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2월 입니다. 책을 읽기 좋을 수도 있고, 한 권의 책도 버거울 수 있는 달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개인들의 문제고, 좋은 책들은 인정사정없이 출간되는 것 같습니다. 잔인한 계절입니다. 여튼 12월 주목신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가 쳐다보는 대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질문은 익숙하지 않기에 사유하게 합니다. 그러니 숱한 이미지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들의 삶에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그림이라는 더 나아가 고대의 우상숭배, 비잔티움 성화(聖畵), 공공 건축물, 근대의 회화, 신병모집 포스터, 현대의 전시회, 상업광고, 복제생물,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우리가 시각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전복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매우 어여쁘고 귀한 책일 것 같습니다.  

 

 

 

또 다시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입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훔쳐보았는데, 저자의 학문하는 자세와 심성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작금의 세계를 까막눈으로 거들떠보아도 식량문제는 다음 세대의 발목을 잡겠구나,라고 짐작됩니다. 물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겠으니, 늘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여튼, 한 농업 생태학자의 여정을 따라, 세계화와 농산물 산업화, 기후 변화, 유전자조작농산물 등이 어떻게 생물 다양성을 해치고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는지, 땅과 인간과 정치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었는지, 작물 다양성과 전통 농업지식이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얼마나 소중한 유산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낸시 프레이저의 책이 소개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던 마이클 샌델의 책 보다 훨씬 마음이 가는 책입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는 오늘날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논쟁을 하며 비판이론과 정의론을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곳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현재 정의론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의론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기 위해서 '정의'를 정의해야 겠지만, 이것이 쉬운 작업이 아님을 마이클 샌델의 책이 증명한 바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 책이 매우 궁금한 이유는 ‘어떤 단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정의의 당사자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 때문입니다. 한 번도 사유해 본 적 없는 고민입니다.

  

 

 

네 번째 책도 화두를 던지는 책입니다. 물론, 이 질문은 고담시에 살고 있다는 악당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책을 읽지 않아서 그 해법을 알 수도 없고, 세계 정복을 하려는 의도가 뭔지,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여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착한 요정이나, 뭐든 유쾌한 요정이나, 아무렇게나 살자 요정들이 세계를 정복했으면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그런 세상도 끔찍할 수 있겠지만, 현실과 비교해 뭐 그리 대수일까 싶습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책입니다. 산과 강이, 너른 들판과 습지가, 집 앞 놀이터와 골목이 무작위로 뜯기고 뒤집히는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정녕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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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0-12-0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명이 필요없는 추천입니다..^^ 저는 달랑 한 줄로 떼웠지요.
저도 지구화 시대의 정의를 추천했습니다.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야기 같지만
지구화 시대의 정의란 오히려 한정적이고 어떤 규범과 윤리적 측면을 아우르는 것 같기도 하고...암튼 읽어보고 싶네요...흙도 관심이 가는 도서입니다.

굿바이 2010-12-08 11:38   좋아요 0 | URL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출간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짧은 글을 읽었었는데, 매우 독특했습니다.

오늘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하는데, 아직 하늘은 맑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쉽싸리 2010-12-0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식물학자 바빌로프 이야기가 선정되어 읽어보면 좋겠네요.
흙도 좋구요. 흙 좀 밟고 삽시다! 밑도 좀 들여다 보고!
추천합니다.

굿바이 2010-12-08 16: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와 <흙> 두 권 모두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이런 책들이 좀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0-12-0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는 지구환경과 관련된 책이 눈에 띄네요. 저는 <흙>을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흙에 대한 문명사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더군요. 사실 이런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위에 댓글 남기신 분의 글을 읽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답니다.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굿바이 2010-12-08 16:35   좋아요 0 | URL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이렇게 싹쓸어 말아먹는 생명체는 지구에 인간이라는 종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같이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민망하고 죄송한 일이죠.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은 쉽고, 실천은 늘 어렵습니다.
날이 찹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P와 나는 더이상 사랑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정녕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우리의 기억이 시가 되려면 우리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가을이 물러나는 자리, 겨울이 어느 자작나무숲을 돌아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를 덮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꼈을 때, 우리는 사랑을, 아니 지나간 과오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올려다 본 하늘은 높고 시렸고, 그 순간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시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받치고 있는 가슴에 쥐가 나는 날에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더는 머리에 꽃을 꽂은 소녀들이 뛰어다니지 않지만, 우리가 그렇게 미치고 싶었던 날들에는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나는 말했고, P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다고, 그랬었다고 너도 나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고 희게 웃었다.   

그렇게 술도 아닌 뜨거운 차를 나누며 P는 내게 말했다. 그시절 나는 네가 무서웠노라, 네가 쌓아가는 그 무엇이 무서웠노라고. 

