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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한 청년이 온몸에 석유를 뿌렸다. 그리고 불길에 휩싸인 채 달려가며 외쳤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고통과 진실의 절규였다. 몇 시간 뒤 작고 초라한 주검이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기적인 셈에 골몰하던 머리들, 따뜻한 지붕 아래 안온하게 잠자던 가슴들, 빈곤은 오로지 게으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마음들 곳곳에 불꽃이 움트더니 이내 활활 큰불로 번져 갔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죽은 청년 노동자의 삶은 그렇게 불씨가 되어 마침내 노동 해방의 거대한 불길이 된 것이다.

 

전태일.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그는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젊음을 던지며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살인적인 작업 환경과 형편없는 저임금에 시달리며 죽어 가는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구원의 목소리였고, 알면서도 모르는 체 외면했거나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반성과 눈뜸의 쇠망치였던 것이다. 지금도 서울 도심의 자연을 소생시킨 청계천에 전태일의 뜨거운 마음은 다시 태어나 세상을 밝히고 있다.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옆 버들다리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전태일 동상.

 

오늘은 8월 26일. 전태일이 태어난 날이다. 우리는 ‘노동자가 누려야 할 세 가지 큰 권리’를 외치며 자신이 읽고 있던 근로기준법과 함께 한 줌 재가 된 그 겨울날만 기억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권리 투쟁의 흔적은 서울 평화시장에 우뚝 서 있지만 본적은 대구 출신이다. (신기하게도 전태일의 본적과 생일은 나랑 똑같다) 봉제공의 아들로 태어나 대구에서 잠시나마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전태일은 진정 공부하기를 좋아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대구에서 잠시 공민학교(집안 사정으로 인해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남대문초등학교를 1년 남짓,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몇 달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지만 학업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그 때의 기억은 전태일이 남긴 수기 중에서 소년의 감성의 느껴질 정도로 해맑기만 하다. 22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전태일에게 이렇게 행복했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아홉 번째 서브까지 성공시키고 게임이 끝났습니다. 시합장엔 요란한 박수갈채와 승리의 개가가 퍼지고 나는 일약 오늘 이 게임에서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맑은 가을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55쪽)

 

그는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며 굶기를 밥 먹듯 했지만 자신의 배고픔보다 동생들의 배고픔을 더 아파했다. 가난 때문에 또래들처럼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던 전태일은 이때부터 자신의 여린 마음으로 스며드는 가난에 의한 고통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가고 기억하기 위해 흔적을 더듬어야 할 전태일의 고향은 너무나도 조용하기만 하다. 이러다가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흘린 소년 전태일의 눈물마저 잊을까봐 걱정된다.

 

 

 

 ♣ ‘똑똑한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바보’가 되다

 

전태일의 삶은 정말 뼛속깊이 가난했다. ‘밑바닥에서’.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전태일은 서울과 대구 등을 오가며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궁핍하기만 한 현실이 싫어 부산, 서울, 대구를 오가며 전전하지만 어디를 가도 배를 곯는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신문팔이, 구두닦이, 담배꽁초 줍기, 아이스케이크 장사, 우산장사, 손수레 뒤밀이 등... 그 시대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이란 일은 다 하며 눈 붙일 새 없이 열심히 살았건만 가난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재봉틀 일을 배운 전태일은 열일곱 나이에 평화시장에 위치한 봉제공장의 시다(견습공)로 취직했다. 재봉틀사와 재단 보조를 거쳐 드디어 재단사가 됐다. 그러나 봉제공장에서 나름 높은 위치라고 할 수 있는 재단사가 되어도 노동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휴식 없이 장시간 노동해서 그의 손에 쥐어진 돈은 쥐꼬리만 했다.

 

실밥과 먼지, 소음이 가득하고, ‘햇빛을 잘 못 보는’ 공장. 어리게는 12살부터 시작하는 시다들과 19살부터 시작하는 미싱사들은 하루 14시간을 일을 하고 한 달에 두 번 쉬었다. 그러고도 점심 도시락을 싸오거나 사먹기가 어려웠다. 일하다가 병을 얻으면 치료가 아니라 해고를 당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이 ‘주인 있는 개보다 못한’ 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조금씩 분노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의 전태일은 순진했고 그런 그가 생각했던 해결책은 그 스스로 모범이 되는 재단사가 되어 여공들을 살피어주는 것이었다. 본인 역시 형편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도봉산 기슭에 살던 전태일은 버스 요금으로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집까지 걸어 다녔다. 이따금 통금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가진 것도 없는 그가 수백 번 호의를 베풀어봤자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손바닥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거세게 밀려오는 물살을 거스르기 위해 애쓰는 꼴이었다. 작은 물고기가 아무리 애를 써봤자 거대한 물결은 움찔거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스스로 거센 물살에 밀려 한없이 떠내려갈 뿐이다. 그는 재단사가 되면 업주와 협의해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대화’로 근로조건을 개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서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전해들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 그렇지만 누가 그것을 알아준단 말이냐? (전태일의 수기에서, 204쪽)

