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볼일이 있어 시내에 갔다가 의외로 일을 금방 마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게 되었다.

 

주의-결말이 포함된 스포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보지 않은 분은 감상을 망칠 수 있습니다.

 

 

학부와 대학원 다닐 때 과외를 진짜 엄청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이제는 아이들 얼굴도 희미하지만 그 집들의 구조나 아이들 방의 세세한 디테일이 다 기억난다.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고등학생 아이의 방에 걸린 고가의 원피스를 무심히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아이가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빌려드릴까요? 라고 했던가.

 

그때 내가 당황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낯선 집에 들어섰을 때의 복잡한 감정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생생하다.


초반에는 부담없이 엄청 웃다가

마지막에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팠다.

 

게다가 난 이제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둘이나 되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떠올려보고 조금 아니 많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 <괴물>이나 <설국열차> 등과 비교하면

진짜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이

그냥 현 상태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영화다.

 

봉준호 감독 전작들도 뭐 희망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번이 더 암울하다고나 할까?

 

모두까기일까?

 

부유한 계층이나 가난한 이들 모두 우스꽝스럽고 일그러져 있다.

<설국열차>에서처럼 이 와중에 희생되는 건 아이들이다.

 


엄청난 블랙코미디. 

 

보느라 체력 소모를 엄청 해서 그런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프렌차이즈 싸구려 쌀국수를 먹었다. 

 

그래도
배우들이 진짜

연기 구멍 없이 다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송강호 배우 연기가 평범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전문 가사도우미 역할을 한 이정은 배우의 연기가 엄청났다.

 

 

*

영화관을 나와서 잡다한 상념이 드는 가운데 작년에 본 <어느 가족>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동아시아 작품이 연속해서 칸에서 상을 탔구나.

 

똑같이 '계층 차이', '가난', '가족', '공간'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을 소재로 삼았는데 감정의 결이 너무나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는 '체념'이나 '공동체' 정서가 있는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어떤 '분노', '파편화' 같은 것이 느껴진다.

 

혹시 그 정서의 원인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반지하 같은 독특한 가옥구조 때문은 아닐가 지레 짐작해 보았는데 검색해보니 일본에도 반지하 비스무리한 데가 있다고 한다.

 

 

<어느 가족>의 이 공간들은 뭔가 정겹다.

그래도 사람사는 곳 같다.

 

가장 큰 차이는 햇볕이 든다는 것.

 

그런데 <기생충>의 공간은 항시 어둡고 곱등이가 가득하고

창 밖에 노상방뇨하는 주취자가 자주 출몰한다 ㅜ.ㅠ

 

 

*

 

하층의 삶을 직시하고는 있는데

애정 어린?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선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약한 사람을 처절하게 짓밟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건 감독이 매정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 시스템에 더 관심이 많아서 그런듯하다. 

 

그런 문제 의식이 있어 주 52시간 표준근로시간을 지켜가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겠지.

 

 

*

 

한 집안의 가장은 과연 누구일까?

 

남녀노소를 떠나 가정에 가장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 집안은 자식들이 가장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아니다.

송강호도 전에는 실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뭐든 해보려던 가장이었는데 

계획하는 족족 망하게 되자

아들에게 무계획이 실은 가장 좋은 계획이 아니겠냐고 궤변을 펼친다.

 

어떻게든 풍파를 헤쳐가려는 자식들에게 능청스럽게

아들아 그래도 너는 계획이 있구나, 계획이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계획대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부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것이 극빈자들의 생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종자돈을 모으기보다 간간이 생기는 수입을 바로바로 먹거리나 이상한? 사치품(폰을 바꾼다거나 하는), 허접한 물건을 사들이는 데 낭비해버린다.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어느 가족>에서도 좀도둑질을 하면서 빌린다고 하거나 <기생충>에서 학력 위조를 하면서도 곧 진학할 대학이니 거짓말은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한다. 

 

*

감독이 바라본 부자의 삶도

빈자들과 비교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극히 단순하고 충동적이다.

 

다만 돈이 넘쳐나기에 엄한 데에 낭비해도 데미지가 크지 않다.

 

뭔가 부자들은 자신들은 체계적이라고 믿는데 주변의 그럴듯한 농간에 손쉽게 넘어간다. 조여정을 보면서 약간 ㄹ혜스러운 행태를 목격했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믿을 수 있는 주변 누군가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리고 얼핏 부유층 마약? 문제 이런 것도 비치지만 본격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저 부잣집 가장인 이선균과 안주인 조여정은 우습기는 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영화 말미에 그들은 가난에 대한 멸시를 숨기지는 않는다.

