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0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아쉬움 때문인지 발걸음이 오히려 더딘 듯하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면서 <토지>라는 이야기의 한복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착각에 휩싸인다. 각각의 인물들이 이야기가 수시로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최근이 이야기 중에서는 양현과 영광, 그리고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가 일제 40년대의 암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잠시 잊게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 자체가 다시금 그 시대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양현’의 이야기로 <토지 20(5부 4권)>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윤국’과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양현은 평사리를 찾은 이후, ‘연학’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잠시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현을 찾은 영광,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에 감정이입을 하며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아슬아슬 마음을 졸이면서도 가슴이 촉촉해져, 4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잠시 나마 그들의 애잔한 사랑에 두근거렸다. 매서운 바닷가, 칼바람 속에서도 함께 걷는 그들의 모습이 황량한 풍경 속에서 환한 빛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그네들의 사랑의 희열과는 정반대의 안타까운 현실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리고 영광의 이야기를 이은 것은 바로 오가다의 이야기였다. 잠시 귀국해, 누이 집에 들러 매형과의 이야기는 그 당시의 일본의 상황과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찬하와 쇼짱의 만남 그리고 갑작스런 만주로의 여행, 어린 쇼짱의 주변을 둘러싼 어른들의 아픔과 쇼짱에게 닥칠 혼란이 시대의 혼란 그 자체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없이 밝고 순순하 쇼짱의 모습이 마음 속의 어둠을 일시에 몰아내주는 듯, 글에 활기를 더해주었다.

 

지난 조준구의 죽음 이후, <토지 20(5부 4권)>에서도 그간의 악행을 자행했던 우개동의 판면과 배설자의 죽음이었다. 일본인에 의한 멸시와 악행보다 서로를 짓밟진 않고서는 설 수 없는 듯, 조선인 내에서의 악행이 가슴을 더욱 분노케하고 좌절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파국에서 강선혜가 겪는 정신적 피폐함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손자의 학병 소식에 모든 희망을 저버린 듯, 눈먼 성환 할매(석이네)의 이야기며, 그간의 잘못을 뉘우친 귀남네의 이야기, 또한 홍이의 딸 상의의 이야기, 학병에 자원한 윤국의 이야기, 만주로 떠나겠다는 영광의 이야기 등등, 마지막 권을 남긴 지금, 그 마지막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을 하게 될지, 조금은 두려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토지를 읽는 내내, 저마다 삶의 애환을 가슴에 꽁꽁 짓누르며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인생이 희로애락의 굽이굽이를 넘으며 견디고 견디는 삶이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또한 세대에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생명의 소중함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슴 깊이 파고든다. 마지막 권을 펼친다는 것이 손끝을 떨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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