 

기업주들의 횡포 탓에 모범 재단사로서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는 좌절한다. 그런 그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다시 희망을 품게 되고 환희와 희열까지 느낀다. 법적으로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휴일 시간, 건강 지침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 태일이 꿈꾸던 작업 환경이 꿈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는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6개월 치 월급에 달하는 책을 사 밤새 읽고 또 읽는다.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 밤새 읽어도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근로기준법 조문을 해석하는 게 유일한 하루의 낙이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는 모범공장을 만들려는 사업계획을 세웠다. 실천방법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는 1970년 3월 17일 쓴 글에서 “나는 학력이 없으므로 대학 동창이 없다. 또한 집안 친척 중에도 나의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될(댈) 만한 사람도 없다”“한쪽 눈을 사회에 봉사할 것이다. 눈을 사회에 봉사하고 나는 사회의 자금주를 소개받을 것”이라고 적었다. 같은 달 24일 한 일간지에 실린 실명자에 대한 기사를 보고 당사자에게 “저의 한쪽 눈을 김형 께 드리겠습니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생각이 맞는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를 결성하기도 하고, 노동청에 건의를 하며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동료 재단사들을 설득해 모임을 만들어나가기도 했지만 번번이 부(富)한 환경의 배부른 자들에게 기만당해야 했다.

 

반복해서 그려지는 태일의 좌절은 그가 왜 ‘오직 불타는 육신의 항의’로만 투쟁이 가능하다고 결정을 내렸는지를 설명해준다. 평화시장의 실상을 언론에 고발하는 데까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그는 결심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의 ‘호소’에 그쳐서는 안 되겠다고. 진정이니 호소니 청원이니 건의니 하는 따위와 근본적으로 다른 데모를 시작한 그는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배신당했다 느끼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바보’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품 안에 안은 채 불타올랐다.

 

 

 

 ♣ 친구여.....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전태일의 유서 중에서, 31쪽)

 

 

전태일이 산화한 지 65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 낸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역할과 그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대중과 여론의 냉소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개정판을 거듭하여 꾸준히 나올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운동가 이전에 전태일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어린 소녀들이 빛이 들지도 않고 환기도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서 각성제를 먹어가며 장기간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것에서 시작한 그의 노동 운동은, 그 어떤 노동 운동보다 순수하고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125쪽) 전태일의 수기는 그의 정신이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를 웅변한다.

 

전태일의 죽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가 하루하루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투쟁했던 22년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압과 착취의 관계가 이어진다한들 ‘인간 선언’이 되고자 한 그의 존재를 잊어선 안 된다.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그의 죽음보다 그의 삶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의 삶을 아는 것이 죽음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가 그토록 비장해지기까지 어떠한 서러움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왔는지, 한낱 개인에 불과한 그가 뿌리까지 썩어있는 사회를 마주하며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화형식은 그저 자극적인 하나의 이벤트로 느껴질 뿐이다.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가족들, 사랑하는 그 가족을 뒤로 하고 불길로 뛰어들기까지 안고 간 수많은 고민을 읽어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바보’ 전태일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P.S.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읽을 때마다 어려운 법률용어나 한문이 나와 어려움을 느꼈을 때 똑똑한 대학생 친구 하나 있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가 바랐던 똑똑한 대학생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오늘 같이 뜨거운 무더위가 가라앉은 선선한 오늘만큼은 그의 생일을 글로나마 축하해주고 그의 흔적을 기억해주는 대학생이 되려고 한다.

 

 

태일이 형,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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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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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로(歸路) 세대가 처한 현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추억을 아파하지 마라 / 나는 왜 귀로(歸路)를 맴돌고 있나 아직 꿈이 가득해 그 자리에….’