 

부자의 한계로 보기보다

이게 또 우리들 대다수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싫지만 나보다 좀 낮은 계층은 은근히 무시하는.

 

온라인상에서 흔히 보이는 1호선 국철 타기 싫은 이유 같은 글이 그렇다.

 

그 가난에 대한 멸시가 후에 자신의 아이에게 큰 충격을 ㅜ.ㅠ

스포가 될듯해 여기까지만.

 

뭔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많이 가졌든 그렇지 않든

엄청나게 찜찜하고 서글프고 그럴 것이다.

 

 

*

총평을 하자면 별점 네 개 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지만

크게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제목의 상징성? 그런 것도 엄청나게 직접적인 표현이고

가난한 이의 공간과 부유한 이들의 공간의 대비도 눈에 띄게 드러난다.

 

부자나 빈자의 공간에 똑같이 계단이 많지만

그 배치나 쓰임이 다른 데에 집중해서 리스펙.

 

공간의 물건들도 진짜 세부적으로 구현했다.

 

빈자들이 사는 반지하 욕실에서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변기만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나 다 쓴 빈 샴프통도 버리지 않고 혹시 잔여물이 있을까 해서 계속 모아두고 방치하다 물때 끼는 거라든가 갑작스런 단수를 대비해 빨간 큰 고무대야를 둔 것이나 어지럽게 빨래들 널어둔 게 너무나 소름끼치게 사실적이다.

 

많이 다녀보지 못한 부유한 이들의 공간도 공감이 간다.

난 발견하지 못했지만 검색해보니 쓰레기통만 몇 백이라는데 ㅎ

 

눈에 보이는 공간은 모던하고 심플하지만

조여정이 식기세척기를 들어냈을 때 엄청나게 나왔던 그릇들도 사실적.

 

최우식이 과외하는 곳에서의 어투와 표정, 집에서 가족끼리 말할 때 어투가 다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줄거리를 따라 가느라 이런 세부를 놓친 것이 많을듯해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스포가 될 듯해 고만 적어야 할듯

영화 본 사람들이랑 엄청 수다 떨고 싶다.

 

스카이캐슬을 한 회도 안 봐서 동네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는데

이제 할 얘기가 생기는 건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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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돌아보면 딱히 나쁠 것은 없는 하루하루인데 마음이 힘들고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이런 제목의 책에 이끌린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는 조울병을 겪었던 의사 선생님이 쓴 책이다. 양극성 장애라고도 하는 이 조울병은 조증과 울증을 넘나들기도 하고 혼재하기도 하면서 환자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병이다. 가까운 사람이 이 병에 걸린 적이 있어서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기분이 뜰 때 장난으로 나 조증인가봐, 라고도 하는데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들떠서 무리한 계획을 벌이고 쇼핑을 과도하게 하고 잠도 자지 않고 여행을 다닌다거나 주변에 막말을 해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뇌' 즉 '몸'의 이상이지만, 환자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마음'으로, '성격'으로 받아들이고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저자는 레지던트 시기에 업무 과다로 이 질병이 발현해 본인의 전문지식, 적절한 치료, 남편의 전적인 지지로 그 시기를 헤쳐왔다.

 

나는 남편이 참 고맙다. 처음 내가 “나 조울병인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그는 놀라기는 했지만 어떤 터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거나 ‘그런 생각 하지 말라’는 등 병을 부정하는 말은 용기를 내서 병을 직면하고 치료하려는 환자를 위축시킨다. 그는 “나 조울병이야”라는 말을 마치 “나 빈혈이 있대”라는 말처럼 평범한 병의 하나로 받아들여주었다. 내 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고자 했고, 치료 잘 받자고 격려해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거지.”  96쪽

 

정말 환자의 가족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내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만큼 아프구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아픔, 고통이 있겠거니, 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며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강연들을 보고 있다.

 

원래는 정토회 법륜 스님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즉문즉설 강의를 보다가 어떤 주제에서 갑자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학생, 사회초년생, 중년들의 고만고만한 고민들이 다 내가 겪어왔거나 겪은 고민들이라서 다들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내담자가 질문을 하고 스님이 답변을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웃는다. 질문자에게는 생을 걸 정도로 절박한 문제인 사안에서도 거의 폭소가 터져서 불쾌했는데, 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법륜 스님이 어떤 사람인지 정토회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즉문즉설 하나만 보면 그 사람의 상황이나 성격에 맞는 처방을 주는 듯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류의 강연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호응도가 높다는 것은 강연자의 역량이 높은 것도 있겠지만 세상살이가 그만큼 녹록치 않아서이기 때문이겠지.

