쯤” 된단다.

요즘 어수선한 시국과 관련해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완전히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직행만 하진 않는다. 막힐 때도 있고 해서 지그재그로 간다. 중요한 건 좌든 우든 지그재그로 틀 때 될수록 그 각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각이 지면 극좌나 극우로 흘러가고 그러면 전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는 “길게 보면 기어이 가야 할 방향으로 가야 할 만큼 가고야 만다”는 게 강 교수의 한결같은 신념이다. 그는 이를 “역사진행의 정직성”이라고도 했다.

역사에 평면적인 순환은 있을 수 없다. 비슷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듯 보여도 그곳은 출발지점이 아니라 나선형적으로 나아간 지점이다. 만약 이를 원점회귀시키려 한다면 훨씬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5·16 쿠데타 뒤의 저항에 비해 12·12 쿠데타 뒤의 저항(광주항쟁)은 차원이 다르지 않았나. 비관적으로 볼 것 없다.”

강 교수가 하려 했으나 하지 못한 두 가지는 개설서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본격적 역사론을 쓰는 것. “희망은 여전히 갖고 있으나, 아마 어렵지 않겠나. 이번 책 쓰는 데도 자료 처리도 어려웠고 기억도 예전만 못했다.” 조수들도 없이 혈혈단신이 된 지금 원시시대부터 다 포괄해야 하는 개설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단다. ‘역사는 인류사회가 추구해 마지않는 그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라는 명제를 설정해 놓고 있는 역사론은 “아직도 좀 욕심이 나지만, 낼모레가 팔십인 터에 그것도 장담은 못하겠다”고 했다.

지금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인간의 조건> 문고본이 얼마 전에 새로 나와 다시 보고 있다. <전후 책임론>이라는 책도 읽고 있는데, 일본에선 태평양전쟁 관련 책들이 많다며 특히 그런 책들이 일반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씌어 있는 점을 부러워했다.

“우리도 6·25전쟁에 관한 책이 한 20~30권 나와 있으나 일반인들이 읽기가 쉽지 않다”며 역사학계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ps : 나에게 강만길 교수는 잘 와닿지 않는 지식인이다. 솔직히 읽어본 책도 없고...하지만 이 책만큼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 중에서 한홍구 교수의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니 불현듯,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완의 시대'도 예전에 헌책방에서 보이길래 구입은 미리 해놓았다. 그러고 보니 급하지도 않은 읽지도 않은 책들을 참 많이도 구입했다. ㅋㅋ 그래도 절대 그 습관(?)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에게까지 전해줄 좋은 습관. 하하~~ 시대의 역사가들인 이 둘의 자선전 같이 읽오봄직하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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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상봉 교수다운 글이다. 우리나라에 얼마 되지 않는 교수라는 제도적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식인다운 면모를 갖춘 분인 것 같다. 이런 분이 많이 나오고 부디 김상봉 교수님도 지금과 같은 비판적인 면모를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한다.

 

프레시안 인터뷰 "2010.5.28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진보?…가짜다" 

한때 '거리의 철학자'였던 그가 삼성을 겨냥했을 때,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대학을 떠난 뒤에도 당당했던 그였다. 공부가 좋은 직업을 얻는 수단으로 통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간단치 않다. 그의 실천과 공부가 한 덩어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한 삼성불매운동은 그냥 '정치적으로 옳은 일' 차원이 아니다. 서양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바탕에 뿌리를 둔 실천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지난 3월 <프레시안>에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기고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다. 김 교수가 주변 지식인과 활동가, 정치인들을 상대로 삼성과의 싸움에 나서도록 호소했을 때, 그를 아끼는 독자들이 맹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것은 그래서였다. '삼성 불매 운동이 어떤 철학적 배경에서 나온 걸까', '철학자가 이해한 삼성 문제란 어떤 것일까' 등의 의문이다.

결국 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근처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예상대로였다. 그가 쏟아낸 말은, 미리 외워둔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얻은 결과물 같은 상투적인 논평과 달랐다. 말에 담긴 개념은 푹 익어있었고, 맥락에서 동떨어진 낱말은 찾기 힘들었다. 그가 제안한 삼성불매운동이 그저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대화였다.

