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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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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에게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에 읽은 <알렉스>의 이야기가 여전히 생생한 가운데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저 빠져들고 말았다. 알렉스에서의 최단신 형사반장 ‘카미유’가 등장하는 이야기인가 내심 기대하기도 하였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한 여성의 삶의 이면에 감춰진 어떤 비밀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카미유’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책은 아니었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리란 기대, 그리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왜?’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을 수밖에 없는 마력이었다.

 

여섯 살 레오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왠지 평온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집안, 그 집의 외동아들 레오의 보모로 취직한 ‘소피’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잔 날, 레오의 죽음을 발견한다. 그녀의 운동화 끈에 목이 졸린 채. 아무런 외부 침입자를 확인할 수 없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 그리고 그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 그녀는 도주를 결심하는데, 연달아 또 다른 살인사건에 휩쓸리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소피의 상황들, 일련의 도피 과정을 다루고 있다. 1급살인용의자로써 수배대상인 삶은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위조한 신분을 이용해 결혼을 결심하기로 하면서 이야기를 끝을 맺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이야기 속 소피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그녀의 살인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고 그녀의 살인 동기의 정당성(?)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진짜 이야기, 기억이 없는 살인 속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이 있을 것이라며 참혹한 살인에도 느긋하게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수사에 난항을 보이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심 기대했던 ‘카미유’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알렉스>를 통해 형사 ‘카미유’의 활약상을 다룬 이야기가 시리즈로 출간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의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말이다.

단순히, 그녀의 도피를 추적하는 예리한 형사, 그가 파헤쳐가는 소피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비밀이 조금씩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더욱 압도되었다. 정말 난데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가 막힌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차례는 ‘소피, 프란츠, 프란츠와 소피, 소피와 프란츠’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의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는 구성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프란츠’란 인물이 주는 반전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어떤 결말의 반전보다도 더 파급이 강한 반전인 것이다. 이성적으로, 아닌 감정적으로도 ‘왜?’에 대한 합당한 설명, 이유가 필요했고,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로 ‘왜?’란 의문의 올가미에 갇힌 기분이랄까? 그리고 소피의 상황들, 한 여성의 삶을 낱낱이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의 무자비함을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소피’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이기에 어떤 살인의 동기, 그리고 살해 장면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없이 전개될 수 있어, 스릴러 소설이 주는 부담감, 즉 핏빛으로 물든 잔혹한 살인들이 주는 위압감은 다소 덜했다. 그래서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그 어떤 살인보다도 잔혹한 이야기임엔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스릴러 소설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왜?’란 의문이 가져온 강력한 흡입력이 압도적인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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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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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권> 이제 토지 4부의 막이 올랐다. 1929년을 기점으로 1930년대의 일제시대,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참혹했는지, 많은 이들의 삶을 통해 옴팡지게 느낄 수 있었다. 숨 고르기를 하듯, 시대의 풍경, 그 예리한 묘사는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4부는 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싸움, 잘못이 없는 강쇠에 강한 봉변은 진정 일제시대의 비극, 그 처참한 울분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저 조선인이기에 일본인에게 당하는 수모, 하지만 그것을 참아내야 했던 많은 이들의 삶이 강쇠에게 투영되었다. 그럼에도 용팔이 홍이에게 한 ‘그래도 길게 살아남아라’라는 말이 나지막히 들려온다. 그렇게 숨죽이며 살아낸 시간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 내재된 희생의 참 뜻을 또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12권, 용의 죽음으로 홍의 만주로의 이주는 확정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가와 오서방의 묵은 감정이 폭발하면서 홍은 생사를 오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다시금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했다.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홍의 만주행은 기정사실이었기에 만주에서의 홍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그렸던 내게는 진정 용팔의 말처럼 마른 하늘에 날벼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할수록 <토지>라는 거대한 우주를 만난 듯한다. 그저 탄성이 절로 터진다. 앞선 이야기들, 평사리를 배경으로 많은 마을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 중에서 간혹 등장했던 우가와 오서방의 앙금이 또 다른 이야기의 물꼬가 되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든다. 각각의 많은 인물들이 제 나름의 목소리는 찾는 듯,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게 된다. 여하튼 홍의 부상으로 만주행은 지연되고, 그러다보니, 장이가 돌아온 시점과 맞아떨어지면서 다른 갈래의 이야기꽃이 활짝 만발한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만주에서 넉 달 만에 평사리로 돌아온 한복의 이야기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역사적 사건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데, 한복의 아들 영호가 진주에서의 학생 만세 시위에 주모자로 연행되면서 평사리 마을사람들과 한복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복의 지난 숨죽인 삶이 순식간에 사라지듯,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한복의 지난 설움을 녹여주는 장면,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역시 길게 살아볼만한 삶이란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친다.

