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 톨의 씨앗에서 비롯되었다

한 알의 씨앗이 수많은 불꽃으로 피어나느니

푸른 세상을 열어가는 위대한 첫 발이 되느니

 

- 박노해 -

 

 

 

 

 

 

 

 

 

 

 

 

 

 

 

 

 

 

 

우리는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다. 그야말로 풍미(風味)의 시대다. 그래서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먼 조상들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맛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술 취한 식물학자》와 《씨앗의 승리》를 읽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먹을거리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재배하면서 단순화의 길을 걸었다. 특히 유전자 조작에 의한 품종 개량작업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신품종의 곡물 및 채소가 식탁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과거의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술 취한 식물학자》와 《씨앗의 승리》에서 소개된 식물과 종자 이야기는 흥밋거리 이상이다.

 

씨앗식물은 생명의 필수적 근원이다. 씨앗식물을 재배하는 기술은 수확물 중에서 품종이 좋은 것을 선택해 보존하고, 그것을 적절한 때에 다시 심는 데 있다. 벼, 밀, 보리, 옥수수, 수수 등의 씨앗식물 생산은 문명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육체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줬다. 특히 옥수수는 버릴 것 없다.

 

옥수숫대는 입에 넣고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나는 옥수수 하나 먹고 나면 옥수숫대를 질겅질겅 씹거나 쪽쪽 빨아댄다. 입으로 들어갈 옥수수 알갱이가 남아있지 않은 옥수숫대는 쓰레기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고대인들은 옥수숫대에 나오는 단물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멕시코 북서부에 사는 토착 부족은 옥수숫대에서 짜낸 단물로 음료를 만든다. 고대인들은 오래 씹고 나서 뱉어낸 옥수숫대 찌꺼기들을 모아 술을 만들었다. 지저분한 제조 방식이지만, 고대인들이 즐겨 마신 옥수숫대 술에는 그들의 지혜도 녹아 있다. 침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amylase)가 옥수숫대의 전분을 분해하여 당분으로 만든다. 술이 만들어지려면 기본적으로 술의 원료로 쓰인 녹말이 당분으로 변해야 한다. 그 과정을 고대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옥수숫대는 치통 억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민간요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옥수숫대를 씹은 고대인들은 치통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치통, 치주염 환자들은 옥수숫대를 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 잘 씻어 말린 옥수숫대를 끊인 물로 입안을 헹군다. 그러면 잇몸의 통증이 사라지는 ‘천연 가글’로 사용할 수 있다.

 

 

 

 

 

 

 

 

 

 

 

 

 

 

 

 

 

 

술의 제조 방식을 몰랐던 옛사람들은 침으로 녹말을 당화 시켰다. 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쌀을 씹어서 술을 만든 사실을 기록한 문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기록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처녀가 씹은 쌀 잔여물로 술을 빚었다고 한다. 우리는 효모(이스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애주가들은 효모의 존재를 절대로 모르면 안 된다. 효모 덕분에 우린 옛사람들처럼 타인의 침이 섞인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으니까. 인간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이미 효모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과일주 등 간단한 술을 제조했다. 현미경이 처음 발명되고 나서야 인류는 효모를 처음 발견했다. 효모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인류는 우연한 기회를 잘 살려서 술이 발효되는 과정을 터득했고 후손들에게 공유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곡물을 이용하는 고대인들의 지혜 그리고 씨앗을 오래 보존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동식물이 지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씨앗은행’을 만들어 운영한다. 사철 엄혹하게 추운 북극권에 곡물 씨앗 표본 수백만 개가 보존되어 있다. 북극권 내에 위치한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최후의 날 금고’가 세워져 있다. 밀과 벼, 배추, 상추 등 곡물과 채소 씨앗을 거대한 금고에 저장한다. 금고는 두께 1m 콘크리트로 축조되고, 폭발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기후의 급격한 변화나 핵전쟁으로 어떤 곡물의 종이 멸종할 경우 인류가 꺼내 쓸 수 있다. 씨앗은행은 미래의 후손들이 금고에 보관된 씨앗을 꺼내 서로 교배시켜 새로운 식량원을 개발할 때 도움이 되도록 같은 종이더라도 가능한 한 다양한 종자를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십여 년 전에 미국의 과학자 단체 ‘고민하는 과학자 동맹’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재래식 농산물의 유전자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조작을 재래식 농산물을 철저히 분리해 관리하지 않을 경우 향후 위험한 상황이 초래할 수 있다. 토종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더욱 많은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발된 신품종의 수명은 짧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변종은 수시로 진화하는 자연의 적을 이기기 어렵다. 씨앗은 우리 먹거리 시스템의 원천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우리의 식량 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씨앗 보존이라는 문제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잠자는 씨앗도 미래에 매우 유익한 자원으로 쓰일 수 있다. 한 톨의 씨앗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생명의 나무로 자라야 할 희망의 씨앗은 인류 멸망에 이르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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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21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것이 좋다라고 하지만 과연 `자연적`인 건 뭘까요? 자연선택은 오히려 변종으로 인한 진화에 대해 더 많은 걸 보여줬습니다. 목이 긴 기린처럼 말이죠. 자연도 유전자 변이 과정의 큰 틀 속에 있습니다.

GMO 경우 유전자 조작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라는 게 문제라는 것인데, 너무 많음, 너무 급격함, 너무 상업적...그런 특성이 우리의 두려움과 불신을 불러 일으키지만, 반대 급부로 우리는 그 혜택을 보았고 앞으로도 볼 것입니다.

`옛 것이 좋은 것이다`, `자연적인 것이 좋은 것이다`란 관점으로만 사안을 보는 건 보수성, 수동적이 될 수 있어 이렇게 글 남깁니다.

cyrus 2016-10-22 09:37   좋아요 1 | URL
`자연적`이라는 단어가 태초 모습 또는 성질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연적` 특징 그대로 유지한 생물은 많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제가 생물학을 심도있게 공부하지 않아서 `자연적` 특징을 유지한 생물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점이 알려졌음에도 이용 추세는 높아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 식품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유전자 조작 식품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중의 하나를 씨앗 보존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로그인 2016-10-2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의 중요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