나는 P에게 말했다. 그시절 나는 진저리나게 추웠고, 불을 지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장작더미를 내 키보다 높이 쌓았고, 키보다 높이 쌓다보니 하늘을 가렸다고, 그러나 정작 나는 성냥이 없었노라고, 성냥 없이 벌벌 떨며 장작을 쌓았노라고, 그저 장작만 쌓았노라고, 그러니, 내가 쌓은 것은 장작이 아니라 무덤이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성냥, 성냥, 성냥이, 사랑인 줄 알았노라고. 

단풍 하나 물들이지 못하는 내가 미쳐서 날뛰기만 했던 날들이 이제는 부끄러워, 이제는 부끄러워 정작 찾은 성냥을 분질러버렸다고 나는 울었고, P는 그렇게라도 살아줘서 고마웠노라고 했다. 가끔은 내 장작더미를 뒤에서 받치고 있었노라고, 불타지 않는 장작더미를 그렇게 받치고 있었노라고 했다.

고백이 떠도는 시절, 우리의 고백은 그 무엇 축에도 끼지 못하겠지만,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우리였다는 고백들이 은행나무 아래로 흩어졌다. 거름도 되지 못할 고백이기에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나뒹굴어도 딱히 서럽지 않았다. 

더는 누구의 비명도 채집하지 않음을 고백하는 오늘, 그대, 그리고 또 그대들, 내품에 안겨 사랑이 성냥인줄 알았던 그시절, 그시절 못다했던 꿈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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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10-11-1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다보니, [담]이 생각나 장작더미 너머로 성냥 대신 꽃 한 송이 던져 봅니다.
꽃 한 송이에 장작이 무너지기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굿바이 2010-11-15 19:32   좋아요 0 | URL
고마운 마음, 잘 받을께. 염치없지만 잘 받을께^^

風流男兒 2010-11-1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지만, 제가 만약 그 장작을 보고있었더라면 분명 어디서든 성냥을 찾아서 누나 옆에 두었을 거에요 아주 몰래 말이죠.

굿바이 2010-11-15 19:35   좋아요 0 | URL
음...자나깨나 불조심!! 설마속에 화재있고, 조심속에 화재없다!!ㅋㅋㅋ

동우 2010-11-16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의 글을 읽고서 유제하의 노래를 들으니.
노래의 저 진부함이라니.

굿바이님.
글만 남겨 놓으세요.

굿바이 2010-11-16 11:08   좋아요 0 | URL
이런 말씀, 매번 받기만해서 너무 염치없습니다. 잘지내시죠? 변덕스러운 계절 항상 건강하세요.

도란도란 2010-11-1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굿바이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굿바이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굿바이 2010-11-22 11:28   좋아요 0 | URL
먼저 허접한 글들 읽어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제안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책이었습니다. 서평단은 다른 분들이 더 훌륭하게 하실 것 같아서 신청하지는 않지만, 책은 기회가 되면 사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출판하시길 바랍니다.
건승하십시오!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의 경험으로 나는 또 한 번 부담없는 마음으로 신간평가단 분들과 함께 읽을지도 모를 책을 골라본다. 밝은 눈이 있어 좋은 책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일은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 그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주목할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섯 권의 책을 더듬어 보자면  

   

 인문학자 8명의 글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대충 그 목록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전통이라는, 만들어진 담론, 특히 잘못된 담론을 짚어보고 그것들을 해체하거나 성찰함으로써 현재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궁리해보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로 보인다. 주제도 그러하거니와 믿을 수 있는 저자들이 눈에 띄어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다. 

 

 

 

 내게는 어쩔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것이기도한, 바다,이야기다. 19세기에 쓰여진 책은 바다의 설화를 담고 있다. 역사가의 눈과 마음으로 쓰여진 해양문학의 고전이 이 시절 또 어찌 읽힐 수 있을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라캉은 말했다. 그러니 어쩌면 신도 욕망할 가치가 있는 기표일 수 있다. 그러니 신을 위한 변론은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인 저자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뜨거울 것이라 짐작된다. 누구에게나 상실과 결여는 존재하니까, 그것이 신이라고 해도. 물론 인격화된 신이라면 말이다.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10개 갯벌과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갯벌 7곳을 추가해 갯벌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생태기행문으로 읽어도 무방하겠으나, 나는 갯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읽어낼 수 있었음 좋겠다. 그것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타인이 살아가는 자리를 지워내려 애쓰는 사람들을 향한, 언제나 너무 힘없는 분노일 것이다. 

