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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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이란 이름 다음엔 자연스럽게 ‘감옥’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선생은 감옥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가장 저주받은 운명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이다. 어둡고 암울한, 분노와 저주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지혜와 사색의 산실, 때론 축복과 은혜처럼 여겼다. 선생의 생각이나 정서의 형성에 더 큰 계기를 제공한 것은 오히려 오랜 감옥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책으로 구성했던 사회론 대신 가장 소외된 밑바닥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사회에 숨겨진 모순구조를 통해 사회를 새롭게 바라봤다.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다른 사람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절대 감사의 존재다. 신영복 선생은 ‘불경어수 경어인(不鏡於水 鏡於人)’이라는 묵자의 말을 인용한다. 옛날에는 거울이 없어 맑은 물을 거울로 삼던 시대였다. 거울(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 비춰 자기 모습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진리’를 강조한다. 그 사회 속에 나는 내 밥그릇을 챙기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갔다. 물질적 부를 추구하며 과시하는 삶의 외양은 잠시 화려해 보일 수 있다. 거울(물)에 비춰보면 이런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화려한 모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편견과 이기심은 자신의 모습에만 매몰되고 다른 이들의 삶에 자신을 투영해보는 반성을 거치지 않아 나온 부산물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딱딱해지게 되어 있다. 살아서 유연하던 근육과 뼈는 시체가 되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진다. 유연하지 못하고 시체처럼 굳어진 이념의 노예가 되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이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흑백 논리에 사로잡히기 쉽다. 우리 사회에 소통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들보다 불행한 존재는 없다. 결핍증 환자는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만한 너그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포용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공존과 상생의 규칙을 모르는 데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만든다. 자격지심은 헛된 자존심으로 헛된 감정싸움을 불러일으킨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 맨스플레인(mansplain) 성향이 있는 나였기에 이 말에 비춰 보니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에 대하여는 냉혹하게 평가하는가 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올바르지 않은 판단 속에 남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비판의 칼날을 자신에 향하고, 타자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홀로 잘났다는 마음, 자신이 옳다는 마음, 자신을 합리화하는 ‘꼰대’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는 도그마의 권력은 모든 사람에게 재앙이다.

 

 

 

 

‘함께 맞는 비’라는 휘호를 보면서 내가 기억했던 ‘공감’이 잘못 변형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에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지는 못할망정 빗방울이 튈까 봐 피하기만 했다. 남을 돕는 삶을 살자고 하면서 나 자신부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면 꿈과 이상은 높은데, 재능과 실력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럴 때 어떤 이들은 냉정한 현실을 말하며 꿈을 접으라고 한다. 하지만 꿈을 꼭 이루겠다는 절실함, 그리고 약간의 우직함만 있다면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믿고 싶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라고 한 신영복 선생의 역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삶은 모두 순간순간의 과정이다. 실천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강제보다 스스로 가하는 강제 즉, 자율의 의지가 중요하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진작에 ‘지기추상’의 철학을 배웠더라면,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이란 구절처럼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끝까지 아집을 추구하는 무식함이 사라졌을 텐데. 너무 후회된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보듬어온’ 선생의 빈자리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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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좀더 살아 계셨더라면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을텐데 말이죠..

cyrus 2016-05-12 17:09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참된 어른이었습니다. 다른 서재 이웃분들의 서평 덕분에 처음으로 <처음처럼>을 읽었습니다. 진작 읽었어야 했습니다.

yamoo 2016-05-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영복 님의 책을 3권 갖고 있지만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한 참 후에나 읽게 될 거 같아요. 요즘 동양철학 계에서 핫하신 분을 만나 그 분 책들 다~~읽고 도올 전집을 다 읽은 후에야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참된 어른 인지 아닌지는 제가 신영복 님의 행적을 거의 몰라 평가하기 곤란하구요. 단지 투옥에서 고생하셨고, 그곳에서 쓴 책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감명을 줘서 저도 몇 권 구해놓았을 뿐입니다. 신영복 님 글을 읽으면 저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미래의 제 독후감처럼 사이러스 님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예감에 저도 이런 글 비스무리하게 리뷰를 작설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은지라..ㅎ

cyrus 2016-05-13 16:48   좋아요 0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처음처럼>, <나무야 나무야>를 읽은 게 전부입니다. 동양철학에 관한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동양철학은 어려워요. 신영복님의 삶을 반추하는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행적을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