이날 이야기를 마친 뒤, 그는 프레스센터 18층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신기자들 앞에서 그는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이 <경향신문>에조차 실리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대기업에 짓눌린 한국의 민주주의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그는 외신 기자들 앞에서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일, 삼성 주식에 투자 하지 않는 일에 전 세계 소비자·투자자가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호소에 앞서 김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학벌과 재벌,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

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

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프레시안>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

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

"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

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

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

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

"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

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

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

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

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

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

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

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과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질 게다.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

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

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ps : 한때 나도 삼성제품을 단 한개도 사지 않았다. 결혼 혼수 준비를 할때도 삼성 제품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그러다, 작년 처음으로 삼성 핸드폰을 구입했다. 물론 어쩔수 없다는 핑계가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김상봉 교수가 참 좋다. 대학에서 교수의 강의를 듣고 지도를 받고 싶을 정도로...예전에 몇번의 강좌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참 인상도 좋고 말씀도 잘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몇권의 책은 교수님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ㅋㅋ) 그래서 그 이후로 김상봉 교수의 책은 거의 빼먹지 않고 구입하고 읽고 있다.(물론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지만..)  

김상봉 교수의 책들을 한번 모아본다. '만남'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상봉 교수의 단독 저서이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내 서재에 아래 책이 모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중 읽은 책은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 뿐이다라는 사실도 알았다. ㅋㅋ 생각난 김에 우선 '자기의식과 존재사유'부터 읽어야 겠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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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눈물만 난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참 푸르고 편안했던 강들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게 누군가에는 파헤쳐서 뚝을 쌓아서 공사를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이제 공정률이 30%라고 한다. 지금까지 한게 아까워 계속 해야한다고도 하고, 더이상 돌이킬 수 없기 전에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고도 한다. 참담할 뿐이다.

 

프레시안 2010.5.28 "아, 낙동강!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굽이쳐 흐르던 낙동강 1300리 물길의 옛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천 마리 백로의 고고한 날갯짓에 근심도 사라진다 하여 이름도 우망리(憂忘里)가 된 시골 강촌 마을의 한적한 풍경도, 빼어난 경관 탓에 하늘이 만들었다고 이름 붙은 경천대(擎天臺)의 옛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특유의 곡선을 뽐내며 흐르던 강, 그 1300리 물길은 뻣뻣한 직선으로 구획이 나뉘어 파헤쳐졌다. 넓게 펼쳐진 은빛 모래사장도, 푸른 습지와 어우러진 버드나무 군락지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굴삭기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지나간 흔적만이 흉터처럼 깊게 패였다.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낙동강의 모습이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가 낙동강 공사 현장 일대를 항공 촬영한 사진을 27일 공개했다. 맑은 물 대신 뿌연 탁수만 흐르는 '낙동강 제 1경' 경천대의 모습부터, 상주보·구미보 등 보 건설 현장까지 '폐허'가 된 낙동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는 "수십 대의 굴삭기를 투입해 곳곳에서 준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오탁방지막조차 설치되지 않는 곳이 많다"면서 "어류 산란기인 4~6월 사이 진행되는 대규모 준설로 물의 탁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져 수질 악화 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구미보 하류의 감천 합수지의 모습. 보 건설 현장에서 흘러나온 탁수로 본류와 지류의 수질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구미보 공사 현장의 모습. 11미터 높이의 교각과 상판이 세워졌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일선교 하류의 준설 현장 모습.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풍경이다. 굴삭기가 대거 투입돼 준설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어디에서도 오탁방지막을 찾아볼 수 없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일선교 하류 준설 현장의 모습. 4대강 사업에 관한 환경영향평가는 어류 산란기인 4~6월에 준설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지역에 대한 대규모 준설 작업은 4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하늘이 만들었다'고 불릴 정도로 낙동강 1300리 물길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낙동강 제1경' 경천대 상류 구간의 모습. 대규모 준설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오탁방지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뿌연 탁수만이 강을 뒤덮고 있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상주보와 강창교 사이에 위치한 준설 현장의 모습. 버드나무 군락지와 초지가 잘려나가고, 준설토는 인근 농경지에 10미터 높이로 적치됐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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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해평습지 일대. 낙동강 상류의 빠른 유속이 점차 느려지는 강 중류에 형성된 이 습지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호)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4대강 사업으로 곧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문경 퇴강리 상풍교 일대의 준설 현장. 뿌연 탁수가 낙동강 본류에 그대로 유입되고 있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상주보 공사 현장의 모습.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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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일수 연평균 4일... 제주도에서 겨울 사라져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와 제주지방기상청은 제주의 기후변화를 분석˙평가한 ´기후변화 이해하기 VI - 제주의 기후변화´를 발간하였다. 제주의 기후변화를 조사한 결과, 1924년에서 2009년까지의 지난 86년간 제주의 연평균 기온은 1.6℃ 상승하였고, 열대야일수는 3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영하일수는 80% 감소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의 기후변화를 상세하게 살펴보면, 연평균기온은 처음 10년(1924-1933년)은 14.7℃, 마지막 10년 (2000-2009년)에는 16.3℃로 지난 85년간 1.6℃ 상승, 연평균 최고기온은 18.1℃에서 19.2℃로 1.1℃ 상승하였고, 연평균 최저기온은 11.2℃에서 13.3℃로 2.1℃ 상승하였다.  