 

10년 만에 나온 ‘가왕’ 조용필 앨범에 들어 있다는 ‘어느 날 귀로에서’ 한 대목이다. 사회학자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노랫말을 붙여 화제가 된 곡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오는 퇴직자의 발그림자가 처연하게 느껴지는 가사다. 송 교수는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는 특이한 형식의 보고서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베이비부머의 내밀한 사연과 냉철한 세대분석을 교직한다.

 

1970년대에 베이비부머는 이른바 신문명의 담지자가 되었고, 이후 1980년대 ‘운동권 세대’, 1990년대 ‘탐닉 세대’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즉 베이비부머는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스스로 몸을 누이면서 말이다. (8쪽)

 

 

 

201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50대란 어떤 모습일까? 가정에선 외로운 아버지로, 직장에선 뒤안길로 밀려나는 선배로, 사회에선 말 안 통하는 꼰대 아저씨로 비춰지는 것이 씁쓸한 현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베이비붐세대 10만 명 당 자살율이 2008년 31.4명에서 2011년에는 40.6명으로 늘었다. 하루 평균 6명씩 자살로 세상과 작별 한다. 자살의 주된 원인은 2010년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조기은퇴와 창업실패 등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 이라고 한다.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내용이 보도 되었음에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OECD 자살율 1위 국가다운 우리 사회의 무덤덤한 반응이 더 무섭다. 한국의 중장년층, 농경시대에 태어나 산업화 시대의 주력으로 치열한 생존경쟁 무대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으며 IT 시대의 서막을 열고 퇴장하는 베이비부머들이 주류다. 대부분이 닮은꼴인 고단한 삶의 여정을 달려 왔다. 그럼에도 인생의 끝자락까지 벗을 수 없는 무거운 짊은 그대로 진 채 고려장 같은 은퇴자로 밀려나 자살로 마감하는 이 시대의 암울한 초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독재정권에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민주화 투사들이었고, 찬란한 미래를 꿈꿨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실상 이 땅의 산업화를 일군 성공의 주역들이다.

 

베이비부머는 경륜, 기술, 인간관계가 성숙한 경지에 도달했고 이제 남은 삶에 대한 의욕을 재가동하려는 투지로 가득한 연령 집단이다. 본격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인력(人力)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들에게 귀가조치를 발령한다. 자립심과 책임감이 강해 힘겹게 가정을 꾸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독립은 위태롭다. 정처 없이 ‘귀로’를 맴도는 숫자가 매년 100만 명이다.

 

 

 

 ♣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없는 ‘가교(架橋) 세대’

 

책은 한달음에 읽힐 정도로 분량은 얇다.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드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50대의 삶이 ‘날것’으로 담겨 있다. 공고 출신 박 회장, 대기업 출신 대리기사 등 실제 베이비부머의 사례를 들어 국민연금 고갈, 부동산 거품 같은 한국사회 고질병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은퇴 후 상실감, 노년을 앞둔 공포 등 정서적 공허함도 따스한 시각으로 어루만진다.

 

송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직장에서 은퇴한 50대들이 갈 곳이 없는 게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자영업은 이미 포화상태로, 은퇴 후 작은 식당이라고 해볼까하는 생각은 곧 망하는 지름길이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재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다. 특히 단순 기술·기능직에 비해 좋은 대학 나와 번듯한 기업에서 고위직까지 오른 사람들일수록 기업들이 받아주기를 꺼리고, 그만큼 재취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취업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하더라도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 50대 은퇴자들이 눈치 보면서 집에서 돈만 까먹고 있는 상태라고 할까? 게다가 자녀 결혼문제는 닥쳐오고, 모아놓은 돈은 점점 바닥나고... 부러움의 대상일 법한 ‘서울대 교수’인 저자도 팔순 넘은 부친을 부양하는 장남이며 두 딸의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가장이다. 노후 문제를 해결할 자원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을 토로하고 있다.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 제목으로 유명한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1970년대 대학가 구호였다. 송 교수는 베이비부머를 가교(架橋) 세대면서 마지막 유교 세대라고 규정한다. 근대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자유주의자 김수영이 자신의 시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일갈했듯 베이비부머는 이단(異端)의 세대였으나 전통과 온전히 결별하지 못했다. 유교라는 굴레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 않았다. 충, 효 같은 낱말에 매여 살았기에 가난했으되 당당한 부모와 개성 넘치는 자녀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물러날 때가 되니 다리가 돼줄 사람이 없다. 이제 자신의 삶을 뒷받침해 줄 새로운 가교가 없는 것이다.

