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12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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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의 대표작이 될뻔한 미완성 소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 , ,  '  

도스또예프스끼가 한 작품을 열심히 집필했더라면 자신의 대표작 <죄와 벌><카마라조프 가의 형제들>과 맞먹을 수 있는 장편소설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이 작품이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생소하기에 짝이 없는 소설 제목은 한 번에 기억하기가 쉽지가 않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작가 생활 초창기 때 쓰여진 미완성 소설이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을 '장편소설' 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분량만 봐도 중편소설 쯤으로 보인다. ( 지금도 '장편' 과 '중편' 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사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안나' 이며, '네또츠까' 는 애칭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어느 러시아 소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소녀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작가는 이 소설을 장편 '대작' 으로 집필할 계획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대한 집필 계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집필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아예 처음부터 완성할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24세라는 나이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소설 한 편으로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지만, 뒤이어 <분신>이 발표된 이후부터는 문단의 반응은 시들어져만 갔다. 이전과 다른 문단의 반응에 젋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데뷔 때 누렸던 달콤한 명성의 시절이 그리웠다.  작가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는 단기간동안 꽤 많은 단편소설들을 써내왔지만, 이 역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렇다보니, 소설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입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작가로서의 명예와 그 뒤에 따라오게 되는 물질적인 부(副)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빈곤한 형편 속에서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소설 말고도 여러 잡지를 통해서 잡문을 쓰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장편소설을 쓸 환경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다난한 상황 속에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도 비평가로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부족한 구성력과 지나치게 많은 독백 설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이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데도 힘들었다)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20대의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아직 문학적 원숙미가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 러시아 내에서 유행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 뻬뜨라셰프스끼 모임 ' 이라는 비밀 모임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사상은 왕정을 타도하려는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 찍히고 있었다.  결국, 이 모임에 연루되어 도스또예프스끼는 체포되어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겪어야 했다. 

 

 

  어느 불행한 음악가의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은 네또츠까이지만,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소설의 제1부는 자신의 계부인 예피모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피모프의 직업은 음악가(바이올린 연주가)인데, 1부가 가장 기억남는 줄거리이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예피모프는 훌륭한 음악적 재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음악가' 로서의 명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초창기 소설이 다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선배 작가들의 소설들의 플롯을 모방하고 있다.  명예에 눈이 먼 불행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강바라>와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번역할 정도로 발자크의 문학에 심취하였다)  

예피모프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자신보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 하는 음악가를 불 같이 질투하는 동시에 한계에 부닥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좌절하고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그의 지나친 열정은 후에 집착으로 변하게 된다.  1부에서 예피모프 다음으로 불쌍한 인물이 네또츠까의 어머니이며 예피모프의 부인이다.   

네또츠까의 어머니는 자신의 미래가 이미 보장되었다고 승승장구한 예피모프의 모습에 현혹되어 결혼하고 만 것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 예피모프의 초라한 현실를 마주하게 된 어머니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삶에 절망해야 했다.   하지만, 예피모프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가난한 생활고의 원인을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망쳐 버린 것 또한 아내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예전과 같은 예술적인 재능을 상실했다는 지나친 과신, 거기에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외부적인 이유로 전가하는 예피모프의 모습은 자신 스스로 파멸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과신에 속아 결혼하게 된 아내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예피모프는 아내의 싸늘한 주검을 놔둔 채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피모프는 네츠또까와 함께 도망치면서 아내의 죽음은 자신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기 혼자 아내의 주검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도중 갑작스런 정신 착란 증세로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 자신을 위한 ' 오마주

갑작스런 예피모프의 죽음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떻게든 1부를 마무리하려는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피모프의 죽음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광적인 믿음으로 가득한 자에 걸맞은 최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예피모프의 일생을 보게 되면 젊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실루엣이 비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시기는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도 훌륭한 소설 한 편 쓸 수 있다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희망적인 불씨가 남아 있었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를 쓰고 있을 무렵에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열심히 쓰고 있어.  항상 난 우리 문학계와 잡지들, 비평가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조국 수기]에 실릴 내 3부작 소설(네또츠카 네즈바노바)로 나에게 악의만 가득한 사람들의 면전에서 올해 나의 우월함을 확신시킬 거야.  

 - 1846년 12월 17일 편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주3, p 26 -  

편지가 쓰여진 1846년은 <분신> 발표 이후 비평가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을 시기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집필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헛된 자만감에 눈이 먼 나머지 앞날이 캄캄한 자신의 미래 앞에서 청년작가는 불안했던 것일까?  다음 편지에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내 문학 경력의 세 번째 해야. 나는 안개처럼 살고 있어. 삶이 보이지 않고, 제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어. 그들은 회의적인 평을 하고 있어. 이 지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어. 가난, 삯일, 그것만이라면 난 쉬었을 텐데!  

