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제쳐놓고 나서면 집안일이 잘 안 된다는 옛날 속담이다. 나아가 여성의 행실과 지위를 한계 지우는 말이기도 했다. 말 많은 여자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동서양이 공통이다. 서양에도 여성의 수다스러운 모습을 암탉의 우는 소리에 비유한 속담이 있다.

 

 

 

 

 

 

 

 

 

 

 

 

 

 

 

 

 

 

 

* 미네케 스히퍼 《세계 여성 속담 사전》 (북스코프, 2010)

* 새뮤얼 애덤스 드레이크 《신화와 미신 그 끝없는 이야기》 (책읽는귀족, 2017)

 

 

 ‘소녀들이 재잘대고 암탉이 시끄럽게 울어대면, 언제나 끝이 좋지 못하다.’

 ‘여자가 재잘대고 암탉이 우는 것은, 신에게도 남자에게도 좋지 못하다.’

 

(새뮤얼 애덤스 드레이크, 윤경미 옮김,

《신화와 미신 그 끝없는 이야기》, 74쪽)

 

 

 

《세계 여성 속담 사전》(북스코프, 2010)은 역사적으로, 또 전 세계적으로 여성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준다. 여성의 부정적인 면모는 속담의 단골 소재다. 속담의 기원이나 표현법은 달라도 여성에게 악마적 힘을 부여하고, 그 위험을 경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속담을 만들고 발화하는 쪽은 주로 남성이다. 세계 여성 속담을 수집한 네덜란드의 문화연구가 미네케 스히퍼(Mineke Schipper)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린 속담 속에 숨겨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열등감’에 주목한다.

 

중국에서는 여성의 수다를 조롱하는 의미를 가진 ‘여자는 7달만 지나도 8개 언어로 잡담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성의 한계를 가정의 울타리에 묶어두려는 속담도 있다. 독일 속담인 ‘아내가 바지를 입는 곳에서는 악마가 집주인’은 바지를 입은 여성에 대한 구시대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19세기까지 여성의 복식은 치마 형태의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여성은 바지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는 본래 남성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 섀너 코리 글, 체슬리 맥라렌 그림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 (아아세움, 2003)

* 제인 세인트 클레어 글, 마리아 크리스티나 로 카시오 그림 《여자는 왜 바지를 입으면 안 되나요?》 (스마일북스, 2014)

* 재키 플레밍 《여자라는 문제》 (책세상, 2017)

 

 

 

과거 미국의 여성들은 허리를 꽉 조이게 하는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19세기 중반 여성 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는 이런 불편한 복장 풍속을 거부하고 드레스 안에 바지를 입었다. 당시 사람들은 남성의 전유물인 바지를 여자가 입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지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블루머’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 블루머의 확산을 도운 것이 바로 자전거였다. 자전거의 빠른 확산은 여성 의복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블루머는 자전거를 타는 여성에게는 편리하고 실용적인 복장이었지만, 곧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여성이 바지를 입게 되면 남성과 차이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테네시주에 속한 어느 지역에 여성의 블루머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주1]. 블루머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은 ‘레즈비언’이라고 비난받았다[주2]. 바지가 여성의 일상복이 되기까지는 백여 년의 긴 투쟁이 필요했다. 여성들의 바지에는 성 억압에 맞선 여성들의 저항 의식이 녹아 들어있다. 참고로 올해는 아멜리아 블루머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 플로랑 켈리에 《제7대 죄악, 탐식》 (예경, 2011)

* 질리언 라일리 《미식의 역사》 (푸른지식, 2017)

 

 

 

가톨릭은 모든 죄의 근원을 ‘일곱 개의 죄악’으로 분류한다. 이 일곱 개의 죄악은 탐욕, 음란, 분노, 탐식, 오만, 시기, 태만이다. 탐식은 특히 성욕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 죄의 근원으로 보았다. 필요 이상의 음식을 섭취할 경우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육체적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른 죄악은 ‘탐식’이었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류층 가톨릭교도들은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제7대 죄악, 탐식》 (예경, 2011)은 중세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탐식에 대한 시대적 인식과 그에 파생된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탐식 혹은 미식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여성의 미식 행위는 ‘음란한 탐식’으로 여겨졌다. 각종 그림에 묘사된 음식과 식문화를 들여다본 《미식의 역사》(푸른지식, 2017)에서는 ‘먹고 즐기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려진 중세의 도시 괴담이 나온다. 13세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세 여인’이라는 도시 괴담이 퍼지게 되었다. 이 괴담에 묘사한 세 명의 여인은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즐기고, 소리 높여 수다를 떠는 모습이다. 만찬을 즐긴 후에 세 여인은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들이 죽은 줄 알고 공동묘지에 묻으려고 했다. 다행히 세 여인은 잠에서 깨어났고 생매장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일어나자마자 음식과 술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이 도시 괴담은 ‘과식하면서 수다 떠는 여성’에 대판 편견을 확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은 여성을 미식과 무관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에게 여성은 그저 ‘달콤한 맛만 즐기는 존재’였다.

 

문화의 세계 속에서 남성은 자유로운 주체였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했다. 남성의 언어는 '독백'이다. 독백은 청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남성의 독백은 타자, 즉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유도한다. 진실과 무관한 남성의 독백이 비판 없이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상식이 아니라 편견이다.

 

 

 

 

[주1] [주2] 재키 플레밍, 《여자라는 문제》, 책세상,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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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0-19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머라는 옷이 사람의 이름에서 온 거네요. 저는 색상이나 원단의 재질 같은 것을 떠올린 적도 있었어요.
cyrus님, 점심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cyrus 2018-10-19 17:16   좋아요 1 | URL
저는 블루머가 사람 이름인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블루머의 기원을 알게 됐어요. ^^;;

페크pek0501 2018-10-1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서 읽으면서 여성을 무시하거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나타낸 글을 발견하면 의아해지더군요. 그렇게 똑똑한- 공부를 많이 한 철학자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요.

cyrus 2018-10-20 11:15   좋아요 1 | URL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철학을 공부하는 남자들 중에 여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 혐오를 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하긴 지적으로 자뻑이 심한 남자들은 자신들의 편견과 망언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잘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