 

최빈국이던 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리고 현장에서 물러나는 베이비부머들에게는 허무함이 엄습한다.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가고자 쉼 없이 달려왔으나 여전히 교육, 주택, 부모 부양으로 허덕인다. 젊고 튼튼했던 허리는 점점 휜다. 힘들고 아파도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뎌낼 뿐이다. 그저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았다.

 

 

 

 ♣ 함께 아파하고 걱정하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50대 베이비부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고, 내 자식, 내 형, 내 동생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체감하고 적극적 대책마련에 나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정부가 월급쟁이 중산층 유리지갑에 손을 댄 세법 개정안 때문에 베이비부머들의 눌린 기를 또 한 번 크게 죽일 뻔했다. 과연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마음껏 소리 내 웃는 날은 언제 올까?

 

이 책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서글픈 현실을 고발할 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게 비단 베이비부머 세대와만 관련된 것도 아니요, 일자리정책, 교육정책, 주택정책, 복지정책과도 맞물려있어 “금 나와라 뚝딱” 같은 요술방망이 식으로 해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한국의 50대 절반이 이런 절망의 균열 상태에 내몰리게 된 이유는 결국 십시일반 자신들의 자산을 할애해서 공적 안전망을 만들지 않은 탓이다... 베이비부머들이 구축하고 자신이 스스스로 갇힌 저 지독한 양극화 구조는 한국 사회 전체로 그대로 증폭되고 젊은 세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음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베이비부머 세대 스스로가 만든 탓도 있다. 결국 베이비부머 문제는 비단 정부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결국엔 우리 모두가 풀어야한다.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은 그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지 말고 공동체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볼 때다. 연대감 확인을 통한 공감과 위로는 곧 베이비부머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에겐 아버지 세대, 가장의 힘겨운 삶을 이해할 기회를, 장년층에게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가질 기회가 생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포용과 나눔.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함께 아파하고 걱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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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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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에 대한 아련한 추억

 

스위스의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한 책방으로 들어가 포르투갈어로 된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중년의 서점 주인이 그 옆으로 오더니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세요?”라고 묻는다. 주인공이 모른다고 하자 “그럼 번역을 해드릴까요?”하며 서문을 읽어준다. 주인공은 그 문장들에 매혹되어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갖게 되고, 마침내 책의 저자를 추적하고 싶은 마음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다. 서점 주인이 읽어준 책 한 권 때문에, 예순을 앞둔 사람이 그제까지 유지해왔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일종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저 정도로 극적이진 않지만, 내게도 내 일생에 큰 영향을 준 동네 서점 하나가 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까지 부모님이 사준 세계문학전집류 외엔 다른 책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스스로 책을 고를 줄도 몰랐다. 그날 나는 처음 내 돈으로 책을 살 작정이었다. 뭘 골라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내게 책방 주인이 걸어와 추천한 책이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였다. 처음으로 굳어 있던 생각의 시선을 과학의 세계 쪽으로 향하게 만든 의미 있는 책이었다.

 

동네 서점들의 폐업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그런 소식이 부쩍 잦다. 그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건, 동네 서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독서 체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쾌적한 환경과 합리적인 시스템의 대형서점이 지금보다 더욱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줄 수 없는 작지만 빛나는 2%의 그 무엇. 사상 최악의 출판 위기라는 지금 그 무엇이 더욱 애타게 그립다.

 

누군가는 책의 몰락을 말한다. 출판 불경기가 극심하고 책 읽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만든 책은 팔리지 않고 서점은 문을 닫는다. 이러다가 책의 운명이 영영 소멸해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럴 일은 생기지 않는다. 출판사가 망해도 책은 죽지 않고 서점이 문을 닫아도 책은 살아남는다. 다만 바람직하고 다양한 책이 살지 못하고 잘 팔리는 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애서점가들이 말하는 책 알리는 비결 

 

그렇다면 동네 서점도 살리고, 팔리지 않는 좋은 책이 살아남아 고객에게 반응을 줄 최고의 방법이 있을까?

 

그 해답은 일본의 출판 전문 주간지 편집장을 지내고 있는 이시바시 다케후미가 만난 소형 서점 운영자들의 비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등장하는 여덟 명의 서점 사람들이 책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신조는 같다. 책 제목처럼 ‘서점은 죽지 않는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객들에게 좋은 책 한 권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려는 그들은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책 한 권을 알리기 위해 서점을 지키고 있을 진정한 ‘애서점가’(愛書店家)다.