 

나만 해도 중년이 되어 예전보다 삶의 조건이 나아졌어도 

마음은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한다.

 

지켜야 할 게 많아서인지 자주 불안해한다.   

 

<행복은 과학이다>도 이런저런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된 책이다. 책을 쓴 손현정 박사의 약간은 어눌한 말투에 어쩐지 더 믿음이 갔다.

 

정신적으로 취약할 때는 사회면의 기사를 보지 말라는 충고가 마음에 남는다. 

특히나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힘들 수도 있으니.

 

정치나 강력범죄부터 하다 못해 잔나비 관련 기사들도 엄청난 피로감을 주었다.

 

최근에 잔나비를 잘 듣고 있었는데 마음이 차게 식으면서

9와 숫자들, 이안 소프, 황푸하 등과 같은 밴드나 뮤지션을 알게 된 게 나름 수확이다.

 

그리고 간간이 언니네이발관도 다시 듣고 있다.

 

석원 님 블로그가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너무 기대지는 않을 생각이다.

 

 

음악이나 책은 적당히

청소나 일상이 제일 중요함

 

 

*

최근에 읽은 한국 소설들도 얼마간 내게 영향을 주었다.

 

명징(明徵)한 생의 진실인지는 알겠는데

읽고 나면 몹시 부대낀다.

 

<레몬>이나 <소년이로> 등이 그랬다.

 

그래서 과학책이나 실용서 등을 좀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을 빌려오게 되었다.

 

 

 

 

 

 

 

 

 

 

 

 

 

 

 

 

 

아직은 초반이라 좋아질지 잘 모르겠다.

 

 

*

 

그냥 좀 가만히 있고 하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니 더 힘든 것 같다.

 

진흙탕을 자꾸 휘젓지 말고

그냥 두기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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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요 몇 년 사이 알라딘보다는 지역 육아 카페에 글을 더 많이 쓴다. 세간에서는 맘충의 온상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에 아이 열 보초 서다가 막막할 때, 남은 식재료가 애매할 때, 나들이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육아카페는 도움이 되었다. 열심히 알뜰살뜰 가족들 먹일 요리 사진을 올리거나 말끔하게 거실 청소한 사진이 올라오면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책이나 보며 노닥거릴 때가 아니지 무엇보다 난 주부지, 하는 자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육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대로 영영 아줌마가 되는가 싶어서 아줌마들이랑 어울리기를 싫어했는데 진짜 생각해보니 너무나 우습다. 그런 시기를 겪으며 나이들어가는 것이겠지.

 

지난 주에는<소년이로>를 들고 다니며 세 편 정도 읽었고,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엄청 놀러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도 엄청 많이 했다.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이나 행동을 한 듯해서 또 부끄러웠지만 어떤가. 흔한 중년 아줌마인데 그 정도 주책은.

 

*

 

어제 밤에는 수업 준비 스트레스로 여기저기 헤매다 이석원 님 블로그를 보았다. 찾으려 들었으면 진작에 찾아 읽었겠지만, 딱 어제 밤에 찾아 읽게 되어 딱 좋았다.

 

석원 님의 드라마 리뷰들을 보며 <스카이캐슬>을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요즘에는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나대로 놀고 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밥을 해주어야 하고 숙제를 봐주어야 하고 준비물 등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고학년이 되고 아이들 생활이 자기들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내가 관여할 부분이 적어지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석원 님과 어머님 이야기를 듣고는 아들이 나랑 좀 덜 친해도 서운해 말고

결혼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금부터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초등인데 비장하다. ㅋ 역시 아직은 집착을 말끔하게 버리지 못한 것)

 

가끔은 아들에게 여자친구랑 열 번 영화를 보면 한 번은 엄마랑 봐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그만 해야겠다.

 

그때마다 아들의 답은 여자친구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알 수 없는걸

혹은 혼자 볼 건데.

 

 

*

 

어느 저녁시간에 아들과 요즘 우리 지역에 활개치고 다니는 신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엄마, 그럼 사이비 구분하는 법이 뭐야.

 

일단 사이비는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요구해.

