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작품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7)은 김지영을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으로 끝이 난다.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다. 김지영의 삶을 따라가며 진행되던 소설은 정신과 의사가 작성한 진료 기록의 일부였다. 결국, 김지영의 발화 행위는 실패한 셈이다.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으로(The personal is the political,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구호)’ 확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가 그녀의 상황을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목소리와 일상을 사적으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시선을 유지한다. 의사는 김지영을 산후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로 진단하고,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한다.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의 얘기를 바탕으로 김지영 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 김지영 씨는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상담을 받고 있는데, 증상이 나타나는 빈도는 줄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당장의 우울감과 불면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김지영 씨에게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했다. (169쪽)

 

 

 

나는 의사가 김지영에게 처방한 항우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프로작(Prozac)일까, 아니면 졸로푸트(Zoloft)[1], 세로작트(Serozat)일까? 국내에 유통된 항우울제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

 

 

 

 

 

 

 

 

 

 

 

 

 

 

 

 

*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 읽기》(궁리, 2017)

 

 

 

방금 언급한 세 가지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다. 우울증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의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 세로토닌은 신경 세포로 재흡수 되는 것을 차단해 몸속의 신경전달물질을 적정하게 유지한다. 프로작은 졸로푸트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항우울제였다. 졸로푸트는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어 필요할 경우 병용 투여가 가능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SSRIs계 항우울제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생리 전 불쾌증후군 등의 치료제로도 사용됐다.

 

세상엔 완전한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것은 SSRIs계 항우울제도 마찬가지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SSRIs계 항우울제 중 일부 약은 투약을 중단하기가 어렵고 갑자기 투약을 중단했을 때 초조 불안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선 중독성 관련 논쟁이 일기도 했다. 단기적으로 항우울제가 유용할지 몰라도, 장기복용 시 효과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항우울제의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임상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제약회사들의 적극적인 광고 전략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항우울제의 효과가 상당 부분 ‘불확실성의 영역’을 안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 · 심리적 요인, 유전적 요인이 신경전달 물질과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서 찾는 것처럼, “우울증의 치료도 항우울제 복용 같은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미국의 작가이자 법조인인 엘리자베스 워첼(Elizabeth Wurtzel)《프로작네이션》(민음인, 2011)에서 자신의 몸과 영혼을 갉아먹은 우울증과 항우울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 우울 증세를 보였다. 끊임없이 자살 충동을 느꼈고, 자기 혐오와 무력감을 느끼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심각한 임상적 우울증 상태에서 느끼는 고통은, 본능적으로 빈 공간을 채우려는 인간 본성의 몸부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어 있는 상태를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와 목표를 가지려 애쓴다 해도, 심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깨어서 걸어 다니는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 (37쪽)

 

 

그녀는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복용해온 프로작이 우울증을 낫기 위한 확실한 해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 항우울제 처방을 권하는 의사를 ‘박사학위를 딴 마약 거래상’이라고 비난한다. 아마도 이런 의사들은 마음이 아픈 여성의 증상이 어떤 병명인지 몰랐을 것이다.

 

 

 

 

 

 

 

 

 

 

 

 

 

 

 

 

 

 

*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이매진, 2005)

* 안미선, 김보성, 김향수 《엄마의 탄생》(오월의봄, 2014)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은 전업주부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자, 우선 동창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점을 밝혀냈다. 그녀는 미국 사회 중산층 주부들이 앓고 있었던 불가사의한 증상을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여성들을 신비화하는 가부장적 관념, 즉 현모양처와 모성애가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가부장제가 여성을 외롭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여성, 즉 ‘엄마’가 된 여성들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에 걸린다. 결혼과 출산을 하기 전 여성은 자아실현이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출산 이후에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좋은 엄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만들어내고 때로는 강요하는 고정된 성 역할일 뿐이다.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여성들은 머리 아프고, 혼란스럽다. 모유 수유부터 신생아를 건강하게 돌보는 방법까지 산후조리원이 가르쳐준 대로 학습한다. 아이가 아파도, 잘 안 먹어도, 공부를 못해도 “다 엄마 탓”이라는 지적을 혼자 감당한다. 이제는 숨만 쉬어도 ‘맘충(mom蟲)’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는 ‘혐오 대상’이 된다. 자신과 자녀가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특히 남성들)은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 신체적 및 정신적 증세가 작용해서 일어나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울증의 환경적 요인까지 고려하지 못한다. 과도한 시집살이, 경제적 압박감, 자녀 출산 및 육아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등이 우울증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많은 연구 자료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 엄마의 비극적 소식을 접하면 ‘비정한 엄마’라고 비난한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수준 낮은 기자들은 기사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이런 소식을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자살한 엄마의 앞뒤 사정을 확인하지 않은 채 엄마를 '천륜을 어긴 사람'이라는 프레임(frame)을 씌운다. 이 억지스러운 프레임이 재생산되면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말 못 하는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여성의 우울증은 사회가 만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정신 상태를 알지 못한 채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 ‘정신과 의사’가 정말 많다. 대중은 ‘무허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자신의 입맛대로 여성의 정신 상태를 판명한다. 여성이 조금만이라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 피해망상, 우울증이라고 성급하게 진단을 내린다. 그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약을 권한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왜 아픈지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약 권하는 사회’이다.

 

 

 

 

 

 

[1]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 읽기》 『프로작이 과연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을까?』 편에 보면 항우울제 이름이 ‘졸로프트’라고 나와 있다. ‘졸로푸트’와 ‘졸로프트’ 둘 다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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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도 약이지만 술 권하는 것도 문제지.
하긴 알콜도 약이라면 약인가?

cyrus 2017-09-17 19:5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특유의 술 문화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셔야해요.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 못한다고 착각하는 시선이 사라져야해요.

transient-guest 2017-09-18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의료업계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우울증처방남발과 약사용은 90년대를 규정짓는 현상들 중 하나로까지 이야기될 정도로 당시엔 어린애, 심지어 개까지 우울증운운하던 때였다고 History Channel아니면 CNN 다큐인 90s에서 본 것 같습니다. 중증의 우울증은 약으로 일단 조절을 해야하지만, 테라피를 병행해야 근본치유가 가능한 걸로 지금은 많이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한때는 정말 비타민처럼 이런 약을 먹었다고 하네요.

cyrus 2017-09-18 09:53   좋아요 0 | URL
‘비타민처럼 약을 복용’했다는 표현을 들으니까 미국인들이 얼마나 항우울제에 지나치게 의존했는지 실감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