 

그래도 종이 만지는 일은 언제나 몸부림이다. 운명적으로 팔리지 않는 책을 서가 한쪽 구석으로 옮기는 검열에 시달리는 일이며, 자본에 한없이 부대끼는 일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종이를 만지고 소개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책은 소비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와야 서점의 점장으로 활동했던 이토 기요히코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런 일들은 하던 시대는 끝났다.’ 눈앞의 판매량에 따른 수익을 좇아 베스트셀러나 화재의 신간만 찾아 진열하는 과거의 모습을 단절한 것이다. 이제는 책을 멀리하는 고객들의 냉담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지 못하는 낡고 고집스러운 판매 전략이다. 과거의 서점들은 일방적인 판매의 이윤목적 달성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고객이 선호하는 책의 종류나 독서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

 

동네 서점은 비교적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길 가다가 편안한 마음에 방문해서 종이책을 음미할 수 있는 안락한 휴식처가 될 수도 있다.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켜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서점의 역할이 필요하다.

 

 

 

 ♣ 책 읽어주기 100회 도전

 

이하라 아트숍을 운영하는 이하라 마마코의 사례가 지역 동네 서점이 존속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하라 아트숍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서점에 불과하다. 남녀노소 지역 주민은 이곳을 방문하는데 책을 사기 위해서 오는 건 아니다. 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도 판다. 책장이 아니라 냉장고로 향하는 손님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하라는 책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사더라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이하라는 어린이 책 전시 판매회를 홍보하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명 ‘책 읽어주기 100회 도전’. 가게 출입구에서 그림책을 읽는 것이다. 진지하게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이하라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지나가는 길을 멈추고 그녀의 낭독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하라는 책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홍보 방법이라고 말한다.

 

독서 행위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손님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 단순히 책을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판매 전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네 서점에게는 좋은 책을 널리 알리려는 열정을, 주민들에게는 열독(熱讀)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독서를 많이 해야 할 어린이들이 직접 이하라의 ‘책 읽어주기’ 행사에 참여한다면 금상첨화다.

 

즐거운 놀이는 아이의 언어적, 인지적, 사회성 발달을 촉진한다. 이때 아이의 몸에서는 자연스레 엔도르핀이 나오고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게 된다. 책을 소리 내서 읽는 행위를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만들어 아이의 성장과 지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책 읽어주기’는 시각 및 지적 장애인들에게 실제적인 독서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은 신체장애 등의 이유로 일반적인 독서활동에 제약을 받는 편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화면 낭독 및 확대 S/W, 독서확대기, 점자정보단말기 등의 통신 보조기가 지원되고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동네 서점이 이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복지 서비스 제공자가 되어 서점의 역할이 재조명된다. 꾸준한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낭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볼런티어리딩’(volunteereading)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육성을 통한 도서 낭독은 장애인들의 독서 능력과 사색의 범위가 성장하고, 책을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서점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바로 한 사람

 

이시바시는 말한다. 서점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만드는 것은 바로 한 사람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책의 존재는 건실하여서 한 사람 한 사람 책을 읽게 하는 독서 문화를 만든다면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말했다. 독서에는 혼자 읽고 이해하고 느끼는 개인 독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읽고 공유하는 독서, 즉 ‘소셜 리딩(Social Reading)’이 있다. 같은 책을 읽고 타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환경과 맥락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같은 책을 함께 읽음으로써 주민은 서점 존재의 중요성을, 동네 서점은 주민이 원하는 독서의 유형을 알 수 있다. 동네 서점과 지역 주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마련된다면 동네 서점과 독서의 중요성이 무관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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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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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잣집 딸은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다는 것은 1920년대 미국사회에 대한 풍속화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돈과 섹스, 그리고 파티와 사치에 빠진 상류층, 서슬파란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지겹게 반복하는 일상성을 알코올 소비로 상쇄하려는 대중들, 주류밀매로 한몫 챙겨 상류층으로 상승을 도모하는 약삭빠른 부류들. 제1차 세계대전 후 목표 없이 방황하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술과 파티에 절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로스트 제너레이션’ 젊은 미국인들의 모습이다.