 

엄마도 성당에서 꽤 오래 시간을 보내잖아.

 

아니지 사이비는 돈도 많이 빼앗아가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엄마, 성당도 헌금도 내야 하고 건축헌금인가도 내잖아.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기는 첫영성체 교리 때도 엄청나게 삐딱선을 타다가 주임 신부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첫영성체도 못할 뻔한 전력이 있으니.

 

 

*

어제 아침에 오전 여덟 시 미사를 드리고 딸과 바로 조선대학교 장미원에 갔다. 해마다 이 시기에 가는 곳인데 작년에 아들을 억지로 데려와 고생한 기억이 있어 딸과 왔다.

 

어제는 기후가 고르지 못 했고, 다들 종교활동을 하거나 늦잠 잘 시간인 일요일 오전 아홉 시여서 아주 느긋하게 걸어다녔다.

 

장미들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의 세례명인 안젤라라는 품종 앞에서 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제 4학년이다 보니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더 재미있어하고 꽤 잘 찍는듯하다.

 

다니다 우연히 딸아이 같은 반 친구를 보아서 또 사진을 찰칵.

 

*

집에 오는 길에 피자를 포장해와서 아이들과 3주 전 <나혼자 산다> 잔나비 부분을 보며 별것도 아닌 장면에 엄청 웃었다.

 

아들이 요즘은 친구들과 잘 놀지 않는데 잔나비 리더같이 초등 친구들과 저렇게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고 또 훈수를 두었다.

 

딱 같이 웃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

 

<소년이로>와 석원 님 블로그 이야기들이 많이 겹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하고 아픈 사람들 이야기.

 

연결되지 않고 분절되고 뚝뚝 끊기는 그 이야기들에 한참 마음이 쓰인다.

 

오다가다 만나는 엄마들 이야기와도 겹쳐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그저 그런 이야기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하루하루는 전도부인들이 외치는 그런 승리하는 삶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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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동네 엄마가 갑자기 카톡을 보내왔다. 포스터 한 장과 일정표가 있었고 따로 비용은 없으니 시간 되면 갈 수 있냐고 물어왔다. 마침 수업이 없는 날이라 간다고 답은 했는데 전에 알던 엄마가 신천지 모임 비슷한데 데려간 적이 있어 의심병이 또 도졌다. 포스터에 있는 연락처로 주관은 어디에서 하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청년은 잠시 웃더니 우리동네협동조합이라는 담양의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으로 꾸려갈 단체에서 공정여행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혹시 신천지는 정말 아니죠, 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지.

 

화요일 아침에 너무 감사하게 은하 씨가 데리러 와서 투어행 버스에 올랐다. 먼저 간 곳은 관방제림 뒷편의 연화촌이라는 곳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던 뒷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한적한 숲길이 있었다. 죽암 전명운 의사 추모비가 건너다 보였다.  관방제림에 관련된 이무기 설화를 설명해주셨고, 여러 야생화, 이팝나무를 지나 플라타너스 가득한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리를 지나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관방제림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 관방제림은 한산하고 녹음이 우거진 관광공사 사진 공모전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 몇이 있을 뿐.

우왕. 역시 평일 여행이 진리! 

 

관방제림 바로 근처에 담빛예술창고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전시관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데 지역 육아카페와 SNS에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가 '컨템포러리아트 인 남도' 전을 관람했다. 동시대의 남도 작가들의 작품을 보았는데 큐레이터의 설명이 없으면 보기 힘든 팝아트 등 여러 작품을 보았다. 반가사유상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미키마우스, 돌로 정교하게 만든 명품가방, 몽유도원탁상도 등이 기억에 남는다.

 

 

진짜 그 L가방 같은 정교한 조각

 

 

몽유도원탁상도

 

 

 여기는 카페공간

전에 가본 나주 남양유업공장 더카페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카페 공간으로 이동해 정원을 바라보며 라떼를 마셨다. 카페 공간 뒤로 가보니 재미있는 조각들도 많았다.

 

그곳 창가 자리는 정말 오래 앉아 책 보고 싶은 그런 곳.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꽃향기, 풀내음을 머금은 초여름 분위기가 완연한 곳이다.