 

  저자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 단편적으로 학술지에 실렸던 글을 읽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다. 여하간 미셸 푸코, 메를로퐁티, 시몬 드 보부아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월리엄 제임스, 그리고 존 듀이의 몸에 대한 관점을 짚었다고 하니, 궁금함과 기대가200%다. 그녀의 뒤태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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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두번째이지만, 정말 신간도서 5권을 소개하려고 하면,,,
너무 읽고 싶은 책들도 많고, 막상 소개 정보가 부족하여
딱히 설명해야할 것도 없어서,, 어려운거 같습니다.

굿바이 2010-11-08 17:28   좋아요 0 | URL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저는 그저 제가 관심있는 책들만 올려놓는 것 같습니다. cyrus님의 주목신간은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최가 보내온 커피는 [카페인 없는 커피]였다. 언제나 너무 많은 커피를 소비한다고 걱정하더니, 그 걱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군가 나를 염려한다니 하늘이 노랗다. 좋아서. 가증스럽구나, 굿바이,라고 피식거리며 커피를 만지작 거리다 놀라운 사실과 조우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커피다. 에라이 요년~ 그럼 그렇지, 하고 나는 진짜 깔깔거렸다. 최는 나를 웃겨주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최는 여전히 명민하고 사랑스럽다. 너를 알아 후회한 시간이 10년이라면, 너를 알아 행복했던 시간이 또 10년인지라, 우리는 그렇게 대차대조표를 잘 맞추며 언제든 새롭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고맙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겠노라. 나 아직은 굿바이야~

부쩍 마음이 덜컹거린다. 갈비뼈의 칼슘이 빠져나가 내장기관을 단단히 고정시키지 못하는지 덜컹거리는 소리가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마음이 덜컹거리니 당연히 실수가 잦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과분한 걱정을 받는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카페인이 원흉일까? 카페인이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고 하니 진범은 아니더라도 용의자에 올릴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최야. 나는 너의 걱정과 염려를 자양분으로 살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면 미안하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까. 더군다나 너의 쓰레기를 먹어 줄 용의도 없구나, 그러면 억울하니까, 그러면 정말 화나니까, 그러니 이 커피는 폐기되어야 옳다. 나 아직은 굿바이야~

12월은 바쁘다는 그러므로 11월도 바쁠 수 있다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일어난 상황보다 더 확신하는, 거기에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방점까지 마구 찍어대는 일군의 모지리들은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모였다. 어쩌면 10월의 마지막 밤, 따위의 향수가 그리웠지만 차마 제 입으로 발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웠을지언정, 누구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는다. 그런건 가끔 눈감아도 되는,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돌아서면 뭔가 짠한 정도의 심파일 수 있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 아직은 굿바이인거지. 

언제나, 꼭 그렇게 시작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지리들끼리는 좀 어려워, 아이고 어려워 정도의 이야기로 첫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코흘리던 시절의 얼레리꼴레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착각이 서스펜스로, 환상이 엽기로 변질된 모지리들의 대화를 갈아엎은 것은 예상과 다르게 내가 아니라, 박이었다. 박은 물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어디서 나온걸까?] 적어도 나는 박이 말한 [허영]이라는 단어를 스무 번은 곱씹었다. 그러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김의 말이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 어맛! 이게 무슨 미친년 감나무아래서 떨어지는 감받아먹겠다는 소리인지, 우리는 거의 동시에 움찔했지만, 오다가다 눈맞았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오고가는 말에 나는 마음이 또 덜컹했다.  

[그 시절의 허영은 詩에서 나온거지]라는 말때문에 자리는 빨리 끝났다.
돌아오는 길, 김이 내게 물었다. 나 좀 멋있었냐?
나는 대답했다. 모지리같다. 
김이 또 묻는다. 굿바이야 그런데 너는 그 시절의 허영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는 대답한다. 시에서 나오는 거니까, 시겠지.
김이 또 묻는다. 에헤, 진짜로 묻는거다. 진짜로.... 
나는 대답한다. 그럼 아까 한 말은 진짜 아니고?
김이 답한다. 진짜 아니었다. 그냥 해본 소리지....  

그냥 해본 소리가 저리 어처구니 없으면서 그럴싸 할 수 도 있는 걸 보면, 너도 사는 일이 참.....그러니까, 주식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 말하디, 남자가 보이는 호의를 그저 호의로만 생각할 수 없니, 사랑으로는 절대 다이어트가 안되는거다, 백만 송이 장미는 아무나 피워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 놈 있었으면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냐, 설령 백만 송이 장미가 핀다고 치자 그럼 누구 하나는 죽어나간다고, 등 할 수 있는 욕을 일단 다 퍼붓고 나는 김을 본다. 이런, 초등학교 시절 신주머니 잃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뭔가 또로록 굴러 떨어질 기세다. 아~  

나는 김에게 말한다. 아니다 나에게 말한다.
김아, 그 시절 우리의 허영은 말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상처가 가장 깊고 심지어 독창적이라고 생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 말이 반 이상은 옳을 것이다. 우리의 허영은 어느 대목 철저히 어느 詩에서 나온거지, 그렇게 그 시절 우리의 뿌리가 詩였으니까, 너나 나나, 그렇게 원하던 시인이었던 거지. 이렇게 시인하는 나 아직은.....굿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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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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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11-0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질들의 대화들은 난해하지만 느낌에는 쉽게 적십니다.
시였군요, 굿바이님과 더불어 모지리들의 그 시절 허영이.

