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오환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작가를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과 에세이를 통해 만나는 것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소설은 소설가의 강점과 장점이 특별하게 발현되는 텍스트다. 허구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기술과 역량이 한 편의 소설 속에는 온전히 담겨져 있다. 반면 에세이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되기 때문이다. 작가적 신비주의는 허물어지고 한 사람의 평범한 삶의 모습과 철학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쌩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세계를 픽션과 논픽션으로 함께 만나는 일은 긴요하다. 예컨대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에세이를 동시에 탐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저런 다양한 에세이를 만나다 보면 유쾌하게 읽어지는 게 있는 반면 불편하고 지루하게 읽어지는 게 있다. 그것을 가르는 지점은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필력이 결코 아니다. 작가가 보고 있는 '관점'의 깊이다. 어떤 글은 작가가 오랜 사색으로 정제해낸 생각을 주옥같은 언어에 담는 독백적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반면 어떤 글은 본인의 사유와 신념이 아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세계의 잠언을 끌어다 놓는다. 전자가 창조라면 후자는 스크랩이다. 에세이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의 삶과 일상, 인간과 사랑, 철학과 신념 등에 대해 현실의 문체로 쓰여지는 글이다. 그렇기에 에세이마다 고유한 개성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 '개성'을 포착하는 일은 에세이를 읽는 가장 큰 묘미이기도 하다.

  평소 소설가 김별아에 대해 녹록지 않은 관심을 피력해왔다. 꾸준한 장편 집필과 역사에 대한 진중함, 흥미있고 신선한 소재 선택과 이쁘고 다듬어진 문체 등은 소설가 김별아의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는 긍정적 요소들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작품의 퀄리티가 작가의 존재론적 크기를 결정한다. 그간 김별아 문학에 대해 긍정적인 코멘트를 일관되게 표현해왔던 나로서는 그의 신간을 꾸준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기호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매력적인 에세이 한 권이 놓여 있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는 소설가 김별아의 삶과 사람과 문학에 대한 단상을 담은 수필집이다. 작가가 '좋은생각' 웹진에 연재한 북 에세이와 2005년부터 3년간 캐나다에 체류하며 쓴 시 감상문을 합쳐 신간으로 출간했다. 책과 시를 읽으며 곱씹은 삶과 사람에 대한 단상이 작가 특유의 이쁜 문체로 오롯하게 실려 있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작가는 자신이 인상깊게 읽은 시와 소설을 소개하면서 작품의 감상에 젖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추출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수록된 사진들은 자동차 잡지 사진기자 오환의 '낙산 연작' 중 일부이다. 오환의 사진은 김별아의 텍스트를 보완하고 수식한다. 김별아의 진솔한 단상들은 오환의 사진을 견인하고 추동한다. 글과 사진의 균형있는 배치와 적절한 호흡으로 인해 생명력 있는 에세이집 한 권이 완성되었다.

  책 속에는 소설가 김별아의 문학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시詩에 대한 강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역설한다. 시는 언어의 정점인 동시에 그 언어를 넘어선 세계라는 것을. 시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다수 소설가들의 가슴속에 내밀한 형태로 숨겨져 있는 듯하다. 많은 소설가들이 시인이 되지 못한 자신의 처연한 한계에 한탄하며 시인의 천재성에 대해 찬탄스러운 언어로 헌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별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누구보다 시를 선망하고 사랑했지만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한 소설가의 존재적 감상이 에세이 속에 잘 젖어 있다.

  김별아의 작가적 번민 또한 책 곳곳에서 확인된다. 제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의 본질보다 외연에 유혹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한다. 그리고 끝내 캐나다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외유가 고백된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있던' 곳의 풍경은 어떨까. 있던 자리를 떠나야만이 자신의 진본을 보는 시각이 굴곡되지 않는 법이다. 김별아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겸허하고 객관적으로 천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의 들뜸을 경계하며 소설가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을 꾀하는 김별아의 기백이 멋지게 와 닿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라는 존재가 갖는 디테일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소소한 것에서 특별함을 보고 일상의 단상에서 명언을 추출한다. 그들의 세밀한 관찰과 다상량이 언어의 정수를 만들어 내고 수많은 독자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역량있는 작가가 역동하는 지점에서 언어는 곧 예술이 된다. 가볍고 유쾌하지만 동시에 진솔하고 진지하게 삶과 사람에 대해 사색하는 김별아의 에세이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를 희망의 메시지를 원하는 이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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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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