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공화국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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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특유의 접대 문화

최근에 시청자들의 논란을 뒤로한 채 드라마 <신기생뎐>이 막을 내렸다.  드라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첫 회가 방영될 때부터 드라마 속 설정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화제가 된 동시에 '막장 설정' 이라는 극명한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기생들은 전통을 지키는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한국 최고의 부유층들이 다닌다는 '부용각' 이라는 최고급 요정에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자존심을 걸고 지키는 한국 전통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바로 ’술접대 문화‘ 라는 것은 몇 번의 에피소드를 보면 금방 드러난다.   

드라마 속의 부용각 소속 기생들은 마치 황진이처럼 노래와 춤을 선사하며 술 접대를 하고 있다. <부용각> 손님들은 ‘양주’ 를 마시며 ‘한국 전통’ 을 지키고, 또 현대판 기생들인 그녀들은 기생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영어를 배우며 한국전통을 지켜 간다. 한국에선 바이어들에게 한국여성을 접대시키며 비즈니스를 한다는 사실이 이미 국제화되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도 서구 비즈니스 손님들까지 등장시키며 ‘한국여성은 술접대용‘ 이란 전통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한국의 접대문화를 예쁘게 단장해 세계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신기생뎐>뿐만 아니라 몇 몇 드라마에서도 진한 화장에다 야한 옷을 입은 젋은 여자들을 양쪽에 끼고 술을 마시는 접대 장면이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국내 언론매체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과 공직자들이 생각하는 향응, 접대 문화가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분야가 '정치' 쪽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2010년 7월 6일자)   그리고 기업에서도 접대 한 번 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40만 원이 초과할 정도로 사회조직적 집단 내에서 접대문화는 빠질 수가 없다.  '룸살롱 접대' 를 관행으로 인정하는 정계와 기업의 모습을 통해 접대문화가 독특하면서도 올바르지 못한(?) 또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 접대문화의 불편한 역사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서울 3대 고급 요정 중의 하나였던 오진암이  

작년에 매각되어 철거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 종로구 익산동에 위치했던 오진암은 1950~70년대 밀실 정치의 주무대였다. 

(사진출처: 한겨레)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룸살롱의 전신인 '요정'이 전성시대를 구가한 해방정국을 그 발원지로 보고, 마침내 위세가 절정에 달한 현재까지 룸살롱 발달의 과정과 변모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1947년 서울에만 3천여개 이상의 요정이 있었으니, 요릿집과 기생집이 보통 사람들의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 요릿집과 기생집 출입은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된 관행이었다.  

1963년 광화문전화국의 최고 사용률을 기록한 업소는 요정이었다. 2위는 다방, 3위 여관, 4위는 언론사다. 1967년에 언론과 학계에서는 “요정정치를 청산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그 당시 집권하고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 야당 정치인에게 정치보복을 하더라도 여자관계만큼은 건드리지 말라 " 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기생 파티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었다. 분명 좋은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이 때만해도 정계와 접대문화의 은밀한 관계는 땔래야 땔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위에서부터 늘 요릿집과 기생집을 출입하는데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었던 접대문화가 쉽사리 근절될 리는 없었다. 

1970년대부터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룸살롱과 이에 따른 '호스티스 문화' 가 번화가 한가운데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룸살롱이 아닌 업소들도 룸살롱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도 유사 룸살롱으로 인해 룸살롱의 엄격한 정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룸살롱 '원맨밴드' 경력 33년인 A씨에 따르면, 국내에 룸살롱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중반이며, 1세대 룸살롱은 서울 퇴계로 주변에 모여 있었다. 이후 이태원 근처에 '길싸롱', '밤길' 같은 룸살롱이 생기기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은 ‘룸살롱 올림픽’ 이라 불릴 정도로 룸살롱이 흥행하기 시작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11개 대형 요정업체에 20억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했고, 요정 수십곳은 ‘모범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책에서도 강준만 교수는 정계, 경영계에서 이루어지는 룸살롱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연예인 성 접대 사건 그리고 최근에 경기 불황으로 인해 룸살롱 접대부로 일하는 20대들의 현실까지 읽는 내내 얼굴이 화근거리고 민망함을 느낄 정도로 룸살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밀실문화를 적나라하면서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다.  



 

  룸살롱에서 부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부패의 막장으로 파고 들어가는 구조적 악습의 뿌리는 '패거리 문화' 에 있다. 그리고 이런 룸살롱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칸막이' 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준만 교수는  ‘칸막이' 는 연고, 정실 중심의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라고 분석하고 있다.  칸막이 현상의 이익을 쟁취하고자 하는 게 접대이고 주고받는 접대 속에 부정부패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가청렴도가 답보 상태인 우리나라가 공정한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 각 부분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부패 친화적 접대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횡령, 뇌물, 유용 등 전통적인 형태의 부패행위 외에 부패친화적 문화와 연계된 향응, 접대 등에 대해서도 부패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룸살롱은 정치인과 판·검사, 재벌과 언론 등 권력 자본가, 엘리트들이 음주와 놀이를 기본으로 접대를 주고받은 장소다. 술자리 접대와 성상납 강요를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탤런트 故 장자연씨는 한국 접대 문화의 희생양인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기 불황을 이유로 젋은 20대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화려하면서도 음침한 룸살롱으로 향하고 있다. 권력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접대부(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들 중에는 더욱 희망의 빛은커녕 어둠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파탄된 삶에 후회만 거듭하다가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룸살롱 메커니즘은 부정부패의 꽃만 피우는 것이 아니다. 사회지도층이란 사람은 룸살롱에 들어서는 순간 악마가 되어 자신들의 쾌락을 충족하고 미래를 꿈꾸는 서민들의 희망을 짓뭉개기도 한다.  그만큼 이 사회는 곪을 대로 곪아 썩은 '룸살롱 공화국' 의 현실인 것이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  남은 사람들은 그 숙제를 나누어 풀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란 비극적이고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접대문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제기하여 재고해야 한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공동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반부패 청렴문화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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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생뎐은 하두 어이가 없어서 처음부터 보지 않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설정이었지요, 일본의 게이샤 흉내를 내고 싶었던걸까요?

룸싸롱이라, 시루스님..
이번에 남성 전용 클럽으로 회원 딱 300명인가만 모집하는 외국 체인점 생긴거 아세요?
영국에서 들여왔다던가... 부유층 전용으로 회비가 어마어마한데
남성들만의 장소를 만들거라고 합니다. ㅎㅎ. 머하는 짓거리랍니까..

cyrus 2011-07-28 19:34   좋아요 0 | URL
요즘 VIP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외국 회사에서도 우리나라에
그런 클럽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노는 건 좋긴 좋지만 너무 과할 정도로
흥청망청 노는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

아이리시스 2011-07-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끝에 쫌 봤어요. 신기생뎐. 이 책 흥미롭네요. 이런 걸 문화라고 하기도 좀 뭐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술문화,접대문화 저는 너무 잘못됐다고 보거든요. 접대가 꼭 술이라는 것도 그렇고 우리도 밤 몇 시 이후에는 술을 안팔았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어요. 미국 어느 주들은 요일제한,시간제한 그런 거 있다고 하던데............

아 맞다, 시루스님 장학금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