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8 - 5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8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강점기, 40년대의 상황이란 것이 얼마나 암울하고 비통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 많은 등장인물들의 두려움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두 손을 불끈 쥐게 된다. 18권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침체된 분위기에도 홍이를 둘러싼 석이네(성환 할매), 천일네, 야무네의 일사분란한 점심 상 차리는 풍경이 있어, 모든 이야기를 상쇄하고 신바람난 그들처럼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삶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만으로도 펄펄 나는 듯, 생기를 찾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도 <토지>의 여러 이야기, 풍경 중에서 으뜸으로 각인될 듯하다. 정지에서 폴폴 나는 밥, 닭찜, 참기름 냄새를 마치 나의 기억, 추억처럼 잊지 못할 것 같다.

 

환국과 순철의 만남, 서희를 찾은 홍성숙과 배설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토지 18권(5부 2권)>은 홍이의 이야기와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였다. 홍이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조선으로 돌아온 뒤,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신경에서 통영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다시금 휘와 영선, 영광의 이야기 그리고 양현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애를 태우게 되었다. 이미 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이 예고되어 있는 탓에 그 전개에 절로 관심이 쏠리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한 또 다른 비극적 사랑의 당사자인 오가다와 인실의 해후와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들이 시대 상황에 맞물려 더욱 비통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배설자란 인물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면 악의 축에 설지, 우개동의 악행보다 관심이 쏠린다. 또한 만주로 떠난 상현의 이야기가 여전히 베일 속이었다. 그런데 명희를 통해 전해진 상현의 소식에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와 함께 양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시금 19권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진다.

 

<토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줄곧 롤러코스트를 탄 듯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뛰었다. 아직 남은 시간을 저울질하면 잠시 느긋하게 읽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느긋함은 뒤로하고,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과 비통함에 절로 느린 걸음을 하게 된다. <토지>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앞서다가도, 책을 펼쳐들면, 해방을 앞둔 시점에서 더욱 치열해진 삶의 단면들, 그 속의 절망과 애끓은 고통들에 마음이 절여온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고, 그간 <토지>로 인해 변화된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토지>를 통해 그 자체로의 삶과 생명의 소중함이 내 안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외눈으로 바라보면 편견에 사로잡혔던 숱한 생각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훨씬 느긋해지고 평온해 졌다는 생각에 일상의 많은 것들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토지>가 있어, 삶의 굽이굽이, 힘겨움 속에 많은 위안이 될 듯하다. 매 권마다 느꼈던, 고통 속에 심어진 희망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일어설 용기와 지혜를 품게 될 듯하다.

 

“이 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상어떼가 무리를 지어 날뛰고 피라미 한 마리 숨을 곳이 없다면 조용한 그 자체는 더 무서운 것 아니겠나? 그러나 절망하지 말게.” (320) 범석이 홍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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