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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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문외한이다. 일전에 지인을 따라 미술관에 간 적이 몇 번 있다. 당시 작품 한 점마다 10분 이상 서 있는 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술관 전체를 둘러보는데 나로서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언젠가 고흐 특별전이 열릴 때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림이 무엇이관대.

  주변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그들마다 그림을 보는 시각과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처음 본 그림에 대해 곧바로 쏟아내는 그들의 경이적인 아웃풋이다. 무엇을 의미하고 상징하는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로서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동일한 그림을 보면서도 해석의 다의성이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림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다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예찬론자들의 행동은 책만 읽는 바보인 내게 불가해한 신비였다.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림에 관한 책이다. 미학자로서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열두 점의 그림을 선택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영혼의 울림을 주었던 그림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만의 해석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저자의 '오버'가 몹시 진지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의 영혼을 울렸고 자신의 반쪽을 찾게 했을까.

  우선 저자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기한 두 개의 사진의 의미를 전한다. 해석의 일반성을 의미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혼자만이 느끼는 개별적인 효과인 '푼크툼(punctum)'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회화에 그대로 적용한다. 사회적으로 일반성을 지닌 보편·객관적인 해석보다는 각 개인이 뿜어내는 주관적 아웃풋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사밀한 체험과 주관적 감상에 절대적으로 작용받는 '푼크툼'으로서의 작품 감상을 저자는 한 차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작품의 일반적 해석과는 별도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만의 해석과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열두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제작 <교수대 위의 까치>다. 저자는 이 작품을 책 속에 수록된 열두 점의 그림 중 가장 영적 울림에 가까운 푼크툼의 효과를 준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첫 눈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와닿는 작품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인 네덜란드의 관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알지 않고서는 그림이 말하는 바를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경고로 읽어내는 좁은 해석에서부터 정치 혹은 종교적 앙가주망 내지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묘파로 보는 넓은 해석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적극화를 꾀하는 진중권의 진지함이 이 작품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록된 그림 중에서 그림맹으로서 가장 호감있게 본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다. 세 사람과 세 짐승의 삼각구도로 그려진, 어쩌면 매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을 보고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지했다. 티치아노는 매우 뛰어난 묘사로 신중함의 삼분법을 그려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연결성 위에서 '신중함'이라는 명제를 풀이하고자 했던 작가의 숨결이 진하고 강렬하게 그림 속에서 살아숨쉬는 듯했다. 열두 점 가운데 그림 자체가 진중권의 해설을 압도한다고 느낀 것은 이 작품이 유일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리뷰어로서의 내 기본 자세도 진중권이 제기한 푼크툼의 효과와 상통한다. 비평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위 '전문적' 평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모든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감상자로서는 반드시 음미해야 할 명언이다. 회화와 문학을 위시한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은 '과학'으로서가 아닌 '예술'로서 그 존재성이 더욱 빛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도 남과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잡다단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뷰어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다양한 그림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풀이한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진중권 특유의 개성있는 필력이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로서의 태도까지 조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찰적 디테일과 이를 다른 예술 장르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강의한 진중권의 열정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지상 전시회, 라고 멋드러지게 이 책을 수식한 저자의 말은 결코 과장적이지 않다. 매우 흥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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