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1(3부 3권)>의 이야기는 왠지 예전의 숱한 죽음과는 다른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하지만 죽음은 또 다른 인물들과의 인연들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죽음이 드리운 우울과 암담한 이야기는 분명 아니었다. 애잔했던 죽음 뒤, 또 다른 많은 삶, 생이 옴팡지게 꿈틀거리고 있다. 세대의 교체, 시간의 흐름 속에 인물들의 성장과 다른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등장의 연속이었다. 각각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개인의 삶 또한 비극적인 탓일까? 하지만 비극 속에 숨은 희극의 이야기들로 나는 분명 신났었다. 그럼에도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한다.

 

은신하기 위해 평사리, 서희를 찾았던 이후, 종적을 감추었던 김환,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 같다는 말이 진정이 되었다. 이미 ‘마지막 동학군 김환 장군’이란 목차에서 불길한 예감을 할 수 있었는데, 그의 죽음 또한 금녀만큼 허망하고 참담하고, 그런데 또한 숭고하다고 할까? 왠지 내 주변 누군가의 비보같이 잠시 아찔해진다. 그만큼 드문드문 등장하지만 김환의 이야기는 베일 속에 감춰진 듯하여 항상 마음 한 구석을 무척이나 애달프게 하였고, 또한 그리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은데 하는 순간, 또 다른 안타까움 죽음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하다. 김환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언제 한 번 시원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항상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게 하지만, 이내 들리는 것은 가슴을 메이게 하는 안타까운 소식뿐인 봉순이었다. 지난 10권에서 아편쟁이가 되었다는 소식 이후, 진주로 내려온 기화, 봉순의 이야기는 여전히 무엇인가 가슴 시리게 아픈 이야기였다. 기화를 향한 석이의 마음, 그리고 봉춘네에서의 석과 기화의 이야기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을 찡하게 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언제고 그리움의 성을 쌓다가 삶을 등진 것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애끓는 무언가가 묵직하게 가슴 속에 남은 듯하다.

 

그러고 보면 또 다른 인물이 세상을 등졌다. 이번에도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한 많은 사연을 풀어놓았다. 매번 안타까움 죽음의 언저리에 있던 인물 같은 복동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의 뒷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극이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다.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85)’, ‘시뻘건 거짓말을, 밤새도록 얼마나 뜯어 맞추었던지, 사람들 뒷전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석이는 배창자를 움켜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한편 진실에 가깝게 재주를 부리는 봉기 모습에 서글퍼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도 같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는 개미며, 벌레 중에서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수컷이 있다던가. 석이는 문득 그 신비한 조화를 생각한다.(112) 두리를 향한 아비 봉기의 부정, 그리고 그 아비를 향한 아들 두식의 울부짖음은 그간의 봉기의 악행을 잠시 잊게 하였다. 그리고 최근 <디너>(헤르만 코흐, 은행나무 2012)라는 책을 읽으면서 살인을 감싸는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 꽤나 불편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모순될 수밖에 없는 어떤 선택의 진정성에 마음이 쓰라졌다. 그 불편한 기억의 이면의 내재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임이네의 죽음은 10권의 마지막, 박에 예고되어 있었다. 용과 홍의 회상 속에서 그녀의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 준 어미 임이네에 대한 홍의 그간의 마음은 ‘죽음’을 계기로 해소되었고, 또한 혈연의 끈끈함의 다른 모습을 그려주었다.

 

<토지 12권>에도 이미 용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아~ 마음 한 구석이 벌써 시려오는데, 용이 죽음은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아비의 죽음으로 홍의 삶을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 번의 모진 고초 후에도 장이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한 차례 시련이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에 커다란 파랑이 일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그의 삶이 어떤 회오리바람을 타고 휩쓸리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12권의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게 한다.

 

이제야 <토지>라는 거대한 산의 능선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계획한 것보다 다소 느린 걸음이었다.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꽃을 연신 피우며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토지> 속 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깊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