 

13권에도 역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일제의 참혹한 폭압의 실상이 오롯이 그러지고 있다. 지난 이야기들 속에서 그려진 좌절과 번민, 혼란과 방황은 성장한 다른 이들의 삶에 녹아들었다. 환국와 윤국의 이야기가 특히 그러했다. 반면, ‘민지연’, ‘해도사’, ‘하기서’이라는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조용하와 명희, 송광수, 유인실과 오가다 등의 이야기들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 예고하고 있어, 여지없이 기대에 들뜬다.

 

우국열사들의 삶이 아니기에 오히려 많은 이들의 치열한 삶은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진정으로 다가온다. 홍이 아비, 용을 그리면서 생각했던 이야기가 끊임없이 <토지>를 통해 되새기게 된다. “뇌리를 스쳐가는 간도땅에서의 수많은 우국열사들, 흠모하고 피가 끓었던 그 수많은 얼굴들, 그러나 홍이는 아비 이용이야말로 가장 멋진 사내였다고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열사도 우국지사도 아니었던 사내,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생애가 아름답다. 사랑하고,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간의 도리를 위하여 무섭게 견디어야 했으며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그 감정과 의지의 빛깔, 홍이는 처음으로 선명하게 아비 모습을, 그 진가를 보는 것 같았다.” (93쪽)  무섭게 견디었던 삶,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삶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요즈음,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보다보면,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무섭게 견디어내는 삶의 진정한 가치, 그 숭고함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껴본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삶, 거미줄같이 끈적끈적한 인연들 속에서 숱한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지만, 나 역시 무섭게 견뎌내고,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또한 ‘제 앞만 쓸고 사는 인간’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거듭 <토지>를 통해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사람 냄새 진동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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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 - 3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2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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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토지 9권, 3부 1권>의 시작에서 이미 많은 인물들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특히 환과 용의 죽음이 그러했다. 마음속으로 그들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 죽음을 풀어내는 과정은 뜻밖의 변고처럼 애달프게 다가온다. 이번 12권(3부 4권)에서는 용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기보다는 홍의 삶의 변화에 내심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공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만주로의 전개 속에 홍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이번 권에서는 복선만 깔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홍이 이외의 다른 남강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 젊음을 잊는 다른 청춘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한복의 아들 용호와 홍이 이야기가 따끔하게 느껴졌다. 살인죄인의 아들로서 한복이 견뎌낸 삶의 이야기가 절절한 만큼 아들 용호의 이야기에 나름 주목하게 된다. 그 외에도 김 훈장의 증손 ‘범석’과 쫓기는 신세가 된 ‘석’의 이야기가 설핏 스쳐지나갔다.

12권에서는 이상현의 다시금 등장하였다. 만주로 향한 후, 이내 자취를 감추었던 그의 이야기, 그의 목소리가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패배주의, 극복하지 못한 자조의 삶이 지속되고 있어, 어떤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아닌 소망을 품어보게 된다. 그만큼 봉순의 죽음이 애석한 것일까? 너무도 갑작스런 봉순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딸 아이 양현으로 인해 상현은 그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또한 명희의 이야기, 박제된 학 같은 삶이라던 자조의 삶은 끝이 없었다. 남편의 외도, 숱한 소문들을 뒤로하고, 여전히 박제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왠지 모르게 서럽고 한스럽게 느껴진다. 명희 그 자신보다 그녀를 보고 있는 마음속의 어떤 반감과 더불어 나의 시름도 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현과 명희의 이야기는 점점 우울함만 더해가는 듯하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의의 삶이 아닌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또 다른 인물 소림의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10권에서 등장했던 박 의원을 중심으로 ‘정윤’과 ‘숙희’의 이야기가 박 의원의 말 그대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희를 향한 박 의원의 마음이 짤막하게 그려졌다.