제주의 기온 

열대야일수는 처음 10년(1924-1933년)에는 7.6일 발생하였으나, 최근 10년(2000-2009년)에는 23.5일로 3배 이상 증가하였고, 영하일수는 1924-1933년의 21.0일에 비해 2000-2009년에는 4.0일로 17일(80%) 감소하였다.
   
연강수량은 처음 10년(1924-1933년)은 1382.4mm, 마지막 10년(2000-2009년)에는 1476.8mm로 지난 85년간 94.4mm 증가하였다. 강수일수는 처음 10년 기간과 마지막 10년 기간에 각각 144.6일, 135.1일로 9.5일 감소하였고, 강수강도는 9.5mm/일에서 10.9mm/일로 1.4mm/일 증가하였다.
 
평균풍속은 1925-1934년과 2000-2009년에 각각 5.1m/sec와 3.4m/sec로 1.8m/sec 감소하였으며, 상대습도는 75%에서 65.3%로 감소하여 9.7% 감소하였다. 1970~2009년(40년) 동안 연 안개일수와 연 서리일수는 각각 14.9일, 8.4일이며, 각각 0.7일/10년으로 증가, 3.1일/10년의 비율로 감소경향을 보였다. 

지난 40년간 연 뇌전일수는 15.3일이며, 3.3일/10년의 비율로 증가하였다. 1970~2009년(40년) 동안 황사일수의 변화는 2000년대 초에 황사일수의 최대 분포를 보이며, 1.2일/10년의 비율로 증가하는 경향이다.
 
계절별 시작일은 봄과 여름의 경우 각각 28일, 12일 빨라졌으며, 가을은 각 13일 늦어졌다. 겨울은 처음 10년 동안 겨울이 평균 36일 지속되었으나 마지막 10년에 겨울에 해당하는 기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절의 지속기간은 봄, 여름의 경우 각각 16일, 25일 길어졌으며, 가을, 겨울은 5일, 36일 짧아졌다. 

제주의 계절변화 

이번 제주의 기후변화 자료집은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제고를 위해 발간한 6번째 시리즈물로 기후변화에 의해 변화하는 기상요소를 살펴보고, 향후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발간하였다. 

기상포커스 2010.5.25 

 

ps : 기후변화와 관련된 책들을 서점에서 찾아보면 꽤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에서 부터 학생들에게 교육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책들도 많다. 그 중에서 내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스크랩한다. 이 중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저서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적인 내용이기 보다는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적인 협약의 방법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볼 수 있는 기후변화 관련 서적과는 좀 다른 내용으로 출판사의 설명으로는 내용도 쉽다고 하니 좀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그 다음 눈여볼 책은 '회의적 환경주의자'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 환경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 잘못된 주장에 빠져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그린피스 회원인 저자는 많은 환경단체들이 과학적 증거를 임의적으로 선택하고 오용하는 것에 비판을 하고 있다. 아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들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책이다. 나도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을 했는데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쉽게 손에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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