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2 - 3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2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3부<토지 9권, 3부 1권>의 시작에서 이미 많은 인물들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특히 환과 용의 죽음이 그러했다. 마음속으로 그들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 죽음을 풀어내는 과정은 뜻밖의 변고처럼 애달프게 다가온다. 이번 12권(3부 4권)에서는 용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기보다는 홍의 삶의 변화에 내심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공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만주로의 전개 속에 홍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이번 권에서는 복선만 깔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홍이 이외의 다른 남강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 젊음을 잊는 다른 청춘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한복의 아들 용호와 홍이 이야기가 따끔하게 느껴졌다. 살인죄인의 아들로서 한복이 견뎌낸 삶의 이야기가 절절한 만큼 아들 용호의 이야기에 나름 주목하게 된다. 그 외에도 김 훈장의 증손 ‘범석’과 쫓기는 신세가 된 ‘석’의 이야기가 설핏 스쳐지나갔다.

12권에서는 이상현의 다시금 등장하였다. 만주로 향한 후, 이내 자취를 감추었던 그의 이야기, 그의 목소리가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패배주의, 극복하지 못한 자조의 삶이 지속되고 있어, 어떤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아닌 소망을 품어보게 된다. 그만큼 봉순의 죽음이 애석한 것일까? 너무도 갑작스런 봉순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딸 아이 양현으로 인해 상현은 그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또한 명희의 이야기, 박제된 학 같은 삶이라던 자조의 삶은 끝이 없었다. 남편의 외도, 숱한 소문들을 뒤로하고, 여전히 박제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왠지 모르게 서럽고 한스럽게 느껴진다. 명희 그 자신보다 그녀를 보고 있는 마음속의 어떤 반감과 더불어 나의 시름도 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현과 명희의 이야기는 점점 우울함만 더해가는 듯하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의의 삶이 아닌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또 다른 인물 소림의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10권에서 등장했던 박 의원을 중심으로 ‘정윤’과 ‘숙희’의 이야기가 박 의원의 말 그대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희를 향한 박 의원의 마음이 짤막하게 그려졌다.

여전히 길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서희의 삶의 변두리에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어, 언제쯤 그의 이야기를 귀전에서 들을 수 있을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12권(3부 4권)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스산했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삶이 질척거리듯, 그 누군가의 죽음보다도 삶이 더없이 슬픔의 안개로 자욱했다. 특별히 가슴 속을 후려치는 격랑의 파고가 없이 등장인물들의 성격처럼 무던하게 잠잠한 것이 또 다른 폭풍우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삼일 만세 이후의 10여년의 시간, 왠지 독립은 요원하게 느껴지면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겪었던 시대의 혼란이 등장인물, 그 개개인의 삶을 통해 여지없이 투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삶의 에너지, 견디는 삶의 에너지를 손끝으로 느껴보면서 희망이란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울하고 처참하게 이글어진 삶, 그 삶의 밑바닥이 오히려 격렬한 생의 에너지로 꿈틀된다고 할까? <토지>를 읽다보니, 자꾸만 허투루 허물 수 없는 생의 무한한 힘을 느끼게 된다. 이미 13권(4부 1권)의 책이 곁에 머물고 있다. 4부의 시작,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날마다 기대에 들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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