 

돈과 사랑, 신의와 배반 사이의 갈등 속에서 자기 파멸로 치닫는 비극적 운명에 대한 관심이 아마도 작가에게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하게 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20대 초반에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피츠제럴드가 28세 되던 해에 집필하기 시작한 개츠비의 이야기는 가난한 청년은 부유한 여자와 결혼할 수 없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개츠비는 군 복무 중 미모의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중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고 기다린다던 데이지는 곧 시카고 출신의 부자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종전 후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결혼 사실을 알고 그녀를 되찾고자 롱아일랜드에 대저택을 산다. 개츠비는 3년 동안 번 돈으로 큰 저택을 사고 호사 주말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모은다. 첫사랑을 만나보려는 일편단심에서다. 이제 개츠비는 재산을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서 사용한다. 다시 그녀를 차지하고자 한다.

 

자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단지 첫사랑 때문에 젊은 졸부가 된 개츠비의 모습은 어이없이 찾아온 불행한 최후를 생각해본다면 너무나도 허무하기만 하다. 소설과 영화를 본 사람은 그가 어리석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부자가 되게 만든 열등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전운의 소용돌이, 언제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갈지 모르는 총탄에 두려움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도 이어지는 가난한 삶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전장에 간 그를 기다릴 줄만 알았던 연인은 부유한 남자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그 열등감과 분노감은 말 못할 정도로 자존심을 짓밟았을 것이다.

 

개츠비와 데이지 두 사람이 8년 만에 만난 장면은 아주 극적이다. 데이지를 자신의 호화스러운 집에 초대한다. 그동안 쌓여왔던 열등감의 서러움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오랜만에 데이지와 함께하는 단 둘만의 시간. 개츠비의 집을 본 데이지는 그 규모에 놀란다. 의기양양한 개츠비는 영국 주재원이 자신에게 선물한 호화 셔츠를 방안에 던지며 과시한다. 데이지는 그 중 하나를 잡고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 본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왜 자기를 기다리지 않았느냐는 개츠비의 물음에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말하며 덧붙인다. “부잣집 딸은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요.”

 

 

 

 

 ♣ 억울해? 억울하면 출세해라!

 

피츠제럴드의 유명한 대표작이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내용 속 당시 시대적 배경의 이면을 살펴보면 개츠비가 처한 현실의 구조는 갑과 을로 관계를 구분 짓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기업들의 지나친 '갑'의 노릇으로 우리 사회는 심한 홍역을 치루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불합리한 차별의 제도가 존재한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놓여 있다. 개천에서도 용이 탄생할 수 있는 사다리는 있어야 평등한 사회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근검절약으로 을에서 갑으로 진입하려는 힘없는 세력의 노력이 경쟁의 초석이 되고 갑으로 진입하는 길을 열게 하는 경쟁력이 된다. 갑들이 많은 세상은 을들이 살아가는 데는 너무 힘들고 도처에 갑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가 높은 장벽이 되어 을들의 반란을 부르기도 한다. 성공한 갑의 집단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을은 언제나 피해자인양 억울해 하다보면 양극화 현상으로 사회문제를 야기해 사회가 혼란스럽게 된다. 우리 사회는 갑의 과부화에 노출되어 있다. 갑을 관계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노예관계’라는 말이 나올 만큼 더 심각하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오늘날 갑을 관계의 뿌리를 조선 시대 관존민비로부터 찾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관은 민을,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지배하는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공직’이라는 성격을 더욱 강화했다. 반공을 앞세운 과대성장국가는 시민사회를 억압하면서 형성됐기에 기존 관존민비를 더욱 강고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관존민비에서 출발한 갑을 관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뜯어먹기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결국 갑을 관계는 한국 사회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는 문제다. 갑을관계를 일상적인 삶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할 수 있고 배가 아파 병원을 갈 때도 인맥이 있어야 빨리 진찰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이 ‘갑을 관계’다. 갑질이라는 더러운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서 크게 출세를 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우선 인맥이라도 갖춰야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이 항공기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중략) 네티즌들의 댓글 한두 개를 보자. (중략) “돈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듯하군요. (비즈니스 석에 탑승해서) 발 닦아달라는 요구도 한다지요. 돈은 일단 많이 벌고 봐야 할 듯!!” (7쪽)

 

 

 

이런 물질적 불균형이 인격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게 한국적 갑을관계의 가장 큰 비극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모두가 인격적으로 평등한 사회이고 사회적 위치가 다르더라도 개개인 모두 동등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물질적으로 열세인 상대방을 동등한 계약 상대자가 아니라 ‘나보다 부족하거나 못한 사람’으로 보는 전근대적·봉건적 인식이 남아 있다. 약탈과 착취를 위해 도입된,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는 을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현실을 인식하도록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을이 강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억울하지만 출세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은 일단 많이 벌고 봐야 한다"라는 열등 의식이 내포된 사고가 내면화된다. 빈농이었던 개츠비가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애인을 다시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거부가 되는 과정은 을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갑을 미워하면서도 자신 또한 갑처럼 닮아 가는 것이다.