 

 

패키지로 오긴 했지만 서로 적당히 떨어져 담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밥을 먹으러 근처 황금소나무라는 곳에 갔다. 담양에는 정말 한정식집이 많은데 외지인들이 오면 사실 어느 곳을 가도 다 맛있다. 엄청나게 많은 비슷비슷한 반찬이 나오고 많이 버려지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과 주로 소쇄원 근처 절라도 식당만 갔었는데 이곳은 깔끔한 퓨전한정식이라 괜찮았다. 흑임자 소스와 유자 소스를 주로 냈고 적당한 반찬만 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진도울금효소가 후식인 것도 마음에 든다.

 

 

두부탕수 우왕 ^^

 

 

 

이후 먹감촌이라는 체험장에 갔다. 그 지역 먹거리 먹감을 요리에 활용해 곶감 머핀을 만드는 체험을 했다.

 

 

 

 

 

 

 

 

 

 

 

 

 

 

 

 

요리하시기 전에 '첫번째 질문'이라는 책을 읽어주셨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좋았다.   

 

몇 살의 나를 가장 좋아하나요?

 

어떻게 나이들어 가고 싶나요?

 

이 외에도 그간의 생활을 돌아볼 여러 잔잔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런 질문이 곶감 머핀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매우 연관이 깊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오후 세 시에 홍차와 즐기는 머핀에는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갈 수 있다. 주로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가 들어가지만 이렇게 의외의 재료를 조합해 훌륭한 맛을 낼 수도 있다. 우리 삶도 때로는 전혀 의외의 요소가 들어가 풍요롭게 되는 때도 있으니.

 

결론.

전통 식품인 '곶감'과 영국 '머핀'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조가 성격이 급한 아줌마 셋이라 순서가 꼬였을 뿐.

 

머핀이 구워질 동안 '까망감'이라는 인스타 갬성 충만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주최측이 준비한 버스킹을 즐겼다.

 

 

 

 

완성된 머핀을 카페로 가져다주셨다 ^^ 

 

 

야외에서 하기 힘든 특성상 카페에서 들었는데 여행을 이끄는 청년 분이 실은 디지털싱글도 낸 가수였다. 이 지역에서 주로 공연하시는 봉훈님은 요새 유행하는 잔나비 노래를 시작으로 마지막에 자작곡으로 공연을 마무리하셨다. 손물결도 만들고 간만에 총각선생님에게 환호하는 여고생같이 관람해서 창피한지 같이 온 엄마가 어느새인가 안 보였다. ㅎ 창피한 건 아니고 근처 웅덩이에 올챙이가 있다고 해서 산책하고 왔다고 했다. 카페 야외 마당으로 나와서 아가씨들이 하듯이 돗자리에 앉아 화관도 쓰면서 이런저런 설정 사진도 찍었다.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간단히 설문조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는 힘든 조합이겠지.

 

이렇게 다시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원래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진 않는데 열심히 요소요소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홍보에 도움이 되게 여러 곳에 글을 남길 생각이다.

 

 

 

*

 

사진을 진짜 흥분해서 과장 안 하고 100장도 넘게 찍어 잘 추려보아야겠다.

 

같이 간 은하 씨가 주로 풍경사진을 찍는 나에게 외로운 사람들이 풍경을 많이 찍는대요, 라고 해주어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앞으로는 함께 다니는 사람들을 더 담아야겠다.

 

버스킹 중에 디지털싱글을 낸 봉훈 님이 새벽 두 시반에 들으면 우울 터지는 노래라고 자기 노래를 소개하셨는데 새벽에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남녀상열지사 노래에 이제는 크게 가슴 아프지 않아 더 씁쓸하다.

 

 

 

 

 

 

 

 

 

 

 

 

 

 

 

 

우리 좀 가벼웠으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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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박혜란

 

 

가벼이, 가벼이 살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한가, 어떤 이야기를 전할 때 좋은가를 곱씹는다. 최소한 비장하지는 않게 옆 사람과 어느 정도 경쾌하게 템포를 맞추고 싶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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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일이 있었던 가정의 달 초반이었다.

그 가운데 읽고 있는 책들.

 

은유 님 책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다. 어렵게 글을 쓰는 분은 아닌데 당시의 내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지 더디게 읽혔다.

 

읽다가 아는 분 성함이 나와서 놀랐다. 대학 때 동아리 간사를 해주신 분인데 성착취 당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계시는구나.

 

성함으로 기사도 검색해보았다.

참, 여전하시네, 하고 반가웠다.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지내실 거라고 예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여서 많이 감사하다.