매독 걸린 친구, 세상 모든 병을 앓아보고 싶었다지요.
김승옥 얘기였는데, 무슨 소설이었던가.
그 시절 나와 같은 모지리들의 허영은 바야흐로 그 따위 아류였답니다. 하하

굿바이 2010-11-03 11:43   좋아요 0 | URL
김승옥작가는 확실히 포스가 남다르죠^^

괜히 핑계거리가 없으니, 죄없는 시를 들먹였습니다.
동우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을까, 막연히 상상해봅니다.
허영따위가 있었을까요, 그 시절은 그저 그것조차 생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듭니다. 잘 지내시죠?
 

12월은 황군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크리스마스는 명함을 접어야한다.  

올 해 미션은 아래의 노래와 춤이다. 신비로운 스펙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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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0-2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ㅋㅋㅋ 언니 진짜요? 완전 기대되는데요 ^-^b 저 아이스크림 사들고 방청가도 되나요? ㅋㅋㅋㅋ

굿바이 2010-10-22 15:28   좋아요 0 | URL
나를 잘 알면서~ 방청권을 원하는 위썬이 난 웃겨 ㅋㅋㅋㅋㅋ

빨간 먼지털이와 고기잡이 그물을 사야겠소!!!! T.T

굿바이 2010-10-2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영상을 봤다. 굿바이식 노래가 절로 나온다.

유돈노미, 유돈노미, 셧업보이, 셧업보이, 셧업!셧업!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해도 뒤에서는 욕하겠구나.
나같은 여자 비난하겠구나.
상상만해도 두렵겠구나.
겉모습만 보고도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는 정상이구나.
춤추는 내 모습을 보고 넋을 놓겠구나.
끝나니 손가락질 하는 것도 당연하겠구나.
이런 꼴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하겠구나.
자신없는데 물러설 수 도 없구나.
떠들어라, 그래도 할 말이 없구나.
겉으론 뱃걸, 당연히 뱃걸, 춤출 땐 뱃뱃뱃걸!
내가 나일 수 있는게 이렇게 미안하구나.
엉엉~



2010-10-22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風流男兒 2010-10-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뭐 매년 엄청난 미션이!!!! 올해 저도 방청권좀 굽신굽신

굿바이 2010-10-22 15:27   좋아요 0 | URL
셧업보이~ 셧업보이~ 셧업~ 셧업~ !!! ㅋㅋㅋㅋㅋ

춤추는 뱃걸~ 배나온 뱃걸~
이런 꼴 이런 머리모양으로 춤을 추는 굿바이는 뻔해~

날 감당할 수 있다면 방청권을 주겠소~ 우하하 ㅜ.ㅜ

동우 2010-10-2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의 미션.
부군 황선생님 앞에서 저런 공연,굿바이님이라면 가능하구말구요.
쬐끔 엿보아 압니다. 하하

다음 책부족에서 리바이벌 기대합니다.

굿바이 2010-10-24 23:46   좋아요 0 | URL
동우님, 리바이벌이라뇨...죽여주십시오 ㅜ.ㅜ

같이 사는 사람에게 늘 부족한 사람이라서, 어쩌다 장난으로 하는 부탁에도
이렇게 마음이 철렁합니다. 저렇게 흉내를 낼 수는 없지만, 빨간 먼지털이라도 머리에 쓰고 있으면 잠깐 웃겨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ㅋㅋㅋ

토깽이민정 2010-10-2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하하 언니 멋져!!!
나도 감히 생각해보지 못한 이런 거대한 미션을...

언니가 이번에 잘하신다면
저도 내년 봄에 울 신랑을 위해서 연습을 해야 하나... ㅋㅋㅋ

아이 참... 웬디랑 다정히 손잡고 방청하러 가지 못하는 이 신세가 안타까울 뿐... ㅋ

굿바이 2010-10-24 23:49   좋아요 0 | URL
걱정말거라!!!!! 설마 저런 것을 내가 따라할 수 있겠니? 그러니, 내년 봄에 민정이는 쉬운 걸로 해도 된다고 ㅎㅎㅎ

점점 몸도 마음도 둔해지는 것 같아서 좀 서글프지만, 마음이 둔해지는 건
좀 좋을 때도 있는 것 같아. 역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 어찌나 고마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