 

 

 

 ♣ 증오에 호소하는 시위만으로 갑을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

 

갑에 대한 을의 분노는 시위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촛불 시위가 등장해 평화적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지만 과거에 흔히 보던 폭력적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의 하나로 이는 집단적 형태로 행하여지는 넓은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일종이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민주정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소수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불법시위에 대해 대체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과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인내하였고 영업방해를 받더라도 감내하였다. 수십 년간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긴 면역력 때문일 것이다.

 

강 교수는 심정에 호소하는 감성 민주주의의 ‘뗑깡 시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 표시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시위 집단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식의 감성적 분쟁해결 습성이 법 절차에 의한 해결에 앞서 작용하기 때문에 건전한 시위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피해 의식에 대한 분노가 조종하는 폭력적 시위는 새로운 폭력을 양산하고 그 폭력에 짓밟히는 제2, 3의 을이 나올 수 있다. 갑이라는 이름의 가해자가 된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때 간도에서 생활하는 조선인의 비참한 삶을 그린 최서해의 <홍염>의 결말을 기억하는가. 주인공 문 서방은 소작인으로 살아가지만, 소작료를 제때 내지 못해 그의 외동딸 용례를 중국인 지주인 인가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한다. 이에 문 서방은 자신의 딸을 빼앗아 사위가 된 중국인 지주의 집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그를 도끼로 쳐 살해하고, 딸을 구하게 된다. 조선의 ‘을’로서 억압받는 조선인 빈농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울분의 심정을 장중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빈곤과 계급 차별을 폭로하고 이에 저항하는 인물을 설정하는 신경향파 소설에 한계가 있다. 문 서방이 선택한 문제 해결의 방식인 살인과 방화라는 장치가 한 충동적 개인의 보복 수단에 그쳤다. 주인공의 극단적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고찰함으로써 을이 갑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 방식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파편화된 개인적 체험으로 끝나버린다.

 

강 교수는 갑을관계의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는 을의 반란이 ‘증오의 이용’을 넘어 ‘증오의 종언’을 향하는 정신의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한과 복수심이라는 증오만으로 갑을 관계의 뿌리를 완전하게 뽑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적과 동지’, 일명 편 가르기 식으로 모든 문제를 갑을 관계로 해석해서 자신의 행위가 폭력적, 불법적인데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일상 속에 깊게 침투한 갑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감,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성찰이 필요하다. '갑을'이라는 용어를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널리 퍼져 굳어진 계급의식이나 상하문화의 틀을 벗어나는 일이다. 갑을관계는 윽박지르면 따르는 사이가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여야 한다. ‘슈퍼 갑’으로 통하는 대기업, 공무원과 그 아래로 통하는 중견기업, 하청업체, 대리점 등 대부분의 사례를 찾아보면 갑은 을을, 을은 병을, 병은 정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갑도 을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을도 갑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잘못된 주종, 상하 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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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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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불평등한 사회의 '비참한 사람들'

 

지난해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장기 흥행하며 6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한국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영화를 본 셈이다. 이 ‘감동의 물결’에 대해 저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많은 매체들이 대선 패배로 인해 ‘멘붕’에 빠진 야권 후보 지지자들이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영화를 보며 ‘힐링’한다고 진단했다.

