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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9 - 5부 3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9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강점기, 4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토지의 5부를 읽는 것은 조금은 버거운 일인 듯하다.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토지의 결말보다도,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40년대의 풍경이 아찔하고 적막하게 가슴을 죄어온다. 역사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일제강점기의 그 약탈과 수탈의 역사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최고조에 이른 그 절망과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며 나 역시도 몸을 움츠리게 된다. 적막한 고요 속 숨죽인 울부짖음이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다.
서울의 명희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 (친구 여옥과 최상길)를 시작으로 지리산 소지감이 머물고 있는 절로 정양을 위한 떠나는 임명빈 일행의 이야기가 <토지 19권>의 서두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모화’라는 인물에 어리둥절하다가, 몽치의 등장과 예상 밖의 전개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토지의 악의 축이었던 ‘조준구’의 죽음으로 그 무언가가 일단락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혼란의 시기, 개개의 이야기들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양현’과 ‘영광’ 그리고 ‘윤국’의 어긋난 인연이었다.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떠난 양현의 이야기가 오리무중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홍이의 딸 ‘상의’를 통해 막바지에 이른 일제강점기 학교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조준구를 뒤를 잇던 ‘김두만’의 이야기, 그 반전이 또한 흥미로웠다. 반대로 석이의 딸 ‘남희’의 갑작스런 등장과 그 내막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혼란과 절망의 시간이 오히려 아득하게 끝없는 것처럼 다가왔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가면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다가올 해방의 막연한 기우 속의 사람들의 삶, 그 이야기가 낯설고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다가올 그날이 안개 속인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소제목처럼 ‘통곡하는 산하’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 삶 자체만으로도 ‘생명’이 여전히 꿈틀되고 있는 듯하여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붙잡을 수가 있었다.
... 병신자식 하나를 돌보면서 가난하게 지내던 할머니, 함께 풀을 매면서 일이 보배라 하던 그 할머니에게 새들은 겨울에 뭘 먹고 살지요? 조그마한, 저기 날아가는 철새는 어떻게 강남까지 가는 걸까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천지조화가 살게 허는 것이여. 가게 허고 오게 허는 것도 천지조화지 뭣이겄어? 사람을 몰러, 모른단 말씨.”
“할머니가 이 고생을 해오신 것도 아드님이 불편한 몸이 된 것도 그러면 천지조화의 탓인가요?
“그것이 아니지라. 사램이 천지조화를 어긴 때문이여.”
...
“천지조화는 공평하들 않는감?”
“아드님 불편한 몸도 사람이 불공평해서 그런가요?”
“공평하다믄 병신이라도 다 살아가는 길이 어찌 없을 것인여? 손발 없는 배암도 묵고 살고 물 속의 개기도 묵고 사는디, 일찍이 가고 더디게 가는 거사 천지조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께로.” (38~39)