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3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3권> 이제 토지 4부의 막이 올랐다. 1929년을 기점으로 1930년대의 일제시대,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참혹했는지, 많은 이들의 삶을 통해 옴팡지게 느낄 수 있었다. 숨 고르기를 하듯, 시대의 풍경, 그 예리한 묘사는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4부는 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싸움, 잘못이 없는 강쇠에 강한 봉변은 진정 일제시대의 비극, 그 처참한 울분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저 조선인이기에 일본인에게 당하는 수모, 하지만 그것을 참아내야 했던 많은 이들의 삶이 강쇠에게 투영되었다. 그럼에도 용팔이 홍이에게 한 ‘그래도 길게 살아남아라’라는 말이 나지막히 들려온다. 그렇게 숨죽이며 살아낸 시간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 내재된 희생의 참 뜻을 또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12권, 용의 죽음으로 홍의 만주로의 이주는 확정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가와 오서방의 묵은 감정이 폭발하면서 홍은 생사를 오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다시금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했다.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홍의 만주행은 기정사실이었기에 만주에서의 홍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그렸던 내게는 진정 용팔의 말처럼 마른 하늘에 날벼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할수록 <토지>라는 거대한 우주를 만난 듯한다. 그저 탄성이 절로 터진다. 앞선 이야기들, 평사리를 배경으로 많은 마을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 중에서 간혹 등장했던 우가와 오서방의 앙금이 또 다른 이야기의 물꼬가 되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든다. 각각의 많은 인물들이 제 나름의 목소리는 찾는 듯,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게 된다. 여하튼 홍의 부상으로 만주행은 지연되고, 그러다보니, 장이가 돌아온 시점과 맞아떨어지면서 다른 갈래의 이야기꽃이 활짝 만발한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만주에서 넉 달 만에 평사리로 돌아온 한복의 이야기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역사적 사건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데, 한복의 아들 영호가 진주에서의 학생 만세 시위에 주모자로 연행되면서 평사리 마을사람들과 한복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복의 지난 숨죽인 삶이 순식간에 사라지듯,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한복의 지난 설움을 녹여주는 장면,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역시 길게 살아볼만한 삶이란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친다.

 

13권에도 역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일제의 참혹한 폭압의 실상이 오롯이 그러지고 있다. 지난 이야기들 속에서 그려진 좌절과 번민, 혼란과 방황은 성장한 다른 이들의 삶에 녹아들었다. 환국와 윤국의 이야기가 특히 그러했다. 반면, ‘민지연’, ‘해도사’, ‘하기서’이라는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조용하와 명희, 송광수, 유인실과 오가다 등의 이야기들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 예고하고 있어, 여지없이 기대에 들뜬다.

 

우국열사들의 삶이 아니기에 오히려 많은 이들의 치열한 삶은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진정으로 다가온다. 홍이 아비, 용을 그리면서 생각했던 이야기가 끊임없이 <토지>를 통해 되새기게 된다. “뇌리를 스쳐가는 간도땅에서의 수많은 우국열사들, 흠모하고 피가 끓었던 그 수많은 얼굴들, 그러나 홍이는 아비 이용이야말로 가장 멋진 사내였다고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열사도 우국지사도 아니었던 사내,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생애가 아름답다. 사랑하고,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간의 도리를 위하여 무섭게 견디어야 했으며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그 감정과 의지의 빛깔, 홍이는 처음으로 선명하게 아비 모습을, 그 진가를 보는 것 같았다.” (93쪽)  무섭게 견디었던 삶,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삶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요즈음,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보다보면,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무섭게 견디어내는 삶의 진정한 가치, 그 숭고함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껴본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삶, 거미줄같이 끈적끈적한 인연들 속에서 숱한 갈등과 방황을 거듭하지만, 나 역시 무섭게 견뎌내고,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또한 ‘제 앞만 쓸고 사는 인간’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거듭 <토지>를 통해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사람 냄새 진동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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