 

레미제라블의 ‘비참한 사람들’은 분명 이전에 혁명도 이룩했고 심지어 왕도 갈아치웠다. 그랬음에도 이들이 다시 실패할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역시 거리의 기억과 정권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개개인은 먹고살기가 나날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태백’ ‘88만원 세대’는 여전한 장기침체와 승자독식 경쟁체제로 인해 30대가 되어서도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해도 아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푸어’, 겉보기에는 번듯하지만 빚에 허덕이는 중산층 ‘하우스푸어’가 ‘서민’ 대다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대두되었을 정도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한국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말했다. 이렇듯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향한 일종의 패배주의적 분노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분노에 가까운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 비협동적 자아의 등장

 

불평등이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사회 대부분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선점하지 않으면 상대가 가진다. 지고 나면 재기가 어렵다.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은 경쟁만 더욱 강화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에 협력의 미덕이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협력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협력에 참여하지 않은 사회 구성원의 등장이 문제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오늘날 사회에 ‘비협동적인 자아’를 가진 유형이 출현했다고 분석한다.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많은 복잡한 사회를 감당하지 못해 움츠러든다.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뒤로 물러서면서 차이를 느낀다. 여기서 오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해진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은 타인의 일일 뿐이다. 이런 상황인데 과연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협력’은 공동체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삶의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의 논리가 개입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문제는 승자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독식하는 현상이다. 패자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면 패자는 영원히 절망의 공간에서 시간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패자는 패자끼리, 승자는 승자끼리 연대하는 갈등관계가 조성된다. 세넷은 그러한 ‘연대’가 오히려 협력을 방해했다고 단언한다. 일반적으로 ‘연대’와 ‘협력’은 동등한 의미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연대’라는 말은 묘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는 광고로 ‘연대’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상품을 홍보하는 광고에 유명한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한다. 광고 속 연예인은 상품을 사용한다. 이 상품이 좋으니까 구입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지만 광고가 나간 이후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 바로 '연대'다. 광고의 진실은 ‘이 상품을 사용해야 유명 연예인의 팬이다’를 넘어서 ‘상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연예인의 팬은 아니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팬클럽이 지니고 있는 연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그 스타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스타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내포한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 연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공동체가 연대를 한다는 것은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이라는 전제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오히려 연대는 경쟁의 조건이 되면서 협력은 밀려난다. 더욱이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특히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쓴 부족주의가 만연된 사회일수록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회 구성원과 어울리지 않고 갈등을 야기한다. 그리고 승자 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남을 짓밟아서라도 더 앞서 나가려는 경쟁을 유도한다.

 

 

“협력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만 판에 박힌 행위에 붙들려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개발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세넷은 인간에게 협력 유전자가 ‘본성’으로 각인돼 있지만 이를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력을 단순한 윤리적 가치로 간주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쓰는 실기(實技, craft)로 보는 것이다.

 

 

 

 ♣ '비협동적 자아'가 많은 아마추어 사회

 

그렇다면 우리는 협력을 기술을 어떻게 배워야하는가? 세넷은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를 하는 장인들이 몸을 통해 기술을 ‘체화’하듯 사회적 관계의 기술 역시 그 리듬을 몸으로 익힐 수 있다고 말한다. 세넷이 기획중인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Homo faber project) 1부작인 <장인>에 보면 장인은 그 어떤 보상과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자기 일에서 스스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에게 도구는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이미 한 몸이다. 한 몸이 된 도구는 자신의 정신이요 신체다. 니체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 망치를 들었는데 협력의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에는 무엇을 쥐어야 하는가? 특별히 협력을 위해 도구를 들 필요는 없다. 장인 정신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지속적인 헌신을 경험하면 된다.

 

세넷의 생각은 실질적인 협력의 본질을 잃은 채 ‘공감’, '연대‘만 강조했던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기술을 제대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장기간동안 반복되어야 한다. 이미 <장인>에서도 밝혔지만 세넷은 장인적 지속성을 강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정의한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액체 근대’ 사회 속에서 협력의 기술을 지속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은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적인 담론으로만 남을 뿐이다. 헌신의 원리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반세기동안 좌우 이념 대립의 갈등 골이 깊어진 우리 사회에 장인적 협력의 토양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의구심이 생긴다. 특히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주종 관계로 따지는 갑과 을(甲乙)의 갈등은 지속적인 헌신의 체득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될 수 있다. 김홍중 <문학동네> 편집위원은 「함께 읽기: 연대를 넘어 협력으로 - ‘사회학적인 것’의 재구성」에서 세넷의 협력 정신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샹향식 변화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갑을 관계의 갈등이 지속되고 고착화된다면 상향식 변화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장인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비협동적 자아’를 가진 아마추어가 너무 많다. 아직 협력의 정신을 지닌 장인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연대’, ‘공감’이라는 본질 없는 공허한 단어만 있는 쓸모없는 연장을 손에 쥔 채 협력 부재의 원인을 그 연장 탓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헌신’의 연장이 우리 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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