 

*

대학 때 나는 여성주의자도, 투사도 아닌 그냥 '상처받은 아이'였던 듯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하고 과도하게 밝은 새내기 역을 자처하던 내게 간사님은 '뻥쟁이'라고  하셨다. 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신 분 같다. 입으로는 소외된 여성, 민중이 어쩌고 했지만, 현실은 가장 소외된 여성인 엄마를 보듬지 못하고 있었으니.

 

결혼, 출산, 양육을 통해 켄 로치의 '되어보기의 망토'를 직접 입고 나서야 내가 십대이십 대 때 답답하게만 보았던 '그 아줌마들', '엄마', '이모'의 행동을, 감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

 

계속해서 은유 작가님은 가사, 육아를 온전히 전담해본 시기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이런 사회제도 하의 중년 여성은 가정에서 이중의 임무를 떠맡는다.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이라는 사회적 돌봄 기능은 아무런 비용 지불 없이 여성에게 떠맡겨진다. 작가님이 간간히 토로하는 양육의 힘겨움과 봉양의 까다로움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요즘 남성들은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수고로움까지는 공감하면서도 생애 주기를 통해 가정 내에 돌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간과하는 듯하다. 초등고학년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아이들과 소통하고 먹거리를 챙겨주고 또 여러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의 안부를 묻고 병원에 동행하고 하는 건 모두 사사로운 일로 취급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돌봄노동은 여전히 '사회제도'가 아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가정 내 사적 돌봄에 머문다.

   

*

 

 

은유 님 책을 읽다보면  성인 여자의 애니메이션 타임(大人女子のアニメタイム)이라는 서늘한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야마모토 후미오의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를 각색한 삽화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주인공은 마트 캐셔를 하며 아이들을 기르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엇나가고 연로한 부모는 딸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남편은 가정에 큰 관심이 없다.  

 

 

 

그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한 적 없는데 어느새인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은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고,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그래도 글쓰는 학인들과 연대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간간이 보여서 작은 희망을 찾게 된다.

 

 

자기 언어로 쓰고 연대하고 주변에 소소한 친절을 베풀라!

확실한 것, 무조건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마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이 그림책도 따스했다.

 

헌신하고 희생하신 우리 어머님들의 언어.

뜻밖에도 어떤 회한 없이 담백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며 그 힘든 세월을 누구의 원망으로 돌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시는 태도에 감동했다.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를 보면서 조금 과장해서 평행우주급으로 거의 다른 시공간을 사는 우리 부부도 나중에는 저렇게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노년이 되게 노력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홧병 다스리는 비법을 어느 유튜브에서 봤는데 상대(파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도가 모래성을 허물듯이 파도는 그렇게 치는 것이니 원망하지 말고 모래성을 옮기란다.

 

그러니까 파도가 치든 말든 '내 모래성(내 감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애초에 바닷가를 잘 선택했어야 했나. ㅎ  현재는 뭐 주위를 보니 어느 해변도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 훗.

 

 

 

 

 

 

 

 

 

 

 

 

 

 

 

 

 

 

 

집 근처 북카페에서 읽었는데 아무튼 시리즈는 부담없이 읽기 좋다.

 

<아무튼, 계속>을 쓰신 분을 굳이 명명하자면 초식남 계열인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저자는 혼자 사는 남성으로 수영장에 오랜 기간 꾸준히 다니고 있는데 아마 이런 연유로 오래 다니게 되는 듯하다고 전한다.

 

 

나 역시 (열심히 나가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클럽에서 가끔 이런 느낌을 받는다.

 

대화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단톡방에 올라오는 아재 개그들에 오후에 잠시 웃게 되는 때도 있다.

 

 

 

소소하게 밑줄 그을 부분이 있었는데 집에 와야 했다.

아이들이 올 시간에 그냥 밖에 있기, 이것이 참 아직도 어렵다.

 

 

 

 

 

 

 

 

 

 

 

 

 

 

 

정은 작가님의 추천도서.

 

몇 장 읽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에 빠져서 그런가보다 ㅋ

애들도 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혼자 놀아야 하기도 하니

책을 진득하게 못 붙들고 있다.

 

정은 작가님이 가부장제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역작이 나오리라 믿는다.

 

<디디의 우산>을 잘 읽었는데 말하기 어렵다. 아직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연대에서의 그 일들

멀찍이 보고 안타까워만 했는데 이제라도 증언이 나와주어 고맙다.

그래, 아시는구나, 싶었다.

 

 

*

 

참 여전하다.

대학 때 어느 선배가 지적했듯이 정리되지 않고 장황하다, 나란 사람.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는

이런 내가 나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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