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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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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라는 시인 에머슨의 말처럼 플라톤은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인류 역사에 던져놓았다. 플라톤은 30인 과두정치와 이후 다시 부활한 아테네 민주정치를 경험하고, 아테네 시민법정에 세워진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정치의 꿈을 접고 철학자의 길을 걷는다.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은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academia)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중앙에서 하늘을 가리키며 걸어오는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 진리는 이 세상이 아닌 저 하늘에 이데아(idea)로 존재한다. 이 불변하는 이데아를 감각적 사물에 정신이 팔린 인간은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굴에 묶여 벽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벽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참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상적 인간이란 이성에 의해 감각적 욕망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상적 인간이 바로 철학자이며 우매한 대중이 아닌 현명한 전문가가 통치하는 국가가 이상국가이다.<국가(Politeia)>는 플라톤의 정의관과 이상국가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는 책이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흔히 「국가」로 알려졌지만 당시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와는 다른 의미이며 정확한 번역은 ‘정체(政體)’이다.

 

이 책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자신의 철학 세계를 글로 남기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대신 플라톤이 스승의 방대한 철학 사상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 <국가> 제1권은 아테네 근처 피레우스항에서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 풀레마르코스, 트라시마쿠스, 아데이만토스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정의'란 무엇인지 의견을 내고 반박, 재반박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대화 형식이다 보니 성인이 읽어도 재미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이 책의 1권에서 소크라테스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트라시마쿠스는 ‘정의이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질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정의는 정직한 것이며, 남에게 받는 것을 갚는 것이다’고 얘기하자, 소크라테스가 ‘무기의 비유’를 들어 더 나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는데도 받은 대로 갚아주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다시 누군가 정의란 ‘더 강한 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며 강한 자로 분류되는 통치자나 전문가, 기술자는 약한 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사람은 훌륭하고 지혜롭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무지하고 못된 것으로 판명되며,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 무언가 도모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있어 올바른 것이란 언제나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다. 진정한 올바름은 타인의 평가나 가변적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트라시마쿠스는 올바른 것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고, 올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심’이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낳는다. 트라시마쿠스의 생각에 따른다면 소크라테스의 올바름은 인간의 욕망과 현실을 무시하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르지 못한 일이 더 큰 이익이 되는 사회를 용인한다면 처음에는 각자의 이익이 보장되겠지만 점차적으로 약육강식의 상황에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집중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처럼 올바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잘못된 사회구조의 개선이 가능하고 사람들의 자의적 판단에 휩쓸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플라톤은 참주정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보면서 대중의 부정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참주(僭主)란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독재적 지위에 오른 지배자를 일컫는다. 흔히 참주정체보다 민주정체가 훨씬 좋은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민주정체에서 참주정치가 나올 수 있다. 이는 대중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은 정치 전문가가 아니므로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분석할 능력이 없다. 또한 대중은 자신의 이익이나 군중심리에 의해 선동이나 정치적 술수에 능한 사람을 밀어주는 성향이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선동가를 앞세우는 대중의 어리석음은 참주를 만들어낸다.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로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중이 어리석다는 주장은 개인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지적 창의력이나 통찰력이 사라지고 평준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반대로 대중의 판단이 현명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수의 개체가 모여 얻는 지적 능력이 개체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차이에 따라 민주정체를 수용하는 입장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인가?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은 정의와 그로부터 오게 될 평화였다. 예컨대 빈부 격차가 너무 커지면, 끊임없이 싸우는 빈자와 부자로 국가가 두 조각 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권력은 능력이 탁월하고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만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철인통치’다. 플라톤은 완전한 지혜를 갖춘 철학자가 통치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덕(德)을 잘 발휘하여 조화를 이룬 국가를 이상국가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지혜로운 철학자가 통치하고 용기의 덕을 지닌 군인이 수호하고, 서민계급은 욕심을 절제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정의란 지혜, 용기, 절제가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에게 알맞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다. 이상국가는 어떤 한 계급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며, 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잘 수행할 때 국가가 번영하고 행복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국가론은 제자이면서 자유를 더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당연히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도 긴장관계에 서 있는 두 이상인 정의와 자유 사이의 갈등이다. 플라톤은 정의의 편에 서서 정치 전문가를 도입해 정의와 평등과 평화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면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려는 시도로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타당하다. 정치란 단순히 파워 게임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통찰력이 구현되는 수단이어야만 한다. 어떠한 국가도 더 강력해지고 더 잘 살기만을 추구한다면 시민들이 신명나게 사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정의는 지배자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국가는 사실상 전체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고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비판한다.

 

플라톤의 <국가>는 보통 철학책으로 분류되지만, 철학 이외에도 교육,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플라톤은 이 속에서 아테네 현실의 여러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이상적 사회를 꿈꾸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그는 사교육이 국가를 망친다고 반대하고, 제대로 된 공교육을 역설했다. 사교육의 교사들인 소피스트들은 돈을 낼 사람들의 의도에 부응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좋은 시민도 좋은 정치가도 배출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선거도 물론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리스 교육의 목표는 덕(arete)이었다. 덕은 단지 도덕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탁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직업교육이나 출세의 발판이 아니라 유능하고도 훌륭한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다. 교육의 출발점은 ‘무지의 동굴’로부터 진리의 세계로 영혼을 돌이키는 일이다. 청소년이 교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눈앞의 현상을 넘어서 사물의 진실인 이데아에 도달하는 과정이 교육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읽는 사람의 관심에 따라 주제가 다르게 나타난다. 정치에 관한 책이면서 철학에 관한 책이며, 교육에 관한 책이자 종교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분량도 많고 주인공 소크라테스와 상대방 사이에 대화가 종횡무진 이어지므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쉽지 않다면 가치라도 있어야 할 텐데, 플라톤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선입견 때문에 그것도 찾기가 쉽지 않다. 철인 왕이나 이데아 등 중등교육 과정에서 플라톤은 아주 단편적인 몇 단어로 요약돼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간단한 이야기를 괜히 수백 쪽의 장광설로 늘어놓는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래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똑같은 요약이 세대를 통해 전승된다. 필자도 처음엔 무슨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읽으면서도 선입견의 틀에 부합하는 말을 따라가는 식이었다. 새로운 읽기는 철인 왕과 이데아 이론을 문제 삼는 자세를 취한 다음에야 가능했다. 책임을 묻고자 증거를 찾아보니 오히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반론의 실마리들이 이미 책 안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화체의 특성상 상대의 반론을 무시하는 일방적 주장은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독자로서도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나면 반문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플라톤은 올바른 삶, 정의 등의 본질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탐구했다.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삶을 치유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는 좋은 독서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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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4-2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는 리뷰도 어렵네요.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가봐요. 이렇게 좋은, 그러니까 플라톤, 아니 천병희선생님 번역작을 신간평가단 책으로 받게 되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뭐가?)

저도 플라톤을 낱개로(으응?) 구입해서 하나씩 시작해봐야겠어요. 맨날 결심만 하는 미친 욕심을 어떻게해야될지 모르겠어요. 이 시간에 책이나 읽었으면 부자됐겠죠. 흐응.

cyrus 2013-04-30 17:20   좋아요 0 | URL
아이님도 다음 기수에 인문 분야 신간평가단 활동해보시기를 권합니다. ㅎㅎㅎ 이 책 받자마자 조금씩 꾸준히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여유 부리다가 하필 중간고사 기간 때문에 급하게 읽고 서평 썼어요. 사실은 1~3권까지만 두 번 정도 밖에 안 읽었어요.. ^^;; 그래도 박종철 교수 번역본보다는 글이 쉽게 읽혀져서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