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 모던 타임즈 - [할인행사]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번에 학교에 듣고 있는 경영학 수업 중에 '노사관계론'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중이다. 말 그래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사회문제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노사관계론' 과목은 이번 학기에 들어서 수강신청한 과목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비록 담당교수님이 점수평가하는데 있어서 인색하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 발생하고 있는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접하는 것만이라도 만족한다. 무엇보다도 이 수업이 좋은 점은 수업방식에 있다. 노사관계 문제에 있어서 약소의 힘을 가진 노동자보다는 오히려 경영가들에게 손을 들어주는 데 치우쳐져 있는 교과서 위주의 수업보다는 경영가와 노동자, 타협과 갈등으로 이어져 있는 두 관계에 비롯되는 문제를 균형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사회현상의 문제를 바라보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흐름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학습중점으로 두고 있다.

 

며칠 전에 산업사회의 문제점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 유명한 고전영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시청하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봤던 명작을 이 수업을 통해서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두 시간동안 그 영화 한 편, 풀버젼을 보게 되었다! 유명한 영화를 본 것도 좋았지만 수업 두 시간을 영화시청으로 때울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 찰리.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장 사장의 감시를 당하며 나사를 조인다. 심지어 그에게는 담배를 피울 여유도 없다. 몰래 담배 한 개비를 피우기 위해서 입에 문 순간, 공장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화면에서 사장이 등장하여 담배 한 개비 피는 것마저도 게으름으로 생각하여 크게 호통을 친다. 그리고 얼른 다시 컨베이어벨트 작업장으로 갈 것을 명령한다. 이러한 작업환경에서 살게 되다보니 찰리의 직업정신은 어느새 비정상적인 직업병이 되었다. 찰리 본인 스스로 절제하지 못할 정도로 나사와 닮은 모든 것들을 보이는 족족 조이려 달려든다. 심지어 중년 여성의 앞섶에 있는 단추를 보고도 연장을 들고 달려들어 된통 혼나고, 톱니바퀴에 빨려들어 가서까지도 나사를 조이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다. 그리고 그는 신경쇠약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공장은 찰리가 컨베이어벨트 노동에 투입하는 순간부터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공장에 해고되는 순간까지도 일만 죽어라 하는 공장 속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노동을 비인간화하는 원흉으로 지목된 생산 방식은 '자동차왕' 헨리 포드에 의해 설립된 1913년 T모델 자동차를 싼 값에 쏟아낼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발명품이다. 일반적으로 '포드'라는 이름만 들으면 자동차를 만든 위대한 발명가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을 주도한 개척자로 알려지게 된 것은 자신이 창안한 생산 방식 덕분이다. 포드 자동차는 일관된 생산 방식, 즉 '포디즘'(Fordism)으로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대량생산체제의 창조주이다. 오랜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세상사람들에게 포드주의에 의한 대량생산은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그러나 포디즘의 등장은 '인간 없는 노동'을 만들었다. 엄격한 노동규율과 통제를 요구했다. 노동자의 동작을 23개의 동작으로 쪼개서 각각의 기본동작에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해 직무관리를 하고 노동자의 동선을 직선화하기까지 했다. 이런 방식이 있었기에 공장주들은 노동자 개개인의 행동 하나하나 면밀히 감시할 수 있었다. 이런 감시의 눈 속에서 노동자들은 제대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지 못했고 그저 공장 속의 '기계'가 되어야만했다.

 

 

어찌 보면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는 공장 실직자이며 떠돌이 찰리가 어떻게 해서 부조리한 산업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보여주고 있는 삶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모던 타임스'라고 한다면 우리의 주인공이 거대한 수레바퀴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되다보니 이 영화를 대량생산에 눈이 먼 현대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문제적 영화로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모던 타임즈]의 백미는 영화를 통해 고발하고자 하는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희화화하는 장면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 찰리가 인간의 삶을 병들게 만드는 산업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복과 자유를 찾아가기 위한 고군분투의 과정 역시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만한 핵심적인 줄거리이자 영화 전반을 이루고 있는 장면이다.