 -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 주11, p 72 -  

젊은 작가에게는 명예와 부,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에는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무척 셌던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예피모프가 자신의 가난함을 아내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본인 능력의 한계를 외부적인 이유로 찾아냄으로써 욕구 불만을 해소시켰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펜과 종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소설에서 자기 자신을 묘사하였다. 그 사람이 바로 예피모프이다.  

발자크, 고골처럼 러시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대문호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설이었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눈을 통해 본 현실세계를 재창조하는 이야기 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능력과 불행하기 짝이 없는 상황과 유사하는 가공의 주인공 예피모프를 탄생시켰다.  비록, 결말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소설 속 화자인 네또쯔까가 아버지 예피모프에 대해서 연민과 동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모방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피모프를 통해서 젊은 나이에 러시아 문단을 뒤흔들어놓은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예피모프는 발자크나 고골 같은 선배 작가들을 향한 존경어린 오마주라기보다는 반대로 언젠가는 이들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을 위한 오마주일 수도 있다. 예피모프라는 오마주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켜주는 동시에 대작가가 되려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만의 염원과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학 연구자인 나폴레온 힐은 성공하고 싶어하는 소원이나 갈망을 종이에 적어두고 지갑에 보관하면서 틈만 나면 들춰봤다고 한다. 성공을 바라는 소원이 적힌 종이를 계속 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성공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그런 강렬한 마음의 자세 덕분에 성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자신의 성공을 적어놓은 종이가 일종의 부적인 셈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유형 생활을 끝나고 난 뒤에도 중간에 쓰다 만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열중하였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내용으로 마무리짓는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해소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오마주가 등장하는 이 미완성 소설이 먼 훗날, 자신에게 가져올 명예, 그리고 죽어서도 고골과 발자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명성를 부르는 부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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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cyrus 님의 자세한 소개 덕분에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D
이 소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 볼 수 있겠군요~

cyrus 2010-12-23 19:13   좋아요 0 | URL
지금 연도순으로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고 있는데,,,
참으로 매력적인 작가인거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바람결님이 읽어보신면 좋은 소설인거 같습니다.
1부의 예피모프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예술소설 같은 느낌도 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12-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 겁니다.열린책들 이전에 70년대 초에 정음사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나왔는데 헌책방에서 몇 권 구했지요.하지만 이 작품이 든 권은 구하지 못했습니다.페트라셰프스키 사건 이전의 작품이면 젊은 시절 것이로군요.

cyrus 2010-12-23 23:48   좋아요 0 | URL
네, 그 사건 이전에 집필하고 있었답니다.
자이트님의 세계문학에 대한 내용의 댓글을 보면 지금보다 예전 세계문학
출판이 풍성한 느낌이 드네요. 정말 열린책들이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소개되지 못했을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4 17:40   좋아요 0 | URL
40여년 전에 번역되고 그 이후엔 절판된 명작들이 꽤 있어요.이런 건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하는 게 상책이죠.저는 소설 외에 역자의 작품소개나 작가소개도 정독하는 편입니다.시대적 배경에 관심이 많으니까요.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전기는 시중에도 꽤 나와 있는 편이죠.저도 다섯권을 가지고 있고 그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다룬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아무래도 그가 반동적인 종교관이나 반혁명관을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보니 다른 이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어떻게 해석하는 가도 알고 싶어 이런저런 책들을 모아 읽지요.

blanca 2010-12-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너무 놀랐어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미완의 것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는 것도요. 나폴레옹 힐 책은 제가 애장했던 책인데^^ 막 줄 긋고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cyrus 2010-12-23 23:50   좋아요 0 | URL
이 사실이 블랑카님에게 또 한 번 놀라게 해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낭만주의적 요소를 시도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역자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저는 이 사실에 놀랍더라고요.
도스또예프스끼와 낭만주의라면 매치가 안 되는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2-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편과 장편을 나누는 경계선이라.....

보통 책 1권으로 통째로 나오면 장편소설 이라고 하죠

중편은 애매한게 100페이지 내외로 알고 있어요~ 단편과 중편을 가르는 기준이 종종
애매할때도 있죠~

cyrus 2010-12-24 14: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단편과 중편을 구분할 때도 헷갈려요^^;;

2010-12-24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