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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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책리뷰어 류대성 씨(네이버ID:인식의힘)는 소설을 넘어서야 진짜 책읽기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문학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는 내게 그의 주장은 꼭 필요한 조언이다. 문학을 멀리하는 것은 문제지만 문학만 읽는 것도 문제이다. 건강한 책읽기는 편식하지 않고 균형있게 읽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반론이 거부되는 책읽기의 명징한 불문율이다.

  항상 미흡한 책 선정과 부족한 책읽기를 하는 내게 역사 분야는 가깝지 않다. 특히 세계사는 머나먼 당신이다. 하지만 쓰여진 모든 책은 태동적으로 동일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에 도전을 얻는다. 세계의 모든 책은 결국 '인간'에 대한 탐구로 출발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이 존재한다. 이는 문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는 문학의 본질적 목적이다. 접근방법과 탐구과정은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종내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핵심적 교집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사는 곧 인류사의 전 지구적 관찰이다. 역사를 알면 나와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천착할 수 있다. 세계사는 그 입체적 천착을 더욱 확장하는 분야이다. 세계사를 통해 인류의 한계와 가능성을 엿보고 명확한 현재적 통찰과 더 나은 미래적 소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세계사와 관련된 도서들은 그간 수없이 출간되어 왔다. 팔리든 안 팔리든 끊임없이 쓰여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 바로 세계의 역사인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세계사 관련 도서들의 대부분은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서술되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에 대한 답습된 기존의 서술방식은 대부분 엇비슷하여 신선함이 떨어진다. 일반인이 세계사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접근하는데 기존의 통사류 책들은 지루할 수 있다. 보다 독특한 구성과 재미있는 방식으로 세계사를 다룬 책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뜨인돌 출판사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매우 흥미있는 방식으로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서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시원한 필력으로 꽤 흥미있게 세계사를 탐구했다.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연호나 용어의 '암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라 역설하는 저자의 역사학 접근에 고개가 주억거린다.
 
  저자는 총 다섯 개의 코드로 세계사를 풀이한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가 그것들인데 각 코드별로 세계사를 풀이하는 논거와 해석이 흥미롭다. 우선 저자는 인간의 욕망으로 불거진 다양한 역사의 편린을 소개한다. 커피와 홍차로 읽는 서양사의 변화상과 금과 철에 대한 인류의 대조적 인식을 설명한 부분은 매우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브랜드와 도시의 상관성을 논거로 하여 '도시화'를 세계화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지적한 부분은 자못 신선하다.

  제국의 실례를 통해 세계사의 명암을 설명한 부분도 읽어볼 만하다. 저자는 '제국'을 인간의 야망이 만들어낸 괴물로 규정한다. 로마 제국와 이집트 왕국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성공하는 제국과 실패하는 제국의 가름점이 어디인지를 통찰한다. 끝내 무너졌지만 세계사에서 전례가 드문 천 년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근원적인 힘이 타민족과 사회적 구조를 공유하는 시스템에 있었다는 저자의 분석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잦은 언급도 눈에 띈다. 책 전반에 걸쳐 종교에 대한 내용이 자주 발견된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사랑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장면에 항시 기독교가 있었다는 아이러니를 제기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기독교에 대한 강한 불편을 엿볼 수 있다. 책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상대적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관대한 해석과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신교가 범람하는 일본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유독 기독교에 대해 인색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저자의 인식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자못 궁금한 부분으로 남는다.

  우석훈은 이 책의 해제에서 한국 역사학의 사망을 선고한다. 그에 비해 일본 역사학은 아직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만개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역사왜곡으로 인해 일본의 역사인식에 다소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학문의 양질에 있어 한국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성하다는 게 우석훈의 설명이다. 이 책의 존재성을 바로 일본 역사학이 가진 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역량이 몹시 부러운 게 사실이다. <대망>과 <로마인이야기>를 밤새며 탐독했던 청년시절을 떠올린다. 그 정도의 역사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고 질투났다. 벌써 두 번씩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시상식장에 오른 것도 내심 부러웠고 심통났다. 나는 아직도 명징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연설을. 오에 겐자부로는 그 자리에서 '애매한 일본과 나'를 외쳤다. 그는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전쟁중의 잔학 행위를 책임져야 하고,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국민이 한없이 부럽다면 너무 지나친 시샘이자 오버인가.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는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아는 것은 인간 삶에 매우 긴요하며 소중하다. 모든 문명과 모든 시대는 절대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않았다. 정신 문명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보했으며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 역사의 긍정적 고찰을 유도하며 인류의 미래를 밝게 했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역사를 살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보다 거시적 탐구를 위해 우리에게 세계사는 꼭 필요하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바로 이러한 세계사 읽기의 작은 참고서가 되기에 적합한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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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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