여전히 길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서희의 삶의 변두리에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어, 언제쯤 그의 이야기를 귀전에서 들을 수 있을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12권(3부 4권)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스산했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삶이 질척거리듯, 그 누군가의 죽음보다도 삶이 더없이 슬픔의 안개로 자욱했다. 특별히 가슴 속을 후려치는 격랑의 파고가 없이 등장인물들의 성격처럼 무던하게 잠잠한 것이 또 다른 폭풍우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삼일 만세 이후의 10여년의 시간, 왠지 독립은 요원하게 느껴지면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겪었던 시대의 혼란이 등장인물, 그 개개인의 삶을 통해 여지없이 투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삶의 에너지, 견디는 삶의 에너지를 손끝으로 느껴보면서 희망이란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울하고 처참하게 이글어진 삶, 그 삶의 밑바닥이 오히려 격렬한 생의 에너지로 꿈틀된다고 할까? <토지>를 읽다보니, 자꾸만 허투루 허물 수 없는 생의 무한한 힘을 느끼게 된다. 이미 13권(4부 1권)의 책이 곁에 머물고 있다. 4부의 시작,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날마다 기대에 들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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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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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3부 3권)>의 이야기는 왠지 예전의 숱한 죽음과는 다른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하지만 죽음은 또 다른 인물들과의 인연들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죽음이 드리운 우울과 암담한 이야기는 분명 아니었다. 애잔했던 죽음 뒤, 또 다른 많은 삶, 생이 옴팡지게 꿈틀거리고 있다. 세대의 교체, 시간의 흐름 속에 인물들의 성장과 다른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등장의 연속이었다. 각각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개인의 삶 또한 비극적인 탓일까? 하지만 비극 속에 숨은 희극의 이야기들로 나는 분명 신났었다. 그럼에도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한다.

 

은신하기 위해 평사리, 서희를 찾았던 이후, 종적을 감추었던 김환,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 같다는 말이 진정이 되었다. 이미 ‘마지막 동학군 김환 장군’이란 목차에서 불길한 예감을 할 수 있었는데, 그의 죽음 또한 금녀만큼 허망하고 참담하고, 그런데 또한 숭고하다고 할까? 왠지 내 주변 누군가의 비보같이 잠시 아찔해진다. 그만큼 드문드문 등장하지만 김환의 이야기는 베일 속에 감춰진 듯하여 항상 마음 한 구석을 무척이나 애달프게 하였고, 또한 그리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은데 하는 순간, 또 다른 안타까움 죽음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하다. 김환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언제 한 번 시원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항상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게 하지만, 이내 들리는 것은 가슴을 메이게 하는 안타까운 소식뿐인 봉순이었다. 지난 10권에서 아편쟁이가 되었다는 소식 이후, 진주로 내려온 기화, 봉순의 이야기는 여전히 무엇인가 가슴 시리게 아픈 이야기였다. 기화를 향한 석이의 마음, 그리고 봉춘네에서의 석과 기화의 이야기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을 찡하게 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언제고 그리움의 성을 쌓다가 삶을 등진 것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애끓는 무언가가 묵직하게 가슴 속에 남은 듯하다.