 

정신병원에 빠져나와 떠돌이가 된 찰리는 얼떨결에 사회주의와 관련된 시위 주동자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그 곳은 찰리에게 뜻밖의 행운을 선사해주었다. 찰리는 탈옥수를 막는 공로로 한순간에 모범수가 되어 부족할 것 없는 감옥 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 공로 덕분에 찰리는 모범수로 석방되는 동시에 감옥소장의 추천서 한 장으로 인해 어디든지 안정된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보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감옥 밖의 도시는 찰리에게는 불편함만 가져다 주었다. 찰리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도 없거니와 작업하는 데 조금만 실수해도 쓸모 없는 노동력으로 치부하는 현실은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찰리의 숨통을 죌 뿐이었다. 찰리는 각박한 현실보다 감옥소 생활이 더 낫다고 생각해 일부러 가게에 있는 사과를 훔치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범죄자가 되어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빵을 훔치다가 적발된 소녀를 만나게 되어 자신이 빵을 훔친 죄를 뒤집어 씌우게 된다.

 

그 이후로 찰리와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찰리는 백화점 경비로 취직을 하게 되지만 강도가 된 예전의 공장 동료와 함께 백화점에 진열된 술을 마시는 바람에 또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만다. 무일푼 떠돌이 신세가 된 찰리와 소녀는 화려한 집에서 부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언제 저런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한다. 채플린과 소녀가 서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실상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의 행복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집, 이 세 가지의 소원을 꿈꾸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오늘날 젋은 세대들의 비애를 보는 듯하다. 수많은 실직자들이 늘어나기만 했던 그 당시 경제대공황 시절의 미국이나 신자유주의 경제로 인한 변변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생활로 전전하는 88만원 세대의 모습이다. 이제는 돈이 없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마는 '삼포세대'라는 또하나의 불명예스러운 명함을 받게 되었다. 집 장만은 꿈도 꿀 수 없다. 출산을 꺼릴 정도로 보육문제는 젊은 부부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모두가 이러한 불투명한 사회 속에서 불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좌절의 시대'이다.

 

하지만 찰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좌절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사회에 대해서 큰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는 예전 공장 직원으로 생활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삶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의 행동들이 하나같이 도덕적으로 어긋난 사회적 일탈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의 행복에 겨운 나머지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찰리와 소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손에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며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간다.  "살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무슨 소용이 있나요." 흐느껴 우는 소녀에게 채플린은 대답한다.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  삶을 포기해선 안돼. 우린 잘 해낼 수 있어!”

 

그리고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담긴 '스마일'을 권한다. "슬픔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으렴." 주제가 '스마일'이 화면에 가득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비록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직장과 집을 얻지는 못했지만 찰리는 이미 행복을 발산하게 해주는 희망의 근원을 발견했다. 무일푼이지만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소녀 그리고 웃음이었다.

 

채플린은 '웃음없이 지내는 날은 무의미한 하루일 뿐이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명언의 의미대로라면 어쩌면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사회문제를 고발한 어두운 흑백영화로 연출하기가 나름 아쉬웠을 것이다. 원래 마지막 장면은 소녀는 수녀가 되어 찰리와 영영 헤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에 이렇게 됐다면 [모던 타임즈]는 그야말로 답답하고 희망 없는 시대의 초상화로 기록될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은 지금의 유명한 장면을 채택했다. 어쩌면 영화의 엔딩 장면은 웃음이 사라진 당시 미국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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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4-05 11:37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참 인상 깊게 봤는데.
그래도 이 영화는 산업사회에 대한 조롱이고 페이소스란 생각이 들어.
엔딩이 어떤지 기억에 없지만 이 영화가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렇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 해. 뭐 그런 자조는 아닐까? 암튼...

cyrus 2012-04-06 21:16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영화, 산업사회 속 노동자들의 실상을
중심으로 보라고 교수님이 보여주셨는데 저는 그냥 이 영화를
극장에서 영화 보듯이 봤어요 ㅋㅋㅋㅋ

꽃도둑 2012-04-05 13:18   좋아요 0 | URL
아 귀여운 찰리... 사랑스러운 사람,,, 그리고 천재!

cyrus 2012-04-06 21:16   좋아요 0 | URL
채플린 영화들을 모아놓은 DVD를 구입하고 싶더라고요,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