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창고가 된 방 하나가 있다. 거기에 어렸을 때 읽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오랜만에 창고를 정리할 겸 창고 구석에 숨어있는 옛날 책들을 꺼내봤다. 책들을 창고 밖으로 완전히 끄집어내기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후딱 지나 가버렸다. 이 책들을 마지막으로 읽은 해가 2002년, 15년 전이다.

 

 

 

 

 

 

 

 

 

 

 

 

 

 

 

 

 

 

 

 

 

 

 

 

 

 

 

 

 

 

 

 

 

 

 

 

 

 

 

 

 

 

 

 

 

 

 

 

 

 

 

 

 

 

 

 

 

 

 

 

* 《셜록 홈즈의 모험》 (동서미스터리북스 2, 역자 : 조용만, 조민영)

* 《주홍색 연구》 (동서미스터리북스 15, 역자 : 김병걸)

* 《바스커빌의 개》 (동서미스터리북스 22, 역자 :진용우)

* 《셜록 홈즈의 회상》 (동서미스터리북스 43, 역자 : 조용만, 조민영)

* 《셜록 홈즈의 귀환》 (동서미스터리북스 53, 역자 : 조용만, 조민영)

*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동서미스터리북스 117, 역자 : 조용만, 조민영)

* 《셜록 홈즈 사건집》 (동서미스터리북스 131, 역자 : 조용만, 조민영)

 

 

※ 《주홍색 연구》에 ‘네 사람의 서명’ 수록,

《바스커빌의 개》에 ‘공포의 계곡’ 수록

 

 

 

내가 창고에서 찾으려고 했던 ‘옛날 책’이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였다. 초등학생 때 엄청 많이 읽었던 책이 바로 ‘셜록 홈스’ 시리즈다. 셜록 홈스.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책을 안 읽는 사람들도 홈스가 누군지 다 안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홈스의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 30년 전만 해도 홈스는 소설 속 ‘사기캐(만화 또는 게임 등에서 다른 캐릭터보다 아주 강력한 캐릭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사기 캐릭터’의 준말-글쓴이 주)’ 주인공, 또는 ‘세기의 명탐정’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영화에서 훈훈한 비주얼로 사건 현장에 뛰어드는 멋진 명탐정으로 등장할지 누가 알았으랴. 사실 원작의 홈스는 괴팍하기 짝이 없다. 원작의 홈스는 잘생김과 거리가 멀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비쩍 마른 체형이다.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사건이 없는 날에는 코카인이나 모르핀 주사를 팔뚝에 찌른다. 알다시피 홈스는 사건 해결에 힘을 쏟기 위해 감정에만 치우치는 상황을 싫어하며, 가끔은 여성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독선적인 발언을 한다. 그래도 어렸을 땐 사건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홈스가 멋있어 보였다. 그의 단점은 내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완역본을 읽고 나서야 홈스의 어두운 실체를 알게 되었다.

 

 

 

 

 

홈스가 나오는 소설을 좋아해서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초등학교 도서실에 가서 홈스 시리즈를 읽었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학교 도서실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이때부터 ‘혼자 놀기’의 재미를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도서실에 있는 홈스 시리즈는 동서문화사의 ‘지능훈련 뤼뺑이냐 홈즈냐’ 시리즈 일부였다. ‘뤼뺑’은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이 탄생시킨 ‘괴도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이다. 동서문화사는 뤼팽과 홈스 시리즈를 모두 모아 ‘지능훈련 뤼뺑이냐 홈즈냐’라는 이름을 달아 펴낸 적이 있다. 비록 문장이 썩 매끄럽지 않은 중역이라서 읽기 힘들었지만, 그땐 홈스가 무조건 나오는 이야기라면 전부 좋아했다.

 

도서실의 학생 사서로 활동한 덕분에 오래된 ‘홈스 시리즈’ 일부를 소유할 수 있었다. 학교 졸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학교 도서관의 모든 책을 재정리하는 일을 했다. 새로 들어온 책에 십진분류법 스티커를 붙이고, 낡고 오래된 책들은 폐품으로 처리하기 위해 따로 분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버려야 할 책이 아주 많았다. ‘뤼뺑이냐 홈즈냐’ 시리즈의 보존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어떤 책은 너덜너덜해져 다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도서실 담당 선생님은 ‘폐품’으로 분류된 책 중에 읽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져가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해주셨다. 나는 운 좋게 평소 즐겨 읽던 홈스와 뤼팽 시리즈를 챙겨왔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홈스를 좋아하는 학생이 여러 명 더 있었다. 결국 ‘홈스 편’ 모두 획득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지능훈련 뤼뺑이냐 홈즈냐’ 시리즈는 여러 명 학생의 손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집에 있는 홈스 시리즈(이 책은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다)에 없는 작품이 수록된 책만 골랐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지능훈련 뤼뺑이냐 홈즈냐’ 시리즈의 ‘홈스 편’은 6권에 불과하다. 그때도 홈스에 대한 인기가 워낙 높아서 ‘뤼팽 편’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없었다. 아무리 뤼팽이 약한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절대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나름 정의로운 도둑이라고 해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탐정 역할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폐품처리장에 소각될 뻔한 ‘뤼팽 편’도 챙겼다. 어머니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책들을 가지고 왔다면서 등짝 스매싱을 여러 차례 날리면서 화를 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옛날 책들을 잘 챙겨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책들을 구하기 힘들다.

 

 

 

 

 

 

 

 

 

 

표지 그림을 퍼즐 조각 형태로 그린 시도는 신선하다. 모든 책의 앞표지에 항상 ‘조각 두 개가 빠진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물음표’ 표시가 있다. 나는 ‘뤼뺑이냐 홈즈냐’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이 ‘물음표’가 어디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이 순간 벌써 짜릿해진다. 이야기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심적 반응이다.

 

 

 

 

 

 

 

홈스 시리즈의 4대 장편이 《진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the Four)》, 《배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공포의 계곡(The Valley of Fear)》이다.

 

 

 

 

 

 

《진홍색 연구》는 홈스와 왓슨(Watson)이 처음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당연히 홈스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동서문화사는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빨강글자 수수께끼’로 정했다. 요즘 나오는 홈스 시리즈 번역본은 원제를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동서문화사도 홈스 시리즈를 ‘동서미스터리북스’로 재출간했을 때 원제와 거의 비슷한 제목을 새로 붙였다. 옛날 80년대 홈스 시리즈 번역본 중에는 ‘원제 파괴’에 가까운 이름이 많았다. 옛날 번역본의 제목과 요즘 번역본의 제목을 비교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삽화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오래된 책인데 세월을 점점 먹을수록 종이뿐만 아니라 삽화 상태도 나빠진다. 선과 형태가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상태의 삽화가 많지 않다. 게다가 이 삽화를 제작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원서의 다른 삽화를 그대로 가져온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일까? 삽화 속 인물의 형태가 제각각 다르다. 한 사람이 다 그린 것 같지 않다. 여러 사람이 따로 삽화를 그렸을 거로 보인다. 다행히 동서미스터리문고 번역본의 삽화는 원작에 실린 삽화다.

 

 

 

 

 

 

 

 

 

 

 

 

 

 

 

 

 

 

이 번역본에는 홈스 시리즈 이외에 코난 도일이 쓴 다른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홈스 빠돌이’였던 나는 홈스가 나오지 않는 작품은 읽지 않았다. 그때는 그 작품이 코난 도일이 쓴 건 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홈즈가 나오지 않는 소설에 대한 역자의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개의 서명》에 수록된 『사라진 열차』의 원제는 ‘The Story of the Lost Special’이다. 도일이 홈스 시리즈 집필을 중단한 뒤에 발표한 소설이다. 다행히 이 소설은 지금도 읽을 수 있다.《아서 코난 도일, 미스터리 걸작선》(국일미디어, 2003)과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비채, 2011)에 수록되어 있다.

 

 

 

 

 

 

 

 

 

 

 

 

 

 

 

 

 

 

《춤추는 인형》 마지막에 있는 이야기 역시 홈스가 나오지 않는 작품이다. 제목이 『새서서 골짜기 유령』(The Mystery of the Sasassa Valley)이다. 도일이 187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도일은 의사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나온 첫 결과물이 바로 『새서서 골짜기 유령』이다. 도일이 정식으로 발표한 첫 작품이다. 도일의 초기 작품으로 알려진 『북극성호의 선장』과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은 각각 1883년, 1884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의 마무리는 추리 퀴즈였다. 시리즈 제목에 생뚱맞게 ‘지능 훈련’이 붙여진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어린 나는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으면 추리력이 부쩍 늘어날 거로 믿었다. 정말 초딩스러운 발상이다.

 

 

 

 

 

 

 

 

 

 

 

 

 

 

 

 

 

 

 

‘지능훈련 시리즈’의 ‘홈스 편’은 소설가 조용만 씨(1909~1995)와 이화여대 영문과에 졸업한 사실만 알려진 조민영 씨가 공동으로 번역했다. ‘뤼팽 편’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지낸 이가형 씨(1921~2001)가 번역했다. 동서미스터리북스에 포함된 홈스와 뤼팽 시리즈의 역자도 똑같이 이 세 사람이다. 동서문화사는 변함없이 ‘중역’을 고집하고, 이미 고인이 된 역자의 이름만 올리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역자’ 이름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런 출판사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

 

 

 

 

 

 

 

 

나는 ‘조민영 씨’가 누군지 궁금하다. ‘지능훈련 시리즈’에서 조민영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고만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조용만 씨의 출생연도(1909년)를 밝힌 것과 대조적으로 조민영 씨의 출생연도는 언급되지 않았다. 조민영 씨의 소개가 왜 이리 빈약해 보일까? 동서미스터리문고로 나온 홈스 시리즈 역시 이전 번역본의 역자 소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조민영 씨의 ‘옮긴 책’이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시리즈’가 유일한데,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능훈련 시리즈’로 보인다. 이것만 봐도 조민영 씨가 실존 인물인지 의심이 든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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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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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6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7-05-16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홈즈보다 뤼팽을 더 좋아했어요. 아마도 뤼팽이 더 낭만적으로 느껴서인것같은데, 베니 덕분에 홈즈가 쪼금 좋아지려해요.^^

옛날책들을보니 신기하고 재미있는데, 다시 한번 더 cyrus님의 책사랑이 느껴집니다.

cyrus 2017-05-16 10:02   좋아요 1 | URL
홈즈 정주행 독서가 마무리되면, 뤼팽 시리즈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

보슬비 2017-05-17 00:06   좋아요 1 | URL
아마도 저는 로맨스가 있어서 좋아했던것 같아요. 홈즈는 남성적이라면 뤼팽은 여성적인것 같아요.^^ 홈즈를 좋아하신다면 뤼팽은 가볍다고 생각하실지도...^^

양손잡이 2017-05-16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기의 즐거움을 뤼팽에서 느꼈습니다! ㅎㅎ 저도 홈즈보단 뤼팽~!

cyrus 2017-05-16 21:15   좋아요 0 | URL
얼른 뤼팽 전집을 읽고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