 

그러고 보면 또 다른 인물이 세상을 등졌다. 이번에도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한 많은 사연을 풀어놓았다. 매번 안타까움 죽음의 언저리에 있던 인물 같은 복동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의 뒷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극이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다.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85)’, ‘시뻘건 거짓말을, 밤새도록 얼마나 뜯어 맞추었던지, 사람들 뒷전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석이는 배창자를 움켜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한편 진실에 가깝게 재주를 부리는 봉기 모습에 서글퍼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도 같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는 개미며, 벌레 중에서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수컷이 있다던가. 석이는 문득 그 신비한 조화를 생각한다.(112) 두리를 향한 아비 봉기의 부정, 그리고 그 아비를 향한 아들 두식의 울부짖음은 그간의 봉기의 악행을 잠시 잊게 하였다. 그리고 최근 <디너>(헤르만 코흐, 은행나무 2012)라는 책을 읽으면서 살인을 감싸는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 꽤나 불편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모순될 수밖에 없는 어떤 선택의 진정성에 마음이 쓰라졌다. 그 불편한 기억의 이면의 내재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임이네의 죽음은 10권의 마지막, 박에 예고되어 있었다. 용과 홍의 회상 속에서 그녀의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 준 어미 임이네에 대한 홍의 그간의 마음은 ‘죽음’을 계기로 해소되었고, 또한 혈연의 끈끈함의 다른 모습을 그려주었다.

 

<토지 12권>에도 이미 용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아~ 마음 한 구석이 벌써 시려오는데, 용이 죽음은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아비의 죽음으로 홍의 삶을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 번의 모진 고초 후에도 장이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한 차례 시련이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에 커다란 파랑이 일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그의 삶이 어떤 회오리바람을 타고 휩쓸리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12권의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게 한다.

 

이제야 <토지>라는 거대한 산의 능선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계획한 것보다 다소 느린 걸음이었다.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꽃을 연신 피우며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토지> 속 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깊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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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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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얼굴을 한 천사? 천사의 탈을 쓴 야수?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그의 진실한 모습일지 모른다. 진실은 때로 수많은 얼굴을 가졌으니까.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딸, 이익에 따라 악인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며, 교활한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자이기도 하며, 간악한 밀고자이기도 하고 밀고의 희생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 모든 얼굴이 거부하지 못할 우리들 자신의 진실인 것이다. (180)

 

1권을 읽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히라누마 도주, 윤동주’의 등장과 형무소 내의 일련의 어떤 변화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만으로 글을 읽기에는 전쟁이 드리워진 시대의 암흑과 그와 더불어 식민지, 그 시대 조선인의 고통이 처절하고 암담할수록 오히려 외면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 나치의 생체실험, 학살 등은 뇌리에 박혀있는데 일제에 의한 마루타, 학살 등은 기억 저편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었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기억했지만, 그곳에서 자행된 끔찍한 진실들을 결코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과정, 죄수들의 대규모 탈출 기도와 지하에 감춰진 어떤 사건에 대한 호기심만을 키웠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내의 실제 했던 어떤 사실, 진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이제야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란 명백한 진리가 폐부를 찌르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죄를 실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욱 뇌리 깊숙이 박혀 버린 진실, 그 뼈아프고 몸서리쳐지는 진실이 고개를 들었다.

 

<별을 스치는 바람 2>는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들에 깜짝 놀라며 내친걸음을 내달렸다. 악마 같은 간수 ‘스기야마’의 이면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참혹한 시대의 더욱 투명해지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억압이 여전히 우리 삶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울분 이외에도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이 피부로 느껴졌다.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어린 간수병 ‘유이치’가 악마처럼 변모해 전쟁의 피폐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었는데, 나의 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의 숱한 갈등과 고백으로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시선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애환을 느끼게 되었다.

 

“....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삶을 망쳐 버려선 안 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168)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 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80~181)

 

함부로 눈시울조차 붉힐 수가 없었다. 누구처럼 나 역시 울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이치는 살아남아, 시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소설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윤동주를,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졌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분명하게 울리는 하나의 외침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 역시 분명한 유죄라는 것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란다. 문제는 To be, 즉 ‘가만히 있느냐?’ Not to be, ‘가만히 있지 않는냐’란다.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않느냐? 내게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가슴이 그간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워졌다. 자유를 향한 열정, 그리고 삶의 